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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4

        

         

       벨라돈나의 뿌리에 있는 연구소는 아주 비밀스럽고 위험한 곳에서, 관계자 외의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어졌다. 마치 비밀의 성채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고작 관광지에 세워진 연구소가 무어 성채라는 표현까지 사용할 정도로 거창한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이것은 큰 과장이 없는 말이었다.

         

       일단 바깥에 들끓는 물귀신이나 오염된 바닷물이라는 악마 같은 조건을 제외하고서라도, 그 물에 한참을 잠수한 뒤의 바닥에 닿아야 했으며, 그 바닥을 뒤져서 해초에 가려져 있는 자그마한 구멍을 찾아야 한다.

       심지어 그 구멍은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가기에도 부족한 크기였으니, 평범한 스킨스쿠버라면 자연스럽게 지나칠 수밖에 없게 되겠지.

         

       발견했다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위장을 얼마나 철저하게 한 것인지, 그 구멍을 파고들어 가면 몸을 끼게 할 것만 같은 좁은 통로가 맞이해준다. 게다가 그 울퉁불퉁함이 마치 가시와 같아서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갈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안에서 바깥으로 나가려 들 때는 그 가시를 생생하게 마주할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거 멋모르고 발을 디뎠다가는 그대로 갇혀서 죽어버릴 수 있겠다고.

       돌아오는 길의 가시에 찔리거나 긁혀서 상처를 입어서 죽든, 옴짝달싹 못 하고 산소가 다 떨어져서 질식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한 공포마저 견디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안에 있는 것은 고작 벽 하나.

       척 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보이는 그 뭉툭한 막다른 길은 갖은 고생과 각오 끝에 동굴을 탐험하러 온 이에게 허탈감을 안겨준다. 그러고는 기가 막히게도 시야 한쪽에는 여전히 가시가 눈에 들어와서, 어서 실망감과 더불어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만든다.

         

       기묘하게도 공간은 좁기는 하되 딱 몸을 회전시켜서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

       그렇게 스킨스쿠버는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가시가 주는 교훈을 몸에 새긴 채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위장.

       작은 입구도, 좁아터진 입구도, 가시처럼 솟구친 벽면도, 막다른 길도.

       모두 위장이다.

         

       그 실체라는 것은 아주 교묘하기 짝이 없어서,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동시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어서 확장과 조작이 자유자재로 가능하기도 한 일직선의 미궁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미궁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그 미궁이 언제든 조작이 가능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불청객을 언제든 미궁에 영원히 헤매게 만들 수 있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위장.

         

       위장에 대응하기 위한 또 다른 위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진성이 인형과 물귀신을 사용한 것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 시설의 보안에 대해서 알지는 못했지만, 참으로 운이 좋게도 아귀가 딱 들어맞은 것이다.

       통로에 설치되어 있을 생명체를 감지하기 위한 센서는 인형의 자그마한 몸체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으며, 열 감지 장치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박진성의 인형을 유빙(流氷)의 파편, 혹은 평범한 쓰레기 더미 정도로만 판단하였다.

         

       영체를 감지하기 위한 전자기파 측정기나 자기장 감지기?

       물론 있었다.

       그리고 귀신을 내쫓기 위해서 미리 비축해놓았던 성수를 물에 뿌리는 조치가 행해졌고.

         

       하지만 조치는 딱 거기까지였고, 북한에서 온 물귀신들은 그것을 거뜬하게 견뎌내었다.

       물론 일반적인 물귀신들이라면 견뎌냈더라도 성수가 느껴지자마자 그대로 줄행랑을 쳤을 테니 충분한 조치였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곳에 방문한 것은 박진성의 조종을 받는 물귀신들이었다.

         

       그렇게 인형은 너무나 쉽게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꼭꼭 숨겨져 있던 입구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고작 통로조차도 이 정도라면 문은 박진성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아득히 뛰어넘는 보안 장치들이 도배가 되어있을 터.

       고작 급조한 인형 하나와 물귀신 여럿으로는 그 문을 열 수 없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아귀가 딱 들어맞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그러했다.

         

       박진성의 인형은 정문으로는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어찌 되었건 연구소와 연결이 되어있는 시설에는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쓰레기 처리장.’

         

       연구소 역시 실험이 이루어지는 곳.

       그리고 실험과 연구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주제에 맞는 폐기물을 만들어내곤 한다.

       더 이상 쓸모가 없거나, 위험해서 버려야만 하는 폐기물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단순한 대소변마저도 사람이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지거나 격리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 폐기물 역시 그러하지 않은가.

       그런데…대소변과는 다르게 이 ‘폐기물’이라는 것은 처리하기가 참으로 골칫덩어리라는 것이 문제였다.

         

       대소변은 막말로 그냥 바다에다가 뿌리면 된다.

       물론 바닷물이 좀 더러워지고, 그 바닷물에 몸을 담그거나 통과해야 하는 사람들 처지에서야 기분이 좀 찝찝해지기는 하겠지만 딱 그뿐이다. 물고기니, 해초니 하는 것들이 그것을 알아서 잘 처리해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폐기물은?

       아무리 유독성 물질과 물귀신들이 가득한 곳이라고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폐기물을 바닷속에 마구 버려서는 안 된다.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나서 예기치 못한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막말로 폐기물 뭐 잘못 버렸다가 근처 바닷물이 한 방울만 들이마셔도 내장을 다 녹여 죽이는 독이 되거나, 잠수복을 모조리 녹여버리는 물질로 변화한다거나, 연구소에 오가는 잠수정의 코팅을 녹여버리고 벽면을 부식시켜버리는 물질로 변화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물귀신이 폐기물에 반응해서 진화하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최적화가 되어서 연구소에 침입할 수 있게 되기라도 한다면?

       그건 재앙이다.

         

       그러하니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한 시설을 따로 두는 것은 상식의 영역이다.

       그리고 뭐, 그냥 폐기물만 버리는 용도로 사용하기는 좀 그러니 생활 쓰레기 같은 것을 버리는 곳도 따로 만들어두고, ‘통로’에 멍청하게 들어왔다가 죽어 나가는 물고기나 사람의 시체, 혹은 현대 문명의 쓰레기들을 따로 빨아들여서 버리는 곳도 만들어두고….

         

       그래.

       그렇기에 박진성의 인형이 물이 반쯤 차 있는 쓰레기 처리장에 들어오자마자 본 것이 퉁퉁 불어 터진 시체와 살점이 다 사라져 백골만 남아있는 해골 무더기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시체를 뜯어먹으려 안에 들어왔다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어낸 작은 물고기들도, 살아생전 이들이 입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비도 말이다.

         

       그런데 고작 이것이 박진성이 이채를 빛나게 할 정도인가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었다.

       위험한 곳에 발을 디뎠다가 죽어 나가는 놈이라거나, 조사를 위해 보냈던 탐험대가 전멸하는 것 정도야 박진성은 자주 보았으니까.

         

       박진성이 주목하는 것은 장비를 가지고 있는 시체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아무런 장비도 가지지 않은 채 죽어 나간 시체였다.

         

       ‘다용도 시체 처리장이군.’

         

       산소통도, 오리발도, 잠수복도, 독을 막기 위한 장비도, 아티팩트조차 없다.

       심지어는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툴킷이나…. 심지어는 자그마한 주머니칼조차도 지니고 있지 않다. 게다가 옷은 어디 관광객이라도 되는 듯 알록달록한 반바지와 반소매, 물에 흠뻑 젖어버린 패딩, 바닥에 가라앉은 자동차와 집의 열쇠들….

         

       ‘흐음. 차림새도 그렇고, 뼈도 그렇고…. 전투를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으레 남을법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거기에 인형으로 보고 있기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에너지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뼈의 강도도 그리 대단치 않은 것으로 보아 단련도 하지 않은 것 같으니….’

         

       그래.

         

       이들은 민간인이었다.

         

       한 가정의 일원이었을, 혹은 추억을 쌓기 위해 관광지에 놀러 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들의 시신이 지금 이곳. 쓰레기 처리장에서 말 그대로 ‘쓰레기’처럼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체를 밟고 지나가면 또 다른 통로가 나온다.

       편의성을 위해서 구역별로 구분은 하면서도 연결을 시켜놓기 위해 만들어놓은 통로.

       그 통로를 지나가면 민간인과 탐험가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버려져 있는 외곽보다도 더 안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또 다른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건….’

         

       그 공간에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또 다른 끔찍한 광경.

       앞서 보았던 백골과 유품이 가득했던 그 공간과는 또 다른 방향의 끔찍함이다.

         

       바닷물에 희석이 되었음에도 충분히 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핏물이 바닥에 차 있고, 벽면에 붙어있는 구멍에서는 바닷물이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바닷물과 섞여 희석된 핏물은 기울어진 바닥의 끝에 있는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희석됨에도 핏물의 농도가 계속해서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이 공간의 위쪽에 있는 또 다른 장치 때문이다.

         

       또옥.

       또옥.

         

       고기를 걸어놓기에 적합한 갈고리가 여럿.

       갈고리는 마치 나무에 열리는 열매처럼, 무거워 늘어진 버드나무의 가지라도 되는 듯 천장 곳곳에 늘어져 있다. 그리고 그 갈고리는 자신이 낚싯바늘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 몸에 사람을 꿰어놓기를 즐겨하였으니, 과연 그 광경이 도축장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갈비뼈와 갈비뼈 사이를 통과하는 갈고리.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매달려 있는 사람들.

         

       그렇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의 가장 아랫부분에는 상처가 있다.

       발이 멀쩡한 이들은 발과 발목을, 무릎 아래가 없는 이들은 무릎이, 다리 자체가 없는 이들은 성기와 골반 부분에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처에서는 피가 떨어진다.

       레일을 따라 이 공간을 누비는 갈고리의 움직임에 맞춰서 말이다.

         

       ‘장난감 같군.’

         

       그것은 잔혹한 놀이.

       사람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쥐어짜서 피의 비를 내리는 놀이.

         

       연구소의 일부라 부르기도 어려운, 고작 쓰레기장에서 이러한 끔찍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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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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