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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축제 준비가 시작되었다.

     

     명목은 누아르 지브롤터가 검에 마나를 담을 수 있게 된, ‘기사’의 자격을 가지게 된 것.

     일단 다른 건 차치하고, 대외적인 인상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스승님. 10살에 기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까?”

     “1만 명 중에서 1명 정도 수준이지.”

     멘테 경과 대련을 하며, 나는 멘테 경이 가지고 있는 상식과 일반적인 인식을 복기했다.

     “그러면 하급 기사가 되는 건 보통 언제입니까?”

     “20살에 되면 성공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지.”

     “아카데미 재학생들은요?”

     “거의 다 견습 수준이고, 한 학년 300명이라고 가정하면 그중 4% 정도만 기사의 자격을 얻을 수 있겠네.”

     그 300명도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는 귀족 계층이라거나 돈 많은 평민과 같이 ‘한 번 걸러진 계층’이다.

     “기사라는 게 단순히 검만 휘둘러서 검술만 늘린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적어도 왕국에서는 그렇죠.”

     농사일과 세금에 허덕이는 일반 평민들까지 생각해본다면, ‘마나를 검에 담을 수 있다’라는 기사의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이거 한번 봐볼래?”

     

     멘테 경이 뒤로 크게 물러나며, 목검을 한 손으로 움켜쥔다.

     “기사마다 무기도 다르고 마나를 담는 방법도 다르지. 이건 진짜 개인마다 다른 부분이야.”

     검의 손잡이에 검지와 중지만 펼치고 붙여, 그대로 검을 뒤로 당긴다.

     “나는 이런 식이지.”

     카가가강.

     대장간에서 검을 가는 듯한 소리가 귀에 들린다.

     “후….”

     

     손가락 끝에 모은 마나가 검으로 스며들어 깃들고, 목검의 검신에는 멘테 경 특유의 옥색 마나가 안개처럼 서렸다.

     “너는 어때?”

     “저는 이렇죠.”

     이번에는 내가 검을 앞으로 뻗었다.

     “저는 검을 당기는 쪽은 아니고, 검을 그대로 두고 손을 움직이는 편이라.”

     수평에 가깝게 놓은 검신의 위로 손을 가볍게 올려, 마나를 흩뿌리며 검신 끝까지 손을 움직인다.

     “스승님은 안 되겠네요. 팔이 짧아서.”

     “…그러는 너야말로 목검만 가능한 게 아니야?”

     “저는 좀 더 자라게 될 거니까 괜찮습니다.”

     건방진 녀석.

     멘테 경이 딱 그런 눈으로 나를 노려봤다.

     “나중에 두고 봐. 내가 몸이 커지면 마나 담는 방법을 바꿔서라도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로버트 경처럼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센스가 없는 애들이나 하는 무식한 방법이고.”

     멘테 경이 검에 깃든 마나를 회수하더니, 그대로 양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그냥 손잡이부터 무지막지하게 마나를 검으로 뿜어낸다? 검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식으로 강제로 마나를 쑤셔 박으면 어떡해?”

     “…….”

     “뭐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아뇨, 그냥.”

     미래.

     팔신장 중 한 명인 멘테 경이 하던 말과 비슷해서.

     ‘그쪽은 좀 더 적나라했지만.’

     남자들은 검을 여자처럼 다루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자기 마나를 아래에서부터 쑤셔 박느니 마느니 그런 소리를 하기도 했었다.

     

     어느 쪽이든.

     어떤 방법이든.

     결국, 기사의 자격은 무기에 마나를 담는 걸로 결정된다.

     마나의 양이나 유지 시간, 그리고 마나가 검처럼 실체를 가지게 되는 ‘오러’의 유무에 따라 기사도 하급부터 상급, 마스터로 나뉘게 되는 셈.

     “더 빨리 강해지고 싶은데, 아직 저도 멀었네요.”

     “왜. 동생이 하급 기사가 된 것 때문에 조바심이 생겨서 그래? 진짜 사람들 반응처럼 동생이 형을 능가해버릴까 봐?”

     “대외적인 시선은 괜찮습니다. 설령 누아르가 저보다 빨리 강해진다고 해도, 그건 관심 없습니다.”

     “흐음….”

     멘테 경이 어딘가 알겠다는 듯 음흉하게 웃었다.

     “하긴. 좋아하는 여자애보다 자기가 더 약하면 남자들 다 쪽팔려하기는 하더라.”

     “하, 그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까?”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남자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보다 약하기 때문에 더 강해지고 싶다거나 하는 건 그저 사회적 편견과 전통적 역할 배분에 따른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의 폐단으로 인한 시각일 뿐입니다.”

     “우와, 너, 그렇게 말 빨리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은데. 혹시 신경 쓰여서 그래?”

     “누가 신경이 쓰인다는 겁니까. 제가 설마 지금 강해지고자 하는 이유가, 제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그녀가 저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어.”

     멘테 경이 낮게 키득거리며 목검을 크게 휘둘렀다.

     “아니면 말고~”

     “…….”

     “그래도 중급 기사 정도는 빨리 되어야겠더라. 히히힛!”

     “나이도 많으신 분이 그렇게 웃으시면…크흠. 죄송합니다.”

     옆으로 목검이 크게 날아가 벽에 박혔고, 나는 목검을 뽑아 벽에 바르게 걸었다.

     “그래도 빨리 강해지고 싶은 건 사실입니다.”

     “그래, 그래. 축제 때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호위받으면서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도련님이 호위해주는 게 더 낫기는 하지.”

     “…….”

     “그런데 말이야. 그런 건 사실 어떻게 말을 해도 의미 없는 거 아니야?”

     멘테 경이 나를 가리키며 웃었다.

     “어차피 우리의 그레이 지브롤터 도련님은 동생에게 검술로 밀리는 재능을 가진 존재, 라는 게 대외적인 인식이잖아.”

     “…….”

     “동생에게 그 뭐라더라, 그래! 열폭하는 어린아이. 그게 지금 영지민들이 가진 인식이잖아.”

     “예, 그렇네요. 저는 검에 마나도 담지 못하는, 하급 기사도 되지 못하는 지브롤터군요.”

     나는 순순히 두 손을 들었다.

     “그러니 저를 지켜주셔야겠습니다, 스승님.”

     “…잠깐만. 나, 휴가인데. 로버트 시켜.”

     “멘테 경의 업무에는 저에 대한 호위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이보세요, 도련님. 어차피 자베스랑 엘리, 둘 다 데리고 돌아다닐 거잖아!”

     “하.”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

     “누가 들으면 그 둘이 저를 호위할 만큼 강하다는 줄 알겠습니다?”

     “뭐?”

     “자베스가 확실히 머스킷을 잘 다루기는 하지만, 연약한 소녀입니다.”

     “연약…?”

     멘테 경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 엘리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이보세요, 지브롤터 도련님.”

     “엘리는 약한 소녀입니다. 제가 지켜줘야 할 만큼.”

     “아주 그냥 눈에 지브롤터가 씌었네.”

     “…그런 표현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만.”

     회귀 전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

     “그래, 그래. 알았어. 도련님께서 축제에 좌우로 메이드 두 명 달고 즐기시겠다는데 어쩌겠어. 도와드려야지.”

     “혹시나 축제를 즐기고 싶어 하시는 거라면….”

     “야.”

     멘테 경이 내 앞으로 쭉 다가왔다.

     

     “내가.”

     퍽.

     “메이드복이든, 기사 정복이든.”

     멘테 경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대로 이마로 내 가슴을 들이받았다.

     “너희 셋 뒤에 따라다니면, 사람들이 나를 뭐로 보겠어?”

     “…멘테 경?”

     “잘도 그렇게 보겠다.”

     멘테 경은 자기 정수리에 수평으로 손을 올리더니, 그대로 손날을 세워 나를 쿡 찔렀다.

     “이런데도?”

     명치가, 살짝 아팠다.

     “내가 뭐 영지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이번에 알려보시죠.”

     나는 더 명치에 손날이 날아오기 전, 멘테 경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었다.

     “저는 멘테 경이 기사단 서열정리에서 우승할 거라고 믿겠습니다.”

     “호위는?”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축제라고 해서, 제가 어디 호위도 없이 위험한 곳에 함부로 가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니까요.”

     호위를 대동하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사고가 나는 그런 일은 내게 존재할 수가 없다.

     “혹시 또 변경백을….”

     “변경백을 이용하겠다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말하자면.

     “그런 어린 아이 같은 행동을 하기에는, 걸려있는 목숨이 너무 중요해서.”

     내가 무슨 누아르도 아니고.

     * * *

     사람은 누군가를 판단할 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판단한다.

     멘테 경의 외형만 보고 일단 아이라고 생각하듯.

     인간에 대한 판단은 겉모습 말고도 다른 요인들이 한몫을 한다.

     나이.

     신분.

     사회적 직위.

     그 이외에 다양한 것들로 인간은 특정 대상을 판단하고, 그 배경지식이 그 사람의 성향을 파악하는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그 속내까지 알 수 있을까?

     전혀.

     겉모습은 예쁜 과일이라도 속에 벌레가 들어있는지는 직접 잘라봐야 아는 것처럼, 그냥 겉모습만 보고는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라고, 다들 알고는 있지만.

     “네가 그레이 지브롤터냐?”

     이 인간에게는 그런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동생에게 밀렸다고 하더니, 흐흐. 이렇게 손님 맞이나 하고.”

     꼬장꼬장하게 생긴 이 중년의 남자는 알고 있을까.

     

     ‘어떻게 죽일까.’

     내가 자신을 어떻게 죽이면 최대한 지브롤터에 피해가 가지 않고 안전하게 제거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아르쉔 경을 뵙습니다.”

     “길라루스.”

     “…….”

     “하. 그것도 모르냐? 나는 길라루스 남작이다.”

     마법사 로브를 두른 채, 고개를 치켜드는 이 갈색 머리의 건방진 인간은 아르쉔 길라루스.

     “실례했습니다. 헥스 자작의 편지에 성함만 적혀있어서.”

     “헤, 헥스…? 너, 너 이…! 외무대신 경의 존함을 어딜 함부로 부르는 것이야!”

     “제게는 로마나 자작이라는 이름보다 헥스 자작이라는 게 더 익숙한지라.”

     “시건방진….”

     전형적인 약강강약의 인간으로, 강한 자와 엮인 이들에게도 금방 굽신거리는 존재.

     ‘카르멘 왕비가 이게 문제라니까.’

     카르멘은 워낙 높은 곳에 있으므로, 자신보다 낮은 이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이런 부류의 인간이 자기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몰라.’

     카르멘 잘못은 아니다.

     “착각하지 말거라. 내가 고작 그 500만 골드, 푼돈 때문에 이곳에 온 게 아니니까!”

     

     그나마 이 인간이 ‘가장 나은 인선’이라고 할 만큼, 왕국의 마법사들은 좋은 말로도 인간성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지브롤터 백작께 어서 안내하거라!”

     “따라오십시오.”

     나는 아르쉔 경보다 앞장서, 응접실로 향했다.

     뒤에서 나를 향해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대놓고 들렸지만-

     ‘나도 뒤끝이 좀 있는 인간이라서.’

     속으로 담아두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살리냐 죽이냐를 저울질하고 있다.

     ‘마법사는 분명 인재가 맞아.’

     마나를 무기에 담는 육체파가 기사로서 숭상받는 것처럼, 육체적 기술은 부족하더라도 마법을 극한으로 다루는 마법사들도 왕국 내에서 고귀한 자로 인정받는다.

     ‘마법사들이 있기에 노스트럼이 지금까지 안전하게 버텨온 느낌이기도 하지.’

     마스터라는 게 꼭 검사나 기사에게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검의 극한에 다다른 자를 소드 마스터라고 부른다면, 마법의 극한에 다다른 자는 아크 메이지라고 해야겠지.

     ‘근데 없잖아, 지금.’

     현재, 왕국에 아크 메이지는 없다.

     궁정마도사로 상급 마법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가 직무를 맡고 있지만, 그 또한 죽을 때까지 아크 메이지가 되지 못한다.

     ‘드래곤의 축복이 떠나서 그럴지도.’

     이건 그냥 우연의 일치겠지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드래곤의 알을 깨부수고 기름에 부쳐 먹은 뒤.

     왕국에 남아있던 마지막 드래곤이 5m의 작은 날개를 펼치고 사라진 뒤.

     왕국에 더 이상 마법으로 대성하는 이는 없었다.

     마치 마법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제국이 왕국을 점령하며 인류가 더 이상 마법의 축복 없이 마도공학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당연한 흐름이라는 듯.

     ‘제국이 노스트럼의 마법사들을 넘어서려고 온갖 발악을 해온 게 참 무색해질 지경이었지.’

     왕국이 텔레포트 법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동안, 제국은 전철을 깔고 도로를 정비하며 이동 시간을 줄였다.

     왕국이 지팡이 한 번 휘둘러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날리는 동안, 제국은 연금술사들을 동원해 그와 비슷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도 화약을 정제하고자 했다.

     왕국이 건기 때마다 비가 내리는 마법을 사용하는 동안, 제국은 댐과 저수지를 만들고 수로를 갈고 닦으며 물을 모아뒀다 쓰기도 했다.

     왕국이 다리가 잘린 사람이 있으면 냅다 힐링 마법으로 다리를 다시 이는 동안, 제국은 바늘을 꿰매고 약을 바르며 어떻게든 상처가 곪지 않게 하며 잘 만든 의족으로 다리 대신 사용하고는 했다.

     ‘참 더럽게 축복과 기적만 믿고 지낸 나라야.’

     그 축복이 사라진 이상.

     그 기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이상.

     드래곤이 남겨준 축복과도 같은 마법이 인간 스스로 개발하고 빚어낸 마도공학에 추월당하는 순간.

     그때가 바로, 제국이 진정으로 왕국을 넘어서는 순간이겠지.

     ‘사실 이미 넘어선 느낌이긴 해.’

     저기.

     왕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왕국이 마법으로 드레이크나 그리핀을 사역하는 동안, 제국은 그들에 상응하는 비행 전력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

     그러고 보니.

     “길라루스 경.”

     “가, 갑자기 뭐냐?”

     이 남자.

     기억났다.

     “혹시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협곡에 있는 관문의 상태를 한 번 점검해주시겠습니까?”

     “혀, 협곡?”

     “예. 사실은 승강기에 관하여, 한 가지 조언을 받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 뭐,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이 몸의 뛰어난 지식으로 알려주도록 하지.”

     제국에 기술을 유출한 매국노이자, 희대의 발명가.

     제국이 왕국이 가진 용기사단을 압살할 수 있는 전력을 확보하게 만든 배경-

     ‘풍석(風石)’의 개발자 중 한 명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정오 연재 미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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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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