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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39

        

         

       푸쉬익.

       분수처럼 터져나가는 비말(飛沫).

       썩어버린 냄새를 가진 그것은 꽃가루처럼 바람에 흩날리며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다.

         

       나무를 이루고 있는 가지 하나하나.

       가지를 이루고 있는 사람의 형상 하나하나.

       그것들의 칠공(七孔)에서는 피눈물 같은 체액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은 나무의 수액.

       단단한 껍데기 안에 흐르는 핏물.

       그것은 나무를 이루는 체액이요 근간.

         

       악령들의 집합체.

         

       그래.

       이들이 맞이한 것은 일반적인 귀신이 아니었다.

         

       단단하지는 않되 무인의 칼날 몇 번은 견딜 물질적인 외피를 악귀로 두르고, 실상은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홀려서 잡아먹으려 드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악령들로 이루어진. 심지어는 그 악령들마저도 질척하게 녹아서 제 형상을 잃고, 거기에 뒤섞이기까지 해서 흩어져가고 마모되어 가는 자아를 어떻게든 짜 맞춰 닳아 없어지는 것을 일시적으로나마 막아 세우며 진화를 추구하게 되어버린.

         

       그러한 개체였단 말이다.

         

       그것은 닳아버리고 크기도 제각각으로 변해버린 톱니바퀴를 닥치는 대로 쑤셔 넣어서 다시 기계를 돌리려는 무모한 시도와도 같은 것.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고, 대부분은 헛수고로 끝이 나 쓰레기장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먼지가 되어버리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우연의 일치로 작동되는 기계도 있을 터이니.

       그것이 바로 대악귀, 대악령이라 불리는 개체다.

         

       그런 점에서 작전에 참여한 한국과 일본의 능력자들에게는 행운과 불운이 한 개씩 공존한다 할 수 있겠다.

         

       행운은 눈앞의 개체가 ‘아직은’ 대(大)가 붙기에는 많이 미숙하다는 것.

         

       불운은 그런데도 대악령, 혹은 대악귀로의 진화를 노리는 만큼 강력하기 짝이 없는 개체라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자신의 무력으로 증명해야만 했다.

         

       이 악귀를 지금 마주한 것이 행운인지, 불운인지.

         

       그리고 그 증명은 승리와 패배라는 형태로 나타나리라.

         

         

         

         

        * * *

         

         

         

         

       휘-이익.

       휘-잉!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바람이 지나가는 것만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여지없이 가지 하나가 굽어지고, 휘어졌다가 한 사람을 후려치려 든다.

         

       가시나무로 채찍을 만들어 후려치는 것만 같은 광경.

       낭창낭창 휘어지면서 사람을 후려치는 것이 잔혹한 법의 집행자라도 되는 듯싶다.

       혹은 태풍에 흔들리는 나무에 가까이한 멍청한 사람을 징벌하는 자연의 비웃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분명히 저것이 배에 맞으면 내장이 터져나가고, 머리에 맞으면 뇌에 출혈이 일어날 것이다.

       목에 제대로 맞는다면 목뼈가 부러지고, 팔다리로 막는다면 살점이 터져나가고 뼈에 금이 갈 것이다.

         

       저 공격에는 그만한 위험이 있었고, 위압감이 있었다.

       허무하리만치 조용한 전조와는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이곳에 모인 능력자들을 범할 수는 없었다.

         

       파지직.

         

       공기를 태우며 발현되는 검기.

       허공의 마나를 밀어내며 자리잡는 마력.

       보이지는 않지만, 기척으로써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영력.

       각자 은은하게 빛을 발하며 피어오르는 신력.

       주술사와 음양사의 주술의 전조로 모이는 여러 에너지까지.

         

       그 모든 것들이 귀신의 공격이 감히 그 누구도 헤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파-앙!

         

       공격을 막았음을 증명하는 파공성이 울린다.

       검기의 빛은 구름에 가려지지 않는 한 같은 밝기를 유지하는 태양과도 같고, 충격을 받았음에도 반걸음도 물러나지 않는 그들의 자세는 무인들이 마음속에 세워놓은 검의 굳건함을 말해주는 듯하다.

         

       파-앙!

         

       그리고 공격과 방어가 교차하는 그 순간.

       그 간극을 놓치지 않은 마법사들이 마력을 끌어모아 현상을 재현하니.

       귀신이 싫어한다는 양(陽)의 기운…. 달리 말하면 불 계열의 마법이 귀신에게로 쇄도한다.

         

       [ 끄으하하하하! ]

         

       공기를 먹으며 붉게 번져나가는 화염.

       화염방사기에서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가로로 길게 이어지는 불기둥.

       포탄이라도 되는 듯 곡선을 그리며 귀신을 노리는 화염의 포탄.

       늑대의 형상을 하고는 아가리를 쩍 벌려 귀신을 물어뜯으려 하는 불꽃의 괴물까지.

         

       그 모든 것들이 마법사들의 손에서 나타나 귀신을 타격한다.

         

       그리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영능력자와 신관, 주술사와 음양사가 힘을 발휘하니.

       그것은 단단한 등껍질을 가진 거북이가 칼을 든 손만 밖으로 내밀어 쑤시는 형태와 다르지 않았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공격을.

       한쪽은 일방적으로 피해를 강요하는 형태.

         

       사냥이라는 행위가 DNA에 각인된 인간 특유의 힘이 지금 발휘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약하거나 불완전한 존재들이 무리를 이루는 것은 자연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그저 오늘의 사냥감이 귀신이었을 뿐인 이야기다.

       계속해서 공격이 누적되다가 사라져버릴 귀신에게는 애석한 이야기지만, 그저 그뿐인 이야기다.

         

       …

       …

       …

         

       “…이상한데.”

         

       격렬하지만 평온하다.

       작전대로, 너무나도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

         

       그러한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위화감을 느낀 것은 무인이었다.

         

       일본의 무인, 카즈오(計夫).

       산사태를 가르기 이전에는 참마거룡(斬魔巨龍)이라는 멋들어진 별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 기간은 꽤 오래되어서, 종국에는 ‘참마거룡’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자신을 지칭하는 줄 알 정도로 그렇게 참마거룡이라는 별호와 자신을 동일시하였더란다.

       그는 그러한 별호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편, 그 별호가 우습게 불리지 않도록 단련과 노력을 그렇게 아끼지 않으며 차근차근 경지를 끌어올린 노력파 무인이기도 하였다.

         

       쌓아온 땀방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수많은 대련과 거합, 수련.

       담금질을 하는 것처럼 뜨겁게 달궜다가도 강하게 내려찍는 듯한 괴로운 생활을 이어가기를 한참.

         

       그렇게 쌓아 올린 그의 감각은, 그의 경지는 그를 가장 먼저 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위화감. 뭔가.”

         

       감각이 어긋났다.

         

       수없이 같은 자세로.

       하지만 다른 힘으로, 다른 수준의 기(氣)를 담아, 속도를 달리하여 행하였던 내려찍기.

       그런데도 감히 통달하였다고는 자신할 수 없는 하나의 선.

         

       그 선에, 불순물이 들어왔음이 느껴진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말한다.

       그것은 그저 착각에 불과하고, 그냥 전투가 너무 격렬해서 그런 것이라고.

       눈앞의 귀신이 너무 기괴하고 기묘해서 그저 잠시 착오를 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를 배반하지 않았던 몸은.

       쇠처럼 두들기고 괴롭혀진 끝에 마침내 검으로 거듭난 그의 몸은 말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

         

       머리와 몸의 다른 주장.

       이성과 본능의 싸움.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는가?

       귀신과 싸우고 있는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카즈오는 과연 무엇을 신뢰해야 하는가?

         

       머릿속의 이성?

       몸의 본능?

         

       그 답을 알기 위해 카즈오는 검을 들어 올린다.

       가지를 위협적으로 낭창낭창 흔들면서 그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지만.

       그는 아까와는 다르게 그것을 막을 생각을 하지 않고 검을 위로 치켜올리고.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수련할 때 그러하였듯이.

       대련할 때 그러하였듯이.

       그리고 자연과 싸워서 이기는 위업을 달성하였을 그때처럼.

         

       위에서 아래로.

       중력의 도움을 받아 이어지는 한 줄기의 선을 긋는다.

         

       …

       …

       …

         

       “과연. 노력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군.”

         

       카즈오는 본능을 신뢰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옳았다.

         

       본능에 따라 검을 휘둘러서 보인 것은 진실.

       오감의 착각으로 조작되는 이성이 아닌, 본능이 자아낸 실제의 현실.

         

       맑았던 공기는 온데간데없이 역겨운 가루들이 둥둥 떠다니는 공간.

       파도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해안가로 스멀스멀 기어 오는 바닷속의 검은 팔뚝.

       맥동하는 혈관처럼 해안가를 뒤덮은 썩어빠진 얽힌 팔다리.

       새까만 귀기로 덮여 어두컴컴해진 공간.

         

       그리고 그 중앙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환상 속에서는 고목이나 다름없던 그것은 꽃을 피우고 있다.

       이파리 하나 없이 그저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다.

         

       피안화를 닮은 꽃은 흐드러지게 피어나 늘어져 있다.

       썩은 시체를 이리저리 빚어서 만든 것처럼 역겨운 색채를 갖고, 시각으로 보는데도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불결함을 품고, 꽃내음 대신에 불길함을 형상화한 것 같은 썩은 냄새를 풍긴다.

         

       사람 얼굴이 새겨진 열매는 날카로운 뿌리로 꿰뚫어 장식처럼 주위에 장식하고, 껄껄거리는 웃음소리와 인화(燐火)의 반짝임으로 꽃들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그 움직임은 마치 해초가 바닷속에서 흔들리는 것만 같아서, 초롱아귀가 불빛에 꼬여 드는 먹잇감을 꿀꺽 집어삼키기 위해 움직이는 등불과도 같아서 모골이 송연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몸통에는 거대한 균열이 하나가 있다.

         

       나무 안쪽에서 손으로 틈을 붙잡고 쩌억 찢어버린 듯한 모습.

       구멍에 손가락이 없는 부분이 없고, 손이 보이지 않는 곳이 없다.

       다닥다닥 달라붙은 손가락과 손은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사람의 치아를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니.

       마치 세로로 찢어진 입이 슬쩍 벌어져 먹잇감을 삼키기 위한 기괴함이라 하겠다.

         

       꿈틀거리는 손가락.

       치아인가, 구더기인가.

       보기만 해도 역겨움이 올라오고 토기가 솟구치니.

         

       “…우리가 실수하고 있었구나.”

         

       과연.

       카즈오는 자신들이 저 귀신의 손에 놀아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제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사실도, 자신의 힘으로는 다른 이들이 저 악령의 현혹에서 벗어나게 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후우.”

         

       아니.

       아니다.

         

       악령에게서 저 현혹을 벗어나게 할 방법이 있다.

       그가 평생 해왔고, 가장 잘하는 일.

         

       “베겠다.”

         

       벤다.

       베서, 현혹할 여유를 없앤다.

         

       카즈오는 간단하면서도 어려운…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속에서, 현실에서 한 자루의 칼을 들어 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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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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