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4

       ” 간다. ”

       

       

       쓰러진 루슬란을 뒤로하고, 도로시는 몸을 일으켰다.

       

       

       ” …죽이지 않는 건가..? ”

       

       

       ” 후환을 생각하면 죽이는 게 맞겠지만, 그럴 힘이 없어서. ”

       

       

       굳이 루슬란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방금 전까지 서로 죽일 기세로 싸워 놓고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도로시는 루슬란에 대한 적의를 잃었다.

       동정심 때문인가? 아니면 동질감? 그보다는 죽일 힘이 모자라다는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몸은 무겁고, 정신은 그 이상으로 피로해서.

       

       

       ”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거든. ”

       

       

       이대로 눈을 감으면 깰 수 있을지 없을지 장담할 수도 없는 마당에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 그러니까….안녕. ”

       

       

       다시 만날 일이 없기를 바라는, 영원한 안녕을 고하는 작별 인사.

       언젠가 너도 깨닫는 날이 오기를, 어쩌면 이미 깨달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루슬란에겐 들리지 않을 속내를 흘려보내며, 도로시는 나아갔다.

       

       

       __

       

       

       언제 쓰러질지 모를, 천근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몸뚱이.

       체감상으론 거진 나흘은 잠도 안 자고 밤을 샌 것만 같은 피로가 도로시의 의식을 짓눌렀다. 하룻밤 만에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건지.

       

       

       물론 그것은 도로시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자신이 자초한 일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동안 맡아본 그 어떤 의뢰 중에서도 단연코 난이도가 어려운 왕세자의 의뢰를 좋다고 맡았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쉬고 싶었다. 도로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휴식을 원했다.

       술도, 담배도, 도박도 필요 없다. 그냥 침대에 몸을 뉘인 채 하루 종일 자고 싶었다.

       

       

       ” …아, 기왕이면..아니다. ”

       

       

       잡념을 떨치며, 도로시는 비틀비틀 시빌라를 숨겨 놓은 장소로 나아갔다.

       암살자들도 처리했고, 반란도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터.

       이대로 시빌라를 데려가기만 하면 문제는 없었다. 데려가기만 한다면.

       

       

       ” ….아, 맞다. ”

       

       

       문제는 시빌라가 숨은 장소가 빈민가에 있다는 거고.

       

       

       ” 잊고 있었네. 여기 인간들이 어떤 인간들인지… ”

       

       

       언더도그마, 빈민가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멸시당하고 핍박당한 약자들은 어느새 약자라는 위치 자체를 하나의 명분이자 무기로 삼고 바싹 마른 장작이 되었다. 불길이 제게 닿을 순간을 기다리며.

       그리고 마침내 불길이 닿자, 그들은 제 몸을 아끼지 않고 불길에 던져 화마를 키웠다. 제 몸이 타들어 가는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이 화마가 온 세상을 불사르기를 바라면서.

       그것은 거대한 악의이자 혼돈이었다. 저 광인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어디 하나 멀쩡한 곳이 없는 도로시의 몸으론 화를 피하지 못할 터.

       

       

       

       

       문제는 그들을 돌파해야만 시빌라를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에 지독한 악의를 보이는 저 미친 무리를 지나야, 시빌라의 은신처가 나온다.

       도로시는 고민했다. 돌아가야 하나? 돌아간다고 저 광인들을 피할 수 있을까?

       컨디션이 멀쩡했다면 이리 고민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 걱정 없이 모두 죽이고 지나가면 해결됐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도로시는 약해졌고, 불길에 몸을 던진 장작들은 눈이 돌아간 상태다. 

       

       

       ” 어이, 저기 여자다!! ”

       

       

       ” …아. ”

       

       

       도로시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 폭도화된 군중 속에 섞여 있던 한 남자가 도로시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 뭐야, 진짜 여자잖아? 그것도 꽤 미인이네? ”

       

       

       ” 어디서 구르다 걸레짝이 된 건진 모르겠지만, 봐줄 만한데! ”

       

       

       평소였다면 도로시를 넘보지도 못했을 불한당, 하지만 지금은 명백히 우위를 점한 이들을 보며 도로시는 처음으로 고민했다. 죽여야 하나, 가 아니라 죽일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 …윽. ”

       

       

       그때 머리 한 대만 더 때리고 올걸. 야속하게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에 도로시가 이를 악물며 어떻게든 몸을 피하려던 순간.

       

       

       ” 도망치지 못하게 잡….아..? ”

       

       

       사내들과 도로시 사이에, 태산 같은 덩치의 거한이 끼어들었다.

       붉은 산발에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 험상궂은 얼굴로 사내들을 내려다 보는 곱사등의 거인.

       

       

       ” 뭐, 뭐야, 이 괴물은.. ”

       

       

       눈에 뵈는 것 없이 날뛰던 사내들조차 본능적인 공포에 이성을 되찾을 만큼, 거한의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 …당신은…그때 그.. ”

       

       

       하지만 도로시는 그가 누군지 알았다. 이름은 모르지만, 이 기형의 거한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았다.

       

       

       ” …. ”

       

       

       ” …!? 어, 얼굴이.. ”

       

       

       그리고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보인 명백한 폭력의 흔적에, 도로시는 숨을 삼켰다.

       

       

       ” 어, 어디로, 가실, 건가요. ”

       

       

       누가 그를 저리 처참한 꼴로 만들었는가. 그 흉한 외모 때문에 어딜 가나 멸시를 받았을 걸 생각하면, 또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생각하면 그가 누군가에게 공격받은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도로시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눈에서 감정을 읽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애석함, 도무지 그 깊이를 감히 종잡을 수 없는 비탄을.

       

       

       ” 제, 제가, 데려가드리겠습니다. 어, 어디든지. ”

       

       

       육신의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제게 손을 뻗는 콰지모도를 보며 도로시는 생각했다. 이 사람을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분명 콰지모도는 도로시가 그동안 만났던 그 어떤 사람보다도 고결한 마음씨를 지닌 호인이다.

       그럼에도 도로시는 고민했다. 선량한 마음이, 선량한 뜻이, 꼭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니까.

       

       

       ” …하수도로, 데려가주시겠습니까. ”

       

       

       그러나 끝내, 도로시는 그를 믿기로 했다.

       부디 이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 아니길 바라며.

       

       

       __

       

       

       세상은 콰지모도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그를 저주받은 아이라 손가락질했다.

       끔찍하게 일그러진 기형의 몸. 굽은 척추와 흐린 안구.

       어찌 저주받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 저주가 악마가 내린 저주인지 신이 내린 저주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확실한 것은 콰지모도의 몸을 빚은 자가 그를 싫어했을 거란 사실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존재였다. 그 기형적인 꼬락서니를 보아 신에게 버림받은 것이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가 고개를 떨구고, 항상 두 손을 모은 채 비굴하게 군다고 하여 그 핍박의 강도가 약해지는 일은 없었다.

       콰지모도가 피해를 끼치던 끼치지 않던, 그건 그들의 관심 밖이었던 것이다. 그는 저주받은 흉물이자 악마의 자손이고, 그들에겐 그런 콰지모도를 벌할 이유가 있다고 여겼으니까.

       

       

       그렇기에 콰지모도는 자길 거두어 키운 사람,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를 사랑했다.

       프롤로 부주교가 콰지모도를 거두지 않았다면 갓난아기였던 그는 살아남지 못하고 싸늘하게 식은 한 구의 시신이 되었을 것이다. 신을 믿는 교인들조차 그를 악마라며 욕했으니, 당연한 미래일 터.

       그러니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듯, 콰지모도가 부주교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설령 부주교가 자길 거두어 키운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고 해도.

       부주교 역시 다른 이들처럼 자길 핍박하고 학대하였다고 해도.

       그 역시 자길 악마가 낳은 흉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해도.

       그럼에도 콰지모도는 부주교를 사랑했고, 부주교의 뜻이라면 뭐든 이루려 했다.

       

       

       그런 부주교가, 한 여인을 원했다.

       갈색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 에스메랄다를.

       

       

       사랑, 이라는 말을 붙이기엔 그 감정은 너무 추잡했다.

       욕정, 집착. 차라리 그런 쪽이 더 어울릴 것이다.

       

       

       클로드 프롤로라는 인간은 결단코, 결단코 선량한 사람이 아니다. 제 욕망을 신앙심이라는 가면 아래에 숨긴 작자지.

       하지만 그런 부주교의 본성을 알면서도 콰지모도는 그의 뜻을 거스르거나 하지 않았다. 아무리 썩어빠진 본성을 가졌다 해도 부주교는 그의 은인이자, 양부였으니까.

       부주교가 에스메랄다를 원한다면, 콰지모도는 그녀를 부주교에게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콰지모도는 생각했다.

       

       

       ” …도, 도착, 했습니다. ”

       

       

       그러나 콰지모도는 부주교의 뜻을 거슬렀다.

       

       

       ” 여, 여기가 마, 맞죠? ”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사랑하는 양부를 배반했다.

       

       

       ” ….. ”

       

       

       다시는 뜻을 거스르지 말라는 엄포와 성당으로 그녀를 데려오라는 명령이 있었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에스메랄다를, 콰지모도는 하수도 입구 앞에 내려줬다.

       

       

       모두, 그녀 때문이었다.

       두 번의 배반은 모두, 에스메랄다를 향한 연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고작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여인인데도, 그 여인이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걸 알면서도.

       콰지모도는 끝내 양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다시금 그녀를 택했다.

       

       

       이 여인이 그토록, 의미가 있었던가.

       그 짧은 만남이, 오랫동안 너를 기른 양부의 뜻을 거스를 만큼 의미가 컸더냐.

       

       

       자기 자신을 향한 물음에 콰지모도는 대답할 수 있었다. 의미가 컸다고.

       에스메랄다가 그날 보인 찰나의 호의, 만일 콰지모도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다른 누군가가 한 번쯤을 보였을 호의.

       하지만 끔찍하게 뒤틀려 흉물스러운 몸으로 태어난 그에겐 그 정도의 호의를 베푸는 사람도 없었다. 그의 양부조차도.

       

       

       그러니 콰지모도에게 에스메랄다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비록 제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더라도, 헌신에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진심으로, 아무 상관도 없었다.

       

       

       ” 내, 내 이름은, 콰, 콰지모도입니다. ”

       

       

       나의 소원은 그저, 당신이 나를 기억하는 것.

       흉하디 흉한 기형의 거한이 아닌, 친절한 콰지모도로 기억해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괜찮아.

       

       

       ” …안녕히. ”

       

       

       당신의 앞날이, 희망으로 가득하기를.

       당신이 사랑하는 이가, 당신을 사랑하기를.

       그리하여 당신의 이야기의 마지막이, 해피 엔딩으로 장식되기를.

       부디, 행복하기를.

       

       

       콰지모도는 바랐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The Maid of the Cursed Princess

The Maid of the Cursed Princess

MOCP 저주받은 왕녀의 메이드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e’ decided to become the cursed Princess’s maid.

[After all, you will eventually need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