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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2

    <742 – 누가 그랬어(13)>

     

    이슈타르와의 작별 이후, 다크노디는 줄곧 자신의 집이라 불리는 격리실 안에서 웅크려 앉았다.

     

    ‘노력해봤자 좋을 일은 아무것도 없어. 결국은 나만 상처받을 뿐이야.’

     

    원본이 있을 자리를 빼앗고자 하는 분신의 본능조차도 꺾였다.

    친구들이 겪은 고통과 겪게 될 고통을 떠올리면 감히 반기를 들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내가 죽는 거라면 차라리 괜찮아. 오크노디는 내가 아닌 나와 인연을 쌓은 친구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어… 기억속의 <근 력올인한방캐릭이좋아 해병>과 동일인물인 오크노디라면 충분히 저지르고도 남아.’

     

    자신이 그딴 존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행보를 보였던 오크노디의 또 다른 캐릭터.

    소녀의 몸에 들어가 나데나데를 받으며 가라앉은 본성은 악신도 엎드려 절하며 신앙을 바칠 정도로 악랄한 호기심이 존재한다.

     

    ‘그러니 난 포기한 게 아니야. 노력하지 않는 걸로 모두를 지키는 거야.’

     

    애써 스스로를 속여보려 애써도 홀로 웅크려 자신의 체온에 의지하는 초라한 모습마저 속일 순 없었다.

     

    -기분이 나아지게 하는 <평화의 시간> 마법이야.

     

    이슈타르의 품 속, 따뜻했지…

    등 뒤에 닿는 부드러운 감각이 아직도 생생해.

     

    <평화의 시간>

     

    오크노디와 같은 재능으로 재현해낸 <평화의 시간>이 다크노디의 몸을 감쌌다.

    달라.

    이런 형태가 아니야.

    달라.

    이런 온기가 아니야.

    달라.

    달라.

    하나도 같지 않아.

    전부 엉망진창이야.

    분노를 참지 못한 다크노디가 감정을 발산하자 격리실 전체가 요동칠 정도로 거센 마나가 방출됐다.

    침대 매트가 터지고, 쇼파의 쿠션이 찢어지며 깃털이 흩날렸다.

    찢어진 벽지 너머로 갈라진 레어메탈 합금과 그 너머의 마나연결망이 마치 인체에 자리한 혈관처럼 푸른 마나액을 꿈틀거리며 공급했다.

    벌어진 틈새가 아물고 터진 매트릭스와 쿠션도 제 형상을 되찾지만, 흩어진 <평화의 시간>과 상처입은 마음만이 제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다크노디. 당신 앞으로 택배가 왔습니다.”

    “…”

    “크루엘은 이제 대화도 나누기 싫냐고 묻습니다.”

    “…”

    “조언. 오늘 점심은 리스크가 직접 구운 황금쿠키입니다. 태양의 마나로 구운 밀밭의 온기를 머금은 쿠키는 마음의 평화를 부르는 효능이 있습니다.”

     

    눈치가 없는 건가.

    아니면 약 올리기라도 하는 건가.

     

    “필요 없어.”

    “…”

    “돌아가.”

     

    다크노디의 모진 거절에도 크루엘은 물러서지 않았다.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얼굴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던 소녀는 흔치 않게도 다크노디에게 더욱 말을 건넸다.

     

    “저를 대감옥에서 구해준 것은 다크노디 당신입니다. 암흑마나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 역시 다크노디 당신입니다. 크루엘은 당신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상관없어. 내가 원했던 친구는…”

     

    너 같은 게 아니야.

    고운 심성 탓에 차마 잇지 못한 말.

    침묵의 행간 속에서 날이 선 마음을 알아차린 크루엘이 표정 없는 얼굴로 그녀를 응시했다.

    어째서일까.

    이렇게 모진 말을 해도 크루엘은 여전히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나 나를 친구로 생각했나?

     

    “당신에게 온 택배가 배송된 장소에 대하여 들려줄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떠나는 건 그 뒤로 미루겠습니다.”

    “…”

    “택배의 발송처는 프릴 시. 선황의 조사에 따르면 티토소가의 친구 프릴이 암흑상회의 상회장 지젤과 협력하여 지은 도시입니다.”

     

    티토소가.

    오크노디의 절친이자 다크노디도 나름 적잖은 교류를 나누어본 아이였다.

    착하고 여린 심성을 지닌 아이였지.

    그 아이의 친구라.

    기억을 더듬으니 티토소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던 두 여학생 중 하나가 있었다.

     

    -티토소가. 쿠키 먹을래?

    -히에엑!! 이번엔 무슨 상태이상을 숨긴 상태이상쿠키를 먹이려는 거야!

    -딱히 아무런 상태이상도 없어.

    -거짓말은 나빠!

    -거짓말이 아니야.

    -그럼 거짓말도 아니면서 상태이상이 걸리지 않은 평범한 쿠키를 왜 주려는 건데! 그런 쿠키를 오크노디가 가지고 다닐 리 없잖아!

    -이건… 쿠키를 보온마법으로 데우면 무슨 향기가 나는지 직접 맡아보고 싶어서 산 거야. 그러니까 냄새를 먹은 거지.

    -으앙, 오크노디가 먹다 남은 쿠키를 준대!

    -…냄새를 먹었다고 쿠키가 더럽혀지지는 않거든?

     

    상상 이상으로 엉뚱한 티토소가는 기억하던 모습만큼 재밌었지.

    그때, 옆에서 울상을 짓는 티토소가 대신 쿠키를 뺏어 먹고 맛있다며 요란법석을 떨던 드릴머리의 기가 센 아이가 카닐리언 트러플이었고.

     

    -꼴깍…

     

    침 삼키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부럽게 쳐다보던 티토소가에게 먹을래? 라며 쿠키를 물려주는 척을 하다가 천연덕스럽게 쿠키를 제 입으로 가져가며 힝잉잉을 유발했지.

    그런 티토소가가 가엽다며 입에 쿠키를 물려주는 상냥한 아이가 바로 프릴이었다.

     

    -항상 티토소가를 챙겨줘서 고마워. 오크노디가 월반하고 늘 외로워했거든.

    -으앙, 프릴! 그건 비밀 이야기라고 했잖아!

    -후훗. 미안미안. 그래도 솔직하게 전달하는 편이 분명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는걸.

     

    흐릿하게 머릿속 저편에 밀어두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도 좀 부럽네. 강의를 그렇게나 잔뜩 들으면서도 티토소가의 먹을 걸 챙겨줄 정도로 시간을 내다니. 가끔은 우리도 챙겨줄 거지?

    -노력해볼게.

    -깜짝이야. 설마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놀랄 만도 했겠지.

    오크노디는 재능 있는 아이가 아니면 쉽게 호의를 베풀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 좋았다.

    이 관계는 오크노디에게 빼앗기지 않을 테니까.

    그런 약아빠진 생각으로 베푼 호의다.

    순수한 호의로 다가온 프릴과는 전혀 달랐다.

    어쩌면 그런 순수함의 차이가 부끄러웠던 걸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프릴과는 특별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던 이유가 분명 그래서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르륵.

     

    포장지의 겉면에 두른 리본매듭을 풀었다.

    반갑지만 부끄러웠다.

    자신은 변변찮은 작별인사도 건네지 못했는데.

    그 짧은 대화가 그리도 인상적이었을까.

    선물까지 보내는 프릴의 마음이 너무 눈부셨다.

     

    ‘편지라도 보낼까…?’

     

    그런 생각을 떠올린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렇게나 오크노디의 경고를 받고 감금당한 처지에.

    분명 오크노디가 용서하지 않겠지.

    터무니없는 보복을 당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미 온 선물을 거부할 필요는 없겠지.

     

    “크루엘.”

    “듣고 있습니다.”

    “선물이 왔다는 사실, 비밀로 해줄 수 있어?”

    “그건 친구로서의 부탁입니까?”

    “…부탁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부탁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아.”

     

    친구를 위해 찾아왔다는 다크노디.

    그런 그녀에게 친구 사이임을 부정한 건 자신이다.

    항시 아카데미를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공유했던 나날들.

    그 나날을 잊고 선을 그은 사람도 자신이다.

     

    “널 감옥에서 꺼내준 은인으로서 빚을 갚기를 요청하는 거야.”

    “……알겠습니다. 당신에게 진 빚은 비밀을 지키는 것으로 제하겠습니다.”

     

    다크노디는 안심하고 포장지를 풀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피?”

     

    정확히는, 피에 젖은 프릴이었다.

    이딴 게 어떻게 선물…?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이건 선물이 아니다.

    프릴이 이런 기분나쁜 선물을 보낼 리도 없다.

    보내서도 안 된다.

    이래서는 마치, 프릴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치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괜한 걱정이다.

    기우일 거다.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던 도중이었다.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격리실 밖에 도착했다.

     

    “다크노디 님, 폐하께서 전하라 하신 급보입니다. 잠시 밖으로 나와주십시오.”

    “여기서 말하십시오.”

    “하지만…”

    “선황이 다크노디를 싫어한다고 제게도 행동을 강제할 자격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크루엘 또한 마음만 먹으면 당신에게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끔찍한 소리 마십쇼! 어휴, 고래 싸움에 새우 등만 터지지. 알겠습니다. 대신 선황폐하께는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크루엘이 고개를 끄덕이자 전령이 말했다.

     

    “조금 전, 프릴 시가 <차원폭발>에 휩쓸려 도시의 80%가 증발했다는 보고가 입수되었습니다.”

    “?!”

    “입수된 정보에 따르면 증발 직전, 도시에서 재단의 암살메이드가 다수 발견되었다는 목격담이…”

     

    크루엘이 급히 손을 뻗으며 <사일런트> 마법으로 음성을 차단했다.

    참 바보 같은 짓이다.

    이미 알아버렸는걸.

     

    툭.

     

    손에 힘이 풀려 상자가 바닥을 굴렀다.

    피에 젖은 프릴.

    증발한 프릴 시.

    재단의 암살메이드.

    전부 이해했다.

    완벽하게 이해했다.

    오크노디는, 내가 죽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고 몰아붙일 작정이라는 사실을.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어…?”

     

    추억으로 간직하기만 하면 그걸로라도 만족할 수 있었는데, 그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었던 거야?

    내가 어리석었다.

    수집에 미친 괴물.

    오크노디.

    그 아이의 수집욕에 분신을 위한 자리는 없다.

    내가 가져간 전부를 빼앗기 전까지는 결코 멈추는 일은 없겠지.

     

    “네가 시작한 거야.”

     

    오로지 대적자의 가능성만이 싹텄던 다크노디.

    그녀가 처음으로 비로소 자신의 본질에 눈을 떴다.

    본체와 공존할 수 없는 분신.

    본체를 죽여야만 살아남는 자.

    빼앗지 않으면 뺏긴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다크노디의 타고난 기질적 여림에 짓눌려 왔던 분신의 본능이 비로소 개방되었다.

     

    “프릴의 원수,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다크노디의 분노가 솟구쳐오르는 순간, 격리실의 모든 보안장치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출력의 암흑마나가 모든 회로와 마법진을 집어삼켰다.

     

     

    * * *

     

     

    “제 전 재산에 대출까지 영끌해서 몰빵한 도시가 어떻게 됐다고요…?”

    “니 도시 이계갔어.”

    “으앙 돌려줘요 내 도시!”

     

    같은 시각, 다크노디의 상상 속 사망자 프릴은 비보를 듣고 엉엉 울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협박소포(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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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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