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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EP.74 EP.74

EP.74

       “응애. 나 아기 요나. 두 발로 못 걸어.”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요나야…몸이 다 회복됐으면 좀 내려와….”

       

       “시르다! 시르다!”

       

       엘리의 목에 한쪽 팔을 강하게 감고, 다른 팔을 붕붕 흔들며 항의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전신 슈트를 입은 엘리의 몸에 합법적으로 엉겨 붙을 기회는 흔치 않다.

       

       지금 최대한 뽕 뽑아야지….

       

       그런 이유로 엘리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여기저기 영역표시를 하는 것도 잠시.

       

       황혼을 삼키는 자의 표식을 비롯해 온갖 증거품을 바리바리 싸든 카렌이 조심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요나 님. 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라뇨? 뭐를요?”

       

       “뒤처리 말입니다. 신전에는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숨길지 알려주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아니라면 제 재량껏 처리하겠지만요.”

       

       “아, 그거라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싹 다 비밀로 하죠!”

       

       “예?”

       

       “카렌 심문관님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이단자들을 처벌하러 오신 거예요. 이안 심문관님을 살릴 방법은 축복…아니, 저주를 건 장본인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진짜 저주가 아니니 시전자를 죽여도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습니다만….”

       

       “알아요. 그냥 그만큼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는 설정이니 넘어가 주세요!”

       

       “설정…?”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렌을 향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혼자서라도 싸우러 다시 1층의 중앙까지 왔더니, 그곳에서 카렌 심문관님을 기다리고 있던 건 격렬한 전투의 흔적과 처음 보는 몬스터의 파편뿐이었던 거죠.”

       

       그리 말하며 가시나무 왕에게서 잘라낸 가시 중 하나를 카렌의 손에 쥐여줬다.

       

       “황혼을 삼키는 자는 모종의 방법을 사용해 지금껏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던 1층의 계층 수호자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지만, 의식으로 지친 나머지 정작 그 계층 수호자와 공멸한 거죠!”

       

       “예? 하지만 그럼 요나 님의 공적이 사라지게 되잖습니까.”

       

       “상관없어요. 제가 엘리의 목덜미를 할짝이며 짭조름하다는 생각을 하며 떠올린 건데 말이죠.”

       

       “요, 요나 너어!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기겁하며 몸을 흔드는 엘리. 그 흔들림에 맞춰 무게 중심을 조정하는 것으로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아내고서야 말을 이었다.

       

       “1층 계층 수호자의 소환 조건. 이건 알려져선 안 돼요.”

       

       “왜입니까? 제가 감히 여신님의 뜻을 헤아린다고 자신하는 것은 아니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추측한 바에 따르면 1층은 평범한 이를 모험가로 바꾸는 훈련소 같은 곳입니다.”

       

       “실제로 그런 곳 맞아요.”

       

       “오…여신이시여…아, 아무튼 계층 수호자를 정기적으로 토벌할 수 있다면 그만큼 모험가의 성장 폭이 커지니 여신께서 뜻하신 바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다만 아직 잘 모르시는 듯하니 말씀드리는데…제가 숨기고 싶은 건 계층 수호자의 유용함이 아니라 소환 조건이에요.”

       

       “대체 어떤 조건이길래 그러십니까?”

       

       눈을 끔뻑이는 카렌. 엘리와 리디아. 그리고 왜인지 이쪽을 향해 음흉한 눈빛을 보내오는 레몬과 애플마저 숨을 죽이고 내 말을 기다린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층의 모든 몬스터와 엘프의 시체. 강렬한 복수심. 그리고 세계수를 향한 진심 어린 기원이랍니다.”

       

       “…아.”

       

       그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표정을 굳힌 카렌.

       

       그래. 엘프의 시체가 소환 조건이라는 게 알려지면 분명 초보 엘프들의 목숨이 노려지는 상황이….

       

       “이해했습니다. 여신께 가야 할 신앙이 이미 죽은 신에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거군요.”

       

       “뎃?”

       

       “응. 이미 죽은 신에게 신앙을 바쳐봤자 돌아오는 건 공허뿐. 과거의 엘프들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은 거구나. 요나 장해.”

       

       “데뎃?”

       

       “엘프로서 저도 요나넴의 의견에 찬성함다.”

       “저희 세대 일은 아니라 전해 들은 것뿐이지만…보답 없는 기도에 매달리는 일은 천천히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고 했슴다.”

       

       “…….”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관점에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아니, 다들 엘프의 시체가 재료라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특히 레몬이랑 애플. 둘은 엘프잖아요.”

       

       “그치만 이미 엘프의 시체는 시중에 나돌고 있슴다. 즉, 이미 종종 노려지고 있단 소림다.”

       “무고한 피해자는 약탈자들의 손에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나오는 검다. 종족 상관없이 말임다.”

       

       “앗.”

       

       그렇다. 생각해 보면 엘프의 시체는 이미 고가에 거래되고 있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내가 소환 조건을 밝히건 밝히지 않건 엘프는 약탈자들의 최우선 사냥 대상이라는 소리다.

       

       공식적으로 사고팔려면 꽤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지만…세상에 꼭 공식적인 루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구나…레몬과 애플이 맨날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 것도 둘이 강제로 묶이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몸값이 비싸서 그랬던 거구나….”

       

       “저희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검까?!”

       “흠…나쁘지 않은 검다.”

       

       경악하는 레몬.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애플. 이에 더욱 크게 경악하며 거리를 벌리는 레몬.

       

       하여간 보고 있으면 질리지 않는 녀석들이란 말이지. 이번에 늦지 않게 도착해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조금 타이밍이 안 맞았다면…그때는 레몬과 애플의 시체로 계층 수호자를 소환했어야 했겠지.

       

       “어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엘리의 머리카락에 코를 깊게 묻었다. 그리고 때맞춰 미니 성역의 유지 시간이 끝났다.

       

       이미 몸은 다 회복됐으니 상관없…….

       

       “크헉!?”

       

       돌연 전신의 피가 들끓는 느낌과 함께 격통이 내달린다.

       

       “요나야?!”

       

       반쯤 포기하고 얌전히 나를 업던 엘리가 기겁하며 고개를 꺾었고, 그 시선을 받은 리디아가 즉시 포션을, 카렌은 신성력을 이용한 치유를 준비했다.

       

       그렇게 리디아가 내 턱을 잡고 입에 포션을 부으려는 순간.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쥐어짜 고개를 저었다.

       

       “됐, 어요…!”

       

       “고집부리지 마. 무슨 후유증일지 모르잖아. 일단 포션부터 마셔.”

       

       “아…뇨. 정말 괜찮아서 그래요.”

       

       “가시에 독이 있었어. 단검의 힘으로 전부 해독했다지만, 어쩌면 조금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 등을 쓸어주며 다시금 포션을 먹이려는 리디아. 하지만 이건 포션으로 어찌 될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권, 능….”

       

       “어?”

       

       가챠로 권능을 뽑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니까.

       

       체내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뒤바뀌는 감각. 잠깐 고통이 있긴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거다.

       

       스킬처럼 강제로 머리에 지식을 새기고, 몸을 최적화시키는 과정은 없으니까. 그저 권능이 영혼에 각인되는 잠깐만 참으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전신 마사지라도 받은 것처럼 개운함만이 남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권능의 사용법.

       

       “바실리우스.”

       

       권능의 이름을 입에 담자, 머리 위에 씌워지는 나무의 감촉.

       

       물푸레나무를 고리 모양으로 엮어 약간의 장식을 주었을 뿐인 디자인. 왕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투박하다.

       

       가시나무의 왕의 머리에 난 왕관에서 가시를 전부 베어내면 이런 느낌이려나.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라라.”

       

       그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풀 한 포기가 스르륵 성장하더니, 그대로 꽃을 피워낸다.

       

       마치 가시나무 왕이 등장하기 직전, 주변의 자연이 마구잡이로 성장하던 것과 비슷한 모습.

       

       다만 몸속에 퍼진 따스한 기운이 쑤욱 빠져나가 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조금 늘어 쓸만해진 마나를 소모한 것은 아니다.

       

       일전에 이안의 몸을 잠식한 왜곡된 축복을 흡수하고 정제하여 몸에 남은 순수한 신성력. 그것이 식물을 생장시킨 원동력이었다.

       

       아마 신성력 소모 없이도 식물을 빠르게 생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급속 성장은 힘들겠지.

       

       말 한마디로 꽃을 피워낸 모습에 주변이 경악하기 시작했다.

       

       “요나야? 이게 무슨…?”

       

       “세계수의 권능. 처음 봐.”

       

       “어찌됐건 미궁은 여신님이 직접 관리하는 곳. 이 또한 여신님의 뜻이겠지요.”

       

       “…정말 세계수님의 권능임다.”

       “이브 님을 제외하면 우리 엘프들에게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권능이 없지 않슴까?”

       

       쓸만하네.

       

       당장은 미약할지 몰라도, 조금 더 신성력을 쌓고 활용법을 연구하면 분명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신성력을 소모한 식물의 급속 성장 따윈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여느 권능이 그러하듯 내게 깃드는 순간 그냥 알게 된 사용법.

       

       지금처럼 권능을 실체화시키고, 신성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마치 조금 전의 식물을 성장시켰던 것처럼.

       

       …그리고 이 성장 부스트 효과는 모든 종류의 성장에 적용된다.

       

       평범하게 수련해 얻는 성취는 물론, 미궁에서 생환하며 주어지는 보상도 예외는 아니라는 소리.

       

       여타 권능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지닌다. 시나가 비교적 얻기 쉬운 원소 계열 신의 권능을 부려 작은 천재지변을 일으켰던 것처럼.

       

       하지만 바실리우스는 다르다.

       

       그 자체로는 별다른 힘이 없다. 하지만 내가 강해지고자 노력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큰 보상을 약속하는 권능.

       

       “그래서….”

       

       바실리우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왕을 뜻하는 말이었지.

       

       전형적인 왕의 귀환형 권능에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허벅지로 엘리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는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요나는 아가가 아냐. 왕이지”

       

       “아, 엘프는 왕을 모시지 않슴다. 엘븐포레스트는 400년 전부터 공화정임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왕은 필요 없는 검다! 혁명임다!”

       

       “…….”

       

       바로 폐위당했다.

       

       …생각해 보면 몰락 왕족이라는 것도 좀 느낌 있는 것 같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몰락이 붙으면 대부분 느낌있다고 생각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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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EP.74





       “응애. 나 아기 요나. 두 발로 못 걸어.”


       


       “그게 무슨 소리니 요나요나야…몸이 다 회복됐으면 좀 내려와….”


       


       “시르다! 시르다!”


       


       엘리의 목에 한쪽 팔을 강하게 감고, 다른 팔을 붕붕 흔들며 항의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전신 슈트를 입은 엘리의 몸에 합법적으로 엉겨 붙을 기회는 흔치 않다.


       


       지금 최대한 뽕 뽑아야지….


       


       그런 이유로 엘리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여기저기 영역표시를 하는 것도 잠시.


       


       황혼을 삼키는 자의 표식을 비롯해 온갖 증거품을 바리바리 싸든 카렌이 조심스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요나 님. 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어떻게라뇨? 뭐를요?”


       


       “뒤처리 말입니다. 신전에는 어디까지 말하고, 어디까지 숨길지 알려주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아니라면 제 재량껏 처리하겠지만요.”


       


       “아, 그거라면….”


       


       잠시 생각을 정리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싹 다 비밀로 하죠!”


       


       “예?”


       


       “카렌 심문관님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혼자 이단자들을 처벌하러 오신 거예요. 이안 심문관님을 살릴 방법은 축복…아니, 저주를 건 장본인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진짜 저주가 아니니 시전자를 죽여도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습니다만….”


       


       “알아요. 그냥 그만큼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는 설정이니 넘어가 주세요!”


       


       “설정…?”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렌을 향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혼자서라도 싸우러 다시 1층의 중앙까지 왔더니, 그곳에서 카렌 심문관님을 기다리고 있던 건 격렬한 전투의 흔적과 처음 보는 몬스터의 파편뿐이었던 거죠.”


       


       그리 말하며 가시나무 왕에게서 잘라낸 가시 중 하나를 카렌의 손에 쥐여줬다.


       


       “황혼을 삼키는 자는 모종의 방법을 사용해 지금껏 존재하지 않는 줄 알았던 1층의 계층 수호자를 불러내는 데 성공했지만, 의식으로 지친 나머지 정작 그 계층 수호자와 공멸한 거죠!”


       


       “예? 하지만 그럼 요나 님의 공적이 사라지게 되잖습니까.”


       


       “상관없어요. 제가 엘리의 목덜미를 할짝이며 짭조름하다는 생각을 하며 떠올린 건데 말이죠.”


       


       “요, 요나 너어!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


       


       기겁하며 몸을 흔드는 엘리. 그 흔들림에 맞춰 무게 중심을 조정하는 것으로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아내고서야 말을 이었다.


       


       “1층 계층 수호자의 소환 조건. 이건 알려져선 안 돼요.”


       


       “왜입니까? 제가 감히 여신님의 뜻을 헤아린다고 자신하는 것은 아니나,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추측한 바에 따르면 1층은 평범한 이를 모험가로 바꾸는 훈련소 같은 곳입니다.”


       


       “실제로 그런 곳 맞아요.”


       


       “오…여신이시여…아, 아무튼 계층 수호자를 정기적으로 토벌할 수 있다면 그만큼 모험가의 성장 폭이 커지니 여신께서 뜻하신 바에 도움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네요. 다만 아직 잘 모르시는 듯하니 말씀드리는데…제가 숨기고 싶은 건 계층 수호자의 유용함이 아니라 소환 조건이에요.”


       


       “대체 어떤 조건이길래 그러십니까?”


       


       눈을 끔뻑이는 카렌. 엘리와 리디아. 그리고 왜인지 이쪽을 향해 음흉한 눈빛을 보내오는 레몬과 애플마저 숨을 죽이고 내 말을 기다린다.


       


       잠시 뜸을 들였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1층의 모든 몬스터와 엘프의 시체. 강렬한 복수심. 그리고 세계수를 향한 진심 어린 기원이랍니다.”


       


       “…아.”


       


       그제야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표정을 굳힌 카렌.


       


       그래. 엘프의 시체가 소환 조건이라는 게 알려지면 분명 초보 엘프들의 목숨이 노려지는 상황이….


       


       “이해했습니다. 여신께 가야 할 신앙이 이미 죽은 신에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거군요.”


       


       “뎃?”


       


       “응. 이미 죽은 신에게 신앙을 바쳐봤자 돌아오는 건 공허뿐. 과거의 엘프들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은 거구나. 요나 장해.”


       


       “데뎃?”


       


       “엘프로서 저도 요나넴의 의견에 찬성함다.”


       “저희 세대 일은 아니라 전해 들은 것뿐이지만…보답 없는 기도에 매달리는 일은 천천히 죽음에 이르는 것과 같다고 했슴다.”


       


       “…….”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관점에 머리가 살짝 아파왔다.


       


       “아니, 다들 엘프의 시체가 재료라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특히 레몬이랑 애플. 둘은 엘프잖아요.”


       


       “그치만 이미 엘프의 시체는 시중에 나돌고 있슴다. 즉, 이미 종종 노려지고 있단 소림다.”


       “무고한 피해자는 약탈자들의 손에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나오는 검다. 종족 상관없이 말임다.”


       


       “앗.”


       


       그렇다. 생각해 보면 엘프의 시체는 이미 고가에 거래되고 있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내가 소환 조건을 밝히건 밝히지 않건 엘프는 약탈자들의 최우선 사냥 대상이라는 소리다.


       


       공식적으로 사고팔려면 꽤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하지만…세상에 꼭 공식적인 루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구나…레몬과 애플이 맨날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해있는 것도 둘이 강제로 묶이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몸값이 비싸서 그랬던 거구나….”


       


       “저희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던 검까?!”


       “흠…나쁘지 않은 검다.”


       


       경악하는 레몬.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애플. 이에 더욱 크게 경악하며 거리를 벌리는 레몬.


       


       하여간 보고 있으면 질리지 않는 녀석들이란 말이지. 이번에 늦지 않게 도착해 살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조금 타이밍이 안 맞았다면…그때는 레몬과 애플의 시체로 계층 수호자를 소환했어야 했겠지.


       


       “어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엘리의 머리카락에 코를 깊게 묻었다. 그리고 때맞춰 미니 성역의 유지 시간이 끝났다.


       


       이미 몸은 다 회복됐으니 상관없…….


       


       “크헉!?”


       


       돌연 전신의 피가 들끓는 느낌과 함께 격통이 내달린다.


       


       “요나야?!”


       


       반쯤 포기하고 얌전히 나를 업던 엘리가 기겁하며 고개를 꺾었고, 그 시선을 받은 리디아가 즉시 포션을, 카렌은 신성력을 이용한 치유를 준비했다.


       


       그렇게 리디아가 내 턱을 잡고 입에 포션을 부으려는 순간.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쥐어짜 고개를 저었다.


       


       “됐, 어요…!”


       


       “고집부리지 마. 무슨 후유증일지 모르잖아. 일단 포션부터 마셔.”


       


       “아…뇨. 정말 괜찮아서 그래요.”


       


       “가시에 독이 있었어. 단검의 힘으로 전부 해독했다지만, 어쩌면 조금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내 등을 쓸어주며 다시금 포션을 먹이려는 리디아. 하지만 이건 포션으로 어찌 될 게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권, 능….”


       


       “어?”


       


       가챠로 권능을 뽑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니까.


       


       체내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무언가 뒤바뀌는 감각. 잠깐 고통이 있긴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거다.


       


       스킬처럼 강제로 머리에 지식을 새기고, 몸을 최적화시키는 과정은 없으니까. 그저 권능이 영혼에 각인되는 잠깐만 참으면 된다.


       


       아니나 다를까. 분명 몇 초 전까지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전신 마사지라도 받은 것처럼 개운함만이 남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권능의 사용법.


       


       “바실리우스.”


       


       권능의 이름을 입에 담자, 머리 위에 씌워지는 나무의 감촉.


       


       물푸레나무를 고리 모양으로 엮어 약간의 장식을 주었을 뿐인 디자인. 왕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투박하다.


       


       가시나무의 왕의 머리에 난 왕관에서 가시를 전부 베어내면 이런 느낌이려나.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라라.”


       


       그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풀 한 포기가 스르륵 성장하더니, 그대로 꽃을 피워낸다.


       


       마치 가시나무 왕이 등장하기 직전, 주변의 자연이 마구잡이로 성장하던 것과 비슷한 모습.


       


       다만 몸속에 퍼진 따스한 기운이 쑤욱 빠져나가 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요즘 조금 늘어 쓸만해진 마나를 소모한 것은 아니다.


       


       일전에 이안의 몸을 잠식한 왜곡된 축복을 흡수하고 정제하여 몸에 남은 순수한 신성력. 그것이 식물을 생장시킨 원동력이었다.


       


       아마 신성력 소모 없이도 식물을 빠르게 생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급속 성장은 힘들겠지.


       


       말 한마디로 꽃을 피워낸 모습에 주변이 경악하기 시작했다.


       


       “요나야? 이게 무슨…?”


       


       “세계수의 권능. 처음 봐.”


       


       “어찌됐건 미궁은 여신님이 직접 관리하는 곳. 이 또한 여신님의 뜻이겠지요.”


       


       “…정말 세계수님의 권능임다.”


       “이브 님을 제외하면 우리 엘프들에게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권능이 없지 않슴까?”


       


       쓸만하네.


       


       당장은 미약할지 몰라도, 조금 더 신성력을 쌓고 활용법을 연구하면 분명 도움이 될 거다.


       


       하지만 신성력을 소모한 식물의 급속 성장 따윈 부가적인 효과에 불과하다.


       


       여느 권능이 그러하듯 내게 깃드는 순간 그냥 알게 된 사용법.


       


       지금처럼 권능을 실체화시키고, 신성력을 소모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의 성장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한다.


       


       마치 조금 전의 식물을 성장시켰던 것처럼.


       


       …그리고 이 성장 부스트 효과는 모든 종류의 성장에 적용된다.


       


       평범하게 수련해 얻는 성취는 물론, 미궁에서 생환하며 주어지는 보상도 예외는 아니라는 소리.


       


       여타 권능은 그 자체로 강력한 힘을 지닌다. 시나가 비교적 얻기 쉬운 원소 계열 신의 권능을 부려 작은 천재지변을 일으켰던 것처럼.


       


       하지만 바실리우스는 다르다.


       


       그 자체로는 별다른 힘이 없다. 하지만 내가 강해지고자 노력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큰 보상을 약속하는 권능.


       


       “그래서….”


       


       바실리우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왕을 뜻하는 말이었지.


       


       전형적인 왕의 귀환형 권능에 참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허벅지로 엘리의 허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는 짐짓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요나는 아가가 아냐. 왕이지”


       


       “아, 엘프는 왕을 모시지 않슴다. 엘븐포레스트는 400년 전부터 공화정임다.”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왕은 필요 없는 검다! 혁명임다!”


       


       “…….”


       


       바로 폐위당했다.


       


       …생각해 보면 몰락 왕족이라는 것도 좀 느낌 있는 것 같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몰락이 붙으면 대부분 느낌있다고 생각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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