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4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다섯 눈동자).

         

         그 이름의 기원은 모두가 생각하는 그게 맞다.

         구세대 패권국가인 미합중국과 상호 첩보 동맹을 맺은 가장 강력한 우방국 5곳. 하지만 모티브와 달리 현재에 와서 반란군 성향이 짙은 지하조직이 되어버린 이유는 간단.

         

         각 나라의 주력 정부세력들이 서로 동귀어진한 틈을 타, 최후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각종 물류창고나 발전소. 살아있는 위성이나 궤도 엘리베이터 등을 기업들이 차지하고 지배계층의 공백을 메꿔버렸기 때문에.

         

         결국 남아있던 당시 기성 세대는 선택을 강제당했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질서에 그대로 순응할지, 아니면 과거의 향수나 영광을 쫓아 저항할지.

         

         그렇기에 설립된 게 파이브 아이즈를 비롯한 여러 반기업적 지하 조직들.

         그 중에서도 얘들은 직접적으로 사회나 기반시설에 공격을 가하기 보다는, 다섯 메가 코프를 감시하고 여러 민주주의 선전물을 유포하는데 집중하는 단체다.

         

         ……뭐, 어디까지나 기본 자세가 그렇다는 거지, 메인 스토리 도중에 보여주는 공세 규모나 포섭된 기업 인사 면면들을 살펴보면. 최후에 가서는 물리적인 힘과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아는 인간들이다.

         

         허나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은 만큼, 으레 그렇듯 각 메트로폴리스 네트워크에 민주주의라던가… 천부 인권 같은 현재의 삶이 잘못되었다는 암시를 주는.

         

         적당히 시민들에게 내재된 불만을 고조시키고 조직에 뉴 페이스를 추가할 기회나 만들 선동 자료나 뿌리고 말아야 했을 파이브 아이즈의 ‘저항 운동’에, 하베스트 플래닛 한정 사소한… 변화가 있었다.

         

         “범행 예고와 성명문이 동시에 나왔지. 관문에서 일어난 사고는 절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며, 누명에 대한 대가로 올해는 가상 세계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에도 참견을 걸겠다고.”

         

         “……하.”

         

         군데군데 이가 빠진 건물 계단을 딛고 위층으로 올라가며 브로커 아재로부터 부수적인 설명을 듣는다.

         

         나비효과…… 이딴 게 왜 존재하는 걸까…?

         

         원래라면 제공되는 상황실에 편안히 앉아서 통신망에 올라오는 불법 게시글이나 검열했으면 되는 넷 해커를 위한 연말 특수 아르바이트에 오프라인 대테러 업무까지 추가되었다.

         

         …내가 자초한 일이라는 지적은 받지 않겠다.

         이미 충분히, 악의 없는 혼잣말에 피해를 입고 있으니까.

         

         – 키워드 관문으로 정보탐색 개시. ……대규모 정전 및 기기 폭주에 따른 기업피해라, 도시 어딘가에 이런 대담한 일을 저지를 수 있는 다른 신생 조직이 숨어있었다고 하면 파이브 아이즈 입장에서는 위기감을 느낄 만도 하군요. –

         

         “그래, 그래… 다 내 잘못이지….”

         

         구구절절한 사연이나 발전한 내 능력 같은 건 깡통에게 자세히 풀어놓지 않았다.

         

         그런 건 차차 같이 행동하면서 알아가면 될 문제라 생각하고, 중요한 부분만 짚어주었다.

         가령 발렌타인이랑 성이 생긴 과정이라던가… 네오 헤이븐에 가면 신세를 지게 될 맥퀸 일가와의 인연. 그리고 파라다이스와 충돌할 일이 생기더라도 원만하게 해결할 창구가 있다는 것 정도만.

         

         “요 몇 달 용병 시장에서 안 보인다 싶더라니… 잠깐 사이에 이런 호위용 로봇을 사서 유지할 만큼 수입이 괜찮나? 하긴 이러니 요즘 애들이 나이만 차면 엘리시움에 적성 검사하러 달려가는 거겠지.”

         

         전에는 없던 내 동행에… 정확하게는 광택도 채 흐려지지 않은 깡통의 장갑에서 풍기는 돈냄새에 관심을 표하는 그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줬다.

         

         “…주변에 나처럼 벌었다는 해커가 있으면 전부 금융 사범이 분명하니까 엮이지나 마. 애당초 내가 그렇게 여유가 넘쳤으면 휴일에 쉬지 일하러 나왔겠어?”

         

         “그런…가? 으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딱히 반박할 부분이 떠오르지 않는지 그는 납득했다.

         

         22세기 청소년들의 1순위 장래희망이 돈 잘 버는 방구석 폐인인 점은 굉장히 안타깝지만, 그런 상상이나 하라고 깡통을 데리고 외출한 게 아니다.

         

         데이터만 존재하는 네트워크에서 계속 학습하는 것보다는 보호자 관리 아래서 세상사를 체험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첫번째 이유.

         

         앞으로도 나는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상황을 많이 헤쳐 나가야 할 테니 미리 익숙해지라는 의미에서 큰 위험이 없을 만한 자리를 고른 게 두번째.

         

         그리고 마지막은….

         

         “자, 이쪽에 나머지 현장투입 용병들….”

         

         쨍그랑—!!

         

         “이 모여이이있…?!!?”

         

         계단을 다 오르자마자, 난데없이 머리 쪽으로 날아든 유리병을 깡통이 쳐냈다.

         

         팔뚝에 맞아 깨진 파편이 나에게 닿지 않도록, 어느새 앞으로 나선 그가 튀는 유리조각을 전부 몸으로 받아냈고.

         브로커 아재는… 원하지 않게 끼얹어진 장식품 덕분에 양복과 머리카락이 좀 반짝반짝해졌다.

         

         아, 그래. 마지막 이유는 딴 게 아니라, 깡다구 좋은 용병들에게 혹시나 변변한 신체능력도 없는 내가 개무시 당할까 봐.

         괜한 시비가 걸리지 않게 이쪽도 확실한 자위수단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하지만 얼굴도 제대로 보기 전에 이딴 짓을 당하는 건 상정하지 못했는데?

         

         – 아샤님, 곧바로 응전하겠습니다. 아래 층에 엄폐해서 기다려 주시길. –

         

         경고도 없는 도심내 선전포고에 잔뜩 독이 오른 케어봇이 몸 곳곳에 거세게 전력을 공급한다.

         금방이라도 전방으로 사출될 것처럼 끼긱 거리는 관절음과 번뜩이는 외부 센서의 불빛이 정말 든든했다.

         

         꼭 전위는 자신에게 맡겨 달라는 것처럼. 당당하게 우뚝 선 깡통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술렁이는 걸 느꼈다.

         

         …야 이 바보 멍청아! 넌 그냥 가정용 로봇에 추가로 장갑만 장비한 상태라니까?!

         

         “잠깐만 기다려봐…!”

         

         발사되기 직전의 활처럼 당겨진 그 몸체를 다급하게 제지했다.

         반강제로 여러 번의 사선과 전장을 넘어오면서 나에게도 얼추 수습 가능한 상황과 좆 된 상황을 구분할 눈썰미 정도는 생겼다.

         

         그런 내가 생각하기에 술병을 내던지는 건 일종의 견제나 화풀이에 가까웠지 너 죽고 나 죽자는 결투장은 아니었다.

         

         보라, 그 증거로 저쪽도 존나 당황하지 않았나?

         

         “푸하핫!! 미친 새끼야! 브로커 씨도 같이 있잖아! 드로이드 공습은 무슨…!”

         “용병단에서도 공금으로 잘 안 굴리는 로봇을 혼자 데리고 다니는 부르주아 용병이 있을 줄 나라고 알았냐? 에잉….”

         

         “어라…?”

         

         당황이 아니라 폭소.

         

         방금 막 사람을 향해 위험한 물건을 던졌다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쾌활한 헛소리가 황량한 건물을 울렸다.

         

         와하하! 하는 경박한 웃음소리와 함께 서로의 무릎이나 등을 두드리는 놈이 둘.

         나머지 용병들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자 하는 듯, 묘한 눈초리로 그들과 나를 흘겨보면서 관련이 없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극히 상식적으로.

         뭔가 오해가 있거나 착오라 하더라도 근거가 있어서 덤벼든 줄 알았는데.

         

         그러니까… 저것들은 지금 층계참을 울리는 발소리에 기계음 좀 섞였다고, 같은 용병이라면 피할 테고 아니면 그냥 맞으라고 재미 삼아 던져본 거라고?

         

         거 텃세 한 번 뭣같이 부리시네…?

         

         “…….”

         

         병 안에 남아있던 정체불명의 액체가 겉면에 묻었음에도. 내 말 한마디에 꼼짝 않고 대기자세를 유지해주는 깡통을 한 번 보고, 다시 예의범절은 개밥으로 줘버린 둘을 바라보았다.

         

         조기교육의 중요성과 폭력적인 문제 해결방식이 그의 자아에 미칠 영향을 저울질해본다.

         

         음….

         

         “……죽이지만 마.”

         

         – 명령, 확실하게 받았습니다. –

         

         일그러진 내 표정을 보고, 벌어질 싸움판을 직감한 나머지 인간들은 기껍게 한발 물러난 채로 알아서 반원을 이뤘다.

         당사자 두 놈은 찍소리도 못한 채 가만있던 나를 보고 방심했는지 뒤늦게 일어서는 와중이었고.

         

         끼기기기긱—!!

         

         달리는 걸 넘어, 숫제 미끄러지듯이 지면을 스치며 나아가는 살기등등한 케어봇을 관찰했다.

         

         이런 하찮은 시비까지 구태여 참아줄 필요도 없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이기도 해서 목줄을 풀어놓은 것이다.

         

         깡통의 상태, 그 사양은 좀 복합적인 편이다.

         

         매끈한 다용도 복합 장갑 덕에, 안에 들은 게 비전투용 모델이란 걸 한눈에 알아챌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치열한 전장에 냅다 던져 놓기엔 기초 하드웨어의 성능 부재가 심각한 것도 사실. 그렇지만 안에 들은 소프트웨어는 놀리기 아까울 정도로 전투 특화형.

         

         옛날 몸에 비하면 가볍기만 하지, 출력도 내구성도 모자란 그가 과연 제대로 싸울 수나 있을지 보고자 내린 결정인데…. 이 어설픈 광대들로는 판단하기 조금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우득!!

         

         “게헥!”

         

         자세를 어떻게 잡아 보기도 전에 발목을 직각으로 걷어차인 녀석이 불쌍한 단말마를 내며 고꾸라진다.

         

         정색하고 공격한 건 아니고 그저 가속도를 이용해 태클을 걸었다고 하는 게 맞겠지만… 공중에서 팽그르르 돌다가 바닥에 처박히는 꼴을 보니 조금 가엽긴 했다.

         

         “씹…! 발!!”

         

         친구가 올림픽 유망주 마냥 트리플 악셀을 도는 동안.

         거친 욕설과 동시에 스르릉 하고, 마체테(Machete; 정글도)가 뽑혀져 나온다.

         

         등허리에 맨 총을 꺼내지 않는 건 칭찬해줄 만하다. 꺼내는 순간, 더는 자존심 싸움으로 넘길 문제는 아니게 될 테니 나름 현명한 결정이다.

         

         물론 그게 위기 상황을 타개해주지는 않겠지만.

         

         일반적인 로봇이나 호위 드로이드라면 당연히 휘둘러지는 칼날을 막았을 것이다.

         다가오는 공격의 위협능력을 계산할 여건도 안 되는 조잡한 기계라면 자기 센서나 사지가 쪼개지거나 말거나 명령대로 적을 무력화하기 위해 공격을 강행했을 것이고.

         

         반면… 영악한 우리 깡통은. 예전부터 적의 의표를 찌를 줄 알았다.

         

         끼긱!!

         

         “뭣?!”

         

         비스듬하게 들이밀어진 강철어깨가 성급하게 제 묫자리로 들어온 마체테 날을 흘려낸다.

         부딪힌 금속 사이에서 요란한 불꽃이 튀며 시야를 어지럽혔고, 한껏 체중을 실은 일격이 엇나간 남자의 상반신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자연스럽게 용병의 뒤를 잡게 된 깡통의 팔이 부드럽게, 넘어지는 그의 머리를 감싸 쥔다.

         흠. 이미 승부도 갈린 만큼 상처를 더 입힐 필요가 없긴 하다.

         

         벌써 자비를 베풀 줄 아는 모습을 보니 나 또한 감개가 무량했….

         

         쾅!!

         

         “…깡통아?”

         

         – 안 죽였습니다. 그저 무력화를 위해 신중을 기했을 뿐입니다. –

         

         얼굴째로 건물 바닥에 파묻힌 남자의 뒤통수로부터 손을 뗀 깡통이 태연하게 대꾸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내 옆으로 복귀했다.

         

         결과적으로 남은 건… 발목을 부여잡고 끙끙거리는 무뢰배 하나.

         미동도 없이 기절한 머저리 또 하나.

         

         “…강인공지능을 탑재한 전투 드로이드? 살벌하구만.”

         “나… 들어봤어. 데어데블 패거리도 턱짓으로 부리는 초신성 해커가 업계에 들어왔다고. 분명 이름이….”

         

         …예상보다 훨씬 일방적인 전투에 질린 표정을 지은 다른 용병들 다수.

         

         이거 뻔뻔하게 통성명하고 하하호호 할 분위기도 아닌 것 같으니 이만 돌아가야겠다.

         그래봐야 저들 대부분은 퍼레이드 현장근무, 나는 상황실 대기 겸 검열관 신세일 테니 괜찮을 것이다.

         

         “…얘 수리비는 저 두 명 보수에서 빼서 이쪽에 넣어줘.”

         

         표면이 미묘하게 어그러진 깡통의 어깨를 툭툭 털어내 주며, 마찬가지로 양복에 안착한 병조각을 털어내느라 바쁜 브로커 씨에게 정당한 부탁을 했다.

         

         “그건 상관없지만…… 저런 병기를 데려온다고, 따로 보수를 못 늘려주는 건 부디 알아주게나.”

         

         “음….”

         

         금방 일어난 짧은 교전을 머리속으로 복기해 본다.

         어설픈 용병쯤은 충분히 제압할 능력이 있는 건 알았지만…. 과거 추적자를 상대로,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싸우던 것에 비하면 여실히 전투력이 다운그레이드 된 게 느껴졌다.

         

         기발한 전투 감각으로 싸움은 가능하더라도 그 한계는 어디까지나 가정용 케어봇.

         그러니 공연히 위험한 장소에 끌고 다니는 것보다는 목적에 맞게 역할을 분담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혹시 크리스마스 당일 내가 일하는 동안, 얌전히 시술소에서 제니랑 놀고 있으라고 말하면 화내려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한(?) 깡통이는 엄마(?)가 돈 벌어오는 동안 집에서 놀고있으렴.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추천에 댓글까지 아낌없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