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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4

    <744 – 아무도 모르게(2)>

     

    “허어. 어쩐지 디트하르트 교수 강의만 들으면 애들이 쑥쑥 성장하더니만.”

    “혹시 2학년도 이계에 보낼 수 있을까?”

    “참으세요. 교장님한테 들키면 숨지십니다.”

     

    디트하르트는 교수들에게 여러모로 혁신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계에서 학생들을 굴리면 알아서 면학태도가 개선이 되고 실력도 쑥쑥 오른다.

    학부모나 교장한테 애들이 재능이 있고 재능을 잘 연마했다고 주작 치기 딱 좋아 보였다.

    그러다 덜컥 5년쯤 나이를 먹으면?

    고생해서 나이를 폭삭 먹었다고 하지 뭐!

     

    ‘괜찮은 이계 정보 하나 물어다가 돌아가야겠군.’

    ‘디트하르트 이 친구, 눈여겨봐야겠어.’

    ‘친해지면 이계 하나쯤 공유해 주지 않을까?’

    ‘이계에선 연구에 실패해서 마나재해가 벌어져도 상관없겠지? 안전장치를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되니까 경제적일 테고. 완전 좋은데?’

    ‘랩실에서 탈주자가 자꾸 생겨서 골치 아팠는데 이참에 랩실을 이계로 이주시켜야겠어. 오크노디도 이계에서 멀쩡히 다니는데 고학년이 엄살이냐고 윽박지르면 할말도 없겠지.’

     

    교수들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절규를 할 생명체들이 중간계와 이계 양쪽에 가득했지만, 본색을 드러내면 주변에서 기겁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교수들은 점잖은 얼굴로 시치미를 떼었다.

     

    “그럼 이제 생존부터 고민해 보세.”

    “고민이라고 할 게 있긴 한가? 디트하르트 교수가 첫 삽을 너무 잘 떠놔서 할 것도 없는데.”

     

    이계조난자가 살아남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몇 가지 수칙이 있다.

     

    ━━━

    [이계조난자 생존 4수칙]

    1. 이계조난 60초 이내에 자연마나를 이루는 마나퍼즐 구성성분을 분석하고 유해성분을 거를 것.

    2. 이계조난 24시간 이내에 생존 가능한 자연환경을 구축하고 거점으로 삼을 것.

    3. 이계조난 30일 이내에 해당 차원계 지배종의 특징을 분석하고 대처할 것.

    4. 이계조난 365일 이내에 용맥과 대량의 마석, 방어수단을 확보한 뒤에 중간계 복귀를 시도할 것.

    ━━━

     

    자연마나, 거점, 지배종, 용맥확보.

     

    프릴 시와 함께 이계에 내동댕이쳐진 교수진들은 디트하르트 교수 덕분에 이계조난자가 준수해야 하는 4개 수칙을 모조리 달성했다.

     

    “학생들을 내던지자마자 즉사하면 징계를 받기에 대기상태가 적절한 이계와 적정난이도의 지배종이 분포하는 이계를 우선 선별했습니다. 거점과 용맥은 학생들이 살기 위해서 알아서 찾았죠.”

    “하하하. 디트하르트 교수가 평소 열심히 강의를 해준 덕분에 우리가 편해졌군.”

    “역시 애들은 험하게 굴리고 봐야지.”

    “거봐, 내 뭐랬어. 노농노노농 교수가 키는 작아도 후임양성은 확실하다니깐?”

    “…이게 맞나?”

     

    종족이 악마인 디에몬 교수조차 황당해할 정도로 악랄한 제국파 교수들의 대화!

    우여곡절이야 어찌 되었든 생존이 문제가 없으니, 함께 이 사태에 휩쓸린 재단의 암살메이드 부대들은 잔뜩 주눅이 든 채로 눈치를 보았다.

     

    “투항하겠습니다.”

     

    메이드장은 여기서 사생결단으로 임한들, 교수들이 자신들을 내팽개치고 떠나기만 해도 알아서 개죽음을 당할 것을 직감했다.

    암살메이드들은 대장의 용기 있는 결단에 속으로 박수를 치며 반성하는 아이들처럼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지켰다.

     

    “애들이 때깔이 좋네.”

    “얼굴만 보고 뽑아놨나?”

    “하. 우리 랩실엔 왜 저런 조교들 없냐?”

    “카타콤 가서 언데드 하나만 빌려달라고 할까…?”

    “미친. 이놈 완전 또라이 아니야?”

     

    브론즈 교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여간 남자들이란.”

     

    반반한 얼굴로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정숙하게 서있으니, 칼부림도 하고 차원의 저편으로 튕겨 나간 이유가 저것들임에도 지난 일은 죄다 뒷전이다.

     

    “다들 고개 좀 숙였다고 봐주려는 건 아니지?”

     

    브론즈 교수는 한심한 남자들에게 애초에 자신들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상기시켰다.

     

    “재단은 오크노디의 영혼을 찢고 가져갔지. 그 대가를 갚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경박하게 풀어졌던 분위기가 살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학생 한 명에게 과하게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내 것도 아닌 학생에게 공을 들이지는 않지만…”

    “우리 아카데미 생도가 밖에서 맞고 다닌다면 얘기가 달라지지.”

     

    교수들이 내비치던 호의가 일제히 사라졌다.

     

    “…”

     

    메이드장의 시선이 브론즈 교수에게 향했다.

    원망이라도 하려는 걸까.

    해도 상관없다.

    브론즈 교수는 덤덤하게 시선을 받아넘겼다.

    의적질을 하면 밤 선물을 받은 가난한 이는 환호하지만, 밤도둑을 맞이한 부유한 이는 절규한다.

    그녀는 생산적인 사람이 아니다.

    무언가를 일구고, 성실히 노력하며, 낮을 누린다.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무언가를 빼앗고, 변덕스럽게 일하며, 밤을 누빈다.

    암살메이드도 의적과 다르지 않다.

    빼앗고, 변덕스럽고, 밤을 누빈다.

    동종업계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비슷하다.

    언제 길 가던 사람이 휘두른 칼에 뒤통수를 맞아도 지난날의 업보라고 생각하며 곱게 눈을 감아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비슷하다.

     

    “여러분은 한 가지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말이 통하는 존재라는 오해?”

    “재단은, 적어도 제가 아는 선에서는 수석장학생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거짓말 탐지 기능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결과는 놀랍게도 순결.

    누구도 메이드장이 거짓을 말하는 징조를 확인하지 못했다.

     

    “허어. 재단의 직속삼장이 대단하긴 하군.”

    “맞아. 뻔한 거짓말인데도 거짓말을 알아낼 겨를이 없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저는 정말로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공의 수축과 확장마저 조절할 수 있는 건가?”

    “독한 년.”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에 메이드장은 조금 억울함을 느꼈다.

    그녀는 정말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제 진심을 알아주겠습니까?”

    “저년 저거저거 눈 똑바로 뜨고 따지는 것 봐.”

    “…”

    “입 꾹 다물고 침묵으로 비밀을 간직하려는 건가? 독종이군. 아카데미에서 단련한 고문술을 실험해 보고 싶어지는데.”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란 겁니까.”

     

    메이드장의 굴욕에 암살메이드들의 표정이 일제히 어두워졌다.

     

    “그만.”

     

    브론즈 교수는 그런 메이드들의 반응을 통해서 그림자조차 동요하지 않은 무고함을 감지하였다.

    오크노디만큼 마나제어술이 극에 달하지 않고서도 거짓을 말할 때의 마나파형까지 조작할 수 있는 암살메이드들은 없었다.

     

    “의적으로서 단언할 수 있어. 정말로 의외지만… 암살메이드가 오크노디의 영혼소실 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건 사실이야.”

     

    처음 의심을 꺼낸 브론즈 교수의 말이었기에 교수들은 그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럼 오크노디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어떻게 해명할 건가? 명백히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진실 둘이 충돌하지 않는가.”

    “애초에 이 난리가 벌어진 이유도 교장이 세계순력이 찢어지며 차원침식이 벌어지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지. 놀랍게도 우린 차원폭발에 휘말려서 이계로 날아왔고. 이래도 재단이 오크노디가 벌인 난리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할 텐가?”

     

    노교수의 예리한 지적에 브론즈 교수는 저 사람이 학생을 성추행하다가 정직될 위기에서 선황에게 살려달라는 서신을 수십 통 보내고 겨우 살아남은 한심한 교수라는 사실을 되새겼다.

     

    “이런 위기 시국에는 명령권자를 제대로 골라야 하네.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집단 전체가…”

    “책임은 무슨. 당신 수강생한테 했던 것처럼 나한테도 성추행하려고?”

    “?!”

    “입 좀 다물고 계시지 그래. 선황 얼굴 봐서 다들 당신 참아주고 있는 거 아직도 몰라?”

     

    제국파 교수들이 솔직히 우리 편이지만 참아주기 좀 힘들었다는 얼굴로 무언의 동조를 보냈다.

    루트를 잘못 밟으면 학생들을 잔뜩 임신시키고 배드엔딩을 일직선으로 달리는 노교수가 침울한 얼굴로 구석에서 짜졌다.

     

    “그래도 저 변태가 한 말 중에 귀담아들을 말이 없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메이드장, 당신은 재단에서 어느 선까지 오크노디에게 개입하지 않았다고 보장하지?”

     

    악마학 교수 데미안의 물음에 메이드장이 일고의 여지도 없이 즉답했다.

     

    “이계로 진입하는 집사1부, 집사장, 이사장을 제외한 전부입니다. 암살자는 암살에 나설 뿐만 아니라 다른 암살자로부터 누군가를 지키는 호위 또한 맡기에 저희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호위라면서 이사장을 호위하지는 않는 건가?”

    “그분은 누군가의 호위를 필요로 할 정도로 약한 분이 아니십니다. 단지 암살자에게 메이드복을 입히고 수치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길 뿐이죠. 저는 그분이 원하시는 수치심을 보여주고 대가로 암살단의 예산을 풍족하게 타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어지는 재단 내부 사정에 대한 메이드장의 진술들은 그들이 아는 재단의 정보와 어긋나지 않았다.

     

    “이사장이 알면 이를 갈겠군. 직속삼장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순순히 협력하다니.”

    “그러게 말이야. 그건 좀 이상한데. 아무리 목숨의 위기라도 그렇지 왜 이렇게 순순히 협조하지? 그런다고 우리가 살려주리란 보장도 없는데.”

     

    메이드장은 브론즈 교수를 가리켰다.

     

    “저는 저분을 믿습니다.”

    “브론즈 교수를? 당신을 제일 먼저 의심했는데?”

    “간혹 그런 취향이 있다는군. 여자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북부에서는 남자들이 하도 죽어 나가서 외로운 여자들이 지닌다는 취향이라던데.”

    “거긴 강한 남자가 첩을 서넛씩 끼고 다니는 동네 아니었나?”

    “그렇게 생긴 첩들이 남편 일하러 나갈 때 뭘 하면서 그 심심한 동네에서 시간을 보내겠나?”

    “오.”

     

    알고 싶지 않은 정보에 메이드들과 브론즈 교수의 떨떠름한 시선이 <동물생태학> 교수에게 쏟아졌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서 저 인간의 랩실에는 들러봐야겠군. 인간 여성도 동물로 간주하고 무슨 해괴한 연구를 하고 있을지 모르니.’

     

    브론즈 교수마저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데미안 교수가 답답함에 제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쳤다.

     

    “무슨 말을 하다가 말아? 이 악마보다 심한 녀석들아. 니들 말하는 꼬라지만 보면 마왕도 실의에 빠져서 왕위를 물려주겠다!”

    “아차. 그래서 브론즈 교수를 믿은 이유가 뭐라고?”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던 메이드장이 그제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관심에 입을 열었다.

     

    “오크노디가 황궁에서 궁중시녀장으로 잠입했던 제 동생을 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혁명군과 내통했다던 그 암살메이드였나.”

     

    메이드장에 대한 혐의는 사실상 조사중단이 되었다.

    대신, 교수들의 눈초리는 다른 쪽으로 향했다.

     

    “그럼 오크노디가 아카데미를 떠날 때 접선했다는 재단의 새로운 스파이 <아발론>에 대해서는 무얼 알고 있지? 그녀를 데려온 위어드 교수는 재단에서 어떤 위치에 속해있고?”

    “제가 지닌 정보에는 속하지 않은 인사들입니다.”

    “과연. 이사장이 직접 꽂았단 말이군.”

    “옷을 안 입고 나뭇잎이나 대충 휘감을 때부터 알아봤지. 그 미치광이 치녀.”

    “돌아가자마자 그 아발론이라는 녀석부터 잡아다 족치자고.”

     

    몰래 숨어서 이야기를 전부 엿듣고 있던 아발론이 식겁할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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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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