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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 저는 아샤님을 보호하고, 모시기 위해 있는 전속 케어봇입니다. 왜 굳이 보유하신 자원을 썩히려 하시는 겁니까? –

         

         “그러니까! 케어봇답게 집도 잘 지키고 있으면 되잖아? 이게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싫어할 일이야? 네가 괜히 나랑 같이 상황실에 있으면, 현장에서 아쉬운 소리 해댈 게 뻔해서 그러는 건데.”

         

         사람이란 건 참 간사해서, 만약 무력 충돌이 불리하게 돌아가면 이쪽 팀 용병들은 가장 먼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로봇의 도움부터 바랄 것이다.

         

         어떤 권한도, 자격도 없음에도 멋대로 지원을 바라다가 되려 원한을 사느니 차라리 아예 혼자가서 조용히 화이트 칼라 업무만 처리하다가 오는 게 나으리라.

         

         – 제 사적인 선호도에 의거하여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

         

         “핑계는…. 내가 너를 몰라? 또 여차하면 몸을 던져서 뭐라도 해보려고 옆에 붙어있겠다는 거겠지.”

         

         – ……제가 전에 그런 적이 있습니까? –

         

         ‘그래, 인마…!’

         

         질색팔색을 하면서 거부감을 표해 놓고, 또 막상 그 부분을 꼬집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지적인 척하는 깡통을 지그시 노려봤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인 감정은 아니라는 둥 거짓말하는 꾸준한 솜씨하고는….

         사람의 나쁜 점부터 먼저 배우는 건지, 그게 아니면 요 말괄량이 녀석의 개성으로 봐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대체 누구를 닮아서 이렇게 고집불통에 임기응변이 능숙하니 너는.

         

         “혹시 깡통 군은 발렌타인 양이 직접 만든 인공지능인가? 꽤나….”

         

         “……꽤나 뭐요.”

         

         “…아니, 그냥 그 정도는 가능하리라 생각되어서 말이네.”

         

         외야에서 미지근한 시선을 향해오던 선생이 어수선하게 말을 매듭지었다.

         분명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지만, 내가 강하게 추궁할 입장도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일 끝나는 대로 돌아와서 기차표부터 예매할 예정이니까, 그때까지 얌전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천만 크레딧짜리 복합 장갑 이래봐야 본격적인 화망에 노출되면 금방 위험해지는 건 본인이 더 잘 알면서.”

         

         –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집에서’ 기다리겠습니다. –

         

         정말 마지못한 대답이래도 일단 동의를 구하는 데는 성공.

         물론 그 와중에도 억양이 배배 꼬인 게, 입이 댓 발 튀어나온 어린애가 연상되어서 걱정이 앞섰으나… 적어도 기다리겠다는 다짐이 거짓으로 들리진 않았다.

         

         억지로라도 납득해주었다면 다행이다.

         깡통의 자존심이 조금 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어디 그의 탓인가? 애매한 출력을 가진 내부 부품 탓이지.

         

         “알아줬으면 됐어. …아, 선생님? 제니? 이따 돌아왔을 때 자고 계실 수도 있으니 지금 미리 인사드릴께요.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그런데… 답례는 정말 제 피 한 방울로 괜찮으신 건가요? 저희 때문에 영업도 힘드셨는데.”

         

         가게 밖으로 나서기 전에. 다시 보기 힘들지도 모르는 만큼 약소한 감사 인사를 마쳤다.

         

         사실 교통비만 구할 심산이었다면 눈 딱 감고 슈나이더 씨에게 전화만 걸었어도 되었을 일이다.

         

         하지만 여태 끼친 민폐가 죄송스러워서, 가게 손실액이라도 어떻게 좀 메꿔드리려고 용병 영업을 재개한 건데.

         

         고작 개인적인 체질 연구를 위해 약간의 헌혈만 해주면 충분하다 하시길래 어젯밤에 재빨리 끝마쳐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떠날 걸 그랬다.

         

         “…과분한 걸 받은 건 오히려 내 쪽이지. 유출되지 않게 각별히 조심해서 다룬 후 폐기할 터이니 안심하게.”

         

         유출…? 폐기? 무서운 단어들에 거리에 내디딘 발이 잠깐 멈칫했다.

         혈액이라는 물건은 상상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품은 정보의 보고이긴 하다. 하지만 그만큼 비밀관리도 힘든 요소이기에, 에나마에서 노골적인 단서를 심어 놓았으리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게 됐으면 다른 기업들도 추적자 피부터 싹 훑어다가 양산했겠지. 괜한 걱정과 망상이다.

         …아마도.

         

         그렇게 의자에 비스듬하게 누워 손을 흔드는 선생과 다소곳하게 선 제니에겐 가벼운 목례를.

         정말 이럴 거냐며 삐딱하게 나를 바라보는 깡통에게는 사고 치지 말라는 의미를 담아 눈을 부라려준 나는 밤사이 굉장히 화사해진 출근길을 나섰다.

         

         

         ‘연말은 가족과 함께! 그리고 함께 사용하면 더욱 좋은 초정밀 미세진동형 전신 마사지기 HC-F5000! 현재 크리스마스 특가 할인 절찬리 진행 중!’

         

         ‘오직 크리스마스 당일에만 계약 가능한 핫 딜(Hot Deal)! 1년 동안 소비할 먹거리를 매달 정기적으로 배송 받을 수 있는 보존식 배달 서비스 창구가 개설되었습니다~ 최장 소비기한 150년의 압도적 실용성은, 도중에 먹기 싫어진다면 벙커용 비축 식량으로도 완벽!’

         

         ‘기간한정. 지금 샵에서 노화억제시술을 받으시면, 무려 비용의 1.7%를 에나마 코퍼레이션에서 시민 모두를 위해 몸소 부담합니다. 여러분의 길고 건강한 삶, 에나마에서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외로운 밤. 뜨거운 육신. 필요하다. 너는. 섹스로이드가.’

         

         “…마지막 건 뭔데!!”

         

         거리를 가득 채운 건 휴일의 분위기만이 아니었다.

         

         한정, 할인, 특가. 온갖 소비자의 본능을 자극하는 광고들.

         여태도 마땅한 대체재가 없는지 추억과 귀를 동시에 간지럽히는 익숙한 캐롤 송.   

         그리고 원형이 되는 종교의 교리도 거의 남지 않았으면서, 성탄절의 상징물인 십자가 심볼들만 둥둥 떠다니는 화면.

         

         대부분의 가게는 이 날만 쓸 소품을 준비하기는 애매했는지 그냥 디스플레이 패널에 붉은 리본이나 작은 종, 삐죽삐죽한 원형 리스와 지팡이 사탕을 띄워 놓는 걸로 대신했지만.

         

         그런 아이콘들이 길 곳곳에 함께 맴도니 제법 흥겹게 봐줄 만했다.

         무질서가 낳은 조화라고 하면 조금은 상상이 가려나?

         

         그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눈에 띄는 건, 상층부 광장 한복판에 파라다이스가 설치한 초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솔방울이나 전구 등이 걸려야 할 자리에 모니터를 덕지덕지 붙여 놓고. 거기에 각종 홍보 영상과 이미지들을 재생하는 해괴망측한 오브제는 그 자체가 거대한 광고판이나 마찬가지였다.

         

         “거…… 악취미도 정말.”

         

         인조 나무의 초록빛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전자제품으로 빼곡하게 둘러싸 놓은 주제에, 그 첨단에는 큼지막하고 샛노란 별장식이 달려 있었다.

         

         허나 저런 끔찍한 조형물도. 상징성만은 넘치는지 행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애당초 모든 구역을 아우르는 대대적인 기념 퍼레이드가 있다는 점에서 하베스트 플래닛을 마냥 나쁘게 볼 수만은 없었다. 빈부격차가 심하긴 해도, 당장 온갖 생필품이 만들어지는 공장지대가 있는 만큼 먹고 살만 하다는 증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덕분에 이런 소소한 일자리도 창출되고… 도시 커뮤니티를 보면 옐로우 섹터 시민들도 이 기간에는 지갑이 제법 느슨해지는 모양이고.

         

         …네오 헤이븐?

         거기는 크리스마스마다 갱단 항쟁이니, 컨셉형 빌런이니, 이벤트로 위장한 특수 강도로 바쁘시다. …그나마 빈손으로 가더라도 한동안은 맥퀸 가족의 집에서 지낼 테니 빈민가부터 기어올라갈 염려는 덜어서 망정이지.

         

         “어… 브로커 아저씨? 왜 그렇게 불쌍하게 복도에 쪼그려 앉아 있으신가요…?”

         

         “……자네도 안쪽을 보고 나면 이해할 걸세.”

         

         쿵쿵!! 끼이익….

         

         “참 빨리도 오시는군. 해커들 보수는 성과제로 분배되는 걸 까먹은 건 아니겠지?”

         

         “음…. 똑똑히 기억해. 덕분에 아침잠도 다 자고 나왔는 걸?”

         

         윗동네에 있는 파라다이스 소유 고층 건물 꼭대기. 굳게 닫힌 옥상문을 그가 두들기자, 저번에 깡통에게 충돌식 성형수술을 받았던 용병 친구가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비록 말투는 빈정거렸으나 거기에 적개심이나 원한 같은 질척거리는 감정 따위는 일절 묻어 있지 않았다.

         

         ……대체 왜냐고?

         

         시발, 무려 얼굴에 남은 흉터가 생각 외로 존나 멋있어서 마음에 쏙 드신단다. 오히려 따로 장갑 수리비를 보내오면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았다.

         …용병 업계는 정말 미친놈들투성이다.

         

         “우풉?!”

         

         “와하핫…!! 미안하지만 버틸 만한 꿀자리는 일찍 일어난 놈들이 다 가져갔다고!”

         

         쐐애애액! 하는 찢어지는 이명과 함께.

         문턱을 넘자마자 지면으로부터 어마어마하게 떨어진 고지대의 칼바람이 얼굴로 밀어닥쳐왔다.

         

         청각 기능이 도려내진 것 같은 환경 속에서 그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의사소통을 시도해왔다.

         

         정말 자비롭다못해 통도 크신 기업들은, 무려 해커와 엔지니어들의 상황실을 전망도 좋은 옥상에다가 차려 주셨다.

         

         문제라면 씹 멋진 펜트하우스 같은 곳이 아니라, 그냥 쌩 야외에다가 통신장비와 컴퓨터, 의자 책상만 박아 두고는 당당하게 상황실이라고 이름 붙였단 것.

         

         파이브 아이즈로부터 직접적인 공습이 가해질 수도 있기에, 네트워크를 검열하면서도 높은 곳에서 퍼레이드 또한 계속 살피라는 끝내주는 배려였다.

         

         아, 진짜 자택근무 마렵다.

         

         “어떻게! 제일 경치도 좋고 바람도 끝내주는 자리만 남았는데… 안내해드릴까!!”

         

         “…….”

         

         침묵한 상태로 주변을 둘러본다.

         

         이 좆 같은 근무환경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모조리 파이브 아이즈에게 쏟아내겠다는 각오가 일렁거리는 다른 용병들이 눈에 들어왔다.

         

         벌써 기관지가 아파오는지 콜록거리는 불특정 다수의 기침소리, 위태롭게 덜컹거리는 가설 윈드 스크린(Wind Screen; 바람막이용 벽이나 막), 그리고 돌풍에 휘말려 저멀리 날아가는 누군가의 담요가 정말 애처로웠다.

         

         “…검열관 노릇할 임시계정이나 내놔 봐! 나머진 알아서 할 테니까!”

         

         맹렬하게 흔들리는 옷자락 틈으로 내밀어진 메모리 카드를 받아 들어, 지체없이 모서리에 있는 빈 컴퓨터에 연결했다.

         

         일정 기간, 제한된 기기에서만 활성화될 수 있는 네트워크 임시관리자 권한을 구성하는 코드를 천천히 읽어 들인다.

         인증 방식… 활성화 여부… 이런 구조라면 함부로 데이터를 변조하기 보다는 적당히 속여넘기는 게 낫겠다.

         

         “흐…읍!”

         

         다소 민망한 기합을 넣어 내 저렴한 단말기에 부여된 주소 값을 상황실 컴퓨터와 동일하게 바꾼다. 회로를 타고 어지럽게 흐르는 신호 줄기를 비틀어 그 종착지를 내 사이버웨어와 단말기로 고정한다.

         

         형태는 유지한 채로. 용병들이 일을 똑바로 하나… 하며 여기를 감시하고 있을 기업 엔지니어들의 이목을 눈가림한 채로 꼼수를 부리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이 짓도 게임처럼 숙련도가 느는 건지… 아니면 몸이 익숙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더 능숙해지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러면 거지 같은 컴퓨터 앞을 비워 놔도 얼마든지 일할 수 있다.

         

         딸깍…!

         

         치환된 전기 신호를 담은 메모리 카드를 뽑아 내 단말기에 꽂아 넣었다.

         작업용 열쇠를 뽑아냈음에도 화면이 꺼지지 않는 상황실 컴퓨터를 용병 친구가 멍하니 바라보거나 말거나, 나는 말없이 지옥 같은 옥상을 빠져나와 브로커 아재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규정대로면. 밑에 있는 현장요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은 각 상황실에 있어야 하네만.”

         

         떳떳치 못하게 중얼거리는 그도 설마 진심은 아니리라.

         이미 관록이고 나발이고 허세 부릴 것도 없는 사이에 왜 이렇게 나오실까?

         

         “그럼. 같이 무식하게 저기서 개기다가 폐렴이라도 걸릴까요? 모든 이들이면 브로커도 포함될 텐데요.”

         

         “….”

         

         고민은 짧았고. 남은 업무시간은 지나치게 길었다.

         

         “……뭐, 마실 거라도 사다 드릴까? 크리스마스 한정 화이트 코코아가 그렇게 잘 팔린다던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멀리서 보기엔 멋지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비밀기지.

    오늘 연재분을 퇴고 하던 도중에 또 연락이 왔습니다.
    저를 제외한 가족들은 다 응급실로 향한 상태인데 마음이 착잡하네요.

    항상 재밌게 봐주시고. 추천 눌러주시고.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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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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