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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6

        

         

       무인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세를 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카즈오.

       얼마 전 무려 산사태를 가르는 위업을 달성한, 일본제이무사라 불리는 남자였다.

         

       가뜩이나 호승심이 강한 무인들 사이에서 산사태를 가르는 위업을 성공시킨 무인이 나왔다…아무리 두 나라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아니 오히려 두 나라가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기에 더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은 의미로는 ‘산사태를 갈랐다.’라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낸 무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일 것이고, 나쁜 의미로는 호승심과 질투에 가까운 것이겠지.

         

       하지만 어느 쪽으로 가도 결론은 비슷하게 갈 수밖에 없다.

         

       비무.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던가.

       무인들의 ‘몸으로 하는 대화’는 직설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상대방의 경지를 가늠하기에는 더더욱 말이다.

         

       작전 직전?

       흔들리는 배 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생사결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비무인데.

       나만 불리함을 안고 있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불리함을 안고 있는 공평한 상황인데!

       고작 그 정도의 역경에 굴복해서야 무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배에 있는 무인들 대부분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어휴. 저놈의 뇌근(腦筋) 놈들은.”

         

       “괜히 무인뇌(武人腦)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평범한 사람들하고는 사고방식 자체가 달라요.”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보면서 마법사들은 질색했다.

       ‘지성적이고 지혜로운’ 자신들이 보기에, 정말 무인들은 무식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땀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더더욱.

         

       “흠. 저 장면이 그리 지성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동의합니다만…. 무인들 대부분이 뇌에도 근육이 차 있는 것 같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하아? 그게 무슨?”

         

       “일종의 생존자 편향(survivorship bias)의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성적이고 똑똑한, 주로 무도(武道)를 수양하시는 존경받을만한 분들은 쉬이 눈에 띄지 않고, 은둔하거나 폐관 수련을 하고 있어 이런 자리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게 되니…. 자연스럽게 저러한 성향의 분들이 자주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호오. 그거 새로운 관점이로군요. 그리고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생존자 편향이라. 확실히. 집단의 인상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소수의 목소리를 높이고 활동이 활발한 이들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의 무인에 대한 인상 역시 편견일 수 있다…. 과연. 일리가 있어요, 일리가….”

         

       물론 그들을 제지하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비난이라는 범주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대다수 무인은 무식하다.’라는 공격이 ‘이 자리에 있는 무인들은 무식하다.’라는 공격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굳이 바뀐 것을 따져보자면 더 범위가 좁혀지는 대신 무시하기 힘든 수준이 되었다는 것 정도일까.

         

       “…이봐, 마법사들. 다 들린다.”

         

       “압니다. 당신네 귀는 좋잖아요.”

         

       당연하겠지만 이것은 그냥 집단끼리의 결속을 위하여 외부의 존재에 대한 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인들이 오감이 좋은 것은 누구나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며, 무인들을 욕한 마법사들 역시도 그러한 상식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텔레파시나 마력 시각화 등의 우회적인 방법이 아닌 음성으로 대놓고 말했다는 것은…누가 보아도 의도적으로 시비를 건 것이었다.

         

       물론 명분은 있었다.

         

       “당신네들 하는 짓거리를 보세요. 곧 악귀를 상대하러 갈 사람들이 비무? 미쳤습니까?”

         

       뭐 단순히 친목 도모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이 자리에 있는 몇 명만 나서면 될 정도로 쉬워 보이는 작전도 아니다. 악귀, 그것도 대악귀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 개체를 상대하러 가는 일인데- 얌전히 힘을 보전하지는 못할망정 비무로 굳이 체력을 빼려고 한다고?

       이 상황에서?

         

       “몸이 근질거려도 좀 참으세요. 짐승도 아니고. 조금 있으면 질릴 정도로 싸울 수 있을 텐데 뭐 그리 난리를 치는지 원….”

         

       그러니 마법사들 처지에서는 무인들이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 무인들이 자신들의 앞에 설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래.

       어쩌면 마법사들의 저러한 태도는 자신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 것을 자각했기에, 자신이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에 생기는 공격적인 태도일 수도 있었다.

         

       “…쯧.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하지만 나도 한마디만 하지.”

         

       그렇기에 가장 처음에 목소리를 높였던 무인은 드잡이질하는 대신에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긴장이 너무 없다면, 자네들은 너무 긴장하고 있어. 그 긴장, 전투 들어가기 전에 풀지 못하면 큰일이 날 거야.”

         

       너희는 지금 전투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너무 매몰되어 있다고.

       너무 긴장되어 있기에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마법사는 무인이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압니다.”

         

       그렇기에 고작 그렇게만 말하고, 마법사들 사이로 들어갈 뿐이다.

         

       “….”

         

       “….”

         

       그렇게 정적이 이어졌다.

         

       무인들은 마법사의 일침에 긴장을 풀기 위한 그들 나름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눈에 거슬려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마법사들은 무인의 일침에 괜히 공격적으로 언성을 높여서 결속력을 깨뜨린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적은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까보다 확연히 조용해진 갑판 위에.

         

       “여러분.”

         

       주술사의 말이 울려 퍼졌으니까.

         

       “옵니다.”

         

         

         

         

        * * *

         

         

         

       귤, 귤, 귤.

       샛노란 껍질에 초록색 꼭지.

       움푹 파인 아랫부분.

       아랫부분에 엄지 두 개를 꾸욱 눌러서 넣고 팔에 힘을 주어서 양쪽으로 쫘악 갈라보면.

       갈라보면.

       샛노란 껍질이 반으로 쫘아악.

       주황색, 노랑색, 하얀색.

       시큼하고 상큼한 냄새가 콧김에 뿜어지고, 끈적이는 물방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네.

       그것의 조각을 하나 들어 입에 넣으려 들면.

       아, 온전히 떨어지지 않아 그 속살이 드러난다.

       울퉁불퉁 자세히 보면 징그러워 보이기도 하고 입맛을 돋우기도 하는 그러한 모습.

       귤, 귤, 귤.

       상쾌하고 맛이 좋은 보기 드문 과일.

         

       『 껍질은 그저 형상이요 그릇이라 그 안에 담기는 내용물은 그저 그릇의 형상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음이니 영혼은 물이요 육신은 그릇이라 그 육신이 무엇이 되었건 영혼이 깃들어 있다면 그 육신의 형(形)이 어떠하여도 그것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못 하리라. 』

         

       『 이어 말하기를 형태가 그 가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요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규정하는 것은 더더욱 아닌지라. 그리하여 사람의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더더욱 중요한 것이라 하였음이라 그 내면은 배를 갈라 나오는 장기도 아니요 몸에 흐르는 피의 붉음과 푸름도 아니요 그 사람의 대대로 이어지는 신분이나 혈통에서 비롯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내면에 가지고 있는 반짝이는 가치일 것이로다 라 하였느니라. 』

         

       그렇다면 그 귤은 무엇일까?

       어린아이의 손에도 쏘옥 들어올 정도로 작아야만 귤일까?

       손톱보다도 작다면?

       성인의 주먹보다도 크다면?

       심지어 머리통만 하기까지 하다면?

       그 크기에 따라서 귤이 아니게 되고 귤이 맞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 그릇에 관해 논하나니 우자(愚者)가 현인(賢人)에게 묻기를 과연 그러하다면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육신의 형상이 의미가 없다면 그들에게 의미를 만들어주는 내용물이란 대관절 무엇입니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입니까? 영혼보다도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정신입니까? 무엇이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합니까? 』

         

       답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고민한다.

         

       그러다가 가른다.

       크기에 상관없이, 모든 귤을 갈라본다.

         

       『 그러나 현인이 답하지를 못하자 우자가 말하기를 당신께서는 앞서서 내용물이라는 것은 그릇에 따라 형태를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하였으니 그렇다면 과연 그릇보다는 내용물이 중요하다고 한 그 말의 진의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라 하며 진흙으로 빚은 그릇을 가져와 현인의 내용물을 그 안에 담았으니 과연. 』

         

       그리고 아는 것이지.

       아, 속의 모습이 비슷하구나.

       그렇다면 크기가 어떻게 되든 귤이로구나.

         

       그렇다면 사람 역시 그와 같으니.

         

       『 이 어린아이 크기의 토기가 바로 그릇이요 안에 담긴 것이 현인이니 과연 이것은 현인의 그릇이라 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다. 』

         

       진실로 내용물이 같다면 그 형상이 같음을 나는 알 수가 있겠다.

         

       그러하니 핏물을 안에 담고 영혼을 지닌 자야.

       너는 육신의 형상을 늘어뜨려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행해라.

         

       [ 던진다. ]

         

       무어라고 묻지는 말도록 하여라.

         

       사람의 행동이 언제나 의미가 있기는 하였느냐?

         

       그러하니 너는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행하라.

       그것에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하여도 행하라.

         

       [ 던진. 다. ]

         

       너와 비슷한 것을 손에 쥐고.

       앞서 해왔듯 너는 던져야 할 것이니라.

         

       [ 던진다. 왜? ]

         

       …

       …

       …

         

       [ …히히. ]

         

         

         

         

        * * *

         

         

         

         

       귀기(鬼氣)가 물씬 풍기는 해안가.

         

       [ 끼히히히히히히! ]

         

       수많은 열매가.

       사람의 얼굴을 하고 낄낄 웃는 열매들이 하늘을 날아 배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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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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