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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화르르륵-

       

       고요한 숲을 집어삼키던 불꽃이 점점 바람결에 사라져갔다.

       손짓 한 번에 수풀과 나무를 태우던 불꽃이 몸으로 빨려들어 온다.

       

       몸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불꽃이 육체에 흡수되니 빠져나갔던 내기도 어느 정도는 채워지는 게 느껴졌다.

       

       “…후우.”

       

       내기의 갈무리를 끝내고 깊은 호흡을 뱉으니 입가에서 열기가 빠져나오는게 보인다. 

       얼마나 뽑아 썼지? 조금 과하게 쓴 거 같은데.

       

       [알긴 아는구나.]

       

       바로 뭐라고 한 마디 뱉는 신 노야는 조금 지친 목소리였다.

       

       [뭐라도 부술 듯 날뛰는 놈을 진정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겠느냐.]

       “많이 위험했습니까?”

       [거기서 한치만 더 뽑아 썼어도 못 막았을 게야.]

       “아슬아슬했다는 말이네요.”

       

       주위 불타 죽은 주검들을 보니 어지간히 뽑아 썼음을 알 수 있었다. 

       조절을 거의 하지 않은 탓에 멀쩡한 시체가 하나도 없었다.

       

       상쾌한 내음만 가득하던 숲 주변엔 자욱한 탄내로 가득했다.

       흐트러진 옷을 조심스럽게 정돈하며 생각했다.

       

       ‘처음인가.’

       

       회귀 후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다. 

       참 묘한 감각이었다.

       

       쓸데없이 감성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되돌아왔으니 살상을 하지 않겠다! 같은 분에 겨운 생각 따윈 해본 적 없으니 말이다.

       

       흑야궁의 잡졸들이었고, 사파였으며, 동생을 노리던 놈들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떨리는 거지?’

       

       손을 가슴에 대보니 미세하게 덜덜 떨리는 게 느껴진다.

       정신과 육체와의 괴리인가?

       

       ‘쓸데없는 생각이야.’

       

       전생에도 그렇고, 어차피 조금 지나면 괜찮아진다.

       되려 어서 무뎌져야 했다.

       

       [놓친 놈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신 노야의 말에 대장격으로 보이던 놈이 달아난 방향을 바라봤다.

       처음엔 붙잡아 죽일 생각을 했지만, 놈의 몸에 담긴 얕은 마기를 보고 생각을 달리했다.

       

       정보를 위해 고문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이다.

       얕고 흐릿하지만 분명히 놈이 지니고 있는 것은 마기였다.

       

       ‘흑야궁 놈들이 어떻게 마기를 가지고 있는 거지?’

       

       벌써부터 마교와의 접점이 있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마교, 천마가 나타나기까진 아직 몇 년의 시간이 남아있는 상태다.

       

       ‘마기가 애초에 맞았을까.’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흐릿했음에 있었고, 마기라 하기엔 뭔가 과하게 얕아 보이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 놓친 게 뼈 아팠다.

       

       “생각보다 발이 빠른 놈이었어요.”

       

       팔이 아니라 다리를 태웠어야 했다. 

       실전이 너무 오랜만이라 머리가 잘 안 돌아간 탓이겠지.

       

       작은 실수에도 목이 날아가는 걸 잘 알고 있음에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평화에 젖어 너무 나약해져 있었다.

       

       “…이건 또 언제 치우지?”

       

       주위에 퍼져있는 주검을 보니 머리가 아파졌다. 

       

       경지가 높았다면 싹 태워 먼지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특히 저 구석에서 목이 꺾여 죽어있는 놈을 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내장부터 태워죽였어야 했는데 놈에게 있어 고통 없는 죽음이란 너무 친절한 죽음이었다.

       

       지 허리쯤 겨우 넘을 것 같은 아이보고 역겨운 생각을 품은 것도.

       

       그게 하필 구령화 였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개똥 취급 하는 것 같더니 동생을 아끼긴 하는구나.]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아니긴, 그 뭣 같은 표정이나 좀 숨기고 말하거라.]

       

       우선 이 부분은 매화선에게 직접 얘기해야 할 부분이었다.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인이기 이전에 도인이기에 매화선이 살생에 관한 부분을 어찌 받아들일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런 부분에선 신 노야의 무덤덤한 말들이 특이하게 느껴졌다.

       

       [죽일 놈을 죽였을 뿐이니라, 그것에 관해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구나.]

       

       무인이기 이전에 도인.

       도인이기 이전에 무인.

       

       혈마대전같은 전쟁을 직접 겪어 봤을 신 노야라 그런지, 이런 부분에선 무덤덤한 것이 느껴졌다.

       반대로 비교적 평화로운 지금 시대상에선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뿐이다.

       

       [네놈에게 애초에 비밀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다. 방금은 좀 놀랍기는 했다만.]

       

       신 노야의 말에 쓰게 웃었다. 말 속에서 나름의 배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흑야궁의 출몰과 마기….

       

       “어째서 놈들이 이 근방을 서성이고 있었을까.”

       

       주 목적이 구령화는 아닌 듯싶은데….

       예전에 신현과 영풍이 화산의 무인들에 실종을 수색하고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설마 이 일과 관련이 있는 걸까?

       

       ‘귀찮은 일에 엮일 것 같은 기분이야.’

       

       우선 열기를 털어낸 뒤, 주위 널브러진 주검을 한곳에 모아 치워놓았다.

       함부로 멀리 치웠다가 문제가 생길 게 뻔했다.

       이는 돌아가서 매화선과 얘기를 해봐야 하는 부분이었다.

       

       우선 대충 정리를 하고, 오두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까 놈들을 보니 기막에 막혀 들어갈 수 없는 듯 보였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수 있었다.

       

       뭔가 막는 듯한 감각 같은 것도 없이,  매끄럽게 평소처럼 지나가진다.

       

       무슨 차이가 있는거지?

       영문 모를 의문은 자연스럽게 신 노야의 말에 해결됐다.

       

       [몸 안에 화산파의 내기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귀물의 기운을 먹었던 탓이라는 겁니까 설마?’

       [내가 볼 때는 그런 느낌이 맞는 듯싶구나.]

       

       진법도 아닌 기막으로 그런 기능을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내 속에서 바닥까지 추락했던 매화선의 위엄이 다시 올라가는 듯싶었다.

       

       오두막에 점점 다가갈수록 코끝에 맛있는 향기가 스친다.

       식사 준비에 한창인 걸까.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두막 근처로 다가서니 밖에서 뭔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구령화가 보였다.

       

       “뭐하냐?”

       

       툭하고 묻는 말에 구령화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구겨지는 표정.

       

       “뭐하러 또 왔어?”

       “장문인께서 뭐 좀 가져다 달라고 하시더라.”

       “굳이 너한테?”

       “굳이 나한테.”

       

       구령화가 보기에도 장문인의 심부름을 내가 하고 있는 게 신기한가 보다.

       

       맞아, 나도 신기해. 

       약과 하나에 이렇게 팔려 올 수 있다는 게 말이야.

       

       뒤편에서 열심히 뭔가 썰고 있는 제갈혁이 보인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꾸벅이는 것이 아마 인사를 한 게 아닌가 싶었다.

       

       “…쟨 또 뭐해?”

       “보면 몰라? 요리하잖아.”

       “쟤가 요리를 해?”

       

       라고 묻기엔 양파를 얇게 썰어내는 몸놀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생각보다 잘해.”

       

       그렇게 말하는 구령화는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해 보였다.

       왜 저러는 거래?

       

       “신의께서는 어디 계셔.”

       “집안에서…스승님 진찰 중이셔.”

       “알겠다.”

       

       구령화의 대답을 듣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구령화가 갑자기 소매를 꽉 잡는다.

       

       “왜 그래?”

       “오…. 너 손 왜 그래?”

       

       손?

       

       무슨 말인지 몰라 살펴보니 손등에 얇게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대부분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좀 스친 게 있었나?

       

       그래봐야 이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구령화의 얼굴을 보다 생각했다.

       만일 내가 이곳에 안 나타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별일이 있진 않았을 것이다.

       그놈들 수준에선 기막을 부수거나 어찌할 수 없는 상태 같았으니.

       

       나는 그저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다. 

       좁은 마음과 썩어버린 성정 탓에 화풀이로 태워 죽였다.

       

       그 편이 나으리라.

       구령화가 잡고 있는 소매를 빼며 말했다.

       

       “조금 긁혔어.”

       

       내 대답에 구령화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나 뭐라 추궁할 건덕지가 있을리 없었다.

       

       “걱정 말고 하던 거나 해.”

       “누가 걱정을 했다고…!”

       

       구령화의 외침은 끝까지 듣지 않고 오두막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냐.

       

       신의 특유의 마른 목소리가 들린다.

       

       “저번에 뵈었던 구양천이라고 합니다.”

       -누…아.

       

       짧은 외마디와 함께 오두막의 문이 열린다.

       신의는 저번과 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다.

       

       날 보자마자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게 반기는 느낌은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매화선께서 이것 좀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매화선이 쥐여주었던 서찰을 꺼내니 신의의 표정이 점점 더 일그러진다.

       

       마치 부글부글 끓는 물을 보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직접 오면 됐던 것을, 이걸 보기 무서워서 날 시킨 게 아니었을까?

       

       ‘…진짜 그럴 수도 있어.’

       

       차마 내게 화를 낼 수는 없던 탓인지 신의는 쯧!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끝으로 서찰을 받아 품에 넣었다.

       

       “도화 이 개 같은 놈, 분명 지옥에 떨어질 것이야.”

       “…”

       

       도가의 장문인 보고 지옥이라니….

       아무튼 서찰은 제대로 전달했으니 뒤돌아서 돌아가려 했다.

       

       “어딜 가느냐.”

       “예?”

       

       놀랍게도 신의가 날 잡아 세웠다. 

       얼른 내쫓아도 모자랄 얼굴인데 날 왜?

       

       “손등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그냥 가려고?”

       

       신의의 말에 구령화가 언급한 상처가 떠올랐다.

       이것 때문에 붙잡은 건가?

       

       “…아니 이건, 조금 스친 거라…”

       “스치긴 개뿔이, 의원 앞에서 거짓부렁을 할 셈이더냐.”

       “아뇨, 정말 침 바르면 낫는 상처라 괜찮습니다.”

       “상처에 침을 바르는 미친놈이 어딨느냐! 이래서 뇌까지 무공으로 차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든다니까….”

       “잠,잠깐…!”

       “거, 다 늙은 노인네 힘쓰게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따라오너라.”

       

       신의의 말대로 날 붙잡고 있는 손을 뿌리쳤다가 정말로 부러질까 함부로 힘을 쓸 수 없었다.

       결국 그대로 뒷목을 잡혀 오두막으로 끌려 들어갔다.

       

       

       

       

       

       ******************

       

       

       

       

       

       흑야궁 섬서지부 지부장의 방.

       

       쿵-! 쿵-!

       

       여기저기 낭자한 핏물 틈에서 배총이 이마를 바닥에 연속으로 찧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의자에 앉은 야혈적은 턱을 괴고 배총을 바라볼 뿐이다.

       

       함께 보냈던 다섯의 수하가 모조리 죽고, 돌아온 배총은 왼팔을 거의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야혈적이 배총에게 물었다.

       

       “그래서, 누구라고?”

       “…모르겠습니다…처음 보는 놈이었습니다.”

       “처음 봐? 오, 그렇구나.”

       

       꾸드드득.

       

       투두둑둑!

       

       “크훕!”

       

       야혈적의 말과 함께 사방으로 퍼지는 기운에 배총은 핏물을 뱉어냈고 동굴이 울려 흙먼지가 떨어진다.

       

       “누군지도 모르는 새끼한테 다 뒤지고 너만 살아왔다는 거네?”

       “죄송…죄송합….”

       “씨이발! 그걸 말이라고 해!?”

       

       야혈적의 대도가 순식간에 휘둘러져 배총의 팔을 잘라버렸다.

       

       “끄아아아아!”

       “야이 개새끼야, 내가 그러라고 애들이랑 널 같이 보낸 줄 알아?”

       “끄으으으윽…!”

       “그나마 좀 똑똑해 보이는 새끼 넣어가면 일이라도 잘할 줄 알았더니,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실망을 할까 안 할까?”

       “…죄…송합니다…지부장님….”

       

       퉤!

       

       야혈적이 배총옆으로 침을 뱉는다. 

       안 그래도 이쪽 지부는 사람도 없어 죽겠는데,수색하라고 딸려 보낸 놈들 대다수가 죽어버리다니.

       그것도 이름 모를 애새끼한테?

       

       배총의 말로는 화공을 쓰는 놈이라 했다. 

       화공을 쓰는 무인이 흔한 것도 아니고 야혈적이 알기에 불을 뿜어내기까지 한참의 수련이 필요하다 알고 있었는데.

       

       어디서 그런 괴물 같은 놈이 떨어진 거지?

       하물며 흑야궁 소속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는 점에서 심히 걸리는 부분이었다.

       야혈적은 잘려나간 어깨를 붙잡고 덜덜 떠는 배총에게 말했다.

       

       “배총아.”

       “예….”

       “살고 싶지?”

       “…예…제발,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지부장님.”

       “일부러 다친 팔을 잘랐어, 나름 배려였는데 괜찮지?”

       

       배총은 멀리 떨어진 잘려나간 자신의 팔이 눈에 들어온다.

       덜덜 떨리는 분노가 속에서 치밀었으나, 배총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억지로 미소 짓는 것뿐이었다.

       

       “그,럼요…! 지부장님의 하늘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래그래.”

       

       야혈적은 그렇게 말하며 배총의 뺨을 툭툭 두들겼다.

       마음 같아선 목을 잘라 벽에 걸어버리고 싶지만, 지금 지부에서 배총 만큼 머리를 쓸 줄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럼 두 다리를 잘라서 말만 할 수 있게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나름 일류 무인 수준은 되는 놈인지라 함부로 그럴 수도 없었다.

       

       “며칠을 주면 우리 배총이가 정보를 물어올 수 있을까?”

       야혈적의 말에 배총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못해도 사흘 안에는 놈에 대한 정보를 알아오겠습니다.”

       “사흘이라…. 그 안에 신의에 대한 것도 당연히 들어있겠지?”

       “…예! 제가 전부 알아오겠습니다.”

       “기세가 마음에 드네, 잘하자 우리?” 

       

       몸을 일으킨 야혈적이 뒤편으로 돌아가더니 가죽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배총에게 휙 던졌다.

       엄지 손가락만한 크기를 가진 내단이었다.

       

       “딱 사흘 치야.”

       

       그걸 보고 배총이 몸을 떨었다.

       본궁 소속이 아닌 이상 흑야궁의 무인들은 모두 몸속에 고(錮)를 먹은 상태다.

       

       몸 안에 꿈틀거리는 고는 정해진 기간 안에 약을 먹지 않으면 터질 것이다. 그리고 그 탓에 내장이 녹아내려 죽게되겠지.

       

       ‘…시발.’

       

       배총이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되면 정말 어떻게든 사흘 안에 정보를 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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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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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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