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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

        

         

       인신공양(人身供養).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종교라는 것이 태동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시작한 이 이질적인 의식은, 인간의 악의와 광기가 집결된 형태로 발전해왔다.

       잉카 제국에서는 카파코챠(capacocha)라는 어린이를 제물로 바치는 주술 의식이 있었으며, 현재 중동 지역으로 불리는 곳에서는 갓난아기를 아궁이에 넣고 산채로 태웠다고 한다. 마야 문명에서도 소중한 것을 신에게 바쳐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주기적으로 지하세계의 신에게 어린애를 바쳤다.

       중국에서는 사람을 산채로 삶아서 인신공양을 하였고, 상나라 시절에는 아예 국가가 주도해서 포로를 재료로 인신공양을 행했다.

       상나라에서 가장 인신공양이 심했던 시절은 말기였는데. 이때엔 독사굴에 사람을 산채로 집어 던지거나 달군 구리 기둥을 걸어가게 하는 등의 끔찍한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이러한 끔찍한 인신공양 의식은 전 세계적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을 산채로 악어에 잡아먹히게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온몸에 쇠사슬을 감고 바다에 빠뜨려 풍어를 기원한다. 어떤 곳에서는 신사에 모신 신에게 바치는 것이라며 신사의 밀폐된 방 안에 가두고 굶겨 죽이기도 하였고, 사생아를 자시키와라시(座敷童子)로 만들어야 한다며 가둬서 굶겨 죽이기도 하였다.

         

       종교적인 이유.

       주술적인 이유.

       끔찍한 의식 후에 돌아올 거대한 대가를 원하는 인간의 광기.

       피를 보기 위해 끓어오르는 인간의 광기.

         

       인신공양이란 단순한 주술 의식이 아니라, 인간의 악의와 광기를 졸이고 그것을 주술의 형태로 빚어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인신공양이 인간의 악의와 광기를 담은 것인가?

       인간의 악의와 광기가 인신공양을 만든 것인가?

         

       인신공양이라는 단어는 현대에 이르러선 금기나 다름없는 것이 되었고, 언급하는 것조차도 불경한 의식이 되었다.

         

       그런 불길한 단어가 악마의 입에서, 이세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이, 인신공양이라니. 무슨. 무슨 말이…에요?”

         

       그녀는 의문이 가득 담긴 얼굴로 진성을 쳐다보았다.

         

       “일단 설명하기에 앞서 몇 가지 물을 것이 있느니라. 자, 이아린. 너는 이 문양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느냐?”

         

       이아린은 그의 물음에 잠시 그림을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없는데.”

       “그래? 그럼 질문을 더 좁혀보겠다. 네 친구를 만나러 가던 때에 노상 점집이 있었지. 거기 천막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그림이 이런 문양으로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더냐?”

       “점…집? 없는데…? 아니…거기 이상한 곳이야?”

         

       이아린은 약간의 공포와 불안감을 보이며 되물었지만, 진성은 대답을 들었으면 되었다는 듯 이세린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너는 그 점집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느냐?”

       “아, 아니요…. 그 길로는 저도 어제 처음 가보는 거라서…. 에, 엘라랑도 별로 안 친하고….”

         

       동생들의 말을 들은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 녀석들은 주목표가 아니었군.’

         

       크롬 크루어히.

       게일 민족이 5세기까지 모시던 최고위 신의 이름이자, 동시에 게일 민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의 이름이기도 하였다.

       크롬 크루어히는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켄 크루어히, 크롬 두브, 크롬 크루어히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 수많은 이름 대부분은 끔찍하고 잔인한 뜻이 있었다.

       그 뜻은 뒤틀린 언덕, 피투성이 무더기, 언덕의 머리, 피에 젖은 곡물 더미, 뒤틀린 피 칠갑을 한 괴물, 뒤틀린 어둠, 피투성이 검은색 등이었다.

       그나마 켄 크로히, 혹은 켄 크로티(Cenncroithi)라는 명칭은 ‘모든 신의 우두머리’라는 뜻이 있긴 했지만, 그 이름은 잘 쓰이지 않고 오직 공포의 면모를 담은 것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 끔찍한 최고신은 풍요와 태양을 담당하는데, 이 신에게 인신공양을 하면 어마어마한 풍년과 더불어 따뜻한 태양이 지역에 내리쬐며 사람들의 삶을 평안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투어허 데 다넌(Tuatha Dé Danann)에게 태양의 상징을 빼앗겼으며, 오직 풍요만을 담당하는 신이 되었다.

         

       이 뒤틀린 우상이 요구하는 대가는 단 하나.

         

       첫 번째로 태어난 것.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의, 첫 번째를 원했다.

         

       과실이 열린다면 가장 먼저 열린 것을.

       곡식을 수확한다면 가장 먼저 수확한 것을.

       돌아오는 계절에 가장 먼저 잡은 짐승을.

         

       그리고, 가장 먼저 태어난 사람의 아이를.

         

       개중에서 이 뒤틀린 어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람에게서 태어난 아이, 그것도 때를 타지 않은 어린아이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첫 번째로 낳는 아이는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고 갓난아기 상태에서 크롬 크루어히에게 바쳤으며, 만약 바칠 갓난아기가 없다면 자라난 첫째의 목을 잘라 제단에 바쳤고, 그것조차 없다면 다른 곳에 침략해서 첫째를 납치해서 목을 잘랐다.

         

       아일랜드에서 구전되는 지명 전설, 딘센헌스(Dindsenchas)에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이 잔혹한 피투성이 인신공양 의식의 폐해가 어찌나 심했는지 밭을 조금 깊게 파면 원한 때문에 썩지도 않은 시체가 눈을 부릅뜬 채 나타났다고 하며, 의식에 사용했던 잘린 머리들이 언덕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 피투성이 언덕은 온갖 악취를 뿜어내며 지나가는 사람에게 원한의 말을 쏟아내었는데, 이 끔찍한 구조물은 먼 훗날 성 파트리치오(Sanctus Patricius)가 나타나 부수기 전까지 건재하였다 말한다.

       영어로는 성 패트릭(Saint Pactrik)이라고 불리며, 아일랜드에서는 니우 파드라그 막 칼프란(Naomh Pádraig mac Calprainn)이라 불렸던 이 영웅은 세잎클로버를 가지고 다니며 기독교를 전파하였다고 하는데, 토끼풀과 망치를 매개로 기적을 부려 사악한 이들을 무찌르고 뒤틀린 우상을 부쉈다고 한다.

       

       ‘첫째라 하여도 쌍둥이는 상징이 다르니, 제물로 선정되지는 않은 모양이로다.’

         

       진성은 고개를 돌려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 아가리 속에 머리통을 집어넣었다가 뺀 순진한 여동생을 쳐다보았다.

         

       크롬 크루어히의 인신공양 의식은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그리고 그 절차 중 하나가 ‘공물의 자격’을 확인하는 것.

       납치해온 다른 부족의 아이가 ‘첫째’가 맞는지, 인신공양을 피하고자 하는 가엾은 주민에게서 빼앗아온 아이가 ‘첫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절차였다.

       인신공양을 위해서는 반드시 첫째를 바쳐야 했으며, 만약 첫째가 아니라면 풍작은커녕 가뭄이나 재앙이 찾아오곤 했으니 이러한 확인 작업은 필요했다.

         

       거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이었다.

       이 문양은 다른 상징들 틈에 은닉된 채 오직 제물만이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문양이었다.

         

       첫 번째로 태어난 아이.

       즉, 인신공양의 공물로 적합한 존재는 은닉 상태의 이 문양을 인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문양을 인식한 제물이 쉽게 포획될 수 있도록 문양에 정신을 제압하고 수면에 빠뜨리는 등의 제압용 주술도 같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그야말로 한 번 보면 반드시 죽는 그림이나 다름이 없었다.

         

       다행히 그의 여동생들은 숨겨진 크롬 크루어히의 문양을 인식하지 못했고, 다른 주술이 걸린 흔적 역시 찾아볼 수 없었으니 일단은 안심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쯧. 담비. 담비라….’

         

       과연 그의 옛 동료이자, 이아린의 친구인 엘라 B 빈터도 안심이라고 할 수 있을까?

         

         

         

         

        * * *

         

         

         

         

       진성의 설명은 길지 않았다.

         

       엘라의 집에 놀러 갈 때 보았던 천막이 수상했다는 것, 거기서 피비린내가 풍겼다는 것, 확인을 해보니 인신공양 의식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으며, 점술사는 누군가를 그 의식의 제물로 사용하려고 했다는 것.

       그 누군가는 이아린이 될 수도, 이세린이 될 수도, 엘라가 될 수도 있었다는 것.

       그리고 문양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아 이아린과 이세린은 제물에서 벗어났으며, 엘라도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것까지.

         

       설명은 길지 않았지만, 이아린과 이세린이 이해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세린은 진성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이아린은….

         

       “토, 토끼! 토끼가 위험해!”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엘라의 집을 향해 뛰쳐 갈 기세였다.

         

       진성은 안절부절못하는 이아린을 지그시 쳐다보더니 손을 쫙 펼쳐서 그녀의 눈앞에 가져다 댔다. 그리곤 사정없이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고는, 진언을 외웠다.

         

       “In pace in idipsum dormiam et requiescam quoniam tu, Domine, singulariter in spe constituisti me.”

         

       얼굴을 움켜쥐고 주언을 읊자 이아린의 얼굴이 평온하게 바뀌었고, 거기에 몸이 나른해지기라도 한 것인지 몸에 힘이 빠져서 침대에 풀썩 주저앉게 되었다. 게다가 졸음이 몰려오기라도 하는지 눈이 반쯤 감겼다.

         

       그 모습을 보며 진성은 잔소리를 던졌다.

         

       “무공 수행을 제대로 하지 않았구나. 육체 단련과 축기(蓄氣)만 할 것이 아니라 정신도 충분히 단련해야 하는 것을.”

         

       이아린은 토끼에 대한 걱정에 눈을 부릅뜨려고 하다가, 진성이 잔소리를 하려는 모습에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마음공부가 제대로 되었다면 졸음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익히고 있는 무공이 짐승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는 하나 이 정도는 저항할 수 있어야….”

         

       그리고는 그냥 도망쳐버렸다.

       잔소리가 들리지 않는 잠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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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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