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5

     과거.

     전쟁은 협곡 문 개방과 왕도 공성전 단 한 번으로 끝났지만, 제국은 공격로를 다섯으로 정하고 이에 관한 모든 계획을 세웠다.

     -자네 부친이 협곡 문을 열어주신 덕분에, 우리 제국이 30년 동안 준비한 침공 계획이 5분 만에 쓰레기가 되었지.

     왕국이 멸망한 뒤, 황제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300가지 전술 중의 299가지 전술이 크림슨 지브롤터가 전장에 합류하는 상황을 가정했는데, 그게 다 의미가 없어졌지 않은가.

     

     왕국의 위기에는 언제나 지브롤터가 있었다.

     지브롤터 협곡을 지키는 것이 의미가 없을 때.

     

     혹은 협곡을 지키는 게 아니라 왕도를 지켜야 할 정도로 상황이 위험한 경우.

     지금의 시점으로 생각해 본다면, 어머니가 왕도에 있는 경우.

     

     협곡은 그대로 지브롤터에 지형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소드 마스터는 땅을 달려 왕국 어디든 갈 수 있다.

     그렇다면 소드 마스터 이외에 왕국에서 특기할 전력은 무엇이 있는가?

     단언컨대, 왕국의 용기사단.

     윈체스터 모르가니아 대공이 이끄는 용기사단은 사역한 비룡-그리폰, 와이번, 드레이크 등-을 타고 전장을 누비는 이들이다.

     어떤 전쟁이든, 압도적인 기동력을 가지고 공중에서 강습이 가능한 기사단을 쉽게 이길 수는 없다.

     제국이 머스킷을 개발한 것도 용기사단에 대항하기 위함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용기사단의 전력은 왕국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제국도 바보는 아니다.

     -나는 솔직히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건 용기사단의 해체 쪽이었어.

     당연히 용기사단을 무력화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다.

     -하나. 윈체스터 모르가니아 대공의 사망.

     윈체스터 공작이 죽었다.

     -아. 오해하지 말게. 암살은 아니었고, 호상이었지. 늙어 죽은 거니까.

     용기사단의 수장이 죽고, 다음 대의 모르가니아가 기사단을 이어받았다.

     -평화의 분위기 속에서, 나이 든 노인이 더 이상 창을 들지 않아도 되게끔 화해 분위기를 조성했지. 막말로 전쟁 분위기였다면, 최소한 5년은 더 지상에 살아있으려고 발악했을 것이야. 자네라면 어떻게 죽였을 건가?

     황제가 물었다.

     -…좋은 방법이긴 한데,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이 있지 않았냐고?

     그래서 대답했다.

     -나이 든 노인이 좋아할 법한 음식들로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 설탕과 밀가루만 먹게 하도록…? 하.

     황제가 허탈하게 웃었지만, 그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둘. 비룡에 대한 타격.

     기병의 기마를 상대로 전술을 펼치는 것과 같이, 황제는 기마에 해당하는 비룡을 공략하고 나섰다.

     -용기사단의 비룡들을 관리하는 브리더들을 포섭했다네. 독을 태워 죽이거나, 날개를 꺾어 날지 못하게 만들었지. 아무래도 직접 타격을 입히려고 하다 보니 여러모로 어려운 게 있었지만….

     그에 대하여, 몇 가지 제안을 했다.

     -…전투 직전에 여물통에 복통과 설사가 일어나는 약을 뿌린다? 허. 비룡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고, 전투에서만 못 쓰게 한 다음 온전히 노획하는 건 어땠냐고?

     그냥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황제는 진지하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었다.

     -뭐? 적을 약화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군이 그를 상대할 정도로 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냐고? 그렇다. 정답이다.

     그 질문에, 황제가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드래곤을 쓰러뜨리려면 드래곤이 나자빠지고 약해지도록 만들어야 하지만, 결국 드래곤의 가죽을 뚫고 칼을 심장에 찔러넣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을 길러야지.

     용기사단의 수장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고.

     용기사단이 비룡을 타지 못하고 땅에서 기어다니게 했으나.

     -우리는 하늘을 나는 부대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지.

     황제는 설령 그런 외적인 요소가 통하지 않더라도, 제국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실력으로 용기사단을 쓰러뜨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용기사단과 우리 제국의 ‘공군’이 대치하게 되더라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도록.

     물어봤다.

     협곡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그 많은 병사들을 어떻게 왕국으로 보낼 생각을 했냐고.

     -병사들을 배에 태우고, 하늘로 날려 보낸다.

     황제는 말했다.

     -너도 타봐서 알겠지만, 협곡은 넘어가지 못하더라도 관문은 넘어갈 수 있지.

     제국은 분명, 하늘을 날아왔을 것이다.

     -배가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면, 하늘을 날아 협곡을 건너겠다고 생각했다.

     마도공학의 개발과 황제의 집착은, 인류에게 새로운 개념을 한 가지 제시했었다.

     -중간에 격추되어 얼마나 죽든 상관없었다.

     50m의 관문을 넘기 위해.

     -마나 방출로 공기를 밀어내기 위해, 마석을 연료로 얼마나 태우든 상관없었다.

     300m의 협곡을 넘어가기 위해.

     -그저, 협곡을 하늘로 넘어 상륙하기만 하면 그만이었어.

     장거리 운항이고 뭐고, 오직 ‘협곡을 위로 넘는다’라는 목적만으로 개발된 극단적 수송 수단.

     비공정(飛空艇).

     아니, 비행선(飛行船).

     -전쟁 채권을 미친듯이 찍어내고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가 가진 모든 자산을 처분하여 모은 마석을 전부 비행선용 풍석으로 써먹을 생각도 했었지.

     제국이 계획했던 침공로는 하늘이었다.

     -그 풍석을 만드는데 그만한 돈이 깨졌는데, 자네 아버지께서 문을 열어주신 덕분에 그냥 걸어서 협곡을 들어왔어.

     계획서상으로는.

     -내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그 풍석을 만든 연구자들에게 쓸데없이 많은 시간과 예산을 조 단위로 때려 부었다는 걸세.

     과거의 일은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는 황제가 직접 ‘후회한다’라고 말했었다.

     -그 쓰레기 같은 연구원들, 내가 시간만 돌릴 수 있었으면 그놈들 모가지부터 뽑아냈을 것이야.

     시간과 예산을 무한대에 가깝게 쏟아붓고.

     그 만들어진 기술을 바탕으로 제국 최고 기업의 배를 가르면서까지 군비를 확충했으나.

     아버지가 손가락 한 번 튕기며 문을 열자, 그 모든 준비는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기술을 개발했던 연구원 중 하나.

     아르쉔 길라루스.

     왕국에서 개발된 풍석의 원형-부유석(浮遊石)의 기술 자료를 제국에 뒷돈을 받고 유출하여 제국의 작위를 받은 매국노다.

     * * *

     잠시 뒤, 제 3관문의 앞.

     “도착했습니다.”

     “허, 허억, 헉…!”

     아르쉔 남작이 거칠게 호흡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인다.

     자존심은 있어서 그런지 두 손을 무릎에 얹으며 헉헉거리고, 전신에서 비가 오는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괜찮으십니까?”

     “이…!”

     마법사들은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심지어 말을 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이들도 있다.

     -말을 왜 타냐. 레비테이션 마법으로 날아가면 그만이지.

     마법사들은 걷는 것보다 날아가는 걸 더 좋아한다.

     본인의 몸에 있는 마력과 예비 마석만 충분하다면, 날아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건물 안이나 도시 내와 같은 짧은 거리의 이야기.

     “백작성에서 협곡까지 제법 거리가 되지요?”

     “헉, 허억, 끄윽…!”

     이 남자, 지금 마나탈진 때문에 거의 죽어가고 있다.

     “저, 도련님.”

     로버트 경이 뒤에서 정말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 안 죽어.”

     “아니, 도련님 말입니다. 아무리 백작님이 한 번 호령하셨다고 해도, 저런 인간은….” 

     “나를 어린애로 보고 앙심을 품을 인간이긴 해.”

     이곳으로 오기 전.

     -백작!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딜 저런 아이를….

     -뭐라고?

     아르쉔 남작은 아버지의 앞에서 나를 모욕하는 듯 시늉을 했고.

     -그레이 지브롤터는 나의 장남이며, 그대를 맞이하러 보낸 내 얼굴이다. 그런 아이에게 뭐라고?

     -아, 아니, 그게….

     바로 아버지에게 죽을 뻔했다.

     -그레이 지브롤터를 대함에 있어, 나 크림슨 지브롤터를 대한다고 생각하라.

     -아, 그, 예!! 무, 물론입니다!!

     

     덕분에 ‘지브롤터에서 쓸모없는 버리는 패 취급받는 장남 그레이’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건 실패했지만-

     “뭐, 그래도 저렇게 빌빌 고개 숙이고 기는 게 더 나아 보이긴 합니다.”

     “나도 그래.”

     로버트의 말대로, 비위를 맞춰줘도 맞춰줄 상대가 있는 법.

     예, 예 거리면서 자존감을 높여주기에는 아르쉔 남작의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

     ‘진심으로.’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다.

     

     미래에는 그 어떤 누구보다도 가치 있는 업적을 이루어 낸 남자가 나에게는 그저 ‘삶 또는 죽음’을 두고 저울질하는 대상이니.

     “이쪽으로 오시죠. 여기,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됩니다.”

     “그, 그래. 그러지.”

     그래도 어른은 어른이라는 걸까.

     아니면 본인의 성향이라거나, 마법사 특유의 뻣뻣한 고개 때문인 걸까.

     “안내해라. 서, 설마 이거, 손으로 돌리거나 하는 그런 짓은 안 하겠지? 응?”

     아버지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든, 이 남자는 여전히 나를 어린아이로 대하고 있다.

     “지금은 도르래로 돌리고 있습니다. 마침 오셨으니, 질문부터.”

     “뭐냐?”

     “마법 중에 바람을 일으키는 마법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거, 마석에다가 담아놓은 뒤에 마나만 불어넣으면 한쪽으로 계속 바람 불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안 될 것도 없지?”

     풍석이든 부유석이든, 둘 다 기본적인 원리는 ‘바람의 방출’.

     “그렇다면 이 승강기 아래에 그런 마석을 달아서 올라갈 때만 바람을 일으키면, 지금보다 더 빨리 올라갈 수 있습니까?”

     나는 질문한다.

     오직 이 승강기에 장착될 부품으로서의, 속도 상승으로서의 질문으로.

     “흐음…. 그것도 불가능한 건 아닌, 음, 잠깐….”

     그리고 아주 우연한 생각이, 연구원에게는 새로운 발상이 되기 마련.

     “……..”

     “길라루스 경?”

     “아, 아니. 아니다. 그냥 가능성을 생각해 봤을 뿐이야. 이론만 따질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불가능하냐도 따져야지. 음.”

     자문자답하듯 말하지만, 시선은 내가 아닌 승강기 바닥과 벽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덜컹, 덜컹.

     아직도 승강기는 성벽 절반을 채 올라가지 않았다.

     “이게 조금만 더 빠르다면, 카르멘 왕비 전하께 좋은 구경을 시켜드릴 수도 있을 텐데.”

     “흐, 그래…?”

     은근슬쩍 카르멘 왕비와의 접점을 흘리며 반응을 살피지만.

     “너는, 이게 빨리 움직이는 것만 되면 그만이라는 것이더냐?”

     “그것 말고 또 다른 게 있습니까?”

     “아니! 없다. 순간적으로 가속한다는 느낌만 있으면 그만이겠지.”

     카르멘 왕비와의 관계를 어필한 것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온 사고가 매몰되어 있는 모양이다.

     ‘씨앗은 던져놓았어.’

     어차피 풍석은 개발될 것이다.

     아직 제국신문에는 풍석이니 부유석이니 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해군의 해체로 1함대의 전함들이 모조리 항구에 들어갔지.’

     비행선의 몸체가 될 배들은 지금 바다가 아닌 어딘가로 옮겨지고 있을 터.

     ‘7년 뒤에 비행선을 띄울 수 있을 정도라는 건, 이미 지금 시점에서 최소한 연구라거나 그 하위 발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아직 정확히는 모른다.

     배를 하늘로 띄운다는 개념 자체가 아직 없을 수도 있고.

     혹은 배에 날개를 달아 협곡 위로 날게 하려고 하는 걸 수도 있고.

     혹은 배의 하판에 부품을 추가하여 바퀴를 달고 육상전함으로 만들어, 오염지대에서 병사들이 수면을 취할 이동용 텐트 정도로 써먹으려다가 비행선으로 전술 계획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군은 해체되었고,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던 배들은 이미 다른 용도로 써먹히고 있다.

     그러니.

     ‘이쪽에서 먼저 풍석을 개발하거나 그래도, 문제 될 건 없다는 말씀.’

     풍석 개발은, 원작자에게 맡긴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번 테스트를 해주시겠습니까? 축제를 위한 익스플로젼 마법.”

     “크흐흐, 그래. 오늘은 내가, 좀 기쁜 날이거든…?”

     아르쉔 남작이 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안에 든 하얀 액체를 그대로 쭉 들이마셨다.

     “흐흐흐. 얼마든지 축포를 쏴주마. 무슨 색으로 해줄까, 응?”

     그리고는 허리에 걸어둔 숏소드 같은 지팡이를 꺼내더니, 협곡 위를 향해 겨눴다.

     “보라색이랑 하늘색이 섞인 색으로 터뜨려주시되, 협곡의 벽을 맞춰주시죠.”

     “흐흐, 그랬다가 협곡이 무너지면?”

     “마스터 급 아닌 분들에게 협곡이 흔들린 적은 없습니다.”

     “킥….”

     아르쉔 남작이 나를 비웃더니, 곧 지팡이 끝을 협곡을 향해 겨눴다.

     “나도 함부로 이 협곡을 건드릴 생각은 없다. 협곡을 함부로 건드린 자에게는 저주가 내린다고 하니!”

     “마법사 분들은 저주를 걱정하지 않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럴 리가! 저주는 조심해야지.  특히 지금처럼…흐흐흐.”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듯, 비릿하게 웃고 있지만.

     “이 몸이 앞으로 할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면 말이지.”

     그건, 독이 든 와인잔이다.

     기술이라는 건, 다른 이가 재현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한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되니까.

     ‘저러니까 내 앞에 끌려와서 대가리에 총 맞았지.’

     기억이, 확실하게 떠올랐다.

     ‘한 번 죽인 사람을 두 번 죽이는 건 좀 그렇긴 한데, 이번에도 내 손으로 죽여야 하나?’

     백은에 취한 상태에서 머스킷을 쏘는 바람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황태자가 숙청한 이유, 예산 횡령이 아니라 그냥 건방져서 그랬던 거 아닌가 몰라.’

     이 남자.

     황제에 의해 제거된 인간이었다.

     ‘괜히 내가 풍석 개발했다고 깝치다가 그림자들에게 마크 당할 수는 없으니.’

     애석하게도.

     ‘열심히 풍석 개발한 다음, 그 연구 결과만 내놓고 떠나시고.’

     이번 생에도, 평범하게 살아남는 건 그른 듯하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