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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도 없겠지만,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다시피 삶이란 그렇게 안일하게 굴러가지 않는 법이었다.

        ​

        지난 며칠간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 후보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

        하지만 실비아씨의 희망찬 예측과는 달리, 그녀가 봐 두었던 장소들은 모두 짙은 마기에 오염되어 있었다.

        ​

        실비아씨의 절망이 줄줄 흐르던 그 시선을 나는 똑똑히 바라보았다.

        ​

        아직 남은 후보들은 몇군데 남아있었지만, 이젠 시간이 없었다.

        ​

        ​

        숲속을 헤맨 지 어느덧 일주일이 되는 아침,

        ​

        눈을 뜨자마자 마른기침을 쏟아내던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

        내 삶의 끝이, 이렇게나 멋없고 심심하게 다가왔음을.

        ​

        눈에 띄게 창백해진 내 팔이나 손바닥을 보면 얼굴은 어떤 꼴일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지만 정작 실비아씨는 내 상태에 대해 별말을 하지 않았다. 

        ​

        아마 내게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

        그러나 실비아씨의 붉은 눈동자 속에 비친 내 얼굴은 볼이 움푹 패여 있었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과 그 반대로 단단하고 굳게 다물어진 입술은 그녀가 내게 애써 감추고 싶어 하는 진실을 투명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

        실비아씨는 명백하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

        그래서일까, 오늘따라 그녀의 발걸음이 너무나 성급하고 빠르게 느껴졌다.

        ​

        아니면, 내가 느려진 걸지도 모른다.

        ​

        나는 나무를 짚고 바닥에 주르륵 무너진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

        ​

        ​

        “실비아씨, 잠깐만… 잠깐만 쉬어요.”

        ​

        ​

        ​

        앞서가는 실비아씨의 뒤통수를 애처롭게 바라보며 쥐어짜 내듯 꺼낸 내 가냘픈 목소리를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

        황급히 뒤를 돌아본 실비아씨의 표정은 더 이상 본심을 숨기지 못했다. 

        ​

        경악과 슬픔으로 물든 그녀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

        마른기침이 멎질 않는다.

        ​

        ​

        ​

        “애쉬! 괜찮아?”

        ​

        “…잠깐만, 쉬어요.”

        ​

        “…”

        ​

        ​

        ​

        실비아씨는 입술을 깨물었다.

        ​

        내 상태가 상태인 만큼 휴식은 필요했지만,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나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

        심호흡을 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질 못하는 내 쓸모없는 폐는 연신 마른기침을 토해냈다.

        ​

        다 끝났어, 이제 포기해.

        ​

        내 몸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

        ​

        ​

        “하아…”

        ​

        “…애쉬.”

        ​

        ​

        ​

        솔직히 이 불행으로 가득한 삶에 미련 따위는 없었다. 

        ​

        이미 되살아난 라일라의 시체를 태웠던 그 순간부터 어딘가 정신이 나가 있기도 했다.

        ​

        희미해진 현실감. 불투명한 존재감.

        ​

        마치 내 영혼이 내 몸에서 세발짝쯤 크게 멀어져 팔짱을 낀 채 몸뚱이만 남은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이 무기력한 공허함이 솔직히 진력이 났다.

        ​

        그만하고 싶다.

        ​

        ​

        ​

        “…오분, 오 분이면 돼요.”

        ​

        “알았어.”

        ​

        ​

        ​

        그러나 아직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었다.

        ​

        나 따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녀를 위해서였다.

        ​

        내가 죽고 나면 또다시 외로움 속에 방치되어버릴 실비아씨를 생각할 때마다 최소한 마지막까지 노력은 해보자는 의지가 솟아나곤 했다.

        ​

        나는 마른기침을 내뱉는 입술을 꽉 깨문 채 천천히 코로 숨을 들이마셨다.

        ​

        손끝은 저리고, 발끝엔 감각이 없다.

        ​

        마치 남의 다리를 가져다 붙인 것처럼 종아리 아래가 무겁게 느껴졌다.

        ​

        의식이 몽롱해진다.

        ​

        눈꺼풀 안쪽에 새카만 천이 내려오다 다시 걷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시야가 껌벅거렸다.

        ​

        안돼,

        ​

        안돼 아직은.

        ​

        의지를 보여야 한다.

        ​

        ​

        ​

        ‘오빠는 나를 죽였으면서 살고 싶은 거야?’

        ​

        ​

        ​

        아니야, 라일라.

        ​

        금방 갈게,

        ​

        그저 실비아씨에게 마지막 예를 갖추려는 것뿐이야.

        ​

        조금만 기다려 줘.

        ​

        금방, 너한테 갈게. 

        ​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아. 

        ​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정말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런데도 내가 워낙 모자라고 한심해서, 그런 병신같은 오빠를 둔 너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꼭 사과할 테니까.

        ​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

        ​

        ​

        ​

        나는 천천히 나무를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

        실비아씨는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 팔을 붙잡고는 일으켜 주었다.

        ​

        나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

        ​

        ​

        “… 자, 이제 가요.”

        ​

        ​

        ​

        ​

        ​

        ​

        ​

        ​

        ​

        ​

        *

        제아무리 의지가 있다고 해도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은 있는 법이다.

        ​

        막판엔 그녀가 나를 둘러업고 달리기까지 했지만, 우리는 끝내 야속하게도 또다시 찾아온 밤을 숲 한가운데에서 맞이하고 말았다.

        ​

        중간중간 몽롱해진 탓인지, 오늘따라 밤이 더 빠르게 찾아온 것 같았다.

        ​

        ​

        ​

        “젠장!”

        ​

        ​

        ​

        실비아씨는 천천히 발걸음을 늦추다, 이내 곧 근처에 서 있던 나무를 주먹으로 후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

        우지끈하는 커다란 굉음이 숲속에 울리자 새들이 달아나며 흘린 날갯짓 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

        마치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양, 나는 천천히 바닥에 주저앉았다.

        ​

        실비아씨는 내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에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돌아보고는 달려와 내 머리를 받쳐주었다.

        ​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애쉬, 내일 숲을 나가자. 아니, 이리 와서 업혀. 지금 당장 나가자.”

        ​

        “하아… 하, 실비아… 씨.”

        ​

        ​

        ​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

        한번 어두워지기 시작한 숲이 얼마나 빠르게 깜깜한 암흑으로 뒤덮이고 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한밤중의 숲은 침착하게 움직여도 위험하기 짝이 없을 텐데, 조급한 마음에 가득 찬 지금은 더욱이 위험할 게 뻔했다.

        ​

        당장 내가 라일라를 잃었던 마차 사고 역시도 한밤중의 숲속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

        비록 내 호흡이 거칠어지고, 몸 이곳저곳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울 만큼 버거운 피로를 느끼는 등, 내 몸에 쌓인 마기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당장 오늘 밤조차 넘기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았다.

        ​

        실비아씨가 내 손을 잡아준다면 며칠은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

        나는 떨리는 입술로 입을 열었다. 

        ​

        ​

        ​

        “손… 잡아줘요.”

        ​

        ​

        ​

        실비아씨는 낚아채듯 내 손을 붙잡아 양손으로 꼬옥 쥐었다.

        ​

        이내 곧 그녀의 몸이 하얗게 달아오르고, 따듯한 기운이 손을 통해 내 온몸으로 녹아들듯 퍼져나갔다.

        ​

        신성력.

        ​

        조금이지만, 숨을 쉬는 게 편해지는 것 같다.

        ​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

        ​

        ​

        “불만 들게요.”

        ​

        “아니야, 가만히 있어. 내가 불 피울게.”

        ​

        “아뇨…”

        ​

        ​

        ​

        나는 그녀가 잡지 않은 손을 살짝 휘저으며 주문을 읊었다.

        ​

        떨리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솟아 나온 불은 공중에서 긴 꼬리를 만들며 빙글빙글 돌더니 금세 내 머리통만 한 여우의 형태를 갖추었다.

        ​

        ​

        ​

        “그나마 제가 하던 일인걸요.”

        ​

        “…애쉬.”

        ​

        ​

        ​

        지난 며칠간 숲속에서 야영을 할 때마다 밤중의 불은 내가 만들었다.

        ​

        기특하게도 내 화염 마법을 통해 나타나는 이 여우는 쌀쌀한 밤공기를 데워주는 것은 물론이고, 

        ​

        마치 의식을 갖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잠드는 동안에도 계속 형태를 유지한 채 나와 실비아씨의 주변을 지키며 야생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주고 있었다.

        ​

        사용자의 의식이 끊겨도 지속되는 마법이라니, 언젠가 여유가 되면 연구라도 해 보고 싶어질 정도였지만 내게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

        뭐 딱히 상관은 없었다.

        ​

        지난 며칠간 매일 같이 보다 보니 살짝 정도 든 데다가, 여우의 형태에 걸맞게 녀석은 꽤 귀엽기도 했다.

        ​

        ​

        ​

        “이 녀석, 제법 애교도 있는 것 같지 않아요?”

        ​

        “…애쉬,”

        ​

        “하하, 하긴 고작 마법인데 내가 무슨 소리 하는 거랑.”

        ​

        “무리… 하는 건,”

        ​

        “아니에요… 무리하는 거.”

        ​

        ​

        ​

        여우는 죽어가는 나와 달리 쌩쌩한 모습이었다.

        ​

        아마 내 마력 양이 그만큼 넉넉하기 때문이겠지.

        ​

        나는 내 앞에 쪼그려 앉은 여우의 턱을 살살 긁어보았다.

        ​

        일렁거리는 불로 이루어져 있는 주제에, 적당히 따듯한 데다가 살짝 뺨을 내 손가락에 비벼오는 게 사랑스럽기도 했다.

        ​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실비아씨.”

        ​

        “응,”

        ​

        “어차피 실비아씨 내가 걱정되어서 잠도 못 자잖아요. 적어도 이 녀석이 있으면… 자는 중에 이 녀석이 만드는 따듯한 온기가 계속 느껴진다면 나는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실비아씨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죠.”

        ​

        “…”

        ​

        “저 당장 오늘 밤 죽을 것 같지는 않아요. 진짜로요.”

        ​

        “…애쉬.”

        ​

        ​

        ​

        나는 천천히 실비아씨를 바라보았다.

        ​

        그녀의 눈이 퀭해 보였다.

        ​

        죽지 않는다고 해서 무적인 것은 아니다.

        ​

        그녀는 여러모로 괴물 같은 사람이었지만, 어찌됬든 사람이다.

        ​

        잠을 자지 않아도 죽지는 않겠지만 피로는 느낀다.

        ​

        마기가 쌓여도 죽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몸 역시 나만큼이나 엉망진창인 상태일 것이다.

        ​

        나는 마른기침을 뱉으며 말했다.

        ​

        ​

        ​

        “그러니까 오늘은 편히 자요.”

        ​

        “…”

        ​

        “그리고, 내일 아침에 숲을 나가죠.”

        ​

        “…뭐?”

        ​

        ​

        ​

        실비아씨는 내 말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

        나는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나가요. 우리.”

        ​

        ​

        ​

        놀란 듯 크게 치켜뜬 실비아씨의 눈 아래가 부르르 떨렸다.

        ​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내 뺨에 입술을 맞추고는 나를 끌어안았다.

        ​

        실비아씨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실비아씨는 하루하루 악화하여 가는 나를 보며 지난 며칠간 끊임없이 고민했었다.

        ​

        당장이라도 숲을 나가야 할까, 아닌 숲을 더 찾아보아야 할까.

        ​

        세상에 저주를 퍼트릴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 아니면 애쉬가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할 것이냐.

        ​

        시시각각 제한 시간이 다가오는 선택의 기로 속에서 그녀가 숲속을 돌아다니는 것을 택했던 데에는 세상을 지키고 싶다는 용사로서의 사명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내 고집 때문이기도 했다.

        ​

        정작 죽어가는 내가 숲 밖을 나가는 것을 은연중에 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미 내가 삶에 미련이 없다는 사실도, 그런 내가 죽는 것보다 두려워하는 상황은 저주로 타인을 해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

        감사하게도 그녀는 내 고집을 들어주었다.

        ​

        ​

        하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

        내 몸뚱이도 한계를 맞이했지만, 마음 역시 마찬가지였다.

        ​

        나 때문에 실비아씨가 힘겨워하는 것을, 아파하는 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

        게다가 어느샌가 희망이 사라진 내 머릿속에 한 가지 불경한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했다.

        ​

        어쩌면, 이 숲속에 우리가 살 수 있는 장소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불온한 상상.

        ​

        나는 있지도 않은 오아시스를 찾기 위해 마기 속에서 버둥거리는 실비아씨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

        ​

        ​

        “물론 나가기 전에… 얼굴… 가릴 것을… 찾아봐야겠지만요.”

        ​

        “나가는 중에 사냥하면 돼. 당장은 짐승 가죽이라도 뒤집어쓰면 되니까.”

        ​

        “…좋아요.”

        ​

        ​

        ​

        나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그녀가 붙잡고 있는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

        느껴진다.

        ​

        그녀의 손끝의 악력이.

        ​

        그리고, 그 속에서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것 같은 내 얇은 생명이.

        ​

        오늘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아마 숲을 나가도 나는 살 수 없겠지.

        ​

        마기 없는 신선한 공기를 마신다고 해서 도저히 이 몸이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

        그것이 내가 숲을 나가고 싶은 진정한 이유였다.

        ​

        ​

        실비아씨에 비하면 내가 숲속에서 지낸 기간은 너무나도 짧았지만, 동서남북 어디를 바라보더라도 항상 시야가 나무로 가로막히는 숲속의 풍경은,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황금 들판을 자랑한 골드필드 영지에서 살아온 내게 너무나 갑갑했다.

        ​

        마지막 죽는 순간만큼은 나를 덮칠 듯 시야를 채우는 나무들로 가득 찬 숲속이 아니라, 그녀의 얼굴과 그 뒤로 펼쳐진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죽고 싶었다.

        ​

        불타는 밀우드 마을을 닮은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아니라, 파란 하늘에 떠 있는 백금빛의 햇살 같은 그녀의 머릿결을 느끼며 죽고 싶었다.

        ​

        ​

        그리고, 무엇보다도…

        ​

        그녀가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다.

        ​

        물론 우리에겐 이 끔찍한 저주가 걸려 있지만, 내가 막 그녀에게 구조되었던 그때, 얼굴에 천과 가면을 쓴 채 나를 대했던 실비아씨를 떠올려보면 이 저주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고, 불편을 감수하면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었다.

        ​

        물론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에, 그녀 역시 숲속에 자신을 스스로 감추며 살아온 것일 테지만, 어차피 이제는 숲에선 살 수 없게 되었으니까.

        ​

        이번 기회에 그녀는 자신의 업적에 걸맞은 삶과, 업적에 걸맞은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

        그녀는 자격이 있으니까.

        ​

        평생 실패만 해온 나와 다르게, 평생 위업을 이뤄온 그녀는 행복해져야만 하니까.

        ​

        ​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천천히 상체를 내 몸 위에 살짝 얹은 채 내 뺨에 자기 뺨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

        ​

        ​

        “미안해… 큰 소리 쳐놓고 결국 찾지 못했어.”

        ​

        “실비아씨 잘못이 아니에요.”

        ​

        “내 잘못이야, 내가…”

        ​

        “아니에요.”

        ​

        “애쉬…”

        ​

        ​

        ​

        나는 떨리는 손끝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

        그녀의 앞머리를 천천히 가다듬자, 중간에 물기 같은 것이 느껴졌다.

        ​

        맞닿은 뺨에도 뜨거운 물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이내 곧 촉촉하게 젖어왔다.

        ​

        ​

        ​

        “미안해… 정말,”

        ​

        “실비아씨…”

        ​

        “…윽, 흐윽,”

        ​

        ​

        ​

        순간 고민했다.

        ​

        아마 죽을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걸까.

        ​

        괜히 그녀가 미련만 갖지 않을까.

        ​

        그녀가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기만 하는 건 아닐까.

        ​

        알고 있었다.

        ​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이 얼마나 이기적인 소리이고, 얼마나 못된 짓인지.

        ​

        하지만, 나는 떨리는 입술을 천천히 비틀어 열었다.

        ​

        어차피 평생 실패만 해온 나다.

        ​

        그녀가 행복했으면 했지만, 나를 잊기를 원하지는 않았다.

        ​

        ​

        이기적이고 나쁜 새끼.

        ​

        안다.

        ​

        나는 원래 그랬으니까.

        ​

        라일라 대신 살아놓고 떠오르는 아름다운 아침 해를 보며 눈물을 흘리던 소름이 끼치는 위선자가 바로 나니까.

        ​

        내가 곧 죽는다면, 오히려 더욱 이것만큼은 남기고 싶었다.

        ​

        이 말만큼은 꼭 해야만 했다.

        ​

        ​

        ​

        “사랑해요.”

        ​

        ​

        ​

        그녀의 몸이 화들짝 놀라는 게 느껴진다.

        ​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를 짜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듯 읇조렸다.

        ​

        ​

        ​

        “사랑해요… 정말로, 사랑해요. 실비아씨.”

        ​

        “나도… 나도 사랑해.”

        ​

        ​

        ​

        여우는 천천히 낙엽을 밟으며 우리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

        천천히, 아주 느리게.

        ​

        눈이 감겨왔다.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당연한 말이지만 안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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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I Can’t Run Away from the Woman Who Saved Me.

나를 살려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
Score 4.2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Having lost all my family, I fled. As I was running away, she saved me when I was on the brink of death due to an accident. The moment our eyes met, I knew I couldn’t leave 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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