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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하스펠트 교수가 북방 원정에서 행방불명됐다.

         

        북방군이 그 소식을 알아차렸을 땐 모든 것이 늦어있었다. 하스펠트가 이끌던 연대 규모의 군사는 하루 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디 그뿐인가. 그 일이 있었던 직후 제국군은 국토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흑사병 앞에서 맥을 못 추고 후퇴해야만 했다.

         

        초인이라 할지라도 병마 앞에선 어쩌지 못한다. 지난 한 달간 전선에서는 페스트로 사망한 병사의 수가 마수에게 깔려 죽은 병사 수의 몇 배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던 건 수도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시적으로나마 3차 방어선을 뚫어냈던 제국 군대의 사기는 극도록 저하. 패퇴에 패퇴를 거듭한 끝에 전선은 원위치로 돌아왔다. 모든 게 마수들 뜻대로 됨 셈이다.

         

        “뿐만 아니지. 전략급 마도사를 수백이나 잃었어. 모두 최정예라고 들었는데.”

         

        전략급 마도사는 재앙급 마수를 쓰러뜨릴 자질을 갖춘 이들을 뜻한다. 산업계로 따진다면 박사급 인력이다.

         

        그만한 능력을 지닌 인재들 수백을 한 번에 잃었다?

         

        치명타였다. 

         

        이대로라면 국방이 위험하다. 겨우 흑사병이 끝났는데, 겉에서부터 녀석들이 치고 들어온다는 불안감이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된다면 아카데미 수업도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울 수 있었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헤를라인 선생님에게 물었다.

         

        “하스펠트 교수님이 실종되셨다는 거, 선생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나요?”

         

        헤를라인은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상태였다.

         

        “나도 일주일 전에 알았어.”

         

        어디선가 들리는 한숨 소리.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입에서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동안 황실에서 보도 제한을 걸었나 보네요.”

        “그래, 괘씸하게도.”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헤를라인 선생님이 누굴 욕한 건지는 안다. 그녀는 현 황실에 불만이 많은 기색이었다.

         

        황실 상대로 괘씸하다니. 자칫하면 옥체를 욕한 죄로 끌려갈 법한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에 모인 그 어느 누구도 헤를라인의 말에 주의를 주지 않았다.

         

        “에테르, 너에게는 미리 말해 둘게. 이번 여름 방학엔 나도 북방 전선에 가 있을 거야.”

         

        헤를라인의 미세한 실눈 사이로 흔들리고 있는 동공이 보인다. 안면 근육도 뻣뻣하고, 목소리고 평소보다 가늘게 떨린다. 불규칙한 호흡이 이따금씩 공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하스펠트 교수가 실종되었다고 전해 들은 시점. 그리고 흑사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

         

        이 두 시기를 비교하면 하스펠트 교수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한 줌의 재만도 못했다.

         

        더구나 전선은 북쪽에 위치한다. 마수가 드글거리는 한기의 땅.

         

        풀 한 포기 나지 않아 보릿고개라는 개념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황무지.

         

        “선생님.”

        “걱정 안 해도 돼.”

         

        아마 헤를라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가 실종됐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딱 방학 동안에만 다녀올 테니까.”

         

        그럼에도 이 사람은 미약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비록 하스펠트 교수와 좋지 못한 연을 가진 나였지만 은사 앞에서 냉철할 감상을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 잠깐 사이에 찻잔이 비워졌다. 환기도 안 되는 이곳에선 마력초도 물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찻잔 바닥에 깔려 있는 유자를 하나 건져내 잘근잘근 씹어댔다. 씁쓸하고도 달큼한 향이 비강을 타고 올라갔다가 날숨과 함께 튀어나왔다.

         

        “그래, 이 이야기만 하려고 널 부른 건 아니지. 정말 중요한 건 이 다음이야.”

         

        헤를라인이 그리 말할 때쯤 나도 한 가지를 깨달았다.

         

        “3차 저지선을 어떻게 돌파한 거죠?”

        “플레어야. 네가 개발한 플레어를 클라이스가 며칠 사이에 대량 생산해냈어.”

         

        잊고 있었다. 하스펠트는 화계마도 스크롤 제작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인물이라는 걸.

         

        노예 시절의 기억이 뇌를 후벼온다. 이거 언제까지 수백 개 짜 오세요, 저건 또 언제까지 빨리 해 오세요. 이 쉬운 걸 금방금방 못 하나요? 떠올리기만 해도 죽을 맛이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전쟁에서 3차 저지선을 뚫었다는 건 실로 지대한 공적이었다.

         

        “지형적 불리함을 이겨내고 잠들어 있는 마왕의 코앞까지 도달했다는 건 고무할 만한 일이었어.”

        “그래도 문제가 있습니다. 마수도 그 공세를 기점으로 우리 제국에게 본격적으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죠. 그들이 이번에 비대칭적 전략을 준비한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흑사병 말인가요?”

         

        내 물음에 한 귀족이 연이어 대답했다.

         

        “정확하게 짚고 있네요. 이번 흑사병은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결과 통상 전염병이 퍼져나가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었죠. 이게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입니다.”

         

        그래. 다른 게 뭐가 있겠는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건 절멸급 마수의 소행이다.

         

        나야 그 까마귀 가면을 직접 봐서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들도 눈치를 챘던 모양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그래도 배우신 분들인데 이 정도도 추론해내지 못한다면 제국은 오래 전에 망하고도 남았다.

         

        그때 중후한 목소리가 원탁 건너편으로부터 들려왔다.

         

        “작년 여름부터 시작됐던 뒷산의 아이언 드레이크 범람 사건, 그리고 올해 입학식 때 있었던 축조진 사건에 이어 이번 전염병 사태도 하나의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저는 그렇게 사료됩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세련된 디자인의 지팡이를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마드를 한 백발 남성이었다. 나이는 장년층 정도.

         

        옥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배색 조합이었다.

         

        “아르가나 공작님!”

         

        이 사람, 샤디엘 선도부장과 똑 닮았다. 아르가나 공작 가문의 가주임이 틀림없었다.

         

        “안 그래도 아카데미 근처에서 사건이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2황자를 통학시키고 있는 황제께서는 지금까지 별다른 이야기를 내놓지 않고 계십니다. 여러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에서 난 내가 뭔가 좆됐다는 걸 깨달았다.

         

        오면 안 되는 곳에 와 버린 건 아닐까. 이상한 일에 엮인 건 아닐까.

         

        그야 그렇잖아. 아르가나 공작에 로베스피에르 이사장, 거기에 백작과 자작을 포함한 중견급 귀족까지 이런 음습한 곳에서 이러고 앉아있는데. 여기 나 같은 학부생이 있어도 되는 건가? 

         

        괜시리 불안해진 나는 헤를라인 선생님이 있는 쪽으로 의자를 가까이 가져갔다. 그 와중에도 아르가나의 연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스펠트 공작을 포함한 전략 마도사들을 대거 잃어 전선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또 내부는 어떠합니까? 전염병 재난이 벌어지기 전부터 바닥을 보이고 있었던 국고는 이젠 메마르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 마당에 황실에선 잔치를 벌였습니다.”

        “예, 제2황자의 종강을 축하하는 시답잖은 잔치를 말이죠.”

         

        귀족들이 여기 모일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한 사람이 이 자일 것이다.

         

        공작 작위를 갖추고 있으니 인망과 권력은 충분하다. 그런데 그런 공작이 황실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내뱉고 있었다.

         

        진짜 나라꼴 개판인가 보네.

         

        “그 와중에 우리에겐 부족해진 국고를 채우기 위해 세수를 높이라는 말까지 했습니다. 백성의 삶은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는데 말이죠.”

        “재무대신으로 계시면서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으셨겠습니다.”

        “로베스 후작, 듣자하니 이곳 아카데미에서도 절약을 하라는 황명이 떨어진 걸로 기억합니다.”

        “예, 기존 장학금을 절반으로 축소하라는 어명을 받았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기만 해도 이가 갈릴 지경이었다. 그쯤에서 아르가나 공작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굴러왔다.

         

        뭐야.

         

        “학생, 이름이 에테르라고 했나요?”

        “…그렇습니다.”

         

        말이 저절로 딱딱하게 돼서 나온다.

         

        “평민 출신으로서 학생의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못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또 학생이 그 이상으로 아까운 마도 재능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요. 그, 플레어를 포함해서 이것저것 말입니다.”

        “…….”

        “에테르 학생, 학생에게는 방금 일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학생을 부른 이유를 최대한 요약하여 간단히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여기서부터다. 어떤 제안이 나오느냐에 따라 내 대처가 결정된다.

         

        없던 마른침까지 삼켜지는 순간이었다.

         

        “황실을 무너뜨릴 병기를 학생이 개발해줄 수 있겠습니까?”

         

        입 속에서 굴리고 있던 유자가 기도로 들어갔다.

         

         

        **

         

         

        그 뒤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늘 들고 다니는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둬서 오긴 했는데 뭔 소리인지 반쯤은 못 알아들었다.

         

        불공정 계약을 당한 느낌이다. 이사장이랑 붙어먹으려고 했다가 이게 웬 봉변이냐.

         

        이대로 가다간 편히 마법 연구만 하다가 귀환하겠다는 소박한 야망이 무너지고 만다. 연구만 주구장창 하다가 끝내려고 했더니, 자칫 이러다간 정쟁에 휘말리게 될 것만 같았다.

         

        역적으로 몰려서 뒤지는 건 아니겠지? 설마.

         

        어쨌거나 나는 정치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나마 정부부처 사람을 만났던 게, 연구보조금 타먹으려고 했을 때? 그 정도를 제외하면 나랏밥 드시는 분들과 접촉했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안 되겠다.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나는 픽픽 한숨을 내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순서가 잘못된 거 같기도 하고.”

         

        홀로 생각해서는 나오지 않는 답도 있다. 연구를 하든 뭘 하든 협력이 중요한 이유였다.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가랑비 사이를 뚫고 커다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분수대와는 가깝고, 기숙사와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틸레트 아카데미의 핵심 장소 중 하나.

         

        [연성부]

         

        수많은 동아리가 살아 숨쉬는 청춘과 열정, 그리고 모략의 무대.

         

        나는 주머니에 든 열쇠를 뒤적거렸다. 로르웰 선배가 준 창고 열쇠를 문에 거니 쉽게 돌아갔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자 잘 정돈된 창고 안쪽에 누군가가 자리를 잡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두려움과 떨림이 반반씩 섞인 눈으로 깃펜을 굴리고 있던 엘프가 하나.

       

        대수림의 정기를 담은 듯한 초록빛 눈동자와, 토파즈를 세공해 넣은 연노랑빛 눈동자. 두 홍채가 어두칙칙한 공간 속에서 각자의 빛을 발한다.

         

        밀회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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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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