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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결행일은 7월 14일. 

       

       그렇다면, 그 전까지 일행이 해야 하는 일이란 무엇인가. 타라와 니오레가 갈피를 잡기에는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정확히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가 없으니, 떠오르는 생각이라 봐야 미리 수를 줄여놓자는 정도.

       

       그래서 베네트는 입을 열었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을 기억하나? 조사원이 발견했다던 낙인.”

       

       [⋯⋯새겨져 있던 거 말이죠?]

       

       니오레는 아브라함의 이마에도, 라는 말은 생략했습니다. 그럼에도 뜻은 전해졌는지, 타라의 표정이 잠깐 촛불처럼 흔들렸습니다. 

       

       “낙인이 새겨진 위치와, 지금까지의 정황을 고려하면. 내 생각에는⋯⋯ 이러한 형태의 마법진을 준비하는 것 같다.”

       

       베네트는 지도를 꺼내, 그 위에 선을 덧그렸습니다.

       

       

       

       그러자 낙인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겹치네?”

       

       [우연이라기에는 공교로울 정도예요.] 

       

       “도시 전역에 낙인을 남겨 구축하는 거대 마법진. 은의 황혼 교단은 이것으로 신을 불러내려고 할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준비 기간에 해야 할 일은, 이 마법진을 부수는 것.”

       

       베네트의 예상이 맞다면, 저들이 거대 마법진을 숨겨 둔 방식이 흑마법사들과 같다면. 도시에 남겨진 낙인은 각 포인트에 하나씩 여덟 개. 마법진의 기능 정지를 위해서는 적어도 50% 이상을 훼손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적어도 네 개 이상의 낙인을 지워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손가락으로 지도상의 포인트를 짚어내는 베네트를 보며, 타라는 고개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마법진이라는 게 이런 방식으로도 작동할 수 있는 거야? 점 여러 개 찍어 놓고, 이렇게 이으면 마법진이라고 우기는 꼴이잖아.”

       

       “각 낙인과 낙인 사이를 마력으로 잇는 거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선을 덧그리는 거지. 그런 식으로 직접 작동하는 걸 본 적도 있으니까, 토 달지 마라.”

       

       “어디서 이런 걸 봤는데⋯⋯?”

       

       “⋯⋯⋯⋯.”

       

       베네트는 시선을 피했습니다. 대답해 주기 싫다는 티를 풀풀 내자, 타라는 딱히 캐물으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까다로운 척을 해도, 결국 자신을 신경 써주고 있는 그를 어느 정도 믿기 때문에.

       

       [⋯⋯⋯⋯.]

       

       반면, 니오레는 지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뭔가 발견했나?”

       

       [아뇨, 어쩐지. 이 낙인의 모양이요. 염소를 닮지 않았나요?]

       

       “⋯⋯어디가?”

       

       [여기, 여기가 눈이고.]

       

       니오레는 화이트보드에 찍찍 선을 그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조악하게 그려진 염소의 모습. 타라는 감탄을 터트렸습니다.

       

       “⋯⋯너 그림 되게 못 그리는구나?”

       

       “아니, 시간이 없으니까 대충 그렸겠지. 의미는 통했지 않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린 거예요!]

       

       

       

       니오레는 부끄럽다는 듯, 염소 그림을 소매로 문질러 지워버렸습니다. 베네트는 염소 그림의 모습이 어쩐지 신경이 쓰여,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분명 언급이 있었던 것 같아서.

       

       떠올려내면 불쾌한 기억이었지만. 아브라함이 번제된 그 순간에, 피로 적힌 글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흠 있는 암컷 염소를 내려주셨으니, 우리들은 마땅히 감사하며 바치옵나이다.’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서, 베네트는 니오레에게 물었습니다. 정말로 낙인과 마법진의 심볼이 염소를 빗댄 것이라고 한다면, 마법적으로 큰 의미가 있을 테니까.

       

       “그 부왕(副王)이라는 존재의 상징이 염소인가?”

       

       

       [아뇨. 하지만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긴 해요. 또 다른 외신 중에는 ‘광기를 낳은 검은 염소’라고 일컬어지는 분이 계신데, 이분은 부왕의 아내로 여겨지거든요.]

       

       

       “아내⋯⋯?”

       

       “그쪽도 멀쩡한 신은 아니겠군. 이름부터 불길하고⋯⋯. 아내라면, 둘 사이에 자식도 있는 건가?”

       

       [네. 대표적으로는 썩어들어가는 쌍둥이 신이 있는데⋯⋯.]

       

       끔찍하고 모독적인 존재에 대한 지식을 줄줄 적어내려는 니오레의 입을, 베네트는 손으로 눌러 조용히 막았습니다. 들어서 썩 유쾌할 것 같지도 않았고, 도움도 안 될 것 같았으므로.

       

       물론 니오레가 손을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니오레 설명 그만해’라는 뜻을 이해시키는 데에는 충분했습니다.

       

       베네트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일행의 행동 방침은 정해졌습니다. 

       

       우선은, 도시 곳곳에 새겨진 낙인을 지워 마법진을 망가뜨릴 생각이었습니다. 설령 은의 황혼 교단 전부를 전멸시키더라도, 악신의 강림이 성공하는 순간 패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강림을 교두보 삼아, 악신은 그들의 세계에도 비집고 들어올지 모를 일입니다. 우선적으로 막아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연구 자료는 비밀 안가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알파 값을 계산해 내면 외신을 역소환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 줄 테지만, 애초에 강림 자체를 막아내면 사용할 일이 없을 터.

       

       그러니 연구 자료를 가공할 시간에 마법진을 망가뜨리는 것을 우선하자는 게 베네트의 의견이었습니다.

       

       타라는 그런 베네트를 보고 괜히 찔러봤습니다.

       

       “우리 세계도 아닌 다른 세계인데,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있냐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는 일이다.”

       

       “그럼 그 이유라는 걸 말을 해 보던가.”

       

       “⋯⋯⋯⋯.”

       

       베네트는 조개처럼 입을 딱 다물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까 말까, 그 양자택일의 사이에서. 어느 쪽을 확실히 선택하지도 못한 채로. 

       

       “그러면 어디부터 도는 게 좋을까?”

       

       

       [카터 거리의 낙인부터 지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바로 코앞에 있는 걸 노리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그녀들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은근슬쩍 찔러보는 느낌은 있어도, 깊숙이 들어가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미 정체를 들켜버린 건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니면, 이미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더 알아볼 필요도 없다든가.

       

       하지만 그녀들의 눈동자를 보면.

       

       “왜 멍하니 있어? 베네트. 네 계획이잖아?”

       

       [우리 힘내서 성공시켜 봐요.]

       

       호의.

       

       그런 뜨뜻미지근한 침묵이 배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베네트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상하게도.

       

       일행이 캐묻지 않으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이 상황은, 베스트였습니다. 리스크는 없고 리턴뿐입니다. 이대로만 가도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것 같은, 말하고 싶은 기분은 점점 커져만 가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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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0일.

       

       “감시하는 광신도들은?”

       

       [주문으로 먹어버렸어요.]

       

       “⋯⋯⋯⋯.”

       

       카터 거리 뒷골목에 새겨진 낙인 제거 완료.

       

       

       

       ※7월 11일.

       

       

       “방어 마법 좀 쓰라니까!”

       

       “⋯⋯아, 싫다고!”

       

       아파트 밀집 구역에서 일반 시민으로 위장한 광신도에 의해 습격당함. 1시간가량의 전투 끝에 교전에서 승리. 타라가 오른쪽 발목이 비틀리는 부상을 입음. 베네트가 타라를 들쳐 업고 운반.

       

       “자꾸 몸 흔들지 마라, 좀.”

       

       “불편해서 그래, 불편해서. 편한 자세를 좀 잡으려고.”

       

       “네가 나를 지독하게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아파트 밀집 구역에 새겨진 낙인 제거 완료. 

       

       

       ※7월 12일.

       

       “⋯⋯노출도가 늘어나니까, 광신도들 공격이 좀 빗나가는 것 같아.”

       

       [네?]

       

       “아니, 이상한 얘기가 아니라. 아까 싸우는데, 가슴 쪽 옷이 찢겼거든. 그랬더니 광신도들 시선이 자꾸⋯⋯ 앞에 내 주먹이 날아오는데도 다른 길로 새더라구. 가슴골을 좀 더 파 볼까⋯⋯?”

       

       [그냥 신성 주문으로 막아내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지나가던 베네트에 의한 언어폭력.

       

       “차라리 알몸으로 싸우지 그러나.”

       

       “⋯⋯시끄러워 베네트!”

       

       미스캐토닉 대학에 새겨진 낙인 제거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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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슬럼가는 은의 황혼 교단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던 듯,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난이도가 두 단계는 높았습니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고 길이 복잡하여, 낙인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조차도 여의치 않았던 터라.

       

       일행은 착실하게 히트 앤 런으로 전력을 깎아나가며, 조금씩 탐색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공격하는 입장이 되니, 타라의 복장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걸어가기만 해도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어그로를 확 끌어모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또 한바탕 싸워 수를 줄인 뒤, 일행은 잠깐의 휴식을 위해서 근처 건물로 숨어들었습니다. 

       

       기울어진 십자가와, 대부분 박살 난 의자. 돈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뜯어간 약탈의 흔적과, 그 혼란의 와중에도 누군가가 건드린 흔적이 없는 목재로 이루어진 방.

       

       [종교 시설 같죠?]

       

       “그런 모양이군.”

       

       “아, 저거⋯⋯ 고해소 아냐? 생긴 게 조금 다르지만.”

       

       타라는 폐교회에서 가장 멀쩡한 것을 가리켰습니다. 양 옆에 문짝 두 개가 달린, 목재로 이루어진 작은 방. 신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하고 용서받으려는 장소.

       

       타라는 베네트의 등을 툭툭 밀어내며 말했습니다.

       

       “야, 베네트. 들어가.”

       

       “뭐?”

       

       “하루 종일 얼굴 찌푸리고 있지 말고 들어가라고. 고해성사해 줄게. 니오레도 이리 와.”

       

       [네.]

       

       

       

       타라와 니오레는 손을 잡고 고해소의 사제실로 들어갔습니다. 베네트는 머뭇거리다가, 문을 열고 고해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사람 하나 앉을 공간만 있는 좁은 방.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뚫린 구멍이 있고, 두꺼운 커튼으로 구멍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베네트는 고해성사를 받아보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적막.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한 방 안에서는, 작은 소리도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커튼 너머에서 옷이 사부작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작게 웃는 소리도.

       

       그러다, 커튼 아래로 새하얀 손이 나타났습니다.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누구 손이게?”

       

       “⋯⋯니오레 손. 보통 고해성사가 이렇게 돌아가나? 사제는 들은 이야기를 타인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고 들었는데.”

       

       “니오레도 사제야. 성녀 특권으로 방금 임명했어.”

       

       삐져나온 손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습니다. 

       

       

       커튼 너머에서 성녀가 말했습니다.

       

       “손 내밀어.”

       

       “⋯⋯왜?”

       

       “니오레 말도 들어야 할 거 아냐. 니오레 사제님은 네 손바닥에다가 써서 좋은 말씀 해 주실 거야.”

       

       “⋯⋯⋯⋯.”

       

       베네트가 테이블에 손을 올린 채로 머뭇거리자, 타라의 손이 휙 나타나서, 베네트의 손을 잡고 끌고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니오레의 부드러운 손가락이 베네트의 손바닥을 간질거리며 글자를 적었습니다. 그 와중에, 타라는 베네트의 검지를 접었다 폈다 하며 장난을 쳤습니다.

       

       

       [잘 들려요?]

       

       

       “⋯⋯그래. 들린다. 그리고 남의 손 가지고 놀지 마, 타라.”

       

       “굳은살 느낌 이상하다. 니오레도 만져볼래?”

       

       “⋯⋯⋯⋯.”

       

       베네트는 잡혀가지 않은 자유로운 왼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습니다. 열기가 홧홧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청춘이었으니까. 여자애들이 자신의 손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는 상황은, 부끄럽고도 간질거리는 것이었습니다.

       

       타라는 베네트의 엄지를 갖고 놀다가, 대뜸 말했습니다.

       

       “자, 하고 싶은 말 해 봐.”

       

       “그게 대뜸 무슨 소리냐.”

       

       “성녀 업무의 70%는 상담이야. 기부금 내고 죄를 사함 받으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거든. 네 얼굴, 돈다발 들고 나를 찾아올 것 같은 표정이었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 표정이셨어요.]

       

       “⋯⋯⋯⋯.”

       

       표정 관리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괴물 같은 눈썰미의 니오레에게 들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타라에게 걸렸다는 건. 표정이 무너지기는 했다는 의미일 터.

       

       어쩌면 긴장이 풀려버린 건지도 모릅니다.

       

       처음, 어울리기 전이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 이 상황도 무척이나 위험하게 받아들였을 겁니다. 저 커튼 너머에서 단검을 들어 올리고 찍으면, 베네트의 오른손은 잘리고 시작하게 될 테니까.

       

       정이 쌓이고 쌓여서, 그녀들의 웃음과 울음을 전부 보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녹아버리고 만 거라면. 

       

       그렇다면 더더욱 두려움은 커집니다. 자신이 흑마법사였다는 걸 입에 담았을 때, 이 관계가 무너져버린다면⋯⋯.

       

       “⋯⋯하.”

       

       “말 안 할 거야?”

       

       “아니, 해 주지. 듣는 게 소원이라면.”

       

       “끝까지 허세는⋯⋯ 야, 나는 안 들어도 상관없거든?”

       

       챱챱. 타라는 베네트의 손바닥을 때려댔습니다. 그게 꽤 재미있어 보였는지, 니오레도 가볍게 한 대 때리고 지나갔습니다.

       

       베네트는 웃음을 터트리고, 잠깐 고민하다가. 내뱉었습니다.

       

       “나는 흑마법사다. 아카데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파견된.”

       

       “⋯⋯⋯⋯응?!”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토해내고 싶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긴 이야기는 아닐 거다. 입에 담고 싶은 행복했던 지난날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까먹어 버렸거든.”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일생을 증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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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베네트의 회고

       

       통나무로 만들 수 있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오두막을 떠올려 봐라. 그런 오두막 수십 채가 무질서하게 모여 있는 모습도.

       

       그리고 그 옆에 덩굴이 무성한 숲을 심어둘 수 있다면, 너희들은 내 고향을 떠올리는 데 성공한 거다.

       

       나는 사냥꾼들이 모여 만들어진 숲 인근의 마을에서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부모님 또한 사냥꾼이었고, 좋은 분들이셨지만, 너무 일찍 가셨지. 숲 초입으로 기어 나온 오우거에게 살해당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부모님에게 배운 기술로 토끼나 작은 새를 잡아가며 연명했다. 하루 사냥을 놓치면 쫄쫄 굶어야 했지만, 여동생과 함께 있으면 버틸 수 있었어. 

       

       구해 온 사냥감이 둘 다 먹기에 모자라면, 여동생이라도 배불리 먹였다. 사냥을 해 오는 쪽의 영양 보충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더군⋯⋯. 그럴 수 없었어.

       

       여동생이 배가 부르면 나도 배가 불렀다. 어떻게든 내 동생만큼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지.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에게 그렇게 배웠으니까. 가족은 서로를 지켜주고, 위해주는 존재라고.

       

       내가 너를 위해 헌신하고, 네가 나를 위해 헌신하면. 서로의 삶은 풍성해지며 기쁨으로 넘쳐흐르게 된다고 말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나는 정말로 행복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운 겨울이 한 번 있었다. 그래. 그때가 맞아. 많은 사람이 얼어 죽었던 해였지. 여동생은 폐병에 걸렸고, 나는 사냥감도 없는 겨울에 돈을 벌어야 했다.

       

       여동생은 마을의 치료사이자 연금술사에게 맡겨 뒀다. 그는 주머니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의 은화를 가져오면 치료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 

       

       눈 덮인 산을 뒤져가며 겨울잠 자는 짐승들을 찾았다. 돈을 버는 족족 연금술사에게 보냈고. 이따금, 여동생의 얼굴을 확인하러 가 볼까 싶었지만.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으니 참았다.

       

       그러다가 치료 시기가 늦어버리면 큰일이 날 것 같았으니까.

       

       마침내 연금술사가 제시했던 모든 금액을 지불하고, 그의 집으로 갔을 때. 연금술사는 어젯밤에 여동생의 폐병이 심해져서 죽었다고 말했다. 시체는 감염이 우려되니 태웠고, 네가 보낸 돈의 절반은 돌려주겠다면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연금술사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그의 눈알을 도려내고, 왼쪽 팔을 반쯤 저며내니 그제야 실토하더군. 내 여동생을 한참 전에 팔아넘겼다고 말이다. 나는 여동생을 되찾기 위해 노예 상인을 추적하게 됐다.

       

       연금술사? 당연히 죽였다.

       

       상인을 죽이고, 마부를 죽이고, 연관 있는 사람들을 죽여 내며 거슬러 올라갔지. 추적의 끝에는 우화에 다다른 흑마법사가 있었다.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지. 나는 패배했고, 잡혔다. 그는 내 얼굴 반쪽을 횃불로 지져대면서 말하더군. 내 여동생은 어떤 위대한 흑마법사의 육신으로 사용될 거라고. 

       

       커다란 제단에 내 여동생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이름을 아무리 외쳐도 깨어나지 않았지. 흑마법사가 마법을 발동시키자, 짙은 녹색 빛이 번져나갔다. 

       

       여동생이 눈을 떴을 때, 나는 그녀가 더 이상 내 여동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공포 먹는 시체꽃』이 여동생의 몸을 차지했던 거다.

       

       나는 거의 미쳐서, 증오와 원망을 토해냈던 것 같다.

       

       그녀는 내 원망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거래를 제안했다. 자신의 계획을 도와주면 여동생의 몸을 돌려주겠다고 말이다. 나는 그렇게 흑마법사가 됐다. 그들의 비원을 위해서 살았지.

       

       『공포 먹는 시체꽃』은 아카데미의 부정적인 감정을 양분 삼아 『악몽 소환』이라는 마법을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불러내려는 건, 이 세계의 악신이다.

       

       심볼을 주축으로 그려내는 거대 마법진, 미치광이 마법사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 모든 것이 그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여기서 악신의 강림을 막아내지 못하면.

       

       아카데미에 악신이 내려앉을지도 모른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다. 

       

       ===============================================================

       

       

       [그럼, 저희와 함께 마법사의 뒤를 쫒고, 강의에 참여한 건⋯⋯.]

       

       

       “중간에 방해 공작을 펼칠 생각이었다. 황위 다툼은 아카데미에 큰 혼란을 가져다줄 테니까.”

       

       “⋯⋯⋯⋯.”

       

       베네트는 눈을 조용히 감았습니다.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타라는 베네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가볍게 쥐었습니다. 그리고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너, 남의 영혼은 쓴 적 없지?”

       

       “⋯⋯⋯⋯.”

       

       “흑마법사들은 타인의 영혼을 사용하면 그 잔재가 남아서, 영혼이 조금씩 물들거든. 그래서⋯⋯ 누더기처럼 느껴져. 너는 깨끗했고.”

       

       “⋯⋯그런 것도 보이는 건가.”

       

       “오래 같이 있어야 보여.”

       

       타라는 양손으로 베네트의 손을 감싸고. 손등을 두드리며. 눈을 감고 잠깐 생각을 정리한 뒤에.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습니다.

       

       “아마, 흑마법사를 위해서 사람을 죽였겠지?”

       

       “⋯⋯그래.”

       

       “그런데 내 생각에는. 너는⋯⋯ 피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피했을 것 같아. 이것저것 이유를 붙여가면서. 죽이지 않는 편이 효율적이니 뭐니 하면서. 내 생각이 틀린가?”

       

       “틀렸다.”

       

       “아냐, 내 생각이 맞아.”

       

       “⋯⋯⋯⋯.”

       

       베네트가 멍하니 굳어있는 사이에, 성녀 타라는 선고했습니다.

       

       “자신의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가엾은 청년의 죄는⋯⋯ 세계를 구하는 것으로 갈음하도록. 알겠지?”

       

       “터무니없는 사면 조건이군⋯⋯ 더, 의심하거나 하지는 않는 거냐?”

       

       

       [우리는 베네트를 충분히 오래 봐 왔는걸요. 고생했어요. 지금까지.]

       

       

       베네트의 손 위로 니오레의 손도 얹어졌습니다. 겹친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오랜 겨울을 녹이는 듯했습니다.

       

       “이중 스파이인 걸로 해, 베네트. 성녀가 이렇게 커버 쳐 주면 이단 심문관한테 잡혀갈 일은 없을 거야.”

       

       “⋯⋯⋯⋯.”

       

       “이걸로 던전에서의 빚은 갚은 거다?”

       

       타라는 손을 풀고 고해소에서 나왔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앞에서 베네트가 도와줬던 만큼, 이번에는 자신이 돕고 싶었던데다가. 가족이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 벌인 일이 커다란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걱정이 있다면, 잃어가는 신성력. 이러다가 성녀 자리를 박탈당하게 되면 베네트의 커버를 쳐줄 수 없을 텐데. 그러면 손잡고 도망이라도 가야 하나.

       

       니오레도 나와서 옆에 섰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베네트를 기다렸습니다. 5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그는 멀끔한 얼굴로 나왔습니다.

       

       “울었어?”

       

       “나는 너처럼 울보가 아니다.”

       

       “운 것 같은데. 니오레, 어떻게 생각해?”

       

       

       [베네트를 위해서 비밀로 해 둘게요!]

       

       그게 대답이잖냐. 베네트는 속으로 푸념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롱소드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앞으로 반 템포 빠르게 걸어나갔습니다.

       

       “아직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 얼른 움직여야 해.”

       

       “무안하니까 딴청은. 니오레, 갈까?”

       

       [네.]

       

       고해성사 이후, 조금씩 심경이 바뀐 부분이 있는 것인지. 일행은 조금 더 합이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료에게 온전히 등을 맡길 수 있게 된다면, 전술의 폭은 훨씬 늘어나게 되니까.

       

       약간의 부상은 입었지만, 일행은 슬럼가의 공용 빨래방에서 낙인을 발견해,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슬럼가에 새겨진 낙인 제거 완료.

       

       ===============================================================

       그리고── 7월 14일.

       

       이사악은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반올림 때려서 7천자! 이래도⋯⋯ 연참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마이 프렌즈!!
    사실 그냥 쓰다 보니까 불어난 거긴 한데요⋯⋯ 그래도!

    오늘 날이 참 춥습니다. 따땃하게 입으시구, 감기를 피하셔요. 그러면 자, 내일 또 만나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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