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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6

        

       『 이딴 걸 지구 만들어질 적에 한 새끼가 있다고? 그게 내 창조주라고? 』

         

       『 사실 우리의 연구가 아무런 진전이 없는 거라면? 그냥 허송세월하는 거라면? 실마리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

         

       『 그딴 현실은 존재하지 않아! 』

         

       쪽지 하나하나에 보이는 절박함과 광기.

       진전되지 않는 연구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휘갈겨 쓴 글.

         

       으레 연구가 막힌 이들이 생각할법한 내용들이기는 했다.

       하지만.

         

       『 이거 재료가 문제 아니냐? 』

         

       『 재료가 문제없더라도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할 것 같은데. 』

         

       『 일반적인 샘플이 아니라 좀 다양한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

         

       『 에너지 다루는 녀석들은 샘플로 못 데려오던가? 』

         

       『 그거 바닥 쪽 연구실 톰이 하나 들고 가서 해봤음. 』

         

       문제는 그 쪽지에 아주 의미심장한 내용이 적혀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쪽지가 쓰레기장에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져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러했다.

         

       시체가 매달린 채 피를 흩뿌리고, 물고기에게 살점을 뜯어먹힌 백골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쓰레기장. 거기에 이러한 쪽지라.

         

       ‘일상화가 되었군.’

         

       조금이라도 위기감을 느꼈다면 이 쪽지들이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행동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자각하고 있다면 이 쪽지의 의미심장한 내용이 어떠한 의미로 다가올지,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쓰레기로 버렸고, 그 쓰레기는 별다른 검열 없이 떨어졌으리라.

       왜?

       쓰레기니까.

       무가치한 것이고,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다니까.

         

       이 의미심장하면서도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쪽지야말로 이 연구소의 광기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비밀 연구소에서 일하는 놈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이러한지. 세상은 넓고 사람의 종류는 많다지만 이러한 이들을 모으는 것도 재주로다….’

         

       박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이번에 향한 곳은 쓰레기장이 아니었다.

         

       쓰레기장의 윗부분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구멍.

       연구소의 쓰레기가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자그마한 통로였다.

         

       당연하겠지만 그 통로에도 대비가 되어있기는 했다.

       두꺼운 창살이 촘촘하게 자리 잡으며 망의 형태를 만들고 있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구멍은 기껏해야 액체 정도나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을 수준이었다. 물론 거대한 쓰레기가 지나갈 때마다 열릴 것 같기는 한데- 저 좁아터진 통로가 참으로 수상한 것이 문제였다.

       모종의 방법으로 통로를 수축하고 확대할 수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면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정도로 커지는 일은 드물 것이며, 사람이 몸을 욱여넣어 잠입할 정도로 커진다 한들 저 통로에 또 다른 조치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마치 내장 같군.’

         

       내장 같다.

       그리고 사람의 내장이라 친다면 이 구멍은 사람의 내장- 그중에서도 항문과 직장에 속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굳이 그러한 내장을 통해서 잠입하려는 자신은 마치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박진성은 웃었다.

         

       무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구멍이란 구멍에 어떻게든 몸을 욱여넣고 알을 까서 기생하는 게 그들의 재주 아니던가.

       훌륭한 재주가 있으면 배워야지 외면해선 쓰나.

       그것이 미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박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망에 몸을 가져다 댔다.

         

       스으으윽.

         

       그리고 마치 구름처럼 망을 통과했다.

         

       그것은 달궈진 망에 얼음이 닿았을 때 순식간에 그 형상대로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모습.

       하지만 그렇게 녹았다가도 망을 지나치자 다시 얼어붙으며 형상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로 묘기 같은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광경이 몇 차례 반복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통로 안에는 바깥의 창살과 같은 촘촘한 벽이 여러 개가 세워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박진성은 통로를 지나서 연구소에 잠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 끄으으으….]

         

       물론 통로를 통과할 때 음기를 끌어다가 사용했던 물귀신들이 다 죽어가는 소리를 내거나, 꽤 강했던 아까와는 다르게 비실거리게 되었다는 자그마한 변화도 있기는 했지만…. 뭐, 큰 문제는 아니었다.

       전투를 위해 데려온 게 아니라 그냥 인형을 움직일 때 사용하기 위해 데려온 것이 아니던가.

       비실거리건 말건 인형만 잘 움직여주면 그만이었다.

         

       ‘이 연구소를 다 둘러볼 때까지만 버티면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약간 아슬아슬할 것 같기도 했다.

       연구소의 규모가 그의 생각보다 큰 것 같았으니까.

         

       ‘쓰레기장의 크기에서 대략 짐작은 하였지만, 이거 너무 본격적이군.’

         

       박진성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악당들의 비밀기지 같은 느낌의 풍경이었다.

         

       합금으로 추정되는 새하얀 금속으로 만들어진 벽면은 조명의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며 분위기를 밝게 유지해주고 있었으며, 곡선을 그리며 쭉 이어진 형태의 통로는 이 시설이 원통의 형태로 이루어졌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이 도넛 형태의 통로가 감싸고 있는 그 중앙에 연구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 역시도.

         

       ‘흠. 깨끗하지는 않군.’

         

       하지만 옥에 티가 없지는 않았다.

       완벽히 청결하지는 않았으니까.

       청소가 어려울 것 같은 구석진 곳에는 먼지나 얼룩이 있었고, 곳곳에는 낙서나 사람의 손때 같은 것이 묻어있어 이곳에 사람이 머물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생활의 흔적’이 아니다.

         

       일상적으로 남을 정도로 매우 흔한 흔적이면서도, 동시에 일반적인 생활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흔적이 바로 문제였다.

         

       ‘끌려간 흔적이군.’

         

       사람이 축 늘어진 채 끌려갔을 때의 흔적.

         

       ‘이건 천장까지 피가 튀겼으니…. 목이나 머리 쪽에 상처를 입었을 테고.’

         

       얻어맞아서 피를 뿜은 이가 만들어낸 피 웅덩이의 미약한 흔적.

       천장까지 솟구칠 정도로 학대당한 이가 남긴 피 분수의 흔적.

         

       ‘이건 손톱이군.’

         

       벽면을 손톱으로 긁으며 끌려가지 않게 발악한 흔적.

       끌려가면서 마찰하여 짓이겨지고 벗겨진 피부 조각이 먼지처럼 남아있게 되어버린.

       찢긴 옷가지의 아주 자그마한 파편이 뭉쳐 먼지처럼 되어버린.

         

       그러한 흔적.

         

       이 통로에는 그 끔찍한 잔향이 남아있었다.

       산뜻하기 짝이 없는 조명과는 다르게.

       아무런 때도 없이 새하얀 벽면과는 다르게….

         

       ‘이 흔적들을 쫓아가면 되겠군.’

         

       박진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흔적을 쫓아갔다.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악했던 사람들이 종국에 도착할 곳이라면 뻔했으니까.

       그곳에 바로 박진성이 알려고 했던 무언가가 있을 테니까.

         

       ‘여기로군.’

         

       흔적은 어떠한 벽으로 이어졌다.

       앞서 보았던 통로의 벽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너무나 평범한 벽.

       하지만 분명히 흔적은 그 벽의 너머로 이어져 있었다.

         

       박진성은 자신이 앞에 두고 있는 것이 비밀 문임을 직감했고, 근처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시설이 보안에 얼마나 철저한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ID카드나 홍채 인식 장치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이곳에 문이 있음을 추측하게 할 자그마한 틈새조차도 찾기가 어려웠다.

         

       박진성은 물귀신들에게 음기를 뽑아내 다시 한번 인형의 몸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액체의 형태로.

       오염되어 있는 물의 형태로 말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벽 어딘가에 있을 틈새를 통해 침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흠. 생각보다 보안의 수준이….’

         

       놀랍게도 액체로 몸을 바꾸고, 벽 이곳저곳에 액체를 갖다 댔음에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회귀 전에 보았던 비밀 연구소들을 아득히 웃도는 보안 시스템이다.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을 쓸 정도라니.

       전체를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이 연구소는 아마 그가 보았던 모든 연구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수준일 것이다.

         

       ‘허허. 무어 그리 대단한 비밀이 있기에 이리도 꼭꼭 숨겨놓았는지.’

         

       박진성은 한숨을 쉬며 물귀신의 영체에 자신의 정신을 연결했다.

       시종이나 배터리 정도로 다뤄졌던 물귀신이 그의 CCTV로 신분이 승격되는 순간이었다.

         

       ‘쯧. 이 주술은 대가가 심한 편이거늘.’

         

       대가가 꽤 강력한 편이기에 굳이 사용하지 않았거늘.

       어쩔 수 없다.

         

       박진성은 안에 도대체 무슨 대단한 것이 있기에 자신이 이 주술까지 쓰게 만드는지 한탄하며 천천히 귀신을 움직였다.

         

       스으으.

         

       비물질의 형태로 벽을 유영하는 귀신.

       귀신은 꽉꽉 들어찬 밀도 높은 금속을 쉬이 통과하였고, 벽과 바로 연결된 거대한 네모난 공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그 공간의 통로를 지나 ‘Dr. Tom’이라는 명패가 붙어있는 방으로 들어섰고, 평범한 대학교 교수의 연구실 같은 그곳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이 한 뭉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신앙의 메커니즘이 공포와 경외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 과거 사람의 정신이 영적인 것에서 온다고 믿었던 미개한 조상들과는 다르게 우리는 어떠한 감정이나 반응은 뇌와 척수 등의 장기에서 온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수단과 방법 역시 보유하고 있다… 』

         

       『 …신앙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크게 연구가 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수많은 자료를 통하여 그 재료에 대해서 추측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메커니즘을 깨닫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통제하였으며, ‘신’이라는 초월적 존재로 부르며 그들에게 경외와 공포를 바치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통제해왔다. 그들이 ‘신력’이라고 부르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을 본다면…』

         

       『 …사람의 감정은 낙차에 의해 증폭된다. 어떠한 것들의 간극이 길고 멀수록 그것은 커다란 충격을 사용하는데, 이는 현대에서 수많은 마케팅 수단으로, 문화 콘텐츠에서 온갖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면…

       …

       …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낙차를 통해 효율적으로 감정을 양식하는 공식을 발견해야 하며… 』

         

       책상에 놓인 것은 신앙의 메커니즘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

       경외와 공포라는 ‘자원’을 인지하고, 그것을 통제하려는 하나의 시도.

         

       그리고….

         

       「 효율적인 고문 기구가 필요합니다. 」

         

       소름 끼치는 내용이 적혀있는 또 다른 종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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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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