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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7

        

       ‘약과 고문, 공포와 경외, 낙차와 증폭….’

         

       박진성은 이 정도 키워드만으로도 이 톰이라는 연구자가 주장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약을 통한 쾌락과 행복을 통해 사람을 위로 높이 올려보내고, 고문을 통해 사람을 바닥을 넘어서 지하까지 내리꽂는 방식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경외와 공포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세뇌와 업 계열 약물과 다운 계열 약물을 적절하게 섞어 사용하기도 하겠지.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방식이지.’

         

       그리고 이는 놀랍게도 이 연구소에서 발명한 개념이 아니기도 했다.

       사악하고 잔혹한 비밀 조직이나 사이비 종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거기에서는 그들을 세뇌해서 써먹기 위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이 연구소에서는 그 자체가 수단이라는 점이 조금 달랐다.

       둘 다 사람을 장기 말이나 자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할 수는 있으나…. 굳이 악질인 곳을 고르자면 이 연구소이리라.

         

       사람을 정말로 ‘자원’의 개념으로 접근해서 효율성을 추구하는 모습은 옛날 나치의 그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효율적인 고문 도구의 요청이라…. 흠. 고통에 익숙해지지 않아야 하며, 몸에 필요 이상의 손상이 가해져서는 안 되며, 죽음을 유예할 수 있어야 하며, 신체와 정신의 회복에 도움을 주어야만 하며, 오감으로 고문 도구의 존재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철저하게 뽑아내려고 한 모양이군.’

         

       소모성 자원을 티끌 한 톨까지 활용하겠다는 광기가 보이는 내용이다.

       물론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그 소모성 자원이 ‘사람’이며, 자원을 얻는 방법이 ‘고문’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정말로 광기의 영역에 다다라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집요한 광기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감정을 뽑아내서 어디에다가 쓰려고?’

         

       공포와 경외의 연구에 쓴다는 것은 알겠다.

       그리고 이 감정이라는 것이 꽤 중요한 연구 소재이며, 어떠한 목적과 맞닿아 있는 것도.

         

       그렇다면 그 ‘목적’이란 무엇인가?

         

       이렇게까지 해서 이루려는 그 목적은.

         

       ‘아나엘.’

         

       지금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윤곽만 보일 뿐.

       하지만 점점 어둠이 걷혀가고, 무언가 거대한 것의 조각이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박진성은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며 연구실을 바라보았다.

         

       『 미개인들의 토속적 신앙과 가면으로 행하는 문화에 대하여 』

       『 미카도와 타타리로 보는 일본의 신앙 문화 』

       『 동서양의 인신 공양과 식인 풍습 』

       『 아제모아의 정화의식에서 볼 수 있는 미신적 기원 』

       『 시페 토텍의 기록으로 보는 고문과 고통의 탐구 』

       『 미개인과 야만인의 공포 』

         

       책꽂이에 꽂혀있는 가지각색의 책과 논문들.

       미신, 공포, 고문, 심리학 등.

       꽂혀있는 책들마저도 이 톰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연구에 충실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잔혹하게도.

         

       박진성은 그리 생각하며 등을 돌려 연구실을 나갔다.

       그리고 이 작지 않은 공간을 쓱 훑어보았다.

         

       ‘고문실, 창고….’

         

       연구하고 있는 주제 때문이었을까?

       연구실을 제외한 곳은 거대한 공장이나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고문 공장.

       기계적으로 고문을 하는 공장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공장도 옛말.

       한때 희생자가 차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공간에는 아무도 없었고, 고문실 역시 핏자국이나 살점만 조금씩 남아 이곳에서 행해졌던 잔혹함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어째서 없지?’

         

       이상하다.

       핏자국이며 살점이며 그 모든 것들이 이 장소에서 연구가 행해졌음을 말해주고 있는데…그 흔적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썩어 말라붙은 핏자국이나 부패가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살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창고에 얇게나마 먼지가 쌓인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먼지가 층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

       그렇다면…대체 이 연구소는 관리가 되지 않았단 말인가?

         

       ‘습격도 아니고, 내가 잠입해서 몸을 피신한 것도 아니다. 급하게 이동한 흔적이 아니라, 사람이 없어진 뒤 자연스럽게 시간이 흐른 것인데….’

         

       물론 그저 기분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도 볼 수 있고, 박진성이 모르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나 이 연구소가 휩쓸려 이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직감이 말하기를, 인과가 나에게 닿아있음이니.’

         

       그의 직감이 말해주고 있다.

       그를 이곳으로 인도해준 직감이 말한다.

         

       이곳이 이렇게 된 것에는 네가 얽혀있다고.

       네가 이 인과의 뿌리에 닿아있는 존재이며, 지금 보이는 이것은 너에게 맞닿은 인과가 꽃을 피운 뒤 만들어낸 열매와 같은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크게 해가 될 것 같지는 아니하니, 마저 보는 것이 옳을 것이로다.’

         

       박진성은 그 예감 속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잔혹한 연구소를, 그리고 이곳에서 행해지는 연구를 보기 위해서.

         

         

         

        * * *

         

         

         

         

       층마다 연구실은 제각각이었으며, 그곳에서 연구하는 것 역시 달랐다.

         

       『 감정이란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난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은 감정이라는 이름의 형체도 없고 실체도 없는 자원을 저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그야말로 난제에 가까운 것이었으며….』

         

       『 …귀신을 활용한 감정 추출이 실패하였다. 귀신에 관하여 연구한 논문들과 모아온 사례들로 볼 때 귀신들이 사람의 감정을 조종하는 듯한 모습은 정말로 감정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이루고 있는 사념의 영향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며, 우리의 연구에서는 이를 활용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되며… 』

         

       『 …사람의 정신과 감정이라는 것은 아직 미답지에 가까운 것이며, 그 실마리도 찾기가 어렵다고 판단된다. 그렇기에 감정을 저장하여 활용하는 방식의 연구 대신에 감정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연구해야… 』

         

       『 …감정의 방향성을 인위적으로 추가하기 위해서는 세뇌에 가까운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데, 개체마다 차이가 매우 심해 도저히 규칙을 찾을 수가 없다. 더 많은 표본이 필요하다. 』

         

       어떠한 층에서는 세뇌와 약물을 통해 감정에 방향성을 부여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고.

         

       『 감정의 생산을 위한 최소 조건은 무엇인가? 』

         

       『 …최근 축산업계에서 시도하려 하였던 대뇌피질을 제거하고 뇌줄기와 항상성 관련 핵심 기능만 남긴 닭으로 이루어진 효율적인 양계 농장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육신을 이루는 어떠한 것을 거세시키고 통제함으로써 그 효율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예시에서 들었던 양계 농장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기존의 양계장을 한없이 웃도는 압도적인 공간 활용, 변수의 제거로 인한 안정성, 비용의 절감 등으로 어마어마하게 효율성을 끌어올렸음을 볼 수 있다. 』

         

       『 …이러한 방식에서 미루어보듯 감정의 양식을 위하여 적절히 조치한다면 우리는 압도적인 효율로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

         

       『 …그렇기에 우리 연구소에서도 공간을 차지하고, 관리 비용을 소모하게 만들며, 괜한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육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성이 존재한다. 수술을 통해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 모두 제거하거나, 혹은 뇌만을 추출하여 전기자극을 통해 감정을 생산할 수 있다면… 』

         

       어떠한 층에서는 사람의 몸을 가공하거나 뇌만 추출해서 써먹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 감정을 생산하는 최소 단위는 무엇인가? 』

         

       『 우리는 사람이 감정을 생산하며, 그것으로 특별한 일을 행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행할 수 있는 최소의 조건은 무엇인가? 』

         

       『 …우리는 해리성 인격장애나 조현병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표본을 통해 정신에 문제가 있거나 인격이 분리되어 있음에도 충분한 양의 감정을 생산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감정을 생산할 수 있는 최소의 조건과 가장 효율성이 높은 단계는? 』

         

       『 …사람의 인격을 분리하기 위한 전통적인 방식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인격을 그저 분리할 수만 있을 뿐 그것을 통제할 수는 없었으며, 우리는 사람의 인격이 몇으로 분리될지, 어떠한 인격이 생성될지를 그저 운에 맡겨야만 하였다. 이러한 변수가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분명한 일이며, 이러한 변수를 통제하기 위하여… 』

         

       어떠한 층에서는 사람의 인격을 분리하는 연구를 하고 있기까지 했다.

         

       박진성은 각 층에서 보이는 이러한 끔찍한 연구를 보며, 이들이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신앙.’

         

       박진성에게는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다.

       그가 회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행한 것이 일본으로 향해 신 하나를 잡는 것이지 않았는가. 심지어 그렇게 잡아낸 신을 잘 가공한 뒤 신력을 뽑아내는 자판기처럼 만들고, 아주 효율적으로 써먹고 있기까지 했다.

       무녀 사이고 리세를 통해 신력을 담은 주물이나 신물을 만들어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 신력을 통해 할 수 있는 온갖 일들까지도 말이다.

         

       ‘신앙은 공포와 경외,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이들은 그것을 과학적으로, 효율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수준으로 활용하려 한다.’

         

       그래.

       이곳은 농장을 만들기 위한 연구소.

       사람을 가축으로 만들고, 감정을 뽑아내고, 신앙으로 가공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연구소.

         

       그리고 그 신앙이 향하는 곳은 바로.

         

       ‘아나엘.’

         

       인공지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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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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