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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5

        

         

       시체를 걸어놓고 핏물을 바닥에 흩뿌리는 도축장.

       마치 고기의 비린내를, 역겨운 냄새를 없애기 위해 피부터 빼는 도축장의 그것.

       그렇기에 박진성은 이 지독하리만큼 효율적이면서도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러면서도 잔혹하기 짝이 없는 시설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도살 탑(Butchery Tower) 같군.’

         

       회귀 전 미국에 있었던 광기의 산물.

       사람을 도축해서 잡아먹는 식인귀들의 소굴.

       식량이 사라졌을 때 도덕과 윤리를 버리게 되는 사람이 종착지에 다다르게 되는 결말.

       도축하는 과정에서 핏물이 흐르고 말라붙기를 반복하면서 역겨운 색과 냄새를 풍기고, 수없이 많은 파리가 꼬여 새까만 안개처럼 탑 주위를 메우기도 하였다. 세상이 혼란스러울수록 먹을 것이 많다며 환호하는 구더기들이 바닥부터 벽, 천장까지 빼곡하게 자리를 잡아 기어들어 갔고, 조금만 깨끗하다 싶다가도 스윽 가구를 조금만 밀어 보아도 굶주린 새하얀 구더기들과 배부른 까만 구더기들이 그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던 그 풍경.

         

       그 풍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도살 탑과 비슷하다 싶을 뿐이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도살 탑은 식량을 위해서 하기는 했으되 순수하게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결속과 더불어 ‘포레의 영혼 결속 주술’이라는…. 이름만 번지르르하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주술을 사용해 힘을 얻으려 들었던 목적이라도 있었던 까닭이다. 그렇기에 도살 탑의 풍경은 광기가 가득하고 잔혹하기는 하였으되 그렇기에 오히려 인간성을 느낄 수가 있었으니, 참으로 역설적이라 할 법하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지독하리만큼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간의 감정이 묻어나오지 않는 설계라는 이야기다.

         

       대관절 이 공간의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어떠한 목적’을 위해서 순수하게 효율성만을 계산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 그 사실만은 느낄 수가 있었으니.

         

       ‘흐음.’

         

       박진성은 흥미를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넓디넓은 쓰레기장의 다른 구역으로 말이다.

         

       ‘주사기와 필름, 우표, 하얀 가루가 묻어있는 식용 가능한 종이….’

         

       다른 구역에서 보인 것은 불법적이면서도 처리에 조금 힘든 것들.

       향정신성 약물과 관련된 폐기물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아니지…. 이 껍데기는…흠. 이건 항우울제인데? 이건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약, 이건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는 약, 이건 아드레날린…. 허….’

         

       종류도 다양했다.

       신경전달물질을 건드리는 종류에서부터 근대 시절에나 사용되었던 아산화질소(N2O)…그때 당시에는 ‘웃음 가스’라고 불렸던 것들까지 가지각색이었다. 거기에 더해 박진성이 처음 추측했던 대로 향정신성 약물- 소위 말하는 ‘마약’으로 보이는 것들까지 널려있었다.

         

       ‘필름과 우표에 붙어있는 글자는…L. LSD로군. 아무래도 이건 옛적 방식대로 얇게 발라서 핥아먹는 방식으로 섭취한 것 같고…. 하얀 가루는 높은 확률로 코카인, 흠.’

         

       가지각색이라는 말이 그냥 과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종류가 많았다.

       환각 증세를 보인다는 물질은 죄다 긁어모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프레온’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는 스프레이 통, 다 낡아빠진 라벨에 적혀있는 ‘…부인의 진정 시럽’이라는 글자, 비소와 수은이 함유되었다는 경고문구와 함께 오(五)라는 한자가 대문짝만하게 박혀있는…오석산이 담겨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통.

       영국이 옛적에 만들어서 팔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아편팅크에,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양귀비부터 정제를 한 녀석을 감쌌던 종이 포장지들, 씹는담배처럼 만들어서 팔았던 씹는 대마, 누구도 그 위험성을 알지 못하고 감기약으로 팔아먹었던 ‘헤로인’의 원형….

         

       ‘심지어는 기계도 있군. 이건…자외선 합성? 아. 자외선 합성에 더해 빛으로 시각적 정보를 보내서 체내 생산 물질을 강제적으로 분비하는 용도인가?’

         

       거기에다가 박진성도 알지 못하는 최신식 마약도 보였다.

       옛적부터 사용되었던 복용하는 형태의 마약이 아니라, 몸속에서 특정 물질을 합성하도록 도와주는 형태의 합성기. 심지어는 에너지에 간섭해서 쾌락을 느끼도록 시도한 기계도 보이기도 했다.

         

       ‘액상 마력 전지도 있군. 설마 마력을 그대로 퍼먹여서 트랜스 상태로 접어들게 만들려고 했나?’

         

       악명 높은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도 이것을 본다면 격의 차이를 깨닫고 무릎을 꿇을 수준이 아닐까? 그야말로 마약 연구의 총아, 마약 선구자들의 흔적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심지어 역사책에서나 등장할 법한 샘플들이 박물관에 들어간 것도 아니고 이런 쓰레기장에서 뒹굴고 있을 정도였으니…. 정말로 카르텔 놈들이 감탄하고도 남을 광경이었다.

         

       ‘흐음. 마약과 시체, 핏물, 장난감, 민간인….’

         

       무언가 윤곽이 그려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어슴푸레하지만 무언가 보일 것만 같은 느낌.

       하지만 어둠이 짙어서 그것이 도저히 짐승의 형태인지, 나무의 형태인지, 아니면 눈의 착각인지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박진성은 인형을 움직여 다른 구역으로 향했다.

         

       자신의 머릿속에 조금조금 떠오르는 것이 구체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그곳에서 박진성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수기(手記).

         

       이 연구소에서 누군가가 직접 손으로 적은 것으로 보이는 종이 쪼가리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그 종이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 피조물은 창조주의 한계를 답습한다. 』

         

       자그마한 종이.

       그리고 그 자그마한 종이에 자신의 고뇌를, 고민을 어떻게든 해소하기 위해서 깨알같이 적어넣은 영어.

         

       『 성경에서는 말한다. 창조주는 자신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창조하였노라고.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와는 다르게 사람이란 불완전하기 그지없는 동물이었으며, 질서 대신 혼란을, 미덕 대신 죄악을 추구하는 동물이었다. 많은 성직자는 그것을 두고 신이 일부러 인간의 발전을 위하여 그렇게 창조하셨음을 설파하였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에 적혀있듯이 그분의 형상을 본떠 인간을 창조하였고 우리가 그분의 피조물이요 자식이나 다름이 없는데 어찌 우리가 불완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

       유전자를 물려받은 이들이 그 유전자에 지배되듯이, 부모의 형질을 물려받은 이들이 그 형질에 갇히는 것처럼 우리의 진화와 성장에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우연이나 기나긴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며, 이는 창조주가 안배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법칙에 의한 것이다. 』

         

       구겨진 것을 펼쳐보아도 손바닥보다 조금 큰 수준인데 어찌 글을 이리도 빼곡하게 담았는지.

       그 종이에는 신실한 종교인들이 본다면 신성모독이라 적을 내용이 가득 적혀있었다.

         

       게다가 마지막 문장이 화룡점정이었다.

         

       『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 그것은 바로 창조주 자체가 불완전하였고 그 자식인 우리가 불완전한 것은 당연할 수 밖 』

         

       하지만 여백이 부족했던 것일까?

       그 문장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아니, 이건 여백이 부족한 게 아니라 찢긴 거다.’

         

       박진성은 이 사람의 글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여 주변을 더 뒤졌다.

       과자봉지나 음료수병 같은 것으로 만들어진 산을 뒤져가면서 말이다.

         

       그리고 종이 몇 장을 더 찾아낼 수 있었다.

         

       앞의 글을 썼던 글쓴이가 썼던 또 다른 글.

       그리고 연구원들끼리 몰래 대화를 나눌 때 사용했던 메모.

       연구 자료를 밖으로 유출하기라도 하였는지 꼬깃꼬깃 작은 공처럼 뭉친 뒤 비닐에 감싸놓았던 물건까지.

         

       박진성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것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에 없다는 의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불완전함이 인간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죄악이며 우리의 부족함 때문이 아닌,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반드시 마주하고야 마는 하나의 벽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인정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지한 상태에서 그 벽을 넘기 위하여 노력과 노력을 거듭하여야만 한다.

       불완전한 것을 완전하게 만드는 것은 생물의 본능이며 인간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하기 그지없는 일이며, 우리는 불완전함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마다 도리어 그 불완전함을 통렬하게 인지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묻고자 한다.

       불완전한 창조주의 형상을 따서 태어난 불완전한 피조물.

       그렇다면 그 불완전한 피조물이 만드는 또 다른 피조물 역시 불완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불완전함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가?

       완전함과 완벽함이란 과연 그 태생부터 정해지는 것인가? 』

         

       그것은 푸념이자 질문.

       이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가졌던 고뇌를 집약시켜놓은 질문이었다.

         

       ‘…흐음.’

         

       얼핏 깊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듯싶기도 하였으나…앞서 지나왔던 길에서 보았던 풍경을 생각해본다면, 깊은 사유와 철학적 고민 끝에 나온 내용이라기보다는 광기와 절망 속에서 튀어나온 푸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 집에 가고 싶다. 』

         

       『 이 불가능한 것을 해내야 집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

         

       『 정말로 인간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를 할 수 있는가? 』

         

       『 이건 정말 가능한 일인가? 』

         

       그래.

       또 다른 종이에서, 이 연구소가 연구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얼마나 끔찍한 난제인지 말하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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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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