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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늦은 밤까지 왕도에는 불이 꺼지지 않았다.

       병사들이 몰려다니며 주변을 수색하길 멈추지 않았으며, 이름 있는 기사단조차 기꺼이 수색을 돕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드물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왕실 학술원을 덮친 마물 테러.

         

       금일 발생한 테러였고, 학술원에 자식들을 보낸 귀족들이 분노를 금치 못한 상황인 것이다.

       또한 이는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감히 학술원을, 대귀족들이 모인 왕도를 침공할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왕가의 명예와 팬드래건 자체에 대한 모독이었으며, 팬드래건의 깃발에 모여든 푸른 핏줄들에 대한 도발일지니.

       만약 이 사실이 주변국에 알려진다면 왕국의 이름은 땅에 떨어질 것이고, 그 전에 반드시 범인을 색출해야만 하였다.

         

       “샅샅이 뒤져라, 샅샅이!”

       “수상한 자는 모두 잡아둬라! 특히 마법사들을 주의해라!”

       “반항하는 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사살해도 좋다!”

         

       과격한 명령이 떨어졌고, 병력은 정말 미치도록 수상한 장소를 이 잡듯이 뒤졌다.

         

       특히 왕도의 치외법권 기생나락.

         

       무수한 범죄자들이 모인 소굴이며, 평소엔 건드려봤자 손해만 남는 말벌집과 같은 곳이었으나, 지금만큼은 말벌집도 건드리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도, 도망쳐!”

       “나, 난 아무런 잘못이 없소! 정말이란 말이요!”

       “네 뒤에 감춘 시체나 좀 치우고 거짓말을 하란 말이다, 이 놀보다 못한 새끼야!”

       “끄아아악!!”

         

       때 아닌 범죄자들의 소탕이 일어나는 상황.

       나름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아닐까 싶었다.

         

       아마 한동안 왕도는 시끌벅적할 예정일 터였고, 범죄자들은 바닥만 보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이러한 무차별적인 수색과 사단 규모의 병력이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 찾았습니다! 소환에 쓰인 제물들입니다!”

         

       “…미친놈들, 대체 뭐 하는 새끼들이야?”

         

       “흔적이 끊겼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건지, 원-.”

         

       …아쉽게도 [범인]을 잡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대신 찾은 것은 소환 마법의 흔적.

         

       매개체.

       놀 무리를 비롯하여 고대의 마물을 소환했을 때 사용했을 막대한 양의 제물을 찾아낸 것이다.

         

       허나 범인들은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으며, 증거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유?

         

       다름 아닌.

         

       “…다 죽였군.”

         

       건물에는 수만 개가 넘는 인골(人骨)만이 놓여 있었고, 증거라고 할 것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막대한 숫자의 인골들이 테러범에 의해 희생된 ‘산제물’임을 확신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미, 미쳤습니다. 이 유골들, 하나같이 어제만 해도 살아있던 이들이었을 겁니다.”

       “뭐?”

       “살아있던 자들의 고통과 욕망, 혹은 분노와 생명력 등을 기반으로 소환을 실행한 겁니다. 이곳은 아마 무수한 원념(怨念)을 생성시키기 위한 ‘인신공양 공장’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귀왕 같은 마물을 소환하기 위해서라면 못해도 3년은 이곳에서 원념을 키웠을 확률이 높습니다. …어떤 자들인지 모르겠으나, 진정 끔찍한 자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어색한 적막이 감돌았다.

       자문 마법사의 설명대로라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왕도 한복판에서 수만 명이 넘는 이들을 건물 하나에 집어넣은 뒤, 소환을 위한 에너지를 착실하게 모았다는 얘기다.

       그것도 3년이나.

         

       “여럿 단두대로 올라가겠군….”

         

       3년이나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음식의 유통이 있었을 것이고, 저들의 존재를 들키기 않기 위해 움직인 다량의 인력이 있었을 터.

         

       한데도 이를 몰랐다?

         

       이건 뭐 대놓고 왕도를 농락한 격이며, 왕도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단락이다.

         

       아마 이 구역을 순찰했을 병사들은 해임으로 끝나지 않고 고문실로 끌려간 후, 단두대까지 직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누군가는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으니.

         

       어느 선까지 책임을 져야 할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오한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치가 떨릴 정도로 끔찍했다.

       대체 얼마나 미쳐야지 이런 일을 실행할 수 있는 걸까?

       이는 단순히 테러범이 아니라, 거대한 광기를 머금은 조직일 수도 있는 바.

         

       꿀꺽….

         

       기사는 앞으로 왕도에 어떤 피바람이 불지 모르겠다며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무능한 것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군.”

         

       한편, 이 모든 걸 여유롭게 관람하던 어느 고위 사제는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어찌 저리도 한심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대신 죄업을 짊어지었거늘, 그조차 모른단 말인가? 우매하도다, 우매해.”

       “…오히려 그런 걸 아는 게 더 신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장?”

         

       또 다른 사제는 상사의 발언이 어이가 없는지 타박하듯 말했다.

         

       “거죽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는데, 뼈만 남은 이들이 어떻게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알까 싶은 의문과 함께. 저도 그런 재주가 있으면 좋겠네요, 하하.”

       “이런 경박한 놈! 신실함만 있다면 그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거다!”

       “불가능할 것 같은데….”

         

       태평한 대화를 나누는 두 명의 사제였고, 그들은 건물 옥상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했다.

       마치 저토록 많은 병력이 있을지언정, 자기들은 절대 들킬 일이 없다는 것처럼.

         

       “뭐, 그래도 얼마 뒤면 알게 되겠지요. 감옥의 죄수들이 대량으로 행방불명 됐다는 걸. …그 정도도 모른다면 우리가 너무 왕국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요.”

       “그 정도로 무능하진 않을 거다. 그랬더라면 진즉 무너졌었겠지.”

       “으음, 정말 그러려나?”

         

       하위 사제는 언뜻 동의하지 않는 듯했다.

       불신이 가득한 표정.

       평소라면 호통을 질렀을 고위 사제였지만, 그는 부하의 얼굴을 잠시 본 뒤 침묵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침묵이 흐른 뒤.

         

       “대장. 결국 우린 오늘 실패했습니다.”

       “으음.”

       “아마 질책이 만만치 않겠지요.”

       “그렇겠지.”

       “하지만, 이토록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구원’에 닿을 날이 오겠지요?”

       “당연하다마다.”

       “그래요? 그럼 됐습니다, 흐흐!”

         

       하위 사제는 저가 아는 대장이 거짓말을 내뱉지 않는 위인임을 안다.

       그러니 그의 말을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

       하니.

         

       “그럼 됐습니다. 전 대장만 믿겠습니다.”

         

       사제는 시원한 미소를 머금으며 제 뜻을 전했고, 다음 순간.

         

       파지직-!

         

       공간이 일그러졌다.

         

       하위 사제가 쳐놓은 ‘신비’가 파괴된 것이었다.

         

       그리고 신비를 외부에서 파괴하고 들어온 침입자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후두두둑!

         

       은밀한 이동술을 선보이며 나타난 수십의 그림자들.

         

       화아악!

         

       그들이 내뿜는 기세가 아지랑이를 피워내었고, 아지랑이들이 겹쳐지며 쇠창살을 형성했으니.

         

       유형화한 기세.

         

       오십이 넘는 인원 전부가 영지의 챔피언 소리를 들은 강자들임을 증명했다.

         

       웬만한 대귀족이 거느리는 기사단에서도 충분히 단장 부단장을 역임할 실력자들이 무려 오십이었고, 변경백 소리 듣는 영지조차 반나절이면 몰살하고 남을 전력이었다.

         

       대체 왕국 내에서 누가 이만한 실력자들을 대거 키워낼 수 있는가 싶지만, 왕국에는 무려 이만한 실력자들을 키워낼 세력이 두 곳이나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의 세력을 이끄는 자가 친히 모습을 드러냈으니.

         

         

       “─19년, 자그마치 19년 동안 너희를 찾아다녔다.”

         

         

       모습을 드러내는 이는 어느 잘생긴 청년이었다.

         

       젊다.

       허나 겉만 젊어 보일 뿐, 그의 나이는 세수 육십을 넘긴 지 오래인 바.

       고귀한 용의 핏줄을 계승하며, 그 젊음과 기백이 여전히 노쇠하지 않고, 60년 평생 검을 놓아본 적이 없는 검사.

         

       동시에 용의 핏줄을 거부하고, 신성한 호수의 수호자를 계승한 자이기도 했으니.

         

       “-블레이크 공작.”

         

       고위 사제가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읊조렸다.

         

       블레이크 비비안 드 갈라하드.

         

       당대 갈라하드 가문의 수장이며, 역대 갈라하드 공작 중 가장 우수한 ‘적합자’

         

       왕국 삼대권력의 일각을 책임지는 수장이 친히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수양딸이 위험할 땐 코빼기도 비추지 않더니, 지금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가.”

       “무능한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긴, 그러니 제 여인을 무능하게 잃은 거겠지요.”

         

       허나 두 사제는 그러한 공작이 나타났음에도 코웃음을 칠뿐이었다.

       아니, 비웃고 있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거늘, 공포심이란 게 없나 의심이 들 광경.

         

       우우웅!

         

       그림자들의 기세가 더욱 매섭게 변했다.

       감히 그들의 주인을, 더 나아가 고인이 된 마님을 모독한 그들의 발언은 충성스러운 그림자들의 분노를 들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반대로.

         

       “그래, 난 무능한 놈이겠지.”

         

       공작은 아무런 감정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냉정할 뿐.

         

       “난 내 여인 하나 지키지 못한 무능한 놈이요, 제 딸아이조차 의심하며 시험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무자비한 아비이다. 또한 복수에만 매달리며 언제 미칠지 모르는 ‘복수귀’에 불과하나…!”

         

       꾸드드득!

         

       …다만 표정만 냉랭하였지, 그가 내뿜는 기세는 결코 냉랭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가공할 만한 살의가 건물마저 태우고 녹여버렸다.

         

       “내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진실을 알아내고 말 것이다.”

         

       빠득, 빠드득!

         

       “…….”

       “…커헉.”

         

       조금 전만 해도 도발을 해대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못 하였다.

         

       공작이 내뿜는 화마(火魔)와 같은 압박감은 그들을 짓누르다 못해 살을 찢고 뼈를 부수고 있었으니 말이다.

         

       겨우 기세만으로 보이는 광경이었고, 두 사제는 그제야 실감했다.

         

       상대는….

         

       “……역대 마검의 적합자 중 그 자질이 최고라더니, 거짓이 아니었군.”

         

       역대 최강의 갈라하드란 것을.

         

       우우웅!

         

       공작의 주변에서 보이는 아지랑이는 오십 명이 넘는 인원이 내뿜는 기세를 합한 것보다 강대했고, 그 기세는 계속해서 치솟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공작의 손에는 검이 쥐어져 있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그저 푸른빛이 감돌뿐인 장검.

         

       그러나 이 장검이야말로.

         

       “너희에게 물어볼 것이 참 많다.”

         

       나라를 멸하는 힘을 준다는 마검이었음이다.

         

         

       <마검 랜슬롯(Lancelot)>.

         

         

       호수의 마검이 흉흉한 귀화를 내뿜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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