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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9

       

       

       주르륵.

       

       “쿨럭.”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는 영풍.

       충격이 어지간한 모양인지 정신도 제대로 못 차리고 있었다.

       

       하물며 날아간 곳은 비무대의 끝자락.

       

       이 말인즉슨, 비무대를 본선 때와 다르게 넓게 공사하지 않았다면 영풍은 탈락했을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나도 모르게 강하게 쳐버렸다.

       일격에 저 지경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가버린 것이다.

       

       ‘하필 저 상판이라니.’

       

       재수 없고 싹수없게 생긴 노인네.

       보기로는 한 번 밖에 제대로 본 적 없건만, 그 얼굴을 보자마자 주먹을 내질렀다.

       

       본능에 의해서랄까?

       

       ‘뭐지?’

       

       컥컥거리는 영풍을 보며 눈을 찌푸렸다.

       지금은 또 영풍의 모습 그대로다. 

       

       직전의 상태가 거짓이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하면, 방금 일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의도한 건 아닌 것 같은데.’

       

       환술이나 진법의 영역은 아니다.

       영풍이 스스로 의도해 벌인 건 아니라는 말이었다.

       

       또한.

       

       ‘관중의 반응도 별 차이가 없어.’

       

       방금의 변화를 봤다면 놀랄 수밖에 없을 터.

       

       한데 관중은 나가떨어진 영풍을 보며 놀랄 뿐, 직전의 상황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는 말은.

       

       ‘나만 봤다는 것.’

       

       내게만 일어난 현상이라는 뜻이다.

       

       ‘방금…. 그 모습은 신 노야의 얼굴이었지.’

       

       부서지던 그릇 속에서 봤던 모습. 잊히지 않고 선명히 남아있는 기억이다.

       

       영풍에게서 얼핏 보인 건, 분명 노야의 얼굴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생각을 반복하고 있을 무렵.

       

       “후우…훅….”

       

       영풍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피는 멎었다. 내기로 지혈을 한 모양이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는 영풍이 손을 뻗는데.

       

       철걱-! 쉬리릭-!!

       

       어느새 놓친 검이 재빨리 영풍의 손으로 빨려들어 가 잡힌다.

       

       “후우….”

       

       직후 호흡을 고른 영풍이 자세를 잡는다.

       일순, 사라졌던 매화향이 다시금 느껴지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너무 들뜬 나머지 제대로 대처도 하지 못했습니다.”

       

       잔뜩 부은 코와 입술로 뱉는 말이라기엔 묘하기 짝이 없으나 눈빛은 진중했다.

       

       “손속에 사정을 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 말에 고개를 까딱였다.

       조금 과하게 날아가서 놀라긴 했으나, 영풍의 모습이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피해가 생각보다 적네.’

       

       놀라서 내지른 주먹.

       그건 진심은 아니었어도 상당한 강도였다.

       

       한데.

       

       ‘와중에 강기로 막았어.’

       

       주먹에 맞기 직전, 영풍은 기운을 모아 내 공격을 막아냈다.

       

       매화잎으로 만들어진 강기는 충격을 흡수해냈고. 그 덕에 영풍이 저리 일어날 수 있던 것이다.

       

       ‘강해졌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상당히 강해졌다.

       

       기운을 제대로 수습도 못 해 엉망이던 영풍.

       그 탓에 성율과의 싸움에서도 동등, 혹은 더 낮은 위치에 있었거늘.

       

       …지금의 모습은.

       

       ‘닿지만 못했을 뿐. 화경과 다르지 않아.’

       

       적어도 ‘기세’ 만큼은 그러하다.

       

       갈무리하지 못한 기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씨앗이 될 것이며.

       그 씨앗이 새싹을 피우기까진 그리 길게 걸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녕 너의 것인가.’

       

       나는 영풍에게 묻고 싶었다.

       

       ‘네가 가진 그 힘은, 정말 너의 힘인가.’

       

       두근.

       

       두근.

       

       영풍이 기세를 높일 때마다.

       그에게서 매화잎이 뿜어질 때마다.

       

       익숙한 듯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니, 심장이 멋대로 요동친다.

       마기는 잠잠했고 열기는 평온하다.

       

       오로지 그 두 개를 엮고 있는 도가의 흔적만이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죽어 없어진 노인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그 기운이 점점 요동치기 시작했다.

       

       공명.

       

       내 몸에 있는 성깔 사나운 노인의 기운이 영풍의 기운과 공명하고 있는 것이다.

       

       ‘짜증나네.’

       

       이 빌어먹을 감각은 느낄 때마다 짜증난다.

       더 열 받는 건.

       

       ‘나만 느끼는 건가.’

       

       이 공명을 나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쉬리릭.

       

       영풍이 검을 휘두른다.

       그의 일검에 매화잎이 돌풍처럼 불기 시작했다.

       

       내 생각이 어떻든.

       영풍은 지금의 비무에만 집중하고 있다.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럴 리가.’

       

       그게 아님을 영풍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가오려는 것이다.

       

       사뿐히 영풍의 발끝이 춤춘다.

       흐트러진 옷매무새 위로 검이 반동한다.

       

       매화검무.

       

       화산이 일궈낸 꽃봉오리가 검 끝에 피었다.

       

       쉬이이익-!!

       

       기품있는 검무엔 날선 기운이 뭉쳐있다.

       빠르고 날카롭다.

       

       발에 힘을 주어 보법을 취했다.

       

       쉬익-! 쉭쉭-!

       

       상체를 틀어 검을 피한다. 

       검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움직이며 계속 내게 파고들어 왔다.

       

       ‘이것 봐라?’

       

       지난날. 영풍을 두들겨 팰 때 느꼈던 생각이 있다.

       

       그건 검이 너무 올곧다는 것이다.

       

       정직한 검. 검수로선 필수적인 요소이나, 오로지 그뿐이면 쓸모가 없다.

       하도 정직해 그저 그뿐이던 검이건만.

       

       ‘본인의 검술 자체를 바꿨군.’

       

       다수의 허초.

       틀에서 벗어난 검.

       

       와중에 본질인 매화검무의 뜻은 유지하고 있다.

       

       감탄이 나온다.

       

       쉬리릭-!

       

       검을 피하자 기감에 무언가 잡힌다.

       한 개가 아니다.

       

       수십 개의 공세.

       매화잎 하나 하나가 의지를 띠며 나를 공격했다.

       

       기세만 보자면 수백 개의 어검술이라고 봐야 할까.

       

       ‘그것참 무섭네.’

       

       화르르륵—!!

       

       피어오른 불꽃이 떨어지는 잎새를 모두 태워 낸다. 

       하나도 남김없이 불태워야 했다.

       

       ‘그때도 이랬지.’

       

       영풍이 보여주던 꽃잎은 잿불이 되어 사그라들었었다.

       지금은 그때와 다를까?

       

       달라진 검술 만큼 뭔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이를 떠올리며 심장에 힘을 줬다.

       

       화르르륵–!!!

       

       구염화륜공의 고리가 재빨리 돌아간다. 그러자.

       

       화아아악–!!!

       

       몸에서 청염이 분출되며 사방에 휘몰아쳤다.

       

       구염태륜아(俱炎態輪牙).

       

       그때 영풍을 괴롭히던 무공이었다.

       

       자, 어떻게 나올 거냐.

       영풍의 반응이 기대되던 찰나.

       

       “…후우우…!”

       

       영풍은 불꽃을 보며 뭔가 다짐한 듯 기운을 끓어 올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허공에 떠오른 꽃잎의 양이 더 많아지고.

       

       촤자자작–!!

       

       영풍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검을 휘두른다.

       

       매화잎이 물든 검기가 불꽃으로 파고들었다.

       

       한 번의 참격에 불꽃이 흔들리고.

       열 번의 참격엔 불꽃이 부서진다.

       

       그렇게 순식간에 백여 번이 넘어갔다.

       

       ‘미친 놈.’

       

       점차 사그라지는 불꽃에 내가 욕설을 내뱉었다.

       

       ‘어떻게 하나 했더니만.’

       

       어이가 없다. 뭔가 특별한 걸 보여주나 싶더니, 그저 미친 듯이 검을 휘둘러 막아낼 줄이야.

       

       ‘하.’

       

       하나 실망하진 않았다. 아니, 차라리 좋다.

       지금 와서 알았는데. 나는 저런 무식한 놈들이 좋은 것 같았다.

       

       쾅-!

       

       불꽃이 사라지기 전, 지면을 짓밟고 파고들었다.

       영풍은 검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인다.

       말도 안 되는 수의 검기가 내게 쏟아졌다.

       

       피할까?

       피하자면 피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끼기긱-!

       발로 지면을 지탱하며 허리를 회전했다.

       상체가 돌며 주먹에 청염이 스민다.

       

       음속보다 조금 느린 속도.

       그 안에 불꽃이 압축하고 회전으로 형태를 뒤바꿨다.

       

       대염옥(大炎玉).

       

       그저 크기를 키운 염옥이지만, 그 파괴력은 들어간 내기량 만큼 늘어났다.

       거대한 구슬을 영풍에게 내던졌다.

       

       콰가각-!!

       검기가 구슬에 휩쓸리며 밀려나간다.

       

       광대한 내기량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이를 피하고 파고들까? 아니면 막아내려고 할까.

       

       두 가지 선택지만을 상정했거늘.

       

       척-!

       

       놀랍게도 영풍은 그 두 가지 선택지에서 벗어났다.

       날리던 검기를 멈추고 문득 검을 두 손으로 움켜잡는다.

       

       무엇을 하려나 싶었으나 금방 의도를 알 수 있었다.

       

       후우우욱-!!

       

       영풍에게서 끓어오른 기운이 검날에 사무친다.

       섬뜩한 기색이 느껴진다.

       

       매화비영참(梅華飛英斬).

       

       촤아악-!

       자홍빛 참격이 대염옥을 베어냈다.

       

       콰아아아–!!!

       

       반절로 잘린 염옥이 폭발하고. 열기가 사방에 퍼진다.

       불길에 시야가 가려지지만, 그때.

       

       후우욱-!!

       

       불길을 뚫고 영풍이 내게 파고 들어왔다.

       이에 손을 움직인다.

       

       그 순간.

       

       욱씬-!

       

       “…!”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재생되던 상처가 다시 터진 것이다.

       상처가 벌어져 피가 흘렀다.

       

       ‘쯧.’

       

       이 탓에 움직임이 살짝 느려졌다.

       

       픽-!

       

       영풍의 검이 손바닥을 찢었다.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었음에도 참격에 베어졌다.

       

       말도 안 되는 압축력이다.

       경지의 차이가 극심하거늘, 이 정도 강기를 검으로 베어낼 줄이야.

       

       얼마나 기운을 날카롭게 만들어낸 것일까.

       

       놀람도 잠시, 영풍이 멈추지 않고 달려들려 하기에 다친 손을 휘둘렀다.

       

       “…!?”

       

       부악-!

       

       휘두르니 찢긴 상처에서 핏물이 뿜어졌다.

       혈도를 자극해 양을 부풀린 덕이다.

       

       뿜어진 피는 영풍의 얼굴을 향했다. 시야를 가리기 위함이다.

       

       하나, 속도가 빠른 영풍은 아무렇지 않게 이를 피했다.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 찰나의 틈이었으니까.

       

       영풍이 움직일 무렵, 내 발이 놈의 발목을 건드리고 있었다.

       

       툭-!

       

       “큿!?”

       

       걸어 넘기니 그대로 기반이 무너진다.

       즉시 이를 붙잡으려하지만, 역시나 그 또한 가만히 둘리 만무.

       

       무릎을 써서 영풍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쿵-!!

       

       “컥!”

       

       비명을 내지르며 영풍이 날아간다.

       멈추지 않고 불꽃을 뿜어냈다.

       

       허공을 날던 영풍에게 불꽃이 적중한다.

       

       콰아아악–!!

       

       청염은 영풍을 태울 듯 지지기 시작하지만, 의도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 짧은 찰나에 영풍이 검을 들어서 막아낸 탓이다.

       

       ‘충격을 막은 건 좋아. 그럼 반동은 어쩔 거지?’

       

       불꽃에 타는 건 막았어도 허공에서 밀려나는 건 어찌 막을 생각일까.

       저대로 있으면 장외로 밀어날 것이었다.

       

       당연히.

       

       그걸 알면서도 난 멈출 생각이 없고 말이다.

       

       “…크으윽!”

       

       화르륵-!! 

       

       화력은 멈추질 않는다.

       고요한 눈으로 영풍을 보며 오히려 불꽃을 더 강하게 피웠다.

       

       과연 어떻게 대처할까. 

       의문을 담아 그리 쳐다보고 있으니.

       

       퉁-!

       

       순간, 영풍의 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홍색 빛이 만발하더니, 충격이 살짝 터진다.

       

       기운을 마찰해 내부에서 폭발시킨 것 같았다.

       

       “큭!”

       

       영풍이 침음을 터트린다. 

       속에서 터트렸다는 건 내상을 피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덕분에 불꽃에서 손가락 마디만큼 멀어지는 데 성공했고.

       그 작디작은 틈을 이용해 영풍이 허공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휘리리릭-!

       

       불꽃을 피하며 재빨리 돌아온다.

       거리를 벌리기 무섭게 오히려 다가오고 있었다.

       

       눈빛은 죽지 않았고 영풍의 검은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

       

       봉순이와의 비무에서도 미리 봤으나, 정말 올곧은 성장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 걸리는 부분은 분명 있지만…. 그건 뒤로 하고.

       

       ‘일단 받아줘야겠지.’

       

       우선은 받아주자.

       그리 생각하며 몸놀림을 달리했다.

       

       쿵-! 지면을 박차고 영풍에게 달려들었다.

       

       갑작스러운 돌격에 영풍의 눈이 커지지만, 검은 날렵히 내게 날아든다.

       

       허공이니 피하기 힘들다 싶어도.

       

       ‘미안하지만, 이쪽이 내 전문이라서.’

       

       공중전은 나름 전문가였다.

       

       딱-!

       

       손가락을 튕겨 불꽃을 일으켰다.

       폭발이 번지며 풍압이 터진다.

       

       쉬익-!

       

       몸이 밀려나며 검을 피하고 반동을 이용해 발을 찼다. 

       

       쾅-! 영풍이 검으로 막아 낸다.

       

       괜찮다. 이건 공격보다는 단순히 밀쳐내려고 한 것이다.

       무릎에 힘을 줘 검을 강하게 밀쳤다.

       

       파앙-!!

       

       “윽!?”

       

       힘을 줄 지면이 없기에 영풍이 밀려난다.

       

       손바닥을 뒤로 뺐다. 

       즉시 불꽃을 내뿜었다.

       

       화악-!

       

       불을 터트리니 몸이 빠르게 날아간다. 

       

       그대로 영풍에게 다가가 주먹을 내질렀다.

       놀란 영풍이 어떻게든 방어를 취하지만.

       

       ‘미숙해.’

       

       강기는 나약했고 허공에서 취하는 동작은 무게감이 없다.

       

       당연한 일이다.

       저 나이에 공중전을 대체 어디서 경험해봤겠는가.

       

       주먹을 둔기처럼 내려쳤다.

       

       콰아앙–!!

       

       “크흐억!”

       

       방어에 실패한 영풍이 지면에 곤두박질쳤다.

       

       낙법도 취하지 못해 고통스러워 보이나 그대로 멈춰 있을 수는 없으리라.

       

       정신을 수습도 하기 전에 영풍이 움직인다.

       

       급히 몸을 일으켰고 원래 놈이 떨어진 자리로.

       

       콰직–!!

       

       내 발끝이 떨어졌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대로 짓뭉개졌을 것이다.

       

       섬광이 쏟아진다.

       영풍의 검무는 여전히 멈추질 않았다. 방금 죽을 뻔 했음에도 그랬다.

       

       처음보다 속도가 떨어진 게 느껴지긴 하지만 기세는 여전하다.

       강기로 검을 막아내고 주먹을 내지른다.

       

       방어와 회피. 

       거기에 공격이 합쳐져 강렬한 근접전이 시작됐다.

       

       눈이 절로 찌푸려진다.

       

       심안(心眼)으로 본 세상은 영풍의 검로로 가득했다.

       

       수두룩한 허초에 기상천외한 검로는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미치겠네.’

       

       피했다 싶으면 이상한 곳에서 길을 꺾어오고.

       막았다 싶으면 한치를 더 파고들어 온다.

       

       이리도 자유분방한 검이 있을까.

       

       ‘그’ 영풍의 검이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음이 놀라운 한편.

       

       ‘진짜 미치겠어.’

       

       검을 마주하고 있는 나는 마냥 멀쩡한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익숙하잖아.’

       

       현재 영풍이 쓰는 검이 어쩐지 익숙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다.

       

       쏟아지던 매화를 마주한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진즉 영풍을 끝낼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고 이어오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검을 본 적 있었다.

       아니, 본적이 있다기보단.

       

       ‘써본 적이 있어.’

       

       내 몸으로 직접 저 검을 써본 적이 있었다.

       신 노야가 내 몸을 빌려 썼을 무렵. 그 노인네가 잠깐이나마 쓰던 검과 같았다.

       

       검무를 취하며 느껴지는 기운의 흐름도.

       그 망할 노인네의 성격이 느껴지는 검 끝의 움직임도.

       

       검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나조차 알 수 있었다.

       

       ‘이건.’

       

       단순히 화산파의 매화검법이 아니다.

       

       화산선검 신 노야의 검에 가깝다.

       

       촥-!

       

       뺨으로 영풍의 검이 스친다. 피부가 베였다.

       

       점점 날카로워진다. 

       경지를 떠나 검 하나만은 인정해줄 수 있었다.

       

       다만.

       

       ‘지금 네가 펼치는 이 검은, 정녕 네 것인가.’

       

       뻗어온 열두 번의 검.

       그중 일곱을 피하고 다섯은 몸으로 받았다.

       

       어쩔 수 없었다.

       다가가기 위해선 해야 할 일이었다.

       

       몸에 상처를 입으면서도 다가갔고. 나는 다시금 영풍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궁금했다.

       

       두근-! 두근-!

       

       시끄럽게 울어대는 이 심장 소리도.

       왠지 모르게 움직이려 드는 팔뚝에 묶인 귀정도.

       

       갑자기 섬서에서 발견됐다는 노야의 흔적과 하나 더 남아있던 귀정까지도.

       

       모든 게 의문이다.

       

       화르르륵.

       

       불꽃을 압축해 심상을 덧댄다.

       순식간에 성창이 완성됐다.

       

       그걸 본 영풍은 어떻게든 반격하려 몸을 움직이지만.

       너무나 가까이에 있어 반항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이건…? 구 공자…?!”

       

       뭘 하려는 지 눈치챈 걸까? 

       

       영풍의 반응이 격렬하게 느껴진다.

       너무도 가까운 거리. 여기서 이 힘을 터트리면 어떻게 될지 알고 있겠지.

       

       나는 그런 영풍을 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슬슬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실상 영풍을 보며 말하지만, 그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저 너머, 그보다 깊게 있을 이를 향한 말이었다.

       

       “구 공자…?”

       

       영문모를 말에 영풍의 눈이 떨린다.

       내가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상대가 듣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래도 안 나와?

        웃음을 머금었다.

       

       “그럼 그냥 같이 죽든가.”

       

       후욱-!

       

       곧장 성창을 터트리려던 순간.

       

       [이런.]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심보가 못된 애송이로군.]

       

       일순.

       

       사아아아-!

       

       내 시야가 검게 그을렸다. 

       아득해지는 시야 속. 눈치챘을 땐 어느새 내 몸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 놓여 있었다.

       

       이곳은 어디일까. 

       쓸데없이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어보는 건 아니거든.

       

       그저 차분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즈음.

       

       [쯧쯧….]

       

       익숙한 혀 차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공간과 안 어울리는 낮은 바위가 뜬금없이 솟아있었고.

       그 위로 누군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찰박.

       

       걸음을 옮기니 지면이 찰랑인다. 

       마치 먹물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질퍽한 감각이 불쾌하게만 느껴진다. 이를 참으며 인물에게 다가갔다.

       

       검은 공간과 달리 흰색 무복을 입은 인물.

       새하얀 백발에 자홍빛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커다란 키와 달리 조금은 말랐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턱을 괸채 내려다보는 꼴이 퍽 잘어울린다.

       

       천천히 걸어 바위로 다가가 서로 눈을 마주했다.

       

       [흐음.]

       

       “음.”

       

       가만히 익숙한 노인의 얼굴을 보다 말했다.

       

       “와, 노야 진짜 재수 없게 생기셨네요.”

       

       [고놈 참 싸가지 없게 생겼구나.]

       

       동시에 뱉은 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TMI : 신철은 소싯적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렇지 잘생겼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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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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