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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새벽에 있었던 토벌 작전은 내 의지로 한 일이었다. 제니퍼와의 약속 자체는 시간을 돌림으로써 없는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라면 모를까, 내가 좋아하던 캐릭터들과의 약속은 굳이 어기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어제 내가 다시 돌아온 시간은 오전이 훌쩍 지나버린 뒤였다.

        

       “……보상을 원한다면 무엇이든 해주마. 윈터필드는 빚을 잊지 않으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렇게 말하는 제니퍼에게,

        

       “이미 있던 빚을 갚았을 뿐입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대답하면서 가슴이 조금 뿌듯했다.

        

       물론 그날 새벽에 피 냄새와 화약 냄새를 맡기는 했다. 그리고 그 전장에서의 기억은 아마 쉽게 잊히지는 않을 거다. PTSD니, 뭐니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으니, 그 기억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진다.

        

       어차피 전쟁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우리 쪽에서 싸우지 않으면 우리 쪽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이 전쟁이다. 게다가 그 용병들은 이미 전범이나 다름없는 짓을 엄청나게 많이 저지른 인간들이었다. 나와 싸운 사람 중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전장 자체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곳인데, 마냥 봐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상대도 나를 향해서 총을 겨눴다. 거기서 총에 맞아 죽었다면 또 모를까, 만약 내가 팔이나 다리에 총을 맞아 무력화된 채 시간을 돌리지 않았다면, 나는 그 규율도 제대로 잡히지 않은 용병단에게 아주 험한 꼴을 당했으리라.

        

       게다가, 내가 사람을 죽여보는 것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전투 자체도 이미 시간을 돌려가며 몇 번이나 겪으며 그 루트를 최적화시켜두었다. 하루라는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결국 결과 자체는 비슷하게 나왔다.

        

       “빚?”

        

       당연하게도 제니퍼는 그렇게 되물어보았지만, 나는 굳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내가 아무런 반응도 없자, 제니퍼는 구태여 캐물어 보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자동차를 운전하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윈터필드 성으로 돌아올 때까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이 아름다웠다.

        

       검성은 아직도 저 산 중턱 어딘가에 있겠지.

        

       *

        

       윈터필드 성에 도착하자 성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앨리스가 걱정했다는 듯 나와서 나를 확 끌어안았다.

        

       아마 내 몸에 배어있는 화약 냄새를 맡기라도 한 듯, 앨리스는 곧장 제니퍼를 노려보았다.

        

       “…….”

        

       제니퍼도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의 제니퍼는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러니, 전장에서 그런 식으로 싸우는 나를 보고 다른 의미로 경악했을 거다. 마음의 준비를 하거나 할 틈은 더욱 없었겠지.

        

       “아버지가…….”

        

       앨리스는 곧장 나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시킨 일이야?”

        

       흠.

        

       나는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황제가 시킨……일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키려고 했던 일이겠지.

        

       그렇다면 대충 그렇다고 말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굳이 따지자면 내가 원해서 한 일이기는 하니까.

        

       “…….”

        

       그냥 그러기로 했다.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솔직히 능력을 숨기면서 설명을 하다 보면 말 중간중간에 비어있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럼 괜히 의심받게 된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했다가는 나중에 능력이 밝혀졌을 때 ‘그때 그건……?’하는 질문이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그럴싸하게 침묵하기’였다.

        

       내 침묵을 긍정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앨리스는 입을 꾹 닫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잖아. 아버지 말에는 따를 필요 없다고.”

        

       “…….”

        

       나를 가볍게 끌어안았던 앨리스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하긴, 너라면 그런 명령을 함부로 거절할 수도 없겠지.”

        

       딱히 명령받은 적도 없긴 하지만.

        

       ……설마 곧장 황제한테 달려가서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조금 싸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일단 말을 돌리기로 했다.

        

       “의뢰는 잘 수행하셨습니까?”

        

       “의뢰? 아.”

        

       앨리스는 자기 뒤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아이들을 한 번 돌아본 뒤, 다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응. 덕분에.”

        

       나는 시선을 조금 돌려서 미아 크로우필드를 찾았다. 이 아이들도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옷 밑단이 조금 젖어있었고, 코트 여기저기에 얼룩이 져 있었다. 아마 눈이 녹아 생긴 진흙이라도 튀었던 것이리라.

        

       미아 크로우필드의 손에 있는 지팡이에는 푸른 마르마로스가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떠나기 전에 방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옆에는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넘기라는 쪽지까지 남겨서.

        

       아이들은 그 말을 확실하게 실행했던 모양이다.

        

       “마르마로스 덕분에 사냥이 훨씬 수월하게 끝날 수 있었어요.”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던 샤를로트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샤를로트의 표정도 앨리스 못지않게 복잡했다. 전장에서 전투를 마치고 온 나를 경계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 이 순간에는 그 호의에 순수하게 감사해야 할지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고, 고마워, 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조금 겁에 질린 듯 그렇게 말했다.

        

       “언니…… 괜찮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클레어가 내 쪽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실제로도 생각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비슷한 모습을 계속 보아서 그런지 오히려 익숙해지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를 확실하게 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름대로 명분도 있었고.

        

       아직도 우리 곁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레오와 제이크를 보았다. 레오는…… 의외로 새파랗게 질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혹시 너무 겁에 질리다 못해 명경지수의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는데, 다시 한번 자세히 보니 레오의 표정은 오히려 생각에 잠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에 대한 평가가 조금 달라지기라도 한 것일까?

        

       제이크의 반응도 비슷했다. 평소의 양아치 같은 가벼운 태도는 어디로 밀어버렸는지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제이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입가에 껄렁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자, 자, 이렇게 서 있지만 말고, 다 같이 가서 식사라도 하자. 나 배고파 죽을 것 같은데.”

        

       “너는…….”

        

       앨리스가 제이크를 흘겨보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보았다. 내 표정에서 뭔가를 읽기라도 했는지, 앨리스는 금방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응, 뭐, 그래.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우리 모두 오전 내내 열심히 일했으니까. 슬슬 배가 고파질 타이밍이긴 하네.”

        

       ……정말이지, 대체 어떻게 표정을 읽어대는 건지 전혀 모르겠네.

        

       *

        

       “괜찮겠어? 오후는 그냥 쉬어도 되는데.”

        

       오후, 다시 의뢰를 수행하기 위해 무장을 갖추고 나온 나를 보고 앨리스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괜찮습니다.”

        

       명상이라는 것을 배우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에 클레어에게 들었던 말대로, 잠을 그렇게 많이 자지 못한 몸인데도 명상으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 조금은 더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피로가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점심 식사 후 방으로 돌아가 몸을 한 번 깨끗이 씻은 뒤 침대 위에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고 나니 에너지 음료라도 마신 것처럼 피로가 한 번 뒤로 물러나는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을까?”

        

       옆에서 클레어도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 할 일은 마쳐야 하니까요. 성적에도 반영되는 일이니—”

        

       “아니.”

        

       내가 말하는 와중에, 어느새 우리 근처에 와 있던 제니퍼가 말을 끊어버렸다.

        

       “너의 평가 점수는 만점으로 해주겠다. 공식적인 의뢰를 수행한 것은 아니지만 병사로서 누구도 해내지 못 할 일을 해냈으니까.”

        

       “…….”

        

       정작 그렇게 말하는 제니퍼의 얼굴은 복잡했다.

        

       내가 가서 적장의 머리를 날리겠다고 말했을 때도 어딘가 석연찮은 표정을 지었었다. 이전에 검성의 오두막에서 나에게 의뢰를 하던 시원한 표정과는 조금 달랐다. 그때도 사실은 내가 진짜로 할 줄 몰랐던 것일까.

        

       아마 그렇겠지. 전장에서 명예를 찾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사였으니까.

        

       “그러니 오후에는…… 아니, 내일까지 쉬어도 좋다. 아카데미에는 내가 책임지고 설명하도록 하지.”

        

       에이브러햄이라면 아마 충분히 이해해줄 것 같기는 했다.

        

       “그렇다면 이건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안 그래도 조용하던 내 주변이 더욱 조용해졌다.

        

       “실비아?”

        

       앨리스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며 물었다.

        

       “……언니?”

        

       클레어의 입에서는 결국 그 단어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그런가.”

        

       나의 말을 들은 제니퍼는 눈을 살짝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작게 내쉬었다.

        

       “학생의 의사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겠지. 그저…… 감사한다. 이건 병사들도 함께 전하는 감사 인사다.”

        

       제니퍼가 허리를 숙였다.

        

       “……그렇습니까.”

        

       거기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나는 그렇게만 말하고 말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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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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