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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2

        

         

       세상의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고 열매가 존재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어져 있으니 이것을 두어 인과(因果)라 부른다.

         

       그리고 세상에는 이러한 인과를 추적할 수 있는 이들이 존재한다.

         

       그것도 현대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을 한 이들이다.

         

       예전에는 마법으로 분류되었다가 이제는 초능력으로 분류가 되는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초능력자, 주술로 온갖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주술사, 묻어있는 입자 하나하나 분석해서 결과를 도출해내는 과학자와 연금술사, 추적과 관련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소환수를 부리는 소환사,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역마(Familiar spirit)를 부리는 마녀, 완벽하지는 않지만 묻어있는 에너지를 추적할 수 있는 마법을 배운 마법사 등등….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부족한 점이 하나둘씩 보이곤 했으니까.

       뭐, 진실로 완벽했다면 세상에 범죄라는 것이 어떻게 아직도 일어나고 있을 수 있겠는가?

       범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부족함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추적 기술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대사회가 이렇게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 수많은 범죄가 일어난다고 해도 대부분 검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기술 덕분이었으니까.

       거기에 굳이 변명하자면, 이러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도 한몫하겠다.

       능력자의 숫자가 적은 것도 적은 것이지만, 그러한 능력자 중 국가에 투신하여 능력자를 잡는 삶을 보내려 하는 이들의 숫자는 더더욱 적었으니까 말이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이들에게 대우해주려 하고 있지만…. 다른 쪽으로 자기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대우도 좋고 벌이도 더 좋았기에, 굳이 사명감이 있지 않은 한은 그러한 일을 하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서 윗선의 강압이나 협박 같은 변수까지 더해지기까지 하니, 사명감을 가지고 정부에 속해 일을 하는 이들이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우도 부지기수이기까지 했다.

         

       아마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추적 기술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그 숫자가 매우 늘어나거나, 혹은 사명감으로 투신한 이들을 무능하게 만드는 ‘변수’가 완전히 사라져 깨끗해져야만 하겠지.

         

       하지만 뭐 어찌 되었건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적어도 그 기술을 활용하고 사용해야 하는 이들이 태만하고 나태하게 굴건, 누군가와 손을 잡고 범죄를 묵인해주건, 혹은 기술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건 간에- 어찌 되었건 기술은 발전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박진성이 굳이 북한까지 가서 얼음을 만들어 물귀신을 태운 이유였다.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정부에 속한 추적 능력자는 그리 유능하지 않다.

       유능하다고 하더라도 ‘변수’를 활용하면 무능력하게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기존에는 신경을 쓰기는 하되 강박적으로는 추적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기도 하였고.

         

       하지만 말이다.

         

       주체를 바꾼다면 어떨까?

       ‘정부’가 아니라 ‘비밀조직’이라면?

       시간을 거슬러 온 박진성조차도 알지 못했던 정말로 비밀스러운 조직이라면?

         

       그 조직도 과연 정부처럼 무능할까?

         

       그리고 그 조직에 과연 추적 능력을 가진 이가 없을 것이며, 그 추적 능력을 가진 이가 무능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이며, 심지어 ‘외부의 변수’에 흔들려서 추적을 제대로 하지 못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적어도 그 가능성이 높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밀조직이 무능할 리가 없다.’

         

       비밀이라는 것은 두 사람 이상이 알고 있다면 그 순간부터 비밀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런데 ‘조직’이라는 단어를 이룰 만큼 사람들이 있음에도 그것을 비밀스럽게 유지하고 있었다면, 회귀 전 상류층에 속하지는 않았다지만 세상을 돌아다니고 온갖 것들을 보고 들었던 박진성이 알지 못할 수준으로 비밀을 유지했다면.

         

       그렇다면 과연 그 비밀조직을 우습게 볼 수 있을까?

         

       심지어 지금도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말하기조차 애매하다.

       무언가 윤곽만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불로불사.

       아나엘.

       생명창조학파.

       의문의 주술사.

       권력자.

         

       …

       …

       …

         

       어떻게 하나하나가 이렇게 수상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도 어떻게 음모론 하나 떠돌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회귀 전에도.

       그 파괴만이 떠돌던 그 미래에서도 그 편린조차 보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니.

         

       아니다.

         

       편린은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명을 늘려주고 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놀라운 비법.’

         

       시술, 수술…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단순히 내장을 갈아 끼우는 수준을 넘어서 강화해주고, 심지어는 텔로미어까지도 조작할 수 있었던 그 기적의 방법. 부와 권력을 가진 부자들만이 접근이 가능하였던, 그렇기에 조금만 급이 낮아도 그저 음모론이나 허황한 소리로만 받아들여졌던 바로 그것.

         

       회귀한 후에 그가 가장 먼저 떠올렸고, 목표로 삼았던.

       그래서 인맥과 명성을 쌓아 올리게 만들었던 바로 그것이 그 편린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참으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아슈토쉬 싱(Ashutosh Singh)이 입에 담았던 ‘불로불사의 단서’.

       회귀 전 아주 비밀스럽게 들을 수 있었던 ‘기적의 비법’.

       존재 자체가 수상하기 짝이 없는 ‘생명창조학파’.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회귀 전에는 아예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인공지능 ‘아나엘’….

         

       그 모든 것들이 윤곽을 점점 그려내는 것이 느껴진다.

         

       완전히 어둠 속에 파묻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것들이 외곽선이 드러나고, 점차 음영이 드리워지며 그 윤곽이 또렷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저 윤곽은 윤곽일 뿐.

       거기에 있는 것이 신기루일지, 그림자일지, 실체를 가진 것일지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확인해야만 한다.

       그의 직감이 가리켰던 대로.

       바로 그 장소를….

         

         

         

         

        * * *

         

         

         

       얼음덩어리는 계속해서 바다 위를 부유한다.

       햇볕이 비추는 곳에서는 평범한 얼음덩어리처럼.

       그늘진 곳에서는 흐릿하게 제 형체를 드러내며.

       그러면서도 혹 자신이 끌어들일 희생양이 있을까 얼음 밑에서 숨을 죽이고, 제 모습을 한껏 감추며 그것들은 얼음덩어리 튜브를 끌어안고 바다를 표류하기 시작한다.

         

       바닷물이 차가워지고, 따뜻해지고.

       물고기가 접근했다가도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고.

       하늘 위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새들이 호기심이 생겨 내려앉았다가 그대로 홀려서 바다에 추락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어떠한 얼음덩어리는 해초에 얽히기도 하고, 플라스틱 쓰레기나 비닐에 얽혀서 더 이상 떠다닐 수 없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때에는 얼음덩어리에 달라붙은 물귀신들이 나서서 그것을 떼어내거나 물을 소용돌이치게 만들어 방해물을 치워버리곤 한다.

         

       홀리는 귀신과 물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귀신.

       그 두 부류가 모두 모여있기에 가능한 협동이었다.

         

       무어,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물귀신이라는 족속이 그렇지 않던가.

       사람을 잡은 후에는 제자리에 처박아놓고 승천하기를 그렇게 갈망하는 주제에, 정작 사람을 끌어들일 적에는 서로가 딱딱 손발을 맞춰 협동해 사람을 물가에 처박아놓고 익사시키려 드는 그런 족속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들의 협동은 이상해할 것이 없는 이야기다.

         

       그것이 바로 굳이 박진성이 물귀신들을 사용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했고.

         

       그렇게 얼마나 표류했을까?

         

       마침내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니, 박진성의 표현을 빌리자면 ‘집’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곳이기도 했다.

         

       대단한 비유는 아니다.

         

       이전에 발이 묶여있던 바다가 그들의 서식지요 집이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또 다른 곳에 발을 묶이게 된다면 그곳이 또 다른 집이 될 것이다.

         

       본디 집이란 것은 그러한 곳이지 않은가?

       누군가가 그곳에 살고, 공간을 점유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하지만 모든 곳이 ‘집’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모름지기 집이라는 것은 비어있지 않은 이상에야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아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 집에나 쳐들어가서 ‘여기는 이제 내 집이다.’라고 외치며 살아갈 수가 없기도 했고.

         

       귀신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박령이 있는 곳에 또 다른 지박령이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

       서로가 충돌하거나, 합쳐지거나, 혹은 잡아먹고 키워지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물귀신은 어떨까?

       과연 물귀신이라는 족속들은 살아있는 사람과는 다르게, 지박령과는 다르게 평화롭게 공존하고 한 공간을 같이 공유하고 같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 하-아. ]

         

       [ 하아아아아….]

         

       [ 사아람냄새가 담뿍 난다. ]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아무렴, 귀신이 무슨 성령이나 천사라도 되지 않는 이상에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온 물귀신과 벨라돈나의 뿌리에 있는 물귀신들 간의 전투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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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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