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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47

       747화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21)

         

       「사용자 : 한가인(지혜)

        날짜 : 40일 차

        현재 위치 : 302호, 저주의 방 – ‘멋진 신세계’

        현자의 조언 : 0」

         

       – 한가인

         

       한 차례의 혈투가 끝난 평원.

         

       주변에 살아있는 생물은 나뿐이었다.

       네 장 이하의 천사들이 최소 수천 이상 학살당하며 흐른 피가 대지를 적셨다.

       그나마도 많이 줄은 상태였는데, 절반 이상의 시체와 피는 벼락을 부리는 수호자에 의해 증발해 버렸기 때문이다.

         

       새삼스럽지만, 천사들에게 인질극 따위는 아무 의미 없었다.

       수호자들은 하급 천사들이 죽든 말든 티끌만큼도 신경 쓰지 않으며 싸웠기 때문이다.

         

       하기야, 어차피 몇 달이면 부활할 테니 대단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겠지.

         

       여러모로 윤리 의식이 인간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후우…”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죽을 줄 알았어.

       나와 엘레나, 진철 형은 여기서 죽고, 아리가 탈출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세 명의 수호자를 쓰러트렸으니까 하는 말인데, ‘생각보다는’ 할만했다.

       수호자, 여섯 날개의 천사들이 약하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다만, 비슷한 느낌의 강자들과 비교할 때, 능력의 균형이 무너져 있었다.

       

       301호의 이스의 공작, 현실에서 만났던 에이디아나 선대 지혜를 떠올려 보자.

         

       그들은 심신 양면으로 약점이 없다시피 했지.

       물리력은 물론 정신 방어력도 불굴에 가까웠다.

         

       반면, 수호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본인들이 특화한 분야에 한해서는 공작을 능가할 정도였지만, 그렇지 못한 분야는 뚜렷한 약점이었다.

         

       화신의 서를 제약할 정도로 마법에 능했지만, 막상 가까이 붙으니 5초 만에 토막 낼 수 있었던 세릴다.

       날개 한번 퍼덕이면 토네이도가 일어날 정도로 물리력이 압도적이었지만, 화신의 서가 제약에서 풀려나니 채 1분을 버티지 못한 제임스.

         

       종합하면, 수호자들 하나하나는 확실히 공작에 미치지 못한 것 같다.

         

       … 호텔 3층에 거하는 위대한 자가 준비한 최후의 패라기엔 살짝 모자란 느낌.

       

       여기까지 깨닫자, 강렬한 확신이 생겼다.

         

       뭔가 더 있다.

       이건 단순한 감이 아니야.

       여섯 날개의 수호자들이 최후의 적이었다면, 그들을 쓰러트린 시점에서 탈출이 떠야 해.

         

       남아있는 적이 있기에 탈출 판정이 뜨지 않는 것!

         

       “…”

         

       가볍게 심호흡하며 세 번째 문장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힘을 얻은 것은 3층에 오기 전이었지만, 적을 상대로 제대로 사용해 본 일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알레프와의 마지막 결전?

       그건 적과의 싸움이라기보다는 ‘설득’이었다고 생각해.

         

       색을 무시한 채 영혼을 끌어당긴다.

       격이 낮은 자들에겐 이것만으로도 사실상 즉사 수준의 위력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무진장의 혼돈을 얻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격 자체를 끌어올릴 수 있다.

         

       무한한 힘의 수급.

       수급 과정 자체가 파괴적인 위력의 마법.

       장기적으로는 나를 위대한 자의 영역으로 이끄는 이치.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거야.

         

       지극히 위대한 권능이나, 실제 써보니 허점도 있었다.

       영혼을 끌어당기는 힘을 견뎌낼 수 있는 강자와의 싸움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던 것.

         

       수급한 힘을 투사할 방법이 애매하다.

         

       세 번째 문장 자체는 ‘색을 무시하고 영혼을 모아 격을 올린다’라는 내용만 있을 뿐, 그렇게 모은 혼과 올린 격으로 ‘무엇을 한다’의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비유하면, 세 번째 문장은 ‘어떻게 해야 신이 될 수 있는가?’의 방법론이다.

       ‘신적인 힘을 어떻게 씀?’과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화신의 서의 창조자인 태어나지 못한 자의 환경에서 기인한 특성이겠지.

         

       태어나지 못한 자는 이름대로 모체, 성운의 용의 체내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

       어떤 의미에선, 지금의 나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에 놓여있던 가엾은 자다.

         

       태어나지 못한 자는 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무지막지하게 많은 영혼’을 얻은 적이 없다.

       사도를 부려 힘겹게 수백, 수천의 영혼을 아등바등 모아서 아끼고 아껴가며 본인의 성장에 투자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존재.

         

       살면서 100만 원 모으기도 힘들어했던 사람에게, ‘왜 1,000억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깨달음이 없느냐’라고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

         

       …

         

       그래서, 수호자와 싸우기 시작하니 또 신성한 태양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문장으로 어마어마한 혼을 끌어모으고, 그 혼을 신성한 태양으로 소모해 가며 싸우는 형태.

         

       이렇게 생각하면 서로의 약점을 완벽히 보완하는 두 유산 같지만, 모은 힘의 양에 비해 쓸 수 있는 힘의 양이 너무 적었다.

         

       세 번째 문장이 축적하는 혼돈의 양은 강림에 필적할 정도인데, 신성한 태양의 출력은 강림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

         

       어쨌든, 많은 성과를 얻은 싸움이었다고 본다.

       그동안 축적한 자원을 극한까지 들이부어 보니 어느 지점에 허점이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말이지.

         

       어떻게 해야 투사하는 힘의 출력을 늘릴 수 있을까?

       한번 고민을 시작하니, 온갖 가능성이 마구 떠올랐다.

         

         

       첫째, 내가 태어나지 못한 자를 능가해 네 번째 문장을 창조하는 것.

         

       가장 궁극적이면서도 완벽한 해답이다.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인 해답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단기간에 가능한 일은 절대 아니었다.

         

       둘째, 다른 유산으로 해결하는 것.

         

       지금의 나는 화신의 서를 거의 통달했다고 본다.

       생전의 태어나지 못한 자도 세 번째 문장을 지금의 나처럼 쓰기 어려웠으리라.

         

       신성한 태양에도 이런 방향성이 있지 않을까?

         

       …

         

       이렇듯, 어찌 보면 여유로운 생각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던 시점.

       

       

       평온이 깨졌다.

         

       “음?”

         

       그 어떤 전조도 없이 누군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갈색 머리칼의 제법 귀여운 인상의 여자애였는데, 살짝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 번은 아니고, 딱 한 번 정도 흐릿하게 본 적 있는 느낌.

         

       극도의 경계심을 느끼며 두 유산을 재차 소환한 순간!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찌하다 하늘에서 떨어졌느냐? 빛나는 별, 여명의 아들인 네가! 민족들을 쳐부수던 네가 땅으로 내동댕이쳐지다니.”

         

       이게 무슨 –

         

       “너는 네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지.”

         

       숨 한번 쉬기도 전에 시작된 추락.

         

       — 쿵!

         

       순식간에 전신이 바닥에 처박혔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하늘로 오르리라. 위대한 별들 사이에 나의 왕좌를 세우고, 북녘 끝 신들의 모임이 있는 산 위에 옥좌를 마련하리라. 구름 꼭대기로 올라가서 지극히 높은 분과 같아지리라.”

         

       그 어떤 물리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힘으로 누가 날 짓누르는 느낌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너는 저승으로, 구렁의 맨 밑바닥으로 떨어졌구나.”

         

       굳이 표현하자면, 운명론적인 추락.

       저 밑바닥에서 기어올라 구름을 바라보던 미천한 벌레가 항거 불능한 운명을 목도하고 다시금 떨어진다.

         

       곧,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낀다.

         

       “꺾였구나. 네 오만의 막대와 타락의 지팡이가 이리도 무참히 부러졌구나. 이제 네 위치를 알았느냐?”

         

       그 시선에는 가련함과 애달픔이 있었으니, 동정의 시선이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

         

       …

       

       과거의 내가 성운의 용의 도움을 받아 사용했던 말의 힘과 유사한 능력.

       태어나지 못한 자부터가 그 힘에 저항하지 못했었지.

       

       이번 상대는 좀 답이 없는 것 같네.

       

       아리야, 탈출할 수 있지?

       

         

       *

       – 김아리

         

       수호자로 추정되는 천사의 허락하에 시작된 ‘멋진 신세계’ 탐색.

         

       — 따각!

         

       복도를 몇 걸음 걸으니, 사방에 내 발걸음 소리가 맑게 울렸다.

       윙 부츠 바닥 면이 운동화처럼 부드럽지 않아서가 첫째 이유겠지만, 학교 내부가 굉장히 멀쩡했다는 이유도 있다.

         

       “…”

         

       세상이 망한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우리끼리는 가늠하기 어려웠는데, 아까 만난 소녀의 말에 힌트가 있었지.

         

       ‘50년이나 지났는데도 태어나지 않아. 어떻게 된 걸까? 설마, 아버님이 내게 거짓말을 하셨을까?’

         

       50년은 확실히 넘었어.

       다시 말해, 이 학교는 50년 넘게 그 어떤 관리도 받지 않았는데 깨끗하다는 뜻이다.

         

       정상이 아니다.

       학교 전체가 거대한 혼돈 재해의 일부다.

         

       그래서일까?

       아까부터 누군가 날 지켜보는 듯한 섬뜩함이 느껴졌다.

         

       “…”

         

       주변을 살피며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상현이의 말에 따르면, 멋진 신세계는 혼돈 재해와 관리국의 기술력을 합쳐서 만들어 낸 혼종이라고 한다.

         

       이런 일 자체는 드물지 않아.

       요원으로 일할 당시, 나도 많이 접해본 일이지.

         

       애초에 관리국의 관점은 상현이의 시각과 살짝 달라.

       혼돈 재해와 과학기술의 경계 자체가 그리 뚜렷하지 않거든.

       마법이란, 아직 원리를 규명하지 못한 과학일 뿐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다.

         

       잡설은 이쯤하고, 멋진 신세계의 정체에 대해 추측해 보자.

         

       추측에 있어서 핵심은 가능성을 좁혀가는 것.

       끝도 없이 많은 가지를 쳐내고, 실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만 남겨야 한다.

         

       어떤 가지를 쳐내고, 어떤 가지를 남기는가?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제작자의 의도’다.

         

       잊지 말자.

       멋진 신세계는 관리국이 만들어 낸 모형 정원이다.

         

       302호의 관리국이 세웠던 플랜 A는 여명의 아들에게 인류의 운명을 맡기는 것.

       여기에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준비한 플랜 B가 멋진 신세계다.

         

       두 가지 모순적인 계획을 동시에 시행하는 건 자연스러워.

       일개 투자자도 재산을 분배할 때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데, 관리국쯤 되면 판단이 옳을 때와 틀릴 때를 모두 고려함이 지극히 정상이니까.

         

       제작자의 의도.

       멋진 신세계에 담긴 관리국의 목적.

         

       여명의 아들로부터 영향받지 않는 인류를 보존하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조건들.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장소여야 한다.

       위대한 자가 현실에 천지창조를 일으켜도 영향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명의 아들조차 파괴할 수 없어야 한다.

         

       “…”

         

       이건 좀 어려운 조건이네.

       개미가 모래성을 아무리 튼튼히 쌓는다 해도 포크레인을 막을 수 있을까?

       과학과 마법, 어느 쪽이든 위대한 자가 인간을 아득히 능가할 텐데.

         

       내가 302호 관리국의 선각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내 입으로 말하긴 뭣하지만, 나도 비슷한 직급에 있던 사람이니까.

         

       어떻게 해야 위대한 자조차 파괴할 수 없는 보호구역을 만들 수 있을까?

         

       “…”

         

       여명의 아들과 힘겨루기해서는 답이 없다.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상대가 스스로 포기하게끔 해야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가능하지.

         

       여명의 아들은 인류를 사랑하는 신이니까.

       그 사랑의 방식이 뒤틀렸을지언정, 인간을 귀여운 골든 리트리버처럼 여기는 존재니까.

         

       그러니까…

         

       “후우…”

         

       여명의 아들이 멋진 신세계를 힘으로 무너트리지 않는 이유.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술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파괴할 경우, 너무나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관리국은 인류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인류 자신을 인질로 삼았다.

         

       “…”

         

       다시금, 불길한 시선을 느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굶주린 늑대가 나를 게걸스러운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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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aping the Mystery Hotel

Escaping the Mystery Hotel

EMH 괴담 호텔 탈출기
Score 4.5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When Han Kain woke up, he and several other people were inside a mysterious hotel with different rules and different expectations.

Going into each hotel room threw them into other worlds and scenarios where they must brace death at times to escape or lift the curse of the individual rooms for a chance to bring everyone that died during the process back to life.

Using their blessings that were given at the time of entry, they have to weave their way through the rooms while sometimes sacrificing themselves for a higher likelihood of success.

* Very little horror; more of a thr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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