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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철의 방패가 군림한 다음부터.

       

       

       기드온은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기존에 의뢰는 의뢰 자체에만 랭크가 매겨졌다면. 지금은 영웅들에게도 각각 랭크가 적용되어 각 랭크에 맞는 의뢰만 수락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즉, A랭크 영웅은 A랭크 이하의 의뢰를 수락할 수 있으며. 반대로 B랭크 영웅은 A랭크의 의뢰를 수락할 수 없다. 당연히 수많은 영웅들이 크게 반발했다.

       

       

       왜 더 약한 녀석이 나보다 더 높은 랭크냐. 이건 랭크를 빌미로 영웅들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개수작이다. 그 외 기타 등등, 그럴듯한 명분은 꽤나 많았다.

       

       

       하지만 랭크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신뢰였다. 기존에는 수틀리면 의뢰인이고 뭐고 전부 죽여버리고. 금품 같은 물건을 갈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부터 바로 잡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입들이 멋 모르고 높은 의뢰를 받았다가 전멸하는 것도. 랭크를 도입하면서 막을 수 있었다. 덕분에 영웅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호응을 받으면서 영웅 랭크는 기드온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지금은 그 반발하는 목소리조차. 이제는 들리지 않고 있었다.

       

       

       이럴 거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반대했는지 몰라.

       

       

       지크는 한숨을 내뱉으며 길드에 걸린 게시판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지금 그녀가 노리는 것은 A랭크 의뢰였다. 그리고 마침 쓸만한 의뢰를 발견한 그때.

       

       

       “뭐야? 어디 갔어?”

       

       

       분명히 괜찮은 A랭크 의뢰가 눈앞에 걸려있었는데. 손을 뻗은 그 순간,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지크는 당황하며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느려터졌네, 지크.”

       

       

       다행히 의뢰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눈보다 빠르게 먼저 낚아챘을 뿐. 그리고 낚아챈 의뢰서를 약올리는 것처럼 앞에서 흔들거리는 소년이었다.

       

       

       예전과 다르게 키가 상당히 컸으며. 보라색 머리카락은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아래에는 검은색 갑옷과 두 자루의 검을 차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디에고. 언제 돌아왔냐?”

       

       

       “이틀 전에.”

       

       

       “그런데 오늘 또 나간다고?”

       

       

       “벌 수 있을때 확실하게 벌어야지.”

       

       

       “안녕~ 지크. 오랜만이야.”

       

       

       디에고의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헤르스와 사샤의 모습도 보였다. 특히 사샤는 동성 친구와 재회가 반가운 모양인지. 아예 지크의 손까지 잡고 있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네. 한 명만 빼고.”

       

       

       “왜 거기서 날 빼는 건데?”

       

       

       “넌 이 새끼야.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누구는 마음에 들었냐?”

       

       

       5초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서로 으르렁거리는 디에고와 지크의 모습에 사샤는 어떻게든 말리려고 하고 있었고. 헤르스는 익숙하다는 듯이 그냥 넘어갔다.

       

       

       “그만둬, 사샤. 애초에 저 녀석들은 친해질 수가 없는 부류야.”

       

       

       오히려 헤르스는 헛된 노력을 하고 있는 사샤를 말리면서 확실하게 말했다. 그 말대로, 디에고와 지크는 애초부터 서로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관계였다.

       

       

       둘 다 길드의 최고가 되어서. 마스터에게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겠다는 목표가 있으니까. 물론 당장 실적으로만 보면. 지크가 판정승이긴 하지만 말이다.

       

       

       뭐, 그래도.

       

       

       서로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악우에 가까운 사이라고 할까. 일단 경쟁이라고는 하지만. 선의의 경쟁이니, 이런 관계도 나쁘진 않을 터.

       

       

       “그거 가져가봤자 A랭크 의뢰 해결수는 내가 더 많은데? ”

       

       

       “응~ 계속 그렇게 방심하고 있어라. 내가 바로 따줄테니까.”

       

       

       “그 실력으로? 어림도 없지.”

       

       

       “…….”

       

       

       진심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러나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진짜 무기까지 뽑을 기세였기에. 헤르스는 사샤와 함께 황급히 디에고를 끌고 나갔다. 지크는 바로 디에고에게 소리쳤다.

       

       

       “너는 친구들에게 감사해라! 안 그랬으면 진작 나에게 죽었어!”

       

       

       “내가 할 소리다. 이 새끼야!”

       

       

       “자자, 그만그만. A랭크 의뢰 해결하러 가야지.”

       

       

       디에고 일행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지크는 한숨을 내쉬며 게시판에 남은 의뢰를 확인했다. 뭐라고 할까, 딱히 마음에 확 와닿는 재밌는 의뢰는 없었다.

       

       

       “하여튼 디에고 그 새끼는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니까.”

       

       

       “또 왜 그렇게 화가 난 거냐.”

       

       

       “마, 마스터?!”

       

       

       그러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지크는 화들짝 놀라면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하얀색으로 반짝거리는 은색 장발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거기 있었다.

       

       

       “그, 그게. 디에고가 자꾸 짜증 나게 속을 긁어서…….”

       

       

       “시비는 먼저 네가 걸지 않았느냐.”

       

       

       “나름대로 안부 인사라고 생각해서…….”

       

       

       “씁.”

       

       

       “죄, 죄송합니다. 마스터.”

       

       

       결국 지크는 버티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서 사과했다. 그런 지크를 바라보며 아이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어렸을 때는 나름대로 귀여웠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마스터! 혹시 가시고 싶은 의뢰 있으세요?”

       

       

       아이작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크는 아이작에게 달라붙으며 게시판을 가리켰다. 지크의 말에 아이작은 시선을 게시판으로 옮겼다. 어디 보자…….

       

       

       “A랭크 의뢰는 들어오기 무섭게 나가는군.”

       

       

       “경쟁이 빡세요. 특히 최근에는 더더욱.”

       

       

       “하긴, 철의 방패는 대다수가 A랭크 영웅들이니.”

       

       

       현재 철의 방패에 소속된 영웅들은 단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A랭크 영웅으로 인정받았다. 극소수의 사람들은 부정 행위를 저지른 게 아니냐 의심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손쉽게 반박이 가능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길드원들이 몸소 A랭크에 걸맞은 실력을 증명했다는 것. 5년 동안 사냥한 마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크는 전쟁 중이던 두 국가의 사이를 중재하여 평화 협정을 이끌어낸 실적까지 있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아주 거대한 두 번째 이유가 있으니.

       

       

       “마스터도 오랜만에 A랭크 의뢰를 해결하고 싶으셨을 텐데.”

       

       

       “…….”

       

       

       정작 철의 방패 마스터 아이작 실버테르의 랭크가 B랭크였다는 것이다. 당연히 실력으로나, 실적으로나. 아이작 실버테르의 랭크는 A랭크. 그 이상이지만.

       

       

       문제는 영웅 랭크의 규정에 있었다. 기존에 어떤 업적을 세웠든, 무조건 영웅 랭크에 걸맞은 시험을 합격한 영웅들만 그에 해당하는 랭크를 가질 수 있다.

       

       

       이는 기존에 약육강식의 논리를 아직도 들이밀었던 기존 세력에게.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아이작이 직접 정한 규칙이었다.

       

       

       [기드온에서 영웅 노릇을 하려면 자격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어지간한 문제는 대화를 통해서 타협점을 찾았던 아이작이지만. 영웅 랭크에 관련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았다. 그렇게 영웅의 시련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웅의 시련.

       

       

       실력과 신뢰를 증명하는 시험으로. 각 랭크에 알맞은 시련이 준비되어 있으며. 그 시련에 합격한 자만이 기존보다 더 높은 랭크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다.

       

       

       그러나 정작 아이작은 B랭크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이게 신의 한수가 되어서 철의 방패에 더 큰 입김을 불어넣었다. 부정 행위라고?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

       

       

       정작 우리의 마스터는 B랭크에서 머물고 있는데? 덕분에 할말이 없어진 반대파는 영웅 랭크와 영웅의 시련에 트집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지크는 떠올렸다.

       

       

       [마스터, 어째서 A랭크로 승급하지 않으신 겁니까?]

       

       

       마스터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승급하고도 남을 텐데. 어째서 B랭크에서 머물고 계신 걸까. 아니, 그 이유를 이미 지크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모를 수가 없다.

       

       

       길드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물론 실력만으로 따지면 철의 방패는 모두가 A랭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반대파에게 부정 행위라는 의혹을 쥐어준다.

       

       

       설령 100% 결백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마스터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스스로 B랭크에 머무는 것을 선택하였다. 어차피 랭크가 낮아도 아는 사람들은 전부 다 아니까. 아이작 실버테르의 강대함을.

       

       

       [사람을 돕는 것에 크고 작음은 없지 않겠느냐.]

       

       

       그 깊은 뜻을 겨우 이해할 수 있었던 지크는 감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히 랭크를 가지고 남들과 비교까지 했었던 자신이 부끄러워 질 정도로 말이다.

       

       

       ‘마스터, 역시 저는 아직도 마스터에게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안 그래도 높았던 존경심이 더더욱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모두의 생각대로. 아이작은 길드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한 게 맞을까?

       

       

       영웅의 시련은 영웅의 지식을 시험하는 지식의 시련과 힘을 증명하는 힘의 시련이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쉽게 말해 필기와 실기로 나눠놨다고 볼 수 있다.

       

       

       ‘씨발. 필기 시험에서 떨어졌어.’

       

       

       그렇다.

       

       

       정작 아이작은 자신이 만든 시련에서. 그것도 필기에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아무리 원작 지식이 있다고 하지만. 그게 이곳 세계의 모든 지식인 것은 아니다.

       

       

       당연히 제대로 공부조차 하지 않은 아이작으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문제들이 가득했고.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철의 방패 마스터인데. 그냥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기드온에서 영웅 노릇을 하려면 자격을 증명해야만 한다. 그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이렇게 너무나도 강하게 으름장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얄짤없이 지식의 시련에서 탈락한 아이작은 결국 B랭크가 되어버린 것이다.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낀 아이작은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이 의뢰가 좋겠군.”

       

       

       “검은 늪의 늑대?”

       

       

       “아무래도 이종족과 인간들의 갈등인 모양이다.”

       

       

       성공적으로 주제를 돌린 아이작은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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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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