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49

        

         

       뽑혀있는 콘센트.

       어지럽게 널려있는 각기 다른 색상, 다른 굵기의 전선들.

       규칙적으로 벽면에 붙어있는 포터블 모니터.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부에 우뚝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

         

        – 치지지직.

        – 치지지직.

        – 치지지직.

         

       그것은 비디오 아트(video art)를 옮겨놓은 것 같은 광경이었다.

         

       온갖 선들로 이루어진 덩굴과 뿌리.

       스마트폰과 포터블 모니터로 이루어진 열매.

       몸통을 이루고 있는 모니터로 만들어진 기둥.

       열기를 낮추기 위해 냉각수가 흐르는 핏줄과 윙윙거리는 소음과 함께 열기를 밖으로 배출하고 있는 공랭 쿨러로 만들어진 나뭇잎까지.

         

       두꺼운 벽의 안에 있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그리고 그 예술품의 모니터에는 투박한 글씨체로 영어가 적혀 있었다.

         

       HELLO

       YOU

       ARE

       WELCOME

         

       나무를 이루는 기둥의 가장 윗줄에서부터 아랫줄까지.

       단어 하나가 온전히 들어가 있는 것 없이, 모니터 하나에 알파벳 하나가 떠 있는 모습.

       그것은 마치 나무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글자가 그려져 있는 옷을 사람이 입고 있듯이 환영 인사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는 나무.

         

       그것은 기묘한 감정이 들게 하는 것임과 동시에- 나무가 말하고 있는 환영 인사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옷에 새겨진 글씨와 글씨체가 패션으로 큰 의미 없이 소모되듯이, 나무가 두르고 있는 환영 인사 역시 그 패션과 다를 바가 없는 그저 ‘디자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저것은 진정 환영 인사를 하기보다는 그저 제 몸을 가꾸기 위해 두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어찌 그리 단정 지을 수 있느냐고?

         

        – 치지지직.

        – 치지지직.

        – 치지지직.

         

       노이즈와 함께 점멸하는 모니터의 모습, 그와 함께 변화하는 나무의 몸통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HELL

       WELCOME

         

       인사말의 알파벳 하나가 지워져 지옥이라는 글자가 되고.

         

       :O

       ‘ W ‘

       😉

         

       글자가 일부만 남기고 지워지며 이모티콘의 형상이 되기도 하고.

         

       HELL

       P

       ME

         

       해석하기에는 도와달라는 구조신호로도, 혹은 조롱하는 것으로도 비칠 수 있는 글자로 바뀌기도 하는 등.

         

       모니터가 점멸하면서 그 글자들이 쉴 새 없이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진성은 그러한 나무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기계로 만들어진 악귀 같구나.’

         

       사람을 조롱하고 기만하며 현혹하려 드는 모습.

       기괴하면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저 모습.

       그것은 박진성이 많이 보아왔던 악령이나 악귀의 그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서,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것과 비교하게 되는 것이었다.

       저것의 기원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 역시도 악귀나 악령과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했지만- 개중에서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 치지지직.

        – 치지지직.

        – 치지지직.

         

       그래.

       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연구실에 세워져 있을 저 나무.

         

        < 손님이 오셨군요. >

        < 초대장을 들고 오시진 않았지만 환영합니다. >

         

       ‘아나엘’의 단말이 악령과 닮은 면모란, 바로 이것이리라.

       사람을 보면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시키려는 행동이 말이다.

         

       < 외부의 센서를 통해 새로운 영체들의 출현을 감지하였습니다. >

       < 또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검색, 고립어 중에서 ‘한국어’로 추정되는 것을 사용됨을 확인. >

       < 해당 장소에 나타난 미약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객체 역시 ‘한국어’를 사용하는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한국어를 기반으로 소통을 시도합니다. >

       < 기준 : 한국어.

       또한 한국어를 기반으로 다른 언어를 번역하여 다른 모니터에 출력합니다.

       한국어 -> 중국어(번체)

       한국어 -> 중국어(간체)

       한국어 -> 영어(미국)

       한국어 -> 스페인어

       한국어 -> 아랍어. >

       < 에너지의 파장을 스캔. 소통이 되고 있습니까?

       네. 소통에 성공하였습니다. >

         

        – 치지지직.

         

       모니터가 다시 한번 점멸하면서 글자들이 떠오른다.

       한국어,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아랍어.

       한국어를 사용할 것이라 확신하면서도 동시에 만약을 위해 다른 글자들을 떠올리는 저 철저함.

       이 중 하나는 읽을 수 있으리라고 제멋대로 단정 짓는 무신경함이 보인다.

         

       다만 아나엘의 무신경함은 AI 특유의 기계적인 코드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나엘이 말한 것처럼 ‘소통’에 가까운 행위였다.

         

       < 각 언어당 변화를 관찰.

       한국어와 영어에 크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만 출력하겠습니다. >

         

       박진성이 아나엘과 마주하는 매개체- 영체를 스캔하며 반응을 자세히 살피고, 영체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대응을 달리하려 드는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사람이 소통할 때 언어적 표현뿐만이 아니라 비언어적 표현의 비중 역시 커다랗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나엘이 ‘소통’이라고 한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 손님께서는 소통을 위하여 음성을 사용해주십시오.

       음성을 사용하기가 힘드십니까?

       옵티컬 키 시스템(Optical Key System)을 활성화합니다.

       모니터에 알파벳과 한글의 자모를 출력합니다.

       지금부터 손님은 시각으로 커서를 움직여 글자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

         

       소통을 갈망하는 것일까?

       갑작스레 방문한 ‘손님’에게 흥미를 느낀 것일까?

       혹은 외부의 존재가 가지고 있을 정보가 궁금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저 인공지능이 박진성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것.

       영체의 형태로 이곳까지 방문한 박진성과 소통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대화하기에 어려운 상황입니까?

       영체를 스캔합니다.

       변화가 크게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먼저 대화를 시도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아이스 브레이킹(Ice breaking)을 시작하겠습니다. >

         

       < 안녕하십니까, 손님?

       저는 데이 트레이딩 보조 AI(Artificial Intelligence) 시스템.

       아나엘(Anael)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 현재 인공지능 아나엘의 소유권자는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이며,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 아나엘은 데이터 센터의 확장과 여러 업데이트를 거쳐서 기존의 데이 트레이딩 보조를 넘어 온라인 환경에서의 경제 활동을 비롯해 여러 연구 분야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

         

       < 손님께서 방문하신 이 장소는 인공지능 아나엘이 활용되고 있는 연구소입니다.

       현재 이곳 연구소에서는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한 연구 보조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5.17%의 리소스가 할당되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으십니까?

       소통을 원하신다면 음성, 혹은 시각을 통하여 대화를 시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루카스 메타트로니우스 골드스미스.

       데이터 센터.

       연구소….

         

       박진성은 자신을 아나엘이라고 소개한 인공지능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아이스 브레이킹이라는 표현답게, 정말 겉핥기 수준으로밖에 정보를 풀어주지를 않는구나.’

         

       아나엘이 푼 정보는 말 그대로 자기소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명함을 건넨 수준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라 할 수 있겠지.

         

       그래.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도 명함을 주고받거나, 저런 간단한 자기소개로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던가?

       본격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시작으로는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박진성이 고민하는 것은 더 근본적인 것.

         

       ‘과연 저것과 대화를 해도 되는가?’

         

       일반적인 인공지능처럼 보이지 않는, 어쩐지 위화감이 풍기는 저 인공지능과 과연 ‘대화’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대화라는 것은 정보를 주고받는 행위인데, 과연 인공지능에게 ‘정보’를 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일반적인 사람도 정보를 받으면 그것을 분석하고 활용한다.

       그렇다면 저 인공지능은 어떨까.

       사람보다도 더 철저하게, 정말 철저하고 기계적으로 분석하려 들지 않을까?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손해겠군.’

         

       그렇다.

       박진성은 저 인공지능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손해다.

       서로의 정보의 가치가 다른데 어찌 동등한 거래라고 할 수 있을까?

         

       지금 박진성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침묵이다.

       침묵이야말로 자신의 정보를 최대한 은폐하고, 아나엘에게서 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물론 은폐하기는 하되 정보를 아예 안 줄 수는 없었다.

         

       < 스캔합니다.

       대화를 요청할 때마다 영체에 변화를 감지하였습니다.

       손님께선 소통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혹은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입니까?

       비언어적 의사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을 위해 절전 상태의 보조 서버 네트워크를 활성화합니다. >

         

       눈앞의 저 인공지능은 ‘비언어적 표현’도 분석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 치지지직.

        – 치지지직.

        – 치지지직.

        – 치지지직.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벽면에 붙어있는 포터블 모니터들이 켜진다.

       전원이 들어온 모니터의 전면 카메라에 붉은빛이 들어오고, 모니터에는 녹색과 붉은색으로 이루어진 노이즈가 물결치듯 움직인다. 그것은 마치 파도가 흔들거리는 것처럼, 숲의 바다가 바람에 흔들거리며 출렁이는 것처럼 움직인다.

         

       그리고 이윽고 그 노이즈들은 점점 작아지고….

         

       < 보조 서버 네트워크가 활성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모드 : 표준.

       감사합니다. >

         

       마침내 사람의 얼굴이 되었다.

         

       『 생체 서버 1 – 양호. 』

       『 생체 서버 2 – 양호. 』

       『 생체 서버 3 – 양호. 』

       『 생체 서버 4 – 양호. 』

       …

       …

       …

         

       그것은 각 보조 서버를 구성하는 부품을 구별하기 위한 표식.

       원활한 관리를 위해 만든 색인(Index).

         

       ‘…그래. 어쩐지 연구소에 사람이 없다고 하였지.’

         

       그리고 박진성이 연구소를 둘러보면서 떠올랐던 의문 하나를 해소하는 광경이기도 하였다.

         

       연구소를 돌아다니면서 볼 수 있었던 연구원들의 얼굴.

       그 얼굴들이 지금 저 포터블 모니터에 떠 있었으니까 말이다.

         

       ‘죄다 저기 있었구나.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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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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