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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74 – 외로운 아이를 위한 은밀행동>

     

    매일 새벽 2시 22분마다 본관 2층에 올라가서 오크노디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오늘 하루는 능력 밖의 일이라며 포기하고 편히 잘 생각이었던 헤스티아는 굉장한 죄책감을 느꼈다.

    오크노디는 자신과 함께 놀고 싶어서 밤늦게 교관들과 엄중한 경비체계를 뚫고 본관까지 침입했을 텐데, 자신은 그 아이가 새벽 내내 혼자 있게 하다니.

     

    ‘분명 외로웠겠지.’

     

    혼자서 찾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쓸쓸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알지 못한다.

    죽은 것을 알면서도 가족이 돌아오지 않는 집을 혼자 지키는 심정도 괴로웠을진대, 살아있는 것을 알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심정은 또 얼마나 괴로울까.

    버림받았나?

    내가 지겹나?

    재미가 없었나?

    별에 별 생각을 다하며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혼자 웅크려 앉아 그녀를 기다리다가 쓸쓸하게 방으로 돌아가는 오크노디.

    그런 그녀가 벽에다가 말을 걸면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대답하는 심정을 헤스티아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저기, 즈앙.”

    “…날 놀리러 온 거야?”

    “그런 게 아니야.”

     

    헤스티아는 결심했다.

    둘만의 비밀로 하고 싶지만 솔직히 아카데미의 야간경비체계는 너무 엄중하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오크노디는 매일 새벽 2시 22분에 본관 어딘가에 있는 비밀 방에 찾아가.”

    “아카데미에 그딴 비밀 방이 왜 있어? 오크노디는 그걸 어떻게 알았고? 그걸 넌 또 어떻게 알고 알려주는 거야?”

    “오크노디는 옆방이야. 그 아이는 원래부터 아는 게 많았고… 분명 나랑 같이 놀고 싶어서 알려줬던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경비가 너무 심해서 가기가 힘들어.”

    “알아서 어떻게든 해버리지? 나랑은 관계 없잖아.”

    “궁금하지 않아? 오크노디가 거기서 뭘 하고 있을지. 오크노디가 뚫은 경비를 너는 뚫을 수 있을지.”

     

    그러니 길잡이 겸 은신도우미를 구한다.

    즈앙은 상당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건 진짜 오크노디 맞지?”

    “아마도?”

    “후. 영문은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마음에 걸리네. 그 오크노디가 가짜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상대가 그 귀신같은 교수니 속았을 수도 있나…….”

    “귀신같은 교수?”

    “있어. 그런 게. 아무튼 이대로는 나도 찝찝하니까 같이 가줄게. 정확한 위치는?”

    “안 알려줘. 날 버리고 혼자 가버려도 곤란하니까. 새벽 2시에 본관까지 같이 들어가면 그때 알려줄게.”

     

    생긴 건 곰 같은 주제에 의외로 철두철미하네.

    즈앙은 속으로 혀를 찼다.

     

     

    * *

     

     

    -일단 별관 밖 정자에서 만나. 거기까지도 나오지 못한다면 어차피 헛수고니까 그냥 돌아가겠어.

     

    즈앙이 걸었던 조건 때문에 헤스티아는 요동치는 심장과 함께 살금살금 복도를 나왔다.

     

    ‘줄곧 벽 뒤에 고개를 대어서 엿듣고 있었어. 1층 복도의 순찰주기는 1시간이야.’

     

    교관은 1시간마다 1명씩 각층을 순찰한다.

    복도를 나서더라도 끝이 아니다.

    기숙사 중앙계단을 거쳐 출구로 향하는 로비에 한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도 두 명이 야외순찰을 돌고 있고 근처 경비초소에서는 서치라이트가 돌아간다.

    초소 안에 있을 교관과 대기인력은 또 얼마나 될까.

    정말 엄청난 인력이 들어가있다.

    아카데미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 정도 인력도 결코 과하다고 생각할 수 없지만, 그 엄청난 인력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 입장에선 야속하기만 하다.

     

    ‘교관과 불빛을 모두 피해야해.’

     

    교관은 말했었다.

    1학년 애기들한테 아카데미의 새벽은 위험하다고.

    정작 그 애기 입장에선 과보호다.

     

    ‘귀신이라도 나오나?’

     

    살금살금.

    창문으로 기어 나와 포복자세로 수풀에 들어간다.

    기숙사 밖 정자까지는 무려 200m.

    1분당 3m를 전진하는 페이스로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신중함이지만 헤스티아는 이전에 들켰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신중을 기했다.

    그 덕분에 볼 수 있었다.

     

    ‘도적들의 산채에서 침입자를 감지할 때 사용하던 감지마법!’

     

    소동물이 아닌 사람이 지나가면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는 높이에 흐릿한 마나의 빛이 지나간다.

    오크노디가 보거든 “레이저 빔 보안 시스템!”이라며 눈을 빛낼 보안체계다.

    아마도 지난번에 창문을 넘어서 겁도 없이 걸어갔을 때 경비초소의 불빛에 포착되고 교관에게 걸렸던 이유가 저 빛에 몸이 닿았기 때문이리라.

     

    ‘힘들어 죽겠네.’

     

    차라리 몸으로 때려 부수는 일이 낫지.

    덩치도 큰 그녀는 레이저에 걸리지 않으려면 특히나 더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하필이면 진행방향에 유독 높이가 낮은 감지마법의 빛이 나타났다.

    돌아가려면 얼마나 헤매야 할지 알 수 없다.

    이 빛은 어둠 속에서 주의를 기울이면 눈에는 보이지만 10m만 떨어져도 육안으로는 포착할 수 없을 정도로 광도가 낮다.

    다른 곳으로 돌아가도 같은 높이의 빛이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냥 여기서 이걸 뚫고 지나가자는 결심이 굳었다.

     

    꽈악.

     

    엉덩이와 가슴에 힘을 꽉 주자 둔근과 대흉근이 바짝 조여졌다.

    덕분에 작은 동작으로 조심히 지나가면 어떻게든 통과는 할 수 있었다.

    한참 개고생을 해가며 통과하던 그때, 멀리서 창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어떤 녀석이 저렇게 시끄럽게 창문을 열어?

    교관의 주목을 받을까봐 꼼짝 않고 엎드린 헤스티아.

    그녀의 귓가에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깃발을 더 구하려면 오늘밤에 승부를 봐야한다냐! 수녀도 얼른 나오라냐!”

    “벽력성천신교는 야음을 틈타 살금살금 움직이는 교활한 짓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국 놈들보다 깃발을 덜 모았다며 얕보이고 싶은 것이다냐? 벽력성천신교의 신님도 체면을 상하게 한 신도를 무능하다고 욕할 것이다냐!”

     

    어둠 속에서도 멀리 들리는 특유의 냐냐체.

    A그룹 상급반의 일원.

    수인격투가 제냐의 목소리였다.

    고양이는 야행성 아니랄까봐 목소리만 들어도 아주 기운차다는 느낌이 든다.

     

    “…벽력성천신교의 수녀 되는 자, 성광의 마데우스님에게 누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야음을 틈타 쥐새끼처럼 살금살금 움직이는 죄를 부디 용서하소서.”

     

    벽력성천신교의 수녀 니세.

    수인격투가 제냐와 같은 조로 깃발을 모으는 상급반 학생 중 하나다.

    목요일 3교시.

    교장의 수업시간 전에 미리 새벽에 깃발을 모으려는 용기는 높이 평가하지만 타이밍이 나빴다.

    벌써 저 멀리 따분하게 하품을 하며 시간을 때우던 교관의 기척이 느껴졌다.

     

    팟! 팟!

     

    겁도 없이 큰소리를 내던 부주의한 야간행동자들에게 날아드는 서치라이트 불빛.

     

    “너희들, 얌전히 들어가서 잠이나 자. 처음이니까 경고로 끝내지만 또 걸리면 다음부터는 포인트로 벌금을 내거나 체벌실에…….”

    “양쪽으로 도망간다냐!”

    “마데우스님이시여. 부디 제게 교관의 발보다 빠른 발을 허락하소서.”

     

    고양이수인 특유의 민첩한 기동력과 신성술에 의한 신체능력증진 효과를 발휘하는 수녀.

    상급반 학생들의 면전에서 도망치기라는 황당한 횡포에 교관이 호각을 불었다.

     

    “저년들 잡아!”

    “도망자? 잡으면 명당 100포인트가 꽁으로 들어오는 도망자가 있다고?”

    “게 서거라 포인트야!”

     

    기숙사와 경비초소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야간순찰과 당직대기를 하던 교관들.

     

    ‘저 망할 고양이년!’

     

    헤스티아는 억울했다.

    30분의 포복이 갑자기 나타난 민폐고양이년 때문에 헛수고가 될지도 모른다니.

    저년 때문에 나까지 걸리면 정말 용서 못해!

     

     

    * *

     

     

    “밧줄 꽉 조여.”

    “냐아아아! 꼬리가 아프다냐!”

    “시끄러. 걸렸으면 순순히 잡히기나 할 것이지, 어딜 건방지게 도망을 쳐?”

    “히야아아!”

     

    밧줄에 꽁꽁 묶인 채 교관이 꼬리를 잡아당길 때마다 몸을 부르르 떨며 끌려가는 제냐.

    목에 올가미가 씌워진 채로 절그럭거리는 갑옷소리를 내는 벽력성천신교의 수녀 니세가 제냐와 교관의 뒤를 이었다.

     

    “꼴에 수녀라고 고개도 들지 못하다니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자각은 있구나.”

    “이 도둑고양이 녀석. 너도 저렇게 순순히 끌려가란 말이야. 에잇, 에잇!”

    “헤으으으응!”

    “근데 이 녀석, 허리 너무 떨지 않아?”

    “뭔가 표정이… 야하지 않아?”

     

    성희롱으로 고발이나 당해라.

    속으로 교관들을 흉보던 헤스티아는 문득 바닥만 보며 끌려가던 니세가 이쪽을 돌아봤음을 깨달았다.

    조마조마.

    떨리는 심정을 드러내듯이 눈동자가 정신없이 좌우로 흔들렸다.

    치사하게 이르는 거 아니지?

     

    “교관님.”

    “뭐냐, 수녀.”

    “제냐의 꼬리는 성감대입니다. 꼬리를 그렇게 쥐고 잡아당기는 행동은 생식기를 자극하는 것과 같습니다.”

    “뭐어?!”

    “교관님께서는 혹시 지위를 이용해 학생을 희롱하려는 겁니까?”

    “아, 아니야. 반응이 재밌고 표정이 조금 야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불신 가득한 표정의 교관들.

    수녀 니세는 조용한 목소리로 딜을 걸었다.

     

    “저희를 못 본 체 돌려보내주신다면 교관 여럿이서 변방출신 수인여학생을 성희롱했다는 사실은 이르지 않겠습니다.”

    “와나, 아니, 하.”

    “아이씨.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야.”

    “텄네, 텄어.”

     

    교관들이 우거지상을 지으며 두 사람을 보내줬다.

    니세는 흘끗 헤스티아를 한 번 돌아보고는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당신, 빚 하나 졌어요.

     

    머릿속에 직빵으로 들리는 정숙한 수녀의 목소리.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두 학생이 고개를 푹 숙이며 기숙사 정문으로 돌아갔다.

     

    ‘휴우…. 진짜 걸리는 줄 알았네.’

    “왜 이렇게 늦었어?”

    “중간에 다른 학생들 때문에 교관들이 밖에서 서성거렸거든.”

    “본관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해. 빨리 따라와.”

     

    정자에서 합류한 즈앙.

    본관까지는 또 어느 세월에 갈까.

    헤스티아는 문득 이 난리 통에도 오크노디의 얼굴조차 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역시.’

     

    귀족가가 키운 암살자.

    어설픈 길고양이랑은 차원이 달라.

    소문을 떠올리고 스스로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일상?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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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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