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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린드의 반대편에 서있던 이는 스스로를 토브라고 소개했다.

       

       “알겠지만 아무나 흡혈귀 사냥꾼이 될 수 있는 게 아닐세. 입단시험이 필요하지.”

       

       그는 자기와 함께 임무 하나를 수행하며 사냥꾼으로써의 자질을 평가해 보겠다고 말했다.

       

       나를 귀머거리라고 생각하는 건가?

       

       방금 전 둘이 싸우는 것을 그대로 들었거늘 그대의 속셈을 내 모르리라 여기는가?

       

       아주 날 뭘로 보는 군. 무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잡것이.

       

       원래 성격 같았으면 몸에 구멍 하나를 내줌으로써 공손을 새겨주었을 터이나 당장은 그대의 역할이 있으니 조금 미루어 두마.

       

       “혹시 사용하는 무기가 있나?”

       “창을 줄 수 있겠나?”

       

       기왕 엔리를 끌어들인 김에 강의를 좀 해줘야지.

       

       내가 창을 달라고 말하자 토브가 반색을 했다.

       

       그렇겠지. 창이란 병기는 철을 가장 적게 들일 수 있는 무기니까.

       

       – 우와. 이걸 창이라고 주는 거임?

       – 우리집 할아버지 지팡이도 이것보단 튼튼하겠다.

       

       토브가 나에게 준 창은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은 물건이었다.

       

       창끝엔 녹이 슬어 있었고, 창대가 되는 나무는 이곳저곳이 썩어 갈라지는 중이었다.

       

       이런 걸 무기라도 내놓다니. 이 곳의 수준을 알만 하구나.

       

       거기에 갑옷이나 최소한 투구도 주지 않는가.

       

       사람을 일회용으로 보는 군. 아주 마음에 드는 녀석들이야.

       

       “더 원하는 거 있나?”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괜히 더 요구를 해봐야 짜증만 날 것 같으니 말이다.

       

       전체적인 태도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토브는 꽤 괜찮은 길잡이였다.

       

       최대한 쓸데없는 싸움을 피하며 빠른 길을 찾는 그 모습은 길잡이의 정석이라 할만했다.

       

       대신이라고 할까. 병사로써의 그는 그리 대단치 못했다. 그는 죽이기는커녕 무를 나눌 마음 자체가 안 생기는 잡졸이었다.

       

       그와 같이 산을 탄 지 20분가량이 지났을까.

       

       “여기야. 우리가 정찰을 할 곳이. 자 뒤에서 보조해 줄 테니 앞장서라고.”

       

       토브가 나를 데리고 온 곳은 산 어느 곳에 있는 동굴이었다.

       

       내가 동굴 안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 텐데도 토브는 내게 횃불을 내밀며 앞에 서기를 권유했다.

       

       악의도 이처럼 노골적이면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구나.

       

       <걱정 마세요! 길 안내는 제가 해 드릴 테니까.>

       “이 안에 있는 길도 모두 외우고 있느냐?”

       <당연하죠. 하늘의 끝에서 제가 모르는 길은 없답니다! 인간 네비게이션이라고 불러 주세요!>

       “그래. 네비야. 이제 어떻게 가야 하는가?”

       <안으로 들어가서 50m 직진 후에 좌회전입니다!>

       

       동굴 입구에 들어선 순간 내 코끝에 혈향이 느껴졌다.

       

       단순한 피의 냄새와는 달랐다. 그보다는 조금 더 진하고 기분 나쁜 향기였다.

       

       언젠가 맡아본 적 있는 냄새인데.

       

       아아. 생각났다. 피가 고여 썩으면 이런 향이 나지.

       

       “토브. 이 안에 먼저 들어갔던 이들이 있나?”

       “그건 왜 묻지?”

       

       대답에 날이 서 있다. 앞서 간 자가 없다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지.

       

       있군. 나보다 먼저 이 안에 들어 온 이들이.

       

       아마도 그들은 모두 죽었으리라. 누군가에 의해서.

       

       흡혈귀인가. 피로써 살아가는 생명이라. 혈교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로군.

       

       혈교에 관한 내 기억은 좋은 것이 없다.

       

       내 직접 땅에 묻었던 은인을 강시로써 만난 그 순간부터 혈교는 나의 원수였으니까.

       

       빠각!

       

       소리를 따라 고개를 내리가 혈교의 기억에 무심코 손에 힘을 준 듯 창대가 반토막이 나 있었다.

       

       “이봐. 창을 망가트리면 어쩌잔 겐가.”

       “괜찮다. 이걸로도 싸울 수 있으니.”

       

       예정했던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엔리에게 가르칠 내용을 좀 바꾸어야겠군.

       

       창이 사라진 상태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게 무어가 있으려나. 기척을 느끼는 법? 아니면 상대와 싸울 때 보면 좋은 곳?

       

       생각을 해보니 할 수 있는 게 한 둘이 아니군. 아무런 문제도 없겠어.

       

       “지금부터 흡혈귀를.”

       “문제없다고 했다.”

       

       닥치거라. 아해야.

       

       내 지금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대를 내버려 두고 있으나 본인의 인내심이 무한하리라 생각하지 말거라.

       

       그 착각이 그대의 명운을 정할 수 있음을 알라.

       

       “…그렇담 그런 거겠지.”

       

       기세로 찍어 누르자 토브가 급히 말을 바꿨다.

       

       태연한 체를 하지만 무심코 눈을 피하는 것이 겁을 먹었다는 게 훤히 보였다.

       

       이제야 주제파악이 좀 되었다 보군.

       

       – 눈빛 엄청 살벌하다.

       – 나도 모르게 주머니에서 돈 꺼내고 있었음.

       – 난 살짝 과호흡 왔는데. 겁나 무섭다 진짜.

       – 평소엔 약간 허허실실인데 정색하니까 장난 아니네.

       

       <걱정 마요 여러분. 화령 씨 현실에선 엄청 착하시거든요.>

       “착하다고 하긴 그렇지 않나?”

       

       지금에 와서는 많이 유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본인이 선하다는 말엔 차마 동의할 수 없군.

       

       본인이 지닌 업보가 한 둘이 아닌지라. 언제 벼락에 맞아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만.

       

       <변호해 주고 있잖아요! 가만있어요!>

       

       양심껏 이야기를 했지만 엔리는 되래 날 다그치고는 내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다.

       

       가만 듣기에도 낯부끄러운 소리였기에 잠시 엔리의 소리를 차단시킨 후 단창을 쥐었다.

       

       “이제 싸워야 할 것 같으니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지.”

       

       – 설마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

       – 동굴이 어두워서 안색이 잘 안 보여.

       – 왜 하필 맵이 동굴이라서.

       

       갑자기 빨라진 채팅창을 애써 무시한 나는 애써 단창을 고쳐 쥐고 발을 앞으로 움직였다.

       

       “저 동굴 갈림길 왼쪽 벽에 적 둘이 대기하고 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을 것 같아 설명을 하자면 기척이 느껴져서다.”

       

       기척이라는 것은 추상적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매우 구체적인 것이다.

       

       발걸음 소리. 옷깃이 스치는 소리. 철이 부딪히는 소리. 누군가의 숨소리.

       

       살의 채취. 역겨운 땀 냄새. 피의 냄새.

       

       오감으로 파악하는 이 모든 것을 우리는 기척이라고 부른다.

       

       나는 동굴의 갈림길을 향해 걸으며 이것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허나 채팅창은 여전히 방금 전 내가 엔리를 차단한 것에 대해서밖에 이야기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내 해주는 이야기가 얼마나 유용한 것인데 어찌 듣지를 않는가.

       

       하아. 그래. 니놈들 제멋대로 떠들어 보거라. 나도 내 멋대로 떠들 테니까.

       

       “누군가는 기척을 느끼는 걸 본능적인 육감이라 말하지만 다르다. 기척을 느끼는 것은 훈련에 따라 강화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기척을 훈련하는 법은 단순하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을 하나하나 의식하는 것이다.”

       

       지금 같은 경우에 무슨 소리가 나고 있는가 하면 숨소리와 그에 따라 움직이는 철의 소리. 그리고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역겨운 피의 냄새다.

       

       저들은 나름 그걸 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만 무공이라도 쓰지 않는 한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

       

       “기척을 느끼는 데에 능숙해지면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이미 동굴 옆에 선 위치는 특정한 상태다.

       

       갈림길에 발을 내딛으며 창을 옆으로 내지른다.

       

       단창이 흡혈귀 중 하나의 복부를 꿰뚫는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물러서는 흡혈귀를 내버려 둔 채 다른 녀석을 본다.

       

       놈은 당황해선 몸을 굳힌 채 나와 자신의 동료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싸움에 그리 익숙하진 않은 가보구나. 아니면 이렇게 공격을 당할 줄 몰랐거나.

       

       어느 쪽이건 망설임은 싸움에 좋은 역할을 하지 못한단 걸 알아두거라.

       

       죽이지는 않을 터이니 언젠가는 써먹을 일이 있지 않겠느냐?

       

       두 흡혈귀는 약했지만 질겼다. 재생력이 좋아서 그런지 보통이라면 이미 혼절을 할만큼 충격을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놈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차라리 죽…여줘…”

       

       덕분에 두 놈을 전투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데 여러모로 수고를 들여야만 했다.

       

       참으로 귀찮군. 다음번부터는 마력으로 무를 펼쳐보아야겠어. 언제까지고 이런 고생을 할 순 없으니 말이야.

       

       흡혈귀 중 하나에게 꽂힌 창을 뽑아냈다.

       

       “끄으읍!”

       

       이건 더 이상 못 쓰겠군.

       

       창을 내다 버린 후 뒤를 돌아보자 토브가 떨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얼 하나?”

       “아뇨! 아닙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공손해졌군.

       

       – 이 사람이 착해?

       – 죽이지는 않았으니까 착한 건가?

       – 흡혈귀 입에서 죽여 달란 소리가 나왔는데 저게 고문이랑 다른 게 뭐야.

       

       채팅창에서도 방금 전 엔리가 했던 말에 관한 건 사라지고 내가 벌인 일에 대한 이야기만이 올라오고 있었다.

       

       왜들 저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좋은 게 좋은 거지. 이제 다시 엔리를 불러도 되겠군.

       

       <화령 씨. 아무리 제 말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시위를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시위라니? 내 평소에 하듯이 했을 뿐이잖나.”

       <…진짜 악질이네요.>

       

       엔리는 이 한 마디를 하고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다시 길 안내를 시작했다.

       

       다들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구나.

       

       먼저 공격을 하려 들었기에 그만한 대가를 치렀을 뿐인데 무어가 불쌍하고 무어가 잔혹하더냐.

       

       어쨌든 목숨을 붙여 놓은 것이니 자비롭다 해야지. 암. 아무리 더러워도 이승이 저승보다는 나으니 말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며 몇 명의 흡혈귀를 더 만났지만 다들 일전에 만난 두 녀석과 비슷했다.

       

       쓸데없이 질긴 그 녀석들은 마력을 이용한 무언가를 하기에 적절한 실험대였다.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이 마력이라는 것에 참으로 많은 가능성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중에 아피스에서 마나 캐릭터라 불리는 녀석들도 한 번 해보아야겠구나. 지금 이 몸보다 많은 마력이 있다면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 테니.

       

       오랜만에 재미난 장난감이 생긴 기분이구나.

       

       – 엔리. 이 사람이 착해? 장난해?

       – 악마가 따로 없다. 역시 만마의 지배자야.

       – 뒤에 토브가 언제 도망칠지 눈치 보는 거 봐라. 나 쟤가 저러는 거 처음 본다.

       – 양심이 있으면 해명해라. 엔리!

       

       <나도 이럴 줄 몰랐지! 화령 씨 현실에선 진짜 착하다니까?! 게임만 들어오면 사람이 이상해져서 그래!>

       

       채팅창과 엔리가 무어라무어라 싸우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저기에 괜히 끼어들어봐야 좋은 꼴은 보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동굴의 끝에 도착하자 돔과 같은 형식의 방이 나타났다.

       

       바닥은 하나의 동그란 원판과도 같았고 그 위에 쌓여진 아치형의 건축물들과 이곳저곳에 놓인 화로는 이 방을 하나의 신전처럼 보이게 했다.

       

       방의 가운데에는 거대한 손잡이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는데 거기에 가라는 듯 표시가 띄워졌다.

       

       “오오. 여기가 흡혈귀들이 찾던 곳인가!”

       

       토브의 호들갑을 뒤로 한 채 가운데에 발을 들인 순간 바닥에 그려진 오각형 문양을 따라 보라색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기이하게도 그 불꽃은 전혀 뜨겁지 않았으나 일렁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이제 무얼 하면 되느냐?”

       <즐거운 퍼즐 시간이에요. 한 번 풀어보시겠어요?>

       “기본적인 방법 정도만 설명해다오.”

       <간단해요. 화로를 옳은 방법에 따라 움직이면 거기로 불꽃이 이어지거든요? 모든 화로를 움직여서 불꽃으로 방을 가득 채우면 돼요.>

       

       엔리의 설명에 따라 어느 화로를 움직여 보니 가운데에서 일렁이던 불이 화로를 따라 이어졌다.

       

       이런 식으로 방 전체에 불을 채우면 된다는 소리인가.

       

       으음. 이해는 했다.

       

       그런데 말이다. 굳이 이런 퍼즐을 풀어야 하느냐?

       

       그냥 문을 날려버리면 빠르고 편할 것 같다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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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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