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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0

    <740 – 누가 그랬어(11)>

     

    재단은 ‘지령’을 통해 조직원들을 사지로 내몬다.

    어느 조직이든 상급자에 대해 원한이 깊지 않을 조직은 드물겠지만, 와이히엠하이 재단은 그 드문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

    오히려 할 수만 있다면 본부를 찾아내어서 지령발령자를 죽이고 싶은 이들이 가득했다.

     

    “최근 하부조직에서 불순한 움직임이 보입니다.”

    “간단한 문제군요.”

     

    이사장은 일찍이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했다.

     

    “재단 본부로 향하는 길을 어렵게 만들죠. 각 지부에 <열쇠술식>을 쪼개어 퍼뜨리고 일정 개수 이상의 술식이 모이면 문이 개방되도록 만들면 되겠군요.”

     

    비서실장은 이사장의 악랄함에 치를 떨었다.

     

    “연좌제를 강행할 작정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재단이 먹이고 키우며 완성한 전력이 칼을 거꾸로 쥔다면, 그 칼에 자신들이 베일 각오도 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공평이라는 말을 제법 좋아한답니다.”

    “…지나치게 많은 피가 흐릅니다.”

    “상관없습니다. 지부 네댓 개를 날려도 재단이 무너져서 인류가 입게 될 피해보단 적습니다.”

    “만일 술식이 분실되는 사고가 일어나면 어떡하실 작정입니까?”

    “분실된 술식이 본부로 향하는 ‘문’의 개방에 쓰였다면 그 지부는 예외 없이 몰살입니다.”

    “그들이 어떤 공헌을 해왔더라도, 반란의 수괴에게 항명하고 주모자의 목을 바치더라도 예외가 없다면 재단의 조직 내 충성도가 무너질 겁니다.”

     

    재단의 몰락을 위해서는 스스로 조직의 위기를 자초하는 악법을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비서실장은 알고 있다.

    이사장의 강함이 어느 정도로 대단한지.

    지부 전력?

    재단의 병력?

    그딴 건 언제든지 갈아치우고 새로 뽑을 수 있다.

    열쇠술식은 함정이다.

    이사장의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 잠재적 배신자들에게 던지는 미끼다.

    그렇기에 비서실장은 충언을 아끼지 않았고, 침묵했던 전대 비서실장은 그의 눈앞에서 처형당했다.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

    섣부른 배신은 곧 죽음이다.

    비서실장은 오래도록 웅크렸다.

     

    “이 정보는 함정입니다. 암흑상회에서 원하는 결정적인 정보라고 오인해서는 안 됩니다. 단단히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으로 피를 보게 될 겁니다.”

    “그 정보, 충분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조언은 감사하나 결국 위험을 무릅쓰게 되었군요.”

    “…무운을 빕니다.”

     

    수많은 배신의 기회를 웅크린 채 흘려보낸 비서실장이지만, 그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암흑상회의 지젤.

    뒷세계의 2인자.

    무섭도록 세를 불린 똑똑한 청년이 자신에게 도움을 구한 것이다.

    비서실장은 오랜 고민 끝에 손을 잡았다.

     

    ‘재단의 전력이 가장 작아진 지금, 마력증폭핵무기의 안전술식을 건드려서 재단의 비공정과 신무기마저 소실시킨 바로 지금. 지금이 유일한 기회다.’

     

    이 이상 늦으면 누구도 이사장을 막을 수 없다.

    저 무시무시한 드래곤교장의 타도를 진심으로 노려봄직한 힘을 입수하는 시점에서 세상 그 어떤 인간도 이사장을 죽일 수 없다.

    비서실장은 기도했다.

    부디 지젤이 성공하기를.

    이계의 지식을 손에 넣은 이사장이 이 이상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기 전에 끝을 볼 수 있기를.

    그의 기도에 부응하듯이 희소식이 이어졌다.

     

    -재단의 행사에 초청된 유명인사들을 중독시켜 길들이려던 계획이 역이용당했습니다. 거래처에서 가져온 계약서에 사인하는 순간, <재단파괴>의 기여도를 달성하기 전까지 자유를 상실했습니다.

     

    사회지도층을 장악하여 제국의 새로운 물결, 신흥귀족파벌을 잠식하려던 계획은 역으로 재단지부 하나의 파멸로 이어졌다.

    계약사기꾼을 사로잡으려는 시도마저 다수의 아카데미 생도들의 호위들의 분전으로 실패했다.

    지부 하나가 공중분해 되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마석광산조합지부가 열쇠술식을 잃었습니다. 사람이 진입할 수 없다고 여겨 경계를 소홀히 한 몬스터 구역을 가로질러 잠입한 적들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침입한 부대는… 적의 수뇌는 <안데르센>이라 불리는 괴물입니다!

     

    암흑상회의 저력은 엄청났다.

    기프트 아카데미의 981기 강자들을 싹 쓸어오기라도 했는지 정령계 원정에도 참여하는 견습집사부대조차도 쓸려나갔다.

    견습집사들이 정령계의 잔혹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극한의 훈련을 받아왔음을 고려하면, 아카데미의 환경적응훈련이 재단을 넘어선 셈이었다.

     

    -제국국경지대에서 제국 내에서 상실한 지부세력을 키우던 비밀지부에 소속불명의 영웅들이 대거 난입했습니다. 제국의 비밀병기가 틀림없습니다!

     

    제국에서는 암흑상회의 비장의 전력, 영웅부대가 크게 한 건 터뜨렸다.

    재단본부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한 최소조건.

    네 개의 열쇠술식 중 세 개.

    세 개가 단숨에 뚫렸다.

     

    “앞으로 하나. 하지만 재단도 쉽게 꼬리를 내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이 고비, 넘어설 수 있겠…”

     

    -비서실장님! 신흥지부에서 열쇠술식이 탈환되었다는 급보가 올라왔습니다!

     

    “…아니, 이렇게 빠르게?”

     

    이사장에게 한 발 먹일 열쇠술식을 모아줘서 고맙긴 한데 너무 빨리 끝나니까 이사장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들었다.

     

    “경과를 보고하세요.”

    -아카데미 2년생 ‘프릴’이 자신의 이름을 본뜬 기획도시를 세울 때, 언젠가 오크노디를 잡기 위한 덫으로 활용하고자 잠입한 재단 소속구성원들이 모조리 암흑상회의 명단에 적발되었습니다. 도시의 인부는 암흑상회 측 사람이 아니면 저희밖에 없었던 겁니다.

    “…!”

    -시작부터 정체가 발각된 채로 도시가 완성되자마자 지부를 세웠으니, 저희로서도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습니다.

     

    완전히 놀아났다.

    비서실장이 정보를 흘리기도 전부터 암흑상회는 이미 재단에 맞설 함정을 파고 있었다.

     

    “암흑상회의 자금상황은 저희의 예측에 들어왔을 텐데, 대체 도시 하나를 지을 투자금과 그 많은 ‘상회 조합원’을 인부로 위장할 돈은 어디서 나왔죠?”

    -죄송합니다. 저희는 지부에서 탈출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계였기에 거기까지는…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을 보며 비서실장은 불안에 휩싸였다.

     

    ‘이사장의 덫인가?’

     

    불확실한 정보는 섣불리 믿으면 안 된다.

    이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논다.

    비서실장은 이 정보를 파헤치기로 결심했다.

     

    “정보망을 총동원하십시오. 자금과 마석지원은 특급으로 밀어주겠습니다.”

     

    정보력을 총동원한 끝에 비서실장은 자금출처의 비밀을 알아차렸다.

     

    “투자자 명단 최상단에 ‘티토소가’가 있었습니다. 총 투자금의 9할 이상을 단독출차한 수준입니다.”

    “티토소가? 다크프린세스의 친우이자 ‘카넬레 시’의 시장집 막내딸, 성녀연합회 회원이자 혁명군의 성녀인 <빛의 운반자> 말입니까?”

    “틀림없습니다.”

     

    특수부대 뺨치는 서부귀족연합의 거두, 안데르센의 강함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 아카데미에서 가장 고된 강의만 들어왔던 자라면 실력에 의문은 없다.

     

    사악한 계약사기꾼 카밀라 사단의 교활함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바로 한 기수 위, 980기의 계약사기꾼 벨로카시오는 기프트 아카데미의 대감옥을 뚫고 유유히 탈출한 대악인이니, 계약사기꾼에 대한 평가는 너그럽다.

     

    하지만 티토소가는 달랐다.

    황제타도의 과정에서도 공헌하고 나름 성녀연합회에도 속해있지만, 그녀의 행보는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고 대단한 강자라고 보기에도 부족했다.

    티토소가.

    오크노디의 오른팔 ‘즈앙’과 달리 항상 교내에서 다양한 울음소리를 내며 도망 다니는 아이.

    설마 이 아이도 지젤처럼 본색을 감추고 엄청난 심계를 품고 있던 무서운 아이였던 걸까?

     

    ‘설마 티토소가가 이사장과 관련된 인물은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카넬레 시는 도적길드와도 인연이 깊다.

    도적길드는 전대용사파티의 도적이었던 디스트로이어의 수하나 다름없다.

    그런 도적길드 본부가 자리하며 도적들이 지키는 도시가 바로 카넬레 시다.

    …이 흐름은 정말로 좋지 않았다.

    세계의 이면.

    이사장의 탄생.

    비서실장은 그 시작점의 비밀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전대용사’와 엮인 라인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해당지부에 지원군을 파견하십시오. 우리가 재단에 헌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사장의 눈에 보이도록 최대한 큰 전력을 투사해야 합니다.”

     

    전대용사파티의 도적 디스트로이어는 당연히 전대용사 니알라토텝의 동료다.

    그 시점에서 아웃이다.

    니알라토텝.

    그것은 이사장의 또 다른 이름이자 과거.

    마음만 먹으면 이용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하물며 도시 하나를 지을 정도의 자금이다.

    돈이 썩어 넘치는 놈들이 막 갖다 퍼준 것이 아니고서야 그만한 자금을, 그것도 전체투자금의 90% 이상을 단독으로 지불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재단의 비밀자금.

    이사장의 비자금.

    그런 비밀스러운 자금이 동원된 것이 틀림없다.

     

    “잠시 개입을 중단하십시오.”

     

    겁을 먹은 비서실장이 몸을 사렸다.

     

     

    * * *

     

     

    “흐음. 의외군요. 비서실장이 잠잠하다고요?”

    “틀림없습니다.”

    “메이드장의 보고라면 잘못될 리는 없겠죠.”

     

    절묘한 타이밍에 이루어진 비서실장의 몸 사리기는 이사장조차 그의 변절을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른 곳은 이해가 가는데 하나가 의문입니다. 신흥도시는 어떻게 쥐도 새도 모르게 쓸려나간 겁니까?”

    “메이드 부대는 현재 지부장급 전력의 공백을 메우느라 정보망이 견고하지 못합니다.”

     

    이사장은 미묘한 불협화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큰 계획이 성공한 이상, 작은 계획과 지부 몇 개를 내어준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어디서 숨어있던 교수들이 네 개의 열쇠술식이 맞춰지기만 기다렸다가 저거 맞추면 열린다고 서로 작전을 숙지하고 우르르 난입이라도 하면 모를까.

    그럴 일은 없었다.

    지금도 아카데미에서는 강의가 정상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기분 탓인가 봅니다. 저는 마력증폭핵무기 폭발의 원인부터 검증하겠습니다. 메이드장은 프릴 시의 조사를 부탁합니다.”

     

    이사장은 직접 개입해서 사태를 수습할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 * *

     

     

    “오크노디, 아직도 외출금지야?”

    “응. 교장님도 참 쪼잔하지?”

     

    약간의 오해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날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교장님은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나를 특별한 숙소에 봉인했다.

    학생도 너무 많이 사라져서 모든 강의가 일시 휴강을 하고 여름방학에 보충 강의가 열릴 예정이라 그나마 다행이지, 출석도 못 할 뻔했네!

     

    “어라? 옷에 묘하게 프릴이 많이 달려있네?”

    “헤헤. 이번에 성녀연합회에서 왕창 받은 후원금을 프릴네 도시에 올인했어!”

    “아니, 투자금을 몰빵해?!”

    “지젤 아저씨가 프릴에 몰빵하면 돈 불려준댔어!”

    “돈을 한 바구니에 다 털어 넣으면 어떡해!”

    “그치만 사업계획이 완벽했는걸! 암흑상단의 음지자금을 양지로 유통하고 싶은데 재단의 눈을 속이려면 큰 사업이 성공해서 자금이동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했어.”

    “그게 프릴이야?”

    “혁명군 마스코트나 제복에 프릴을 덕지덕지 다 발라서 강제로 유행을 시켰어! 그래서 있지? 막 프릴 이름을 본뜬 새로운 도시도 생기고 그랬다?”

    “와, 재밌겠다!”

    “그렇지?”

     

    투자보다 도시 건설에 공감이 간다.

    나도 도시 하나 짓다 와서 그런가?

     

    “근데 도시에 대규모 병력이 숨어있을 비밀공간이랑 대규모 마법함정은 왜 짓는 걸까?”

    “나 그거 알아! 밖에서 잡아서 데려온 사냥감이 멋대로 탈출하지 못하게 감시하는 거야!”

    “헤에. 도시건축은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 많구나.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한다니!”

    “내친김에 도시에 추가하면 좋은 시설들도 이것저것 추천해 줄까?”

    “응응! 프릴 시 최대투자자가 나니까 지어달라고 하면 분명 다 지어줄 거야!”

     

    얼마 전에는 차원 저편에서 습격당해 도시가 박살 날 위기도 겪었으니, 티토소가의 노후 자금을 몰빵한 도시가 와장창 무너져서 으앙앙앙하지 않도록 도시를 잔뜩 업그레이드 해줘야겠다.

     

    ‘차원방어 시설은 건축 도중에 사고가 나면 차원사고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설마 건설 도중에 그런 억까가 생기겠어?’

     

    재단의 공백이 된 전력과 부족한 정보망을 확충하기 위해 메이드 부대가 대거 투입되었으며, 숨어있던 교수님들이 뛰쳐나와 선빵을 갈기다가 차원이 찢어져 프릴 시가 초토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기까지 24시간 전의 한가로운 생각이었다.

     

     

    * * *

     

    “이런 건 경력자가 잘하니까 부탁해!”

    “음음. 짐을 찾아온 것은 아주 잘한 일이다. 세계의 정복자라면 도시 하나의 보강작업쯤은 거뜬하지. 실수로 터지면 도시 하나가 통째로 이계로 날아갈 정도로 아주 거대한 장치를 설치해주지.”

     

    교수 수십 명을 차원의 저편으로 날려버리며 재단이 보낸 자객 취급을 받게 될 한 불쌍한 소녀는 자신의 미래를 깨닫지 못한 채,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재단의 자객(아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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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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