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음…”
생각보다 영혼들이 제대로 넋이 나가 있었다.
그중에 가장 멀쩡해 보이는 영혼.
상태가 멀쩡하기보다는 심지가 곧은 영혼을 찾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일단은 이분이 제일 나을 것 같기는 한데…”
넋이 나간 와중에도 남아 있는 형형한 눈빛.
등 뒤에서 배 쪽으로 뚫고 나온 듯한 상처를 가진 영혼이었다.
두 손이 무언가를 잡은 듯 허공을 움켜쥐고 앞으로 걷는 중이었다.
이렇게 특이한 자세를 취한 영혼들은 생전에 그것에 대한 강한 염을 가졌던 영혼들이다.
이분으로 치자면….
“죽어서도 싸우려고 하시는 분이네.”
나이가 상당한 어르신.
나는 그분을 향해 조심히 걸어가 방울을 치켜들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방울이 달린 막대로 영혼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그러자 흔들리는 동공과 함께 휙 돌아가는 고개.
– ……
“아드님이신가요?”
성벽 위를 훑던 시선이 젊은 병사 앞에서 멈춰 있었다.
끄덕.
“훌륭한 영혼을 가진 아들이네요.”
어르신의 고개가 걷고 있는 다른 영혼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다들 어디론가 가고 있어요. 어디인지 아시나요?”
– …..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목소리가 나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듯 어르신의 손이 한곳을 가리켰다.
네크로맨서들이 있는 산 정상이었다.
“왜 저기로 가고 있는 거죠?”
절레절레.
“으음…”
역시나 마법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저주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윽고 어르신이 무언가를 설명하듯 입 모양을 움직였다.
“….편안함?”
끄덕.
“저기로 가면 편안 하다고…?”
영혼에게 이런 인식을 가지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설마…”
비슷한 종류를 가진 것을 하나 알고 있기는 했다.
마법이 아니며 영혼에게 비슷한 효과를 줄 수 있는 것.
“주술?”
이곳에도 주술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세레나와 알루어드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내 시선이 닿아 있는 허공을 유심히 훑어보고 있었지만, 보이지는 않으리라.
“혹시, 마법이 아닌데 비슷한 힘을 발휘하는 게 있어? 예를 들면, 사랑에 빠지게 한다거나?”
“…없습니다.”
“엘프에게도 그런 것은 없어요.”
보아하니 이들도 이런 힘에 대해서는 모르는 모양이다.
“이거…?”
왠지 주술과 어울리는 존재가 하나 있지 않은가.
아까부터 떠오르던 존재.
오크샤먼의 후예라고 했던 굴락.
분명히 위대한 선조의 영혼을 따른다고 했던 것 같다.
“이상한 곳에서 얽히네.”
지금까지는 들리지도 않던 소식을 여기서 듣게 될 줄이야.
정말로 지금, 이 현상이 주술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나는 주술은 모르는데… ?”
따지자면 부적 같은 것들도 주술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지만, 나와는 조금 다른 분야다.
오히려 마녀 쪽이 이런 것에는 더 가깝지 않을까?
다른 나라에서 주술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몇번 본게 다일 뿐.
나에게는 생소한 일들이었다.
남아 있는 흔적들도 그때 봤던 것이 아닌 새로운 느낌이었다.
“이건, 이거대로 문제네. 알아내도 뭘 어떻게 할 수가 없겠는데?”
주술을 해소할 방법을 모르니, 다시 이런 현상이 나타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강제로 깨려고 하면 할 수야 있겠지만, 전 대륙을 돌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네크로맨서들은 대륙 곳곳에서 나타날 텐데.
그때 나를 보던 어르신이 손짓을 하며 무언가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 ….
“…예?”
손가락이 네모난 형상을 그리며 허공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무언가를 잡고 넘기는 시늉을 하는 어르신.
“…책인가요?”
끄덕.
다시 입이 움직이며 무언가를 전달하려고 했다.
“책을 보셨다고요? 직접본 건 아니고? 머리에 떠오르셨구나.”
끄덕.
휘익 –
휘이익 –
이번에는 손들이 넘실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일렁이는 동작이 마치.
“…불?”
– …..
“파란 불이요?”
끄덕.
“산 정상에 파란 불?”
푸른색의 불이라….
역시나 들어 본 적이 없는 기현상이었다.
“영감님 혹시 파란색 불에 대해 아시나요?”
“들어 본 적이 없네. 나중에 로셀에게 물어보도록 하지.”
“흐음….”
영감이 수염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산 정상에 관한 것을 공수로 받을 수는 없는가?”
“이상하게 저 윗부분만 공수가 안내려오네요.”
산에 처음 갔을 때도 그랬다.
저 윗부분은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시커멓기만 할 뿐, 이렇다 할 공수가 내려오지 않았다.
확실한 건 산 전체가 불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
순간, 눈에 보이는 산 정상이 더 거멓게 물들었다.
“미치겠네 진짜. 영감님, 저기 무슨 일 생긴 것 같은데요?”
영감이 대답을 하려던 그때.
알루어드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 알루어드경 맞으십니까?
목소리가 제법 다급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맞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 성하께 먼저 말씀을 드려야 마땅하나 이곳으로 먼저 연락하라는 클라인님의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클라인님께서요? 왜 직접 연락하지 않으시고….”
– 클라인님께서는 현재 네크로맨서와의 교전끝에 의식을 잃으신 상태입니다.
흠칫.
나를 비롯한 모두의 몸이 굳어졌다.
멀쩡히 교단에 도착했어야 할 영감이 왜 쓰러져 있다는 말인가?
수정구에서 설명이 이어졌다.
– 배신자들을 호송하던 중 공격이 있었습니다. 7써클급의 네크로맨서 둘, 6써클급의 네크로맨서 한 명입니다.
“네크로맨서의 공격이요?”
알루어드의 얼굴은 더없이 딱딱했다.
네크로맨서의 공격이 있었다면,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에 따라 배신자들의 배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 배신자들 중 오직 베르테만을 데리고 탈출했습니다. 저희도 심문을 해 보았으나…
“그들이 네크로맨서와 연관되어 있었습니까?”
– 베르테만이 접점이 있었던 것으로 의심됩니다. 허나, 베르테조차 의아해 하던 눈치였습니다. 그 역시 발버둥을 치며 끌려 갔습니다.
“……”
– 클라인님께서 7써클급의 네크로맨서 한 명을 사살하는데 성공하셨습니다. 협공으로부터 사제들을 지키면서 싸우시느라 그만…
괜스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원래의 역할을 찾아간 것은 맞으나 그 결과가 부상이라니.
분명히 이제 쉬게 해준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파라몬 영감 역시 걱정되는듯 수정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 이상입니다. 곧바로 성하께 연락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수정구에서 빛이 사라지며 통신이 끊겼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알루어드.
“이곳으로 먼저 연락을 취하라 하신 것은 크리스님께 전달하기 위해서 라고 생각됩니다만.”
“….”
연락이 오기 전 산 정상이 더 거멓게 물들었었다.
아마, 저들 중 살아남은 둘이 정상에 합류한 것이 아닐까.
그만큼 횡액이 두터워 진 것이고.
파라몬 영감이 짐작했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고위급 네크로맨서가 합류한 것 같군. 전세에 영향이 있겠는가?”
“그럴 것 같네요. 병사분들에게 5쿠퍼씩 준비하라고 말씀해 주세요.”
“알겠네.”
아무래도 한 명 한 명 다 점을 봐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할 일이었으니 조금 서두르는 셈 치고 빨리 보는 게 나을 것이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신경 쓰였던 것.
“오크들의 행방이 필요해요. 정확하게는 굴락이라는 오크가 어디 있는지.”
영감에게서 곤란한 기색이 느껴졌다.
“시도는 해 보겠네만, 오크의 이름으로 위치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네.”
그럴 만도 했다.
사람과는 다르게 오크의 이름까지 수집하지는 않을 테니.
“이상한데… 몬스터라 그렇지 더러운 놈은 아니었는데…”
오히려 덕을 쌓을 팔자였다.
굉장히 큰 공수이기도 했고, 그 느낌이 이런 일에 섞일 팔자는 아니었다.
“산에 가 봐야 하려나…”
아직은 병사들의 신점이 먼저다.
공통된 것들이 있을 테니 정보를 유추할 수 있지 싶었다.
이것조차 확실하지는 않지만….
“전쟁통에 점을 봐주고 다닌 적이 있어야지.”
“산에 가보는 것은 어떻겠는가? 전력은 충분하다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엘프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기다려야 할 일이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가시죠. 일단은 죽을 사람들 좀 빼야 할 것 같아요.”
이것 또한 가능할지 의문이다.
전쟁에서 사람이 안죽는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니까.
최대한 줄여보려고 노력할 뿐.
나는 슬쩍 영감님의 눈치를 봤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만 들어주는 것은 영감님의 선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작전에 간섭하는 내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싱긋 –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오히려 내가 도움을 청해야 마땅할 것이네.”
영감이 성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남겼다.
“엘프들은 언제쯤 도착하겠는가?”
“내일쯤 도착할 거에요.”
“이미 어느 정도는 준비가 끝났으니, 가능할 것일세.”
일단은 제일 힘든 일부터 해야 할 차례다.
“또 눈 부시겠네.”
가장 큰 전력이 되어 줄 신관들부터 점을 봐야 한다.
그들은 지금 한 곳에 모여 있기도 했으니, 빠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움을 좀 받아야겠는데. 야, 알루어드.”
“예?”
“내 작두 가져와.”
“….작두요?”
“성검 말이야.”
지인들의 상이 겹쳐서 연재 시간이 오락가락 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부터는 되도록 00시에 내외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