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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메릴랜드 관의 어두운 복도.

        멜은 다룰 줄도 모르는 카메라를 든 채 창가에 몸을 기대 서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 세안을 마쳤는지 머리를 풀고 얇은 가디건을 걸친 모습.

        쏟아지는 달빛을 받은 몸에서 묘한 기품이 느껴졌다.

       

        “늦군. 숙녀를 이런 어두운 복도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이 마탑의 법도인가?”

       

        어지간한 모험가들은 평생 구경할 일도 없는 백금화가 주머니에서 곧장 튀어나오는 것도 그렇고, 확실히 평범한 기자는 아니었다.

        나는 옆에 있던 창문을 잠그며 그녀의 질문에 답했다.

       

        “법도는 잘 모르겠고 방까지 모시러 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쥐새끼들의 눈과 귀가 가득한 건물에서 아녀자의 방에 발을 들인다라, 나와 염문이 나고 싶은 거라면 말리지 않겠다.”

        “확실히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제가 손해군요. 그보다…… 완성되었습니까?”

        “흥, 직접 확인해 봐라. 내일 1면에 실릴 기사다.”

       

        빳빳한 원고 하나가 내밀어졌다.

        스텔론 경의 구둣발이 조개껍질을 부수는 사진과 함께 ‘천벌 받은 마법사들’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원고를 돌려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가시죠. 그 4대 불가사의인지 뭔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드리면 되는 거죠?”

        “그래. 네가 상상도 하지 못한 비밀이 숨어있으니 이 일이 끝나면 철저히 함구해야 할 것이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다 알고 나면 별로 재미 없으실 겁니다.”

        “그건 내가 판단할 테니 넌 안내나 해라.”

       

        까탈스럽기는.

        나는 쯧쯧 혀를 차며 오컬트 마니아를 안내했다.

       

        이상(異常)은 없다.

        내가 멜에게 협조하는 이유는 생활부의 수훈을 재확인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알고 있는 불가사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짐작가는 부분이 있었으니 망설일 것도 없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기숙사 내부에 위치한 카페.

        이미 폐점 시간이 넘어 문이 잠긴 카페의 입구에는 익숙한 물건이 비치되어 있었다.

        메릴랜드 관 4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눈물 흘리는 얼음 정수기였다.

        허나 실상은 비나가 자신의 강의가 끝날 때마다 코드를 뽑아놓는 바람에 새벽쯤 되면 얼음이 녹아 출수구를 통해 흘러내릴 뿐이었다.

       

        똑, 똑, 또옥——.

       

        얼음물을 개조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기어이 오늘도 이 짓거리를 하고 갔군.

        나는 속으로 한탄하며 얼음 정수기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중, 뒤를 돌아보았다.

        멜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서성이며 가까이 다가오길 망설이고 있었다.

        열심히 카메라 줌을 당겨봤자 이런 어둠 속에선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데도.

       

        “뭐하십니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신다면서 가까이 안 오고.”

        “…….”

        “멜님?”

        “크흠, 기, 기다려라 마음의 준비가 끝나면 갈 테니.”

       

        설마 무서운 건가?

        칼로 찔러도 꿈쩍도 안 할 것 같은 날카로운 인상이면서 의외로 겁이 많았다.

        하긴, 미지에 대한 공포가 없다면 오히려 이런 이상한 현상에 흥미를 느끼지도 않았을 테지.

        나도 갤질에서 매일 새로운 자극을 추구하기 위해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한 반응이었다.

       

        “저희 네 개 다 보려면 시간 없는데 슬슬 오시죠?”

        “거의 진정되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

        “얼마나요?”

        “……하루 정도.”

       

        너무 오래 걸리잖아.

       

        하는 수없이 나는 직접 그녀를 잡아끌어 앞까지 데려갔다.

        엄격한 해주학파에는 ‘절대 다른 학파 출신과 깍지를 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존재했지만 멜은 딱히 마법사가 아니니 상관없겠지.

        손목을 잘라버린다고 할 때는 언제고 제 불리한 상황이 되니 아무말 없이 입을 꾹 다무는 모습.

        딱딱하게 경직된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정수기에 다가선 그녀는 그제야 실눈을 뜨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기계를 살펴보았다.

       

        “자, 보세요. 그냥 전원이 나가서 생기는 현상이라니까요?”

        “화, 확실히 별 거 없군. 마력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벌벌 떠실 거면 왜 조사한다고 나서셨습니까?”

        “그야 내가 조사하려는 건 이딴 게 아니라 유…….”

       

        쪼르르륵!

       

        “히익!”

       

        남아있던 물이 한 번에 쏟아지자 그녀의 몸이 기우뚱하며 내쪽으로 달라붙었다.

        내 반사신경이라면 충분히 멜이 바닥에 안면으로 착지하게 만들 수 있었으나 이내 한 곳에 시선을 빼앗겼다.

        풀어헤쳐진 앞섬 사이에서 반짝인 특이한 문양의 목걸이.

        다름아닌 제국의 황실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

       

        “결례를 범했군. 바닥이 미끄러워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괜찮습니다. 이거 마시고 좀 진정하세요.”

       

        기자단에 황실에서 파견한 인원이 섞여 있다더니.

        뜻하지 않게 대어를 낚은 셈이로군.

        만약 멜의 호감을 산다면 이번 학회는 더없이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첫 인상이 나빴는지 의심많은 그녀는 아직 나를 향한 의심의 시선을 완전히 거두지 않았다.

       

        “지금 자네는 순혈 마법사가 할 일 없이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정수기의 코드를 뽑는다고 주장하는 건가?”

        “그게 사실인데…….”

        “협조는 고맙지만 나는 불가사의에 대한 조사를 하러 온 거지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듣기 위해서 온 게 아니다. 차라리 저 정수기에 유령이라도 깃들어 있다고 말하지 그러나.”

       

        진실이란 때때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법인가.

       

        어쨌거나 나는 다른 이상현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그녀를 사감실 앞으로 데려갔다.

        기숙사 내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해 민원이 있을 때가 아니라면 사람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 별관.

        새벽에는 더더욱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복도에 미리 몇 가지 준비물을 세팅해 두었다.

       

        마치 작은 제단처럼 꾸며진 디저트 세트였다.

       

        “이것들은 뭐지?”

        “따뜻한 코코아와 비스킷, 그리고 츄잉캔디입니다. 특히 마지막 건 작년 학회에서 입상한 영양보조제죠.”

       

        일반의약품으로 교회나 신성학파가 운영하는 잡화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쫄깃한 카라멜.

        네모낳고 불그스름한 내용물이 그려진 포장지엔 ‘어린이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적혀 있었다.

        최근 얼음정수기 높이조절 사태로 잔뜩 삐진 아녜스를 달래기 위해 특별히 구비해둔 것이었따.

        이런 식으로 좋아하는 음식들로 유인하면 덫에 걸릴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칠현자나 된다는 작자가 배를 곯으며 돌아다니는 게 누더기 복장의 망자의 정체라고?”

        “진짜라니까요? 뭣하면 직접 만나서 물어보셔도 됩니다.”

        “아까 일 때문에 가슴이 터질듯해 지금이라도 침소로 돌아갈까 고민 중이다. 자네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드는군.”

       

        멜은 더 이상 들어줄 가치도 없다는 투로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증거를 보여줄 수 있으련만, 이대로면 나만 양치기 소년이 될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일단 그녀를 이끌고 세 번째 장소로 향했다.

        메릴랜드 관 4대 불가사의 중 세 번째, 새벽마다 비명을 지르는 의문의 여인이 기거하는 방이었다.

       

        “여긴 여자 기숙사가 아닌가.”

        “잠시만 기다려 보시죠. 어디 보자, 좀 효과가 확실한 녀석이…….”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나는 위치노트를 켜서 평소처럼 갤러리를 뒤적거렸다.

       

        최근 대거 신설된 게시판의 영향으로 갤러리에는 ‘호출벨’로 쓰기에 적합한 짤들이 넘쳐나는 중이었다.

        현재 가장 떠오르는 신성은 셋으로 ‘미끈매끈파충류협회’와 ‘유정무정란조류협회’, 그리고 ‘멋진갈기조랑말협회’가 각축전을 벌이는 중이였다.

        서로를 향한 상호확증파괴를 위시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산물들이 갤러리에 마치 장전된 총처럼 나뒹굴고 있는 상황.

        마리엘의 찢어지는 비명을 들려주기 위해 셋 중 어떤 쪽을 골라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갑자기 복도의 센서등이 켜지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여요 관리인?”

        “마리엘 님?”

        “옆에 있는 분은 또 누구시고?”

        “램버스 지의 사회부 소속 기자 멜이라고 한다. 메릴랜드 관에서 발생하는 이상현상에 대해 조사 중이지.”

       

        마리엘은 또 무슨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군, 이라는 표정으로 나와 멜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낭패다, 하필 그녀가 방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니.

        차림새를 보아하니 밖에 있다가 들어온 듯한데 대체 이런 시간까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의문이었다.

        이래서야 또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여겨질 게 분명했다.

       

        “하암, 제 방에 그런 현상은 없는 것이에요.”

        “그래 보이는군.”

        “지금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나는 하품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마리엘에게 물었다.

        최근 접속도 시원찮고, 도서관이나 라운지에서 시험 공부를 하다 왔다고 하기에는 손에 든 마법서나 마장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의 모습은 평소 파딱의 업무에 시달리며 피폐해져 있던 것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런 밤중에도 전혀 피곤해하는 기색이 없고 오히려 싱그러움이 피어난다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밝아 보였다.

       

        “후훗, 저 말인가요?”

       

        마리엘은 기세등등한 태도로 어디선가 받아온 팜플렛 비슷한 책자를 부채처럼 손에 쥔 채 입을 가렸다.

       

        “최근 열린 학회에 참가하는 팀 중 하나에 정식으로 초대받아 자문위원 직을 맡는 중인 것이에요. 지금도 회의에 참여했다 돌아오는 중이고요.”

        “학회요? 어느 팀인데요?”

        “관리인은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고매한 마법사 조직…… 히약!? 말해요! 말하는 것이에요! 크로네 팀! 제국마법사연합의 크로네 팀인 것이에요!”

       

        책 모서리로 정수리를 콕콕 찌르자 마리엘은 곧바로 항복하며 얇은 책자를 드랍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마분지 질감의 종이에서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풍겨왔다.

        이자젤같은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륙에 있는 마법사들을 전부 아는 게 아니었기에 제국 마법사 연합이나 크로네라는 이름을 들어도 떠오르는 게 딱히 없었다.

        그러나 멜은 마리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확실히 그쪽은 제국 동부에서 꽤 저력있는 모임이지. 수 년간 연구의 진척이 미비해 흐지부지됐나 했더니 이번엔 성공했나보군.”

        “뭘 하는 곳인지 알고 계십니까?”

        “내가 기억하기로는 ‘시공간 융합을 통한 다원적 통신망 공유체’의 형성이라고 했었는데…….”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던 멜은 자신이 이곳에 왔을 때 받은 종이를 꺼내어 리스트에 있는 이름 중 하나를 확인했다.

       

        “여기 있군, 지원서에는 짧게 ‘커뮤니티’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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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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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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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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