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겠지만,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다시피 삶이란 그렇게 안일하게 굴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지난 며칠간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 후보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하지만 실비아씨의 희망찬 예측과는 달리, 그녀가 봐 두었던 장소들은 모두 짙은 마기에 오염되어 있었다.
실비아씨의 절망이 줄줄 흐르던 그 시선을 나는 똑똑히 바라보았다.
아직 남은 후보들은 몇군데 남아있었지만, 이젠 시간이 없었다.
숲속을 헤맨 지 어느덧 일주일이 되는 아침,
눈을 뜨자마자 마른기침을 쏟아내던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내 삶의 끝이, 이렇게나 멋없고 심심하게 다가왔음을.
눈에 띄게 창백해진 내 팔이나 손바닥을 보면 얼굴은 어떤 꼴일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정작 실비아씨는 내 상태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아마 내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러나 실비아씨의 붉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내 얼굴은 볼이 움푹 패여 있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과 그 반대로 단단하고 굳게 다물어진 입술은 그녀가 내게 애써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을 투명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실비아씨는 명백하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그녀의 발걸음이 너무나 성급하고 빠르게 느껴졌다.
아니면, 내가 느려진 걸지도 모른다.
나는 나무를 짚고 바닥에 주르륵 무너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실비아씨, 잠깐만… 잠깐만 쉬어요.”
앞서가는 실비아씨의 뒤통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쥐어짜 내듯 꺼낸 내 가냘픈 목소리를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황급히 뒤를 돌아본 실비아씨의 표정은 더 이상 본심을 숨기지 못했다.
경악과 슬픔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마른기침이 멎질 않는다.
“애쉬! 괜찮아?”
“…잠깐만, 쉬어요.”
“…”
실비아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내 상태가 상태인 만큼 휴식은 필요했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심호흡을 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질 못하는 내 쓸모없는 폐는 연신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다 끝났어, 이제 포기해.
내 몸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아…”
“…애쉬.”
솔직히 이 불행으로 가득한 삶에 미련 따위는 없었다.
이미 되살아난 라일라의 시체를 태웠던 그 순간부터 어딘가 정신이 나가 있기도 했다.
희미해진 현실감. 불투명한 존재감.
마치 내 영혼이 내 몸에서 세발짝쯤 크게 멀어져 팔짱을 낀 채 몸뚱이만 남은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무기력한 공허함이 솔직히 진력이 났다.
그만하고 싶다.
“…오분, 오 분이면 돼요.”
“알았어.”
그러나 아직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나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였다.
내가 죽고 나면 또다시 외로움 속에 방치되어버릴 실비아씨를 생각할 때마다 최소한 마지막까지 노력은 해보자는 의지가 솟아나곤 했다.
나는 마른기침을 내뱉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손끝은 저리고, 발끝엔 감각이 없다.
마치 남의 다리를 가져다 붙인 것처럼 종아리 아래가 무겁게 느껴졌다.
의식이 몽롱해진다.
눈꺼풀 안쪽에 새카만 천이 내려오다 다시 걷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시야가 껌벅거렸다.
안돼,
안돼 아직은.
의지를 보여야 한다.
‘오빠는 나를 죽였으면서 살고 싶은 거야?’
아니야, 라일라.
금방 갈게,
그저 실비아씨에게 마지막 예를 갖추려는 것뿐이야.
조금만 기다려 줘.
금방, 너한테 갈게.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데도 내가 워낙 모자라고 한심해서, 그런 병신같은 오빠를 둔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꼭 사과할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는 천천히 나무를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실비아씨는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는 일으켜 주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 자, 이제 가요.”
*
제아무리 의지가 있다고 해도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은 있는 법이다.
막판엔 그녀가 나를 둘러업고 달리기까지 했지만, 우리는 끝내 야속하게도 또다시 찾아온 밤을 숲 한가운데에서 맞이하고 말았다.
중간중간 몽롱해진 탓인지, 오늘따라 밤이 더 빠르게 찾아온 것 같았다.
“젠장!”
실비아씨는 천천히 발걸음을 늦추다, 이내 곧 근처에 서 있던 나무를 주먹으로 후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우지끈하는 커다란 굉음이 숲속에 울리자 새들이 달아나며 흘린 날갯짓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치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양, 나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실비아씨는 내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에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돌아보고는 달려와 내 머리를 받쳐주었다.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애쉬, 내일 숲을 나가자. 아니, 이리 와서 업혀. 지금 당장 나가자.”
“하아… 하, 실비아… 씨.”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한번 어두워지기 시작한 숲이 얼마나 빠르게 깜깜한 암흑으로 뒤덮이고 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밤중의 숲은 침착하게 움직여도 위험하기 짝이 없을 텐데, 조급한 마음에 가득 찬 지금은 더욱이 위험할 게 뻔했다.
당장 내가 라일라를 잃었던 마차 사고 역시도 한밤중의 숲속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비록 내 호흡이 거칠어지고, 몸 이곳저곳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울 만큼 버거운 피로를 느끼는 등, 내 몸에 쌓인 마기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장 오늘 밤조차 넘기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실비아씨가 내 손을 잡아준다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
“손… 잡아줘요.”
실비아씨는 낚아채듯 내 손을 붙잡아 양손으로 꼬옥 쥐었다.
이내 곧 그녀의 몸이 하얗게 달아오르고, 따듯한 기운이 손을 통해 내 온몸으로 녹아들듯 퍼져나갔다.
신성력.
조금이지만, 숨을 쉬는 게 편해지는 것 같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불만 들게요.”
“아니야, 가만히 있어. 내가 불 피울게.”
“아뇨…”
나는 그녀가 잡지 않은 손을 살짝 휘저으며 주문을 읊었다.
떨리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솟아 나온 불은 공중에서 긴 꼬리를 만들며 빙글빙글 돌더니 금세 내 머리통만 한 여우의 형태를 갖추었다.
“그나마 제가 하던 일인걸요.”
“…애쉬.”
지난 며칠간 숲속에서 야영을 할 때마다 밤중의 불은 내가 만들었다.
기특하게도 내 화염 마법을 통해 나타나는 이 여우는 쌀쌀한 밤공기를 데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의식을 갖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잠드는 동안에도 계속 형태를 유지한 채 나와 실비아씨의 주변을 지키며 야생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있었다.
사용자의 의식이 끊겨도 지속되는 마법이라니, 언젠가 여유가 되면 연구라도 해 보고 싶어질 정도였지만 내게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뭐 딱히 상관은 없었다.
지난 며칠간 매일 같이 보다 보니 살짝 정도 든 데다가, 여우의 형태에 걸맞게 녀석은 꽤 귀엽기도 했다.
“이 녀석, 제법 애교도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애쉬,”
“하하, 하긴 고작 마법인데 내가 무슨 소리 하는 거랑.”
“무리… 하는 건,”
“아니에요… 무리하는 거.”
여우는 죽어가는 나와 달리 쌩쌩한 모습이었다.
아마 내 마력 양이 그만큼 넉넉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내 앞에 쪼그려 앉은 여우의 턱을 살살 긁어보았다.
일렁거리는 불로 이루어져 있는 주제에, 적당히 따듯한 데다가 살짝 뺨을 내 손가락에 비벼오는 게 사랑스럽기도 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비아씨.”
“응,”
“어차피 실비아씨 내가 걱정되어서 잠도 못 자잖아요. 적어도 이 녀석이 있으면… 자는 중에 이 녀석이 만드는 따듯한 온기가 계속 느껴진다면 나는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실비아씨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
“저 당장 오늘 밤 죽을 것 같지는 않아요. 진짜로요.”
“…애쉬.”
나는 천천히 실비아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이 퀭해 보였다.
죽지 않는다고 해서 무적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여러모로 괴물 같은 사람이었지만, 어찌됬든 사람이다.
잠을 자지 않아도 죽지는 않겠지만 피로는 느낀다.
마기가 쌓여도 죽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몸 역시 나만큼이나 엉망진창인 상태일 것이다.
나는 마른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편히 자요.”
“…”
“그리고, 내일 아침에 숲을 나가죠.”
“…뭐?”
실비아씨는 내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가요. 우리.”
놀란 듯 크게 치켜뜬 실비아씨의 눈 아래가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 뺨에 입술을 맞추고는 나를 끌어안았다.
실비아씨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비아씨는 하루하루 악화하여 가는 나를 보며 지난 며칠간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당장이라도 숲을 나가야 할까, 아닌 숲을 더 찾아보아야 할까.
세상에 저주를 퍼트릴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 아니면 애쉬가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
시시각각 제한 시간이 다가오는 선택의 기로 속에서 그녀가 숲속을 돌아다니는 것을 택했던 데에는 세상을 지키고 싶다는 용사로서의 사명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내 고집 때문이기도 했다.
정작 죽어가는 내가 숲 밖을 나가는 것을 은연중에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내가 삶에 미련이 없다는 사실도, 그런 내가 죽는 것보다 두려워하는 상황은 저주로 타인을 해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녀는 내 고집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내 몸뚱이도 한계를 맞이했지만,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 때문에 실비아씨가 힘겨워하는 것을, 아파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어느샌가 희망이 사라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불경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숲속에 우리가 살 수 있는 장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불온한 상상.
나는 있지도 않은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마기 속에서 버둥거리는 실비아씨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가기 전에… 얼굴… 가릴 것을… 찾아봐야겠지만요.”
“나가는 중에 사냥하면 돼. 당장은 짐승 가죽이라도 뒤집어쓰면 되니까.”
“…좋아요.”
나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그녀가 붙잡고 있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느껴진다.
그녀의 손끝의 악력이.
그리고, 그 속에서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은 내 얇은 생명이.
오늘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숲을 나가도 나는 살 수 없겠지.
마기 없는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고 해서 도저히 이 몸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숲을 나가고 싶은 진정한 이유였다.
실비아씨에 비하면 내가 숲속에서 지낸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동서남북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항상 시야가 나무로 가로막히는 숲속의 풍경은,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황금 들판을 자랑한 골드필드 영지에서 살아온 내게 너무나 갑갑했다.
마지막 죽는 순간만큼은 나를 덮칠 듯 시야를 채우는 나무들로 가득 찬 숲속이 아니라, 그녀의 얼굴과 그 뒤로 펼쳐진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죽고 싶었다.
불타는 밀우드 마을을 닮은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아니라,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백금빛의 햇살 같은 그녀의 머릿결을 느끼며 죽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물론 우리에겐 이 끔찍한 저주가 걸려 있지만, 내가 막 그녀에게 구조되었던 그때, 얼굴에 천과 가면을 쓴 채 나를 대했던 실비아씨를 떠올려보면 이 저주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불편을 감수하면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었다.
물론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에, 그녀 역시 숲속에 자신을 스스로 감추며 살아온 것일 테지만, 어차피 이제는 숲에선 살 수 없게 되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그녀는 자신의 업적에 걸맞은 삶과, 업적에 걸맞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자격이 있으니까.
평생 실패만 해온 나와 다르게, 평생 위업을 이뤄온 그녀는 행복해져야만 하니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천천히 상체를 내 몸 위에 살짝 얹은 채 내 뺨에 자기 뺨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미안해… 큰 소리 쳐놓고 결국 찾지 못했어.”
“실비아씨 잘못이 아니에요.”
“내 잘못이야, 내가…”
“아니에요.”
“애쉬…”
나는 떨리는 손끝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녀의 앞머리를 천천히 가다듬자, 중간에 물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맞닿은 뺨에도 뜨거운 물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곧 촉촉하게 젖어왔다.
“미안해… 정말,”
“실비아씨…”
“…윽, 흐윽,”
순간 고민했다.
아마 죽을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괜히 그녀가 미련만 갖지 않을까.
그녀가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기만 하는 건 아닐까.
알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 소리이고, 얼마나 못된 짓인지.
하지만, 나는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비틀어 열었다.
어차피 평생 실패만 해온 나다.
그녀가 행복했으면 했지만, 나를 잊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이기적이고 나쁜 새끼.
안다.
나는 원래 그랬으니까.
라일라 대신 살아놓고 떠오르는 아름다운 아침 해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소름이 끼치는 위선자가 바로 나니까.
내가 곧 죽는다면, 오히려 더욱 이것만큼은 남기고 싶었다.
이 말만큼은 꼭 해야만 했다.
“사랑해요.”
그녀의 몸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진다.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를 짜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읇조렸다.
“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 실비아씨.”
“나도… 나도 사랑해.”
여우는 천천히 낙엽을 밟으며 우리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눈이 감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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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안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