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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7

        

         

       사람의 얼굴이 박혀있는 열매.

       머리카락도 목도 없이 저 멀리에서 날아오는 그것들은 낄낄거리며 기분 나쁜 소리를 뿜어내었다.

         

       그래.

       뿜어내었다.

       목구멍에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귀기(鬼氣) 어린 속삭임으로 귓가에 속삭이는 것도 아니요, 머릿속에 전음과 같은 형태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었다.

         

       저것들은 말 그대로 목소리를 뿜어낼 뿐.

       말하자면 데스 휘슬(death whistle)처럼 구조 자체가 저런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뿜어내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보통 사람은 모골이 송연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기에, 충분한 광경이었지만….

         

       “징그럽게도 생겼군.”

         

       배에 날아오는 저 열매들에는 안타깝게도, 이곳에 ‘보통 사람’은 없었다.

       단순히 능력자니 군인이니 하는 분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한일 양국이 귀신을 상대하는 이 작전에서 겁에 질려서 도망치거나 기절하는 등…. 소위 말하는 ‘체면이 깎이는’ 짓을 할 사람들을 강박적인 태도로 골라냈기 때문이었다. 괜히 수치스러운 일로 책잡히거나, 악귀를 토벌한 후 주장할 지분에 손해가 갈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배에 있는 모두는 담담한 표정으로 열매들을 바라보았다.

         

       무인들은 칼을 들고 언제든 열매를 벨 준비를 하고 있었고, 주술사와 음양사들은 혹시 저 열매가 저주나 액을 뿌리지 않을까 싶어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으며, 전투를 앞두고 긴장해 있던 마법사들 역시 공격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거나 마도 공학 장비를 열매에 겨누고 있었다.

         

       “장군님께서 칼을 휘두르시니 바다가 갈라지고 땅이 흔들리니 그 경천동지할 칼 놀림에 뭇 귀신들은 두려움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치니 어이쿠야 한 놈은 발목을 두고 한 놈은 팔을 두고 저거이 무어냐 지푸라기인지 짚신인지 다 헤져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가 없으니 껄껄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가는 꼴이 개가 바닥을 구르는 것보다 추하구나—!!”

         

       “산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그분 나와 가로되 나는 신이며 너희들이 숭배해야 할 존재이니 보아라 안개를 걷히게 하고 산나물이 바닥에서 솟아나게 하고 너희를 잡아먹기 위해 뚝뚝 침을 흘리고 있는 오니도 쫓아내지 않았더냐? 하니 마을 사람들 고개를 조아리며 바구니에 쌀을 한가득 담아 밥을 지어 올리고 처녀들의 침으로 술을 만들어 바치나니 하얀 쌀밥과 맛 좋은 술에 만족하시며….”

         

       그들 중에서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영능력자와 신관.

         

       그들은 서로 견제하고 데면데면했던 아까의 모습은 연극이라도 되었다는 듯 거의 동시에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영능력자들은 자신이 모시는 귀신의 힘을 빌거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영력을 사용해 허공에 날아오는 열매들을 요격했고, 일본의 신관들은 자신이 모시는 신의 힘을 담은 신력(神力)을 사용해 방벽을 만들었다.

         

       [ 끼-히히히히히! 끽! ]

         

       쿠웅-!

         

       [ 끼익! ]

         

       방벽이 효과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저 열매들이 터무니없이 약했던 것일까?

         

       그들의 경계가 무색하게도, 열매는 너무나 허무하게 방벽에 가로막혔다.

       그물망과 방벽에 가로막힌 것들은 반쯤 터져서 바닷속으로 내려앉거나 튕겨 나가며 허무하리만치 쉽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등장한 것과는 다른…. 아주 허무한 결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배에 있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풀어지려 했는데….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배에 울려 퍼졌다.

         

       “모두 준비하십시오. 진짜가 옵니다.”

         

         

        * * *

         

         

       바닷속에 가라앉은 열매는 돌덩이처럼 바닥에 쭈욱 가라앉는다.

       본래 열매는 둥둥 떠다니면서 새들이 눈독을 들일 먹이가 되어야 마땅하건만 사람 얼굴이 달린 그것들은 무슨 진짜 사람 머리통이라도 되는지 바닥으로 쭈욱 가라앉는다.

         

       그러다가 관심을 가진 물고기들이 스윽 몰려와 한 입을 먹으려다가도 껄껄껄 물속에서도 쳐 웃는 머리통의 울음소리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냉큼 지느러미를 움직여 저 멀리 줄행랑을 치고, 열매는 그렇게 바닥으로 가라앉았다가 데굴데굴 굴러서 투욱 튀어나온 자그마한 언덕으로 움직인다.

         

       뽀글뽀글 물거품을 내면서 언덕으로 가 열매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안을 파헤치니 그 안에 있는 것은 사람의 시체, 시체, 시체, 시체.

         

       옛적 이 땅에 북한이라는 이들이 있었을 때 죽었던 이들의 시체다.

         

       정치범 수용소에 갇혔던 이들.

       가족이 탈북해서, 사상이 불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잡혀가서, 감히 당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불온한 짓거리를 해서, 남한의 드라마니 음악이니 하는 것을 들으면서 반동분자로서의 싹을 보여서.

       그래서 그들은 정치범 수용소에 잡혀갔고, 끝없는 학대와 노동 속에서 죽어 나가거나 죽기 직전의 상황까지 몰려갔다.

       그러고는 시체를 묻을 땅조차도 아깝다며, 죽일 때 사용할 총알 값조차도 아깝다며 그저 근처에 있는 바다에 버리고 또 버리고.

         

       그렇게 버려진 시체들이 해류에 의해 한곳에 모이면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언덕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시체로 만들어진 언덕.

       거기에 더해, 온갖 퇴적물들이 쌓이면서 부패를 늦추면서 그나마 사람의 형태를 띠고 있기까지 했으니.

         

       이 열매들에게 있어서는 이만한 재료가 없음이라.

         

       껄-껄껄껄!

         

       그리하여 열매들은 웃었다.

       웃으면서 제 몸을 시체 사이에 욱여넣었고, 몸을 옴짝달싹 못 하는 이에게 과일을 억지로 먹이는 것처럼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그들의 몸에 저주를 뿌리내리기에 이르렀으니.

         

       그리하여 그들은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어이쿠야 소리를 하나 따악 들었으니.

         

       “모두 준비하십시오. 진짜가 옵니다.”

         

       진짜가 온다.

       진짜가.

       진?

         

       [ 짜가 온다고? ]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

         

       [ 저렇게 허무하게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는데 어떻게 진짜가 올 수 있단 말이야? ]

         

       [ 어허이 바람 불어 후두둑 떨어지는 귤처럼 허무하리만치 바닥에 떨어진 낙과(落果)나 다름없는 것들에게 진짜라고 부르다니 이거 말이 너무 거창하지 않은가 싶소. ]

         

       [ 낙꽈가 바닥에 떨어지면 그냥 꿍 하고 대가리가 깨져서 과즙을 질질 흘리기나 하지 그거이무어 대단하다고 진짜라는 거어어창한 말까지 사용하면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어버리떠버리한테 긴 말씀 하시는 것처럼 그러는지 참아 이해를 한들 못하겠소 거 사람 참 의뭉스럽기도 하지 어찌 그리 말을 그따구로 하는지 그 말뽄새를 그냥 얼기설기 얽힌 것들을 뜯어다가 자알꾸리해서리 군뚝을 따악 머엇드러지게 세워야쓰겠다! ]

         

       [ 어허이 허-허이 진짜라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는 말인가. ]

         

       [ 보소 이 앙상하기 짝이 없는 손을 보소 거 피죽도 못먹어서 앙상하게 빼빼 말라서리 뼈랑 거죽이 쭈욱 달라붙어서리 입을 딱 맞추고 있으니 거 여기 살도 근육도 없으매 어디 이게 산 사람 몸인지 송장의 몸인지 어이쿠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으니 이거이 어디 허수아비랑 재어보아도 막상막하이렷다! ]

         

       “바닷속에서 온다!”

         

       “잠깐! 바닷속을 집중해서 보지 마십시오! 홀립니다! 지금 몸이 바다 쪽으로 기울어지려 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닷속에 가라앉은 시체를 육신으로 삼고 있습니다! 물리력은 대단하지 않을 겁니다-!”

         

       [ 어이쿠 몸뚱이 거 축축 쳐지는거이 살도 없고 거죽과 뼈마디만 남았는데 어이 이러는지 몸이 늙고 늙어 이렇게 된 것인지 뭐 먹은 거이 없어 이렇게 된 것인지 강냉이 한줌 주워먹지도 못하였는데 배는 뿌울뚝 흙을 퍼먹고 나무 뿌리를 갉아먹고 껍질을 버엇겨다가 잘 쪄서 뜨끈할 때 한 입 따악 먹었는데 먹을때야 좋지만 거 쌀 때는 구멍이 막혀서리 쫘악쫘악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피를 쭉쭉 싸대니 거 내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이 도이지를 아니하니라. ]

         

       자아 손을 쭈우욱 뻗어 파도 넘실넘실 어이쿠야 간지러워라 그이 거 터럭 많은 애새끼가 달라붙어 간지럽히는 것 같이 아주 기분이 나쁘기도 하다. 그래도 거 손바닥이 크고 팔이 길쭉한 것이 뱃전을 따악 붙잡기에는 알맞으니 어쩌겠는가 빈대가 쳐 물어도 그 간지러움에 벅벅 긁어도 피부를 긁어내지는 아니하였듯이 거 몸뚱이에 만족하고 핏물 나오지 않게 잘 처신해야지 그렇지 않소?

         

       손이 하나 둘 서이 너이.

       어이쿠야 거 머리통이 멀쩡하지가 아니하여서 숫자도 제대로 셀 수가 없으이 내 손이 얼마나 많은지 알 바가 어이 있으랴?

         

       “아, 아아아악! 이거 뭐-!”

         

       다만 손을 뻗어 어이쿠야 한 놈 잡았다.

         

       스륵스륵 내가 생전에 뱀새끼 흉내는 아주 기깔나게 하였지 내가 이 비얌 흉내를 잘 내어서 전쟁통에도 잘 살아남았다 이거 아니겠어. 그렇게 스륵스륵 조심스럽게 소리도 없이 움직여서리 따악 중요할 때!

         

       “크윽! 이게 무슨!”

         

       어이쿠야 나도 한 놈 잡았다!

         

       그렇게 잡았으니 거 잘 가시게 잘 가시게!

         

         

         

        * * *

         

         

         

         

       팔이 올라온다.

       퉁퉁 불어 터진 시체와 물고기, 해초, 흙더미가 뒤섞여서 만들어진 기괴하기 짝이 없는 팔들이.

       마치 수십 개의 촉수를 가진 생물처럼 그것들은 꿈틀거리며 뱃전으로 올라와 사람을 낚아채고는 그대로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뭍으로.

         

       나무의 형상을 이룬 악귀가 있을 그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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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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