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4

       “늦었네?”

        

       프란체는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고개를 옆으로 꺾으며 싱긋 웃었다.

        

       “예…….”

        

       방금 프란체는 라인을 죽이려고 했다. 조금이라도 대들었다면 그녀의 아래에서 일렁이는 그림자가 라인의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다.

        

       나는 봤다. 프란체가 가진 살기가 얼마나 독한지.

        

       “표정이 왜 그러니?”

       “아니요, 공녀님이 걱정돼서…….”

       “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끄덕였다. 프란체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도 긴장감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음, 어떤 점이?”

       “공녀님께선 지금 흑마법에 잠식되고 계십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니?”

       “말 그대로입니다.”

        

       푸핫! 웃음이 터져 나온 프란체는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내가 흑마법에 잠식당하고 있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니?”

        

       이건 제대로 설명하는 수밖에 없겠군.

        

       “최근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이상한 점?”

       “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거나…….”

       “아, 그런 건 조금 있었네.”

        

       본인도 느끼고 있었잖아.

        

       “공녀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나는 흑마법이 무슨 효과를 가지고 있는가부터 시작해, 지금 프란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흑마법은 사용자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욕구를 증폭시킨다.

        

       당신은 지금 흑마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그 흑마법이 나날이 강해져 시전자를 잠식하는 상황까지 왔다고.

        

       그러나 프란체는 내 말을 부정했다.

        

       “내가 흑마법에 잠식될 리 없잖니? 그리고, 제어하지 못한다는 건 어디서 나온 소리야?”

        

       프란체는 손을 뻗고 손바닥을 펼친 채 마력을 활성화했다. 새까만 마력이 모여들며 검은색 구체가 만들어졌다.

        

       광택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너무 새까만 탓에 이게 구체인지, 평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게 내가 가진 흑마법의 정수야. 제어하지 못했다면 이런 것도 못하겠지.”

        

       확실히. 제어를 못 했다면 흑마법의 정수를 만들었다 해도 마력이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갔을 거다.

       

       카자르와 내 생각과 달리 프란체는 흑마법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있다.

        

       “그리고, 감정이나 욕구가 증폭된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이걸 가장 조심해야…….”

        

       프란체는 웃으며 고개를 휘저었다.

        

       “지금은 잘 못 하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 문제야. 허구한 날 읽는 게 마법서인데 내가 그런 것도 모를까 봐?”

        

       나는 멋쩍게 웃었다.

        

       “그럼 다행입니다만…….”

        

       프란체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곤 피식 웃더니 의자에 앉았다.

        

       “진. 앞에 앉으렴.”

       “예.”

        

       마주 보고 앉자 프란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전부터 이상함을 느껴서 조사해봤어. 이건 익숙해지면 될 일이라더라. 그리고 마력 운용도 계속해서 익히고 있으니 제어도 문제없을 거고. 그러니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두자?”

        

       나는 “예, 알겠습니다.”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본인이 문제없다는데 어떡하겠나.

       

       “그런데 공녀님.”

       “왜?”

       “라인 공자님을 저리 내버려 둬도 괜찮은 겁니까?”

       “아아. 전혀 문제없어. 저주를 걸어뒀거든.”

       

       저주를 걸었다고?

       

       “무슨 저주입니까?”

       “오늘 있었던 일을 절대 말 못하게 하는 저주.”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프란체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내가 너를 부른 이유는 알려줄 게 있어서야. 네가 없는 사이에 비서도 구했고, 엑시드 쪽에서 프리다의 인력도 데려왔단다.”

        

       다소 걱정이 되었지만, 프란체가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나도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일이 벌써 그 정도까지 진행됐을 줄이야.

        

       “다행이군요. 비서로 뽑으신 엘반 자작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돈이 되는 일이면 다 하는 사람. 반듯하고 일 처리도 잘 하더라.”

        

       그렇게 업무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던 사이, 덜컥, 문이 열리며 헬레나가 들어왔다. 두 개의 찻잔과 찻주전자를 테이블에 올려뒀다.

        

       “아, 헬레나…….”

       “히익!”

       “응…?”

        

       나를 보며 경악한다. 아니, 내가 뭐 잘못 했나…? 이 정도면 상처받는데.

        

       헬레나는 떨리는 손으로 재빠르게 차를 따라주곤 연신 허리를 숙였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쿵. 문이 닫히고 정적이 흘렀다. 프란체는 여유롭게 차향을 음미했다.

        

       “저, 공녀님.”

       “왜?”

       “헬레나한테 무슨 얘기라도 하셨습니까?”

        

       탁. 찻잔이 테이블에 맞닿으며 소리를 내었다.

        

       “그건 왜?”

       “최근 저를 피하는 거 같아서요.”

       “음, 그냥 네가 싫어졌나 보지?”

       “…그런 경우도 있습니까?”

       “그래. 여자의 마음은 다 그런 법이란다.”

        

       뭔가 이상한데. 수상한 냄새가 진동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헬레나를 붙잡고 물어보는 수밖에.

        

       기껏 사이가 좋아지고 친해졌는데 그대로 인연이 사라지는 것도 아쉽잖나.

        

       “아무튼. 일 얘기로 돌아가자. 이제 마석 사업만 남은 거지?”

       “그렇습니다. 마석 광산의 위치는 전부 알아뒀으니 매입만 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도게자 백작가에 말해서 인력을 최대로 당겨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아도 다른 것까지 눈치채다니, 내가 잘 키우긴 했어.

        

       “근데 도게자 백작가가 마석 광산 일과 탑 건설을 동시에 할 수 있을까?”

       “충분합니다. 그들은 전문가예요. 부족한 인력은 외부에서 끌어올 겁니다.”

        

       한 마디로 일당직을 모집한다는 거다.

        

       “흐음, 네가 그렇다면야 뭐.”

       “예. 딱히 문제는 없습니다.”

       “그럼 얘기는 끝이네.”

       “예. 나머지는 실행만 하면 됩니다.”

        

       프란체는 느긋하게 홍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왜 그러니?”

       “아, 별거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시길.”

       “…사람 궁금하게.”

        

       다시 창밖을 바라보는 프란체.

        

       흑마법에 잠식되어 있을까 걱정이 심했는데 다행이었다. 이미 제어와 운용을 익혔을 줄이야. 남은 건 감정의 조절과 안식인가.

        

       ‘시간만 지나면 되겠어.’

        

       나중에 프란체의 감정이 폭발하지 않도록 내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 카자르, 케일. 그리고 그녀를 따르는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모두.

        

       이러면 내가 없어도 외롭지 않을 거다.

        

       ‘안심이네.’

        

       턱을 괸 프란체를 바라봤다.

        

       녹음의 눈동자. 에메랄드빛이 반짝인다. 긴 속눈썹과 선이 날렵한 코. 턱을 받치고 있는 가늘고 길쭉한 손가락. 빨갛게 달아오른 앵두 같은 입술.

       

       여자들은 다 좋은 냄새가 나는 걸까? 붉게 내려온 긴 장발에선 정원에 장미가 떠올라 꽃향기가 자욱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아름답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점점 더 그녀와 같이 있고 싶다는 욕구가 치솟았다.

        

       “공녀님.”

       “응?”

       “나중에 제가 괜찮아 지면…….”

        

       [플레이어의 몰입도가 상승합니다.]

        

       ‘아.’

        

       [동기화가 심화합니다.]

        

       [인물 – 진 바렌베르크.]

        

       [인물의 기억과 인격을 계승합니다.]

        

       찌릿! 머리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천둥이 치는 것처럼 극한의 고통이 몰려들었다.

        

       “커헉…!”

       “응? 갑자기 왜 그러니?”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이전에는 트럭에 치여 몸 전체가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내 몸의 모든 장기를 불사지르는 고통. 심장은 콱 막혀버린 듯 피가 굳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음성.

        

       「여기서 떠나.」

       「그럴 순 없습니다.」

       「진, 마지막 명령이야.」

       「안 됩니다!」

       「…각인으로 명한다. 여기서 떠나렴.」

       「안 돼! 초월의 각인을…!」

        

       프란체와 진의 대화 내용. 장면까지 떠올랐다. 하지만 노이즈가 낀 것처럼 나왔기에 잘 보이진 않았다.

        

       “커흑…!”

        

       후두둑. 코에서 피가 쏟아지고 입에서는 각혈까지.

        

       프란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쓰러지는 나를 부축했다.

        

       “왜,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또 그 병이니?”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말할 힘도 없고, 전신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도 없다.

        

       “약은? 약은 어디에 있는데?”

        

       프란체가 허둥지둥 내 품을 뒤진다. 그리고 작은 유리병에 있는 별사탕을 꺼내 내 입에 넣어주었다.

        

       ‘그거 소용없는데…….’

        

       안 먹으면 의심받을 수 있어 일단 삼켰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정신 차려! 아아…! 어떡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는 프란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혼미하다.

        

       ‘이거, 프란체를 걱정할 게 아니라 나를 걱정했어야 했군…….’

        

       아직도 전신이 저리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는 고통과 전동 드릴로 두개골을 파내는 것 같은 두통까지.

        

       진과 동기화된 정신력이 아니었더라면 진작에 혼수상태로 들어갔을 것이다.

        

       “하아…….”

        

       프란체가 울먹이며 나를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어때?”

       “괜찮습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있다.

        

       “제가 쓰러지고 얼마나 흘렀습니까…?”

       “한 10분 정도. 점점 증상이 강해지는데…….”

        

       저번에는 5분이었다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몸을 후들후들 떨며 일어났다. 여전히 전신이 아프고 저리다.

        

       “괜찮은 거야…?”

       “아까보단 나아졌습니다.”

       “어떡해…….”

        

       그러게. 이거 진짜 어떡하냐. 시간이 얼마 안 남은 거 같은데.

        

       “일단 여기서 쉬렴. 침대에 누울래?”

       “아닙니다, 숙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런 몸으로?”

        

       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부들거리는 몸으로 고개를 숙인 뒤 프란체의 방을 나왔다. 비틀거리며 내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망할 동기화는 끊이질 않았다.

        

       “허억, 헉…!”

        

       [동기화가 심화합니다.]

        

       [인물 – 진 바렌베르크.]

        

       [인물의 기억과 인격을 계승합니다.]

        

       「이곳에서 너희들을 전부 죽이겠다.」

       「하, 그 망할 마녀의 노예 새끼가 어딜 갔나 했더니만.」

       「시답잖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다. 단체로 덤벼라.」

       「성격도 급하군. 다들 소미레를 지켜!」

        

       “아악, 아아아악-!”

        

       창고에는 비명이 솟구쳤다.

        

       온몸을 믹서기로 갈아버리는 듯한 고통이 지속하며 음성이 계속 들린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아파서 자세한 유추는 불가능하지만, 진의 기억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건 확실하다.

        

       “왜, 왜 이번에는 두 번 연속으로…….”

        

       벽에 기대어 천장을 바라보다가, 스르르. 그대로 미끄러져 눈을 감았다.

        

        

       * * *

        

        

       프란체는 진이 떠나자마자 서둘러 마부를 깨웠다.

        

       “깨어있니?”

       “아, 공녀님. 무슨 일이세요?”

       “지금 마차를 준비해줬으면 해서.”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마부가 마차를 준비하고, 프란체는 마차에 탑승해 카자르의 집으로 향했다.

        

       바퀴가 얼마나 굴러갔을까. 카자르의 집 앞에 도착한 프란체는 마차에서 내렸다.

        

       “잠시 쉬고 있으렴.”

       “예이.”

        

       우웅. 흑색의 마력 덩어리가 움직이더니, 철컥. 문이 열렸다.

        

       프란체는 곧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카자르는 이상한 안경을 쓰고 마법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카자르!”

        

       카자르가 화들짝 놀라 프란체를 바라봤다.

        

       “공녀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프란체는 빠르게 달려가 카자르에게 말했다.

        

       “진의 상태가 더 심해졌어.”

       “예? 그 사람 상태가 더 심해졌다고요?”

       “그래! 약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프란체. 카자르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의자에 앉혔다.

        

       “괜찮아요. 제가 지금 새로운 마법서를 알아보고 있는데, 진 씨의 병을 치료할 가능성을 찾았거든요.”

        

       카자르의 말에 프란체는 화색이 돌았다.

        

       “정말이니?”

       “네. 믿으셔도 돼요.”

       “다행이구나…….”

        

       그제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프란체. 카자르는 그런 프란체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다 잘 될 거예요.”

        

       그러던 도중 카자르의 눈에 들어온 프란체의 그림자.

        

       “…….”

        

       정제되지 않은 어둠이 일렁이고 있다. 흑마법이 남들보다 훨씬 더 감정의 영향을 받고 있다.

        

       “공녀님, 다른 얘기지만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뭐가 말이니?”

       “흑마법은 제어하고 계신가요?”

       “당연히 하고 있지. 근데 그건 왜…?”

        

       카자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최근 공녀님의 상태를 의심했거든요. 흑마법에 잠식된 건 아닌지…….”

        

       프란체는 고개를 휘저었다.

        

       “진도 그런 얘기를 하더라. 나는 문제없어.”

       “그런가요…? 그럼 다행이고요…….”

        

       카자르는 프란체가 가진 마력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봤다. 딱히 문제는 없다.

        

       흑마법이 안정되어있고 착실하게 제어가 되고 있다.

        

       하지만 감정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 폭발하면 어찌 될지 카자르도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공녀님의 감정이 생각보다 더 깊으셔.’

        

       그러나 지금 카자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이 괜찮다는 거짓을 고하는 것과 단순한 위로밖에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후원 감사함미다!

    다음화 보기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