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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퇴각한다.”

         

       결정은 즉각적이었고, 하위 사제는 명령을 받자마자 곧장 마력을 일으켰다.

         

       화아악!

         

       흙탕물을 연상케 하는 지저분한 마력이 넘실거린다.

       주문의 발현이었고, 하위 사제는 영창을 이으려 했으나….

         

       “어딜.”

         

       서걱!

         

       파스슥…!

         

       곧장 마력이 베여, 아니 ‘삼켜’졌다.

         

       “감히 내 앞에서 마법을 쓰는가? 우습지도 않군.”

         

       마력의 흡수.

       아니, 단순히 마력만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생명력을 간직한 모든 것을 흡수하고 제 것으로 만드는 힘.

         

       <랜슬롯>이 가진 ‘불꽃의 신비’를 이은 두 번째 신비인 ‘흡수의 신비’였다.

         

       예부터 신비란 상식을 뒤집으며, 왕의 운명과 영웅의 길을 가려는 이들에게 내려지는…, 신이 인간에게 내린 ‘기적’과 같이 여겨진 바.

       하여 하나의 신비만 가지고 있더라도 별의 선택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검은 규격 외였다.

         

       마검이 가진 신비는 총 다섯 가지.

         

       화염과 흡수의 신비에 비견 가는, 아니 어쩌면 더욱 강력할 수 있을 신비가 무려 세 개나 더 남았다는 뜻이었고, 옛사람들이 마검을 보고 괜히 나라를 멸할 검이라고 평가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힘이었다.

         

       화르륵!

         

       화염이 그들을 감싸고, 당장에라도 태워 버릴 듯했다.

         

       가진바 기력이 줄어들고, 생명력조차 흡수당하는 역함.

       조금이라도 몸이 허약한 이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바로 사망했으리라.

         

       그 정도로 마검은, 아니 저 신비를 자유롭게 다루는 공작은 괴물이 맞았다.

       비록 도구가 강력할지언정, 그걸 다루는 이의 역량이 조금이라도 약하다면 마검은 사용자를 집어삼킬 테니까.

       역대 사용자들의 최후가 비참했듯이.

         

       “흠, 아무래도 그냥 도망가긴 그른 것 같으니, 좀 본격적으로 해야겠구나.”

       “안 그래도 이미 시작했습니다, 흐흐.”

         

       만약 일반적인 마법사였다면 이 상황에 겁부터 먹어야 했을 것이다.

       마법사의 오만함과 자존감 등은 마력에서부터 나오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그 마력이 봉인 당한 격이니까.

       하지만 마법사 사제는 조금도 겁을 먹지 않고 도리어 환히 웃었다.

         

       이걸 시험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 기쁘다는 듯이.

         

       “[나와라, 죽음을 먹고 사는 존재야, 내 앞을 가로막는 적에게 처참한 절망을 부여해라].”

         

       …사제의 주문은 일반적인 주문과 달랐다.

         

       마치 누군가에게 부탁을 건네는 듯한 주문.

       아니, ‘소원’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의 소원이 끝나는 순간.

         

       콰드득!

       콰득!

         

       어느 순간 끔찍하기 그지없는 무언가가 건물 외벽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마법?!”

       “주군께서 계신데 어찌…!”

         

       아무리 소환마법이 이질적인 마법이라고 한들, 마검의 영향 하에 있는 공간에서 소환수가 나타나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허나 공작은 당황하지 않았고, 점차 모습을 드러내는 그것들의 정체를 확인하며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네놈…. 대체 무엇과 계약을 나눈 것이냐?”

         

       “하하, 역시 이 힘은 마검으로 흡수가 안 되는 모양이죠? 다행입니다. 좋은 정보 하나를 얻었네요.”

         

       마법사는 하염없이 웃었다.

       얼굴에서 점차 거미줄 같은 화상이 번져가는데도, 고통이 미치도록 치밀어 오를 텐데도….

       오직 공작을 위협할 수단 하나를 알았음에 기뻐하는 것이었다.

         

       “네놈들….”

         

       공작은 처음으로 저들을 위협으로 규정했다.

       저것은 단순히 권력자가 싫거나, 왕국을 무너트릴 계략을 가진 이들이 보일만한 저열한 감정이 아닌 좀 더 진득한 무언가임을 알았기에.

       저들은 분명 ‘지옥의 존재’와 계약을 맺은 것이 분명했다.

         

       ‘영혼마저 저당 잡히는 삶을 받아들였단 말인가? 단단히 미쳤군.’

         

       광기 어린 원한.

         

       블레이크 공작은 저놈이 그 못지않은 원한을 가진 이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왕국에 대한 원한인가? 그도 아니면 세상에 대한 원한?

       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죽여야겠어.’

         

       저토록 위험한 것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공작은 상대의 원한 따위를 궁금해 하지 않기로 했다.

       누가 더 옳고, 누가 죄인인지를 따지자면 끝도 없기에.

       하니 당장의 앞일에만 집중한다.

         

       “-포획은 포기한다. 죽여라.”

         

       후욱!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그림자들은 반문하지 않고 곧장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실력자들을 향해.

         

       “[적을 죽여라, 아귀(餓鬼)들아].”

         

       아귀, 마물과 인간을 ‘재료’로 만들어진 키메라가 그림자들과 맞부딪쳤다.

         

         

         

         

         

       ……뒤늦게 왕국의 병력이 도착했을 때 목도한 것은 도시 구역 하나가 반파된 광경이었다.

         

       후두두둑….

         

       “……….”

         

       다행히 인명의 피해는 없었으나, 이를 보고 다행이라 여기는 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공포에 질려야만 했지.

         

       그도 그럴 게.

         

       “안타깝게도 한 놈은 놓쳤다. 피해 입은 재산은 갈라하드가 모두 보상하도록 하지.”

         

       건물 17채와 숲 하나가 전소되었고, 이 말도 안 되는 파괴 행위를 저지른 것이 겨우 공작 한 사람과 기사 오십이란 사실이 경악스럽다.

         

       허나 이만한 이적을 만들어 낸 공작은 여전히 불만스러운 얼굴로.

         

       “죽은 이들은 없는가, 라크.”

       “송구할 뿐입니다.”

       “죽은 이들이 없나 물었는데, 왜 사죄부터 나오는지 모르겠구나, 쯧.”

       “…….”

         

       …그림자들은 참담하였다.

         

       저들을 걱정해주는 주군에게 감히 얼굴을 들 수 없어서.

         

       “…빈껍데기라, 재밌는 짓을 저지르는 놈들이 아닐 수 없구나.”

       “…….”

         

       기껏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리며 잡은 마법사는 심장만 뛰고 있을 뿐, 눈에 생기가 없었다.

         

       육신은 붙잡았어도, 그 안에 알맹이가 사라진 것처럼.

         

       “기괴한 것들이 아닐 수 없군.”

         

       블레이크 공작은 나지막한 중얼거림 속에는 분노도 분노지만, 침울함 또한 깃들어 있었다.

         

       공작이란 신분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 많은 현실에 말이다.

       그러며 그는.

         

       “진정으로 왕이 된다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지…, 지금은 좀 관심이 가는군.”

         

       어린 사자가 건방지게 내뱉고 간 속삭임을 떠올렸다.

         

       *

       *

       *

         

       뚝, 뚜욱.

         

       “후우, 후우우…!”

         

       숨을 몰아쉬며 사내는 팔을 부여잡았다.

       도주하던 중 라크란 이름을 가진 기사의 일격에 기어이 팔이 뜯긴 것이다.

       다행히 지혈에 성공하긴 했으나, 이게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기사의 일격이 문제가 아니라, 마검의 불꽃 또한 몸속 내부를 파고드는 바.

       얼마 가지 않아 이 불이 심장을 파고들면 그대로 죽고 말리라.

         

       ‘역시 강하군, 세 명의 초인을 제외하고도 저만한 괴물이 둘. 끔찍할 따름이야.’

         

       부하의 희생 덕에 가까스로 전진하는 사내.

       그는 고통이 치밀어 오르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전진했다.

       포기란 그의 사전에 없는 바.

         

       하여 그는.

         

         

       “-아니, 이제 끝이다. 무대에서 내려오도록, 안드레아 로랑.”

         

         

       …안타깝게도 운명의 기구함이란 불시에 찾아오는 것인지, 고위 사제-.

         

       안드레아 로랑은 핏발 선 눈으로 흑발의 사내를 보았다.

         

       “…….”

         

       “40년 전, 신전이 무수한 전사들을 육성하여 왕국에 대항하려던 적이 있었지. 선왕께서 그런 신전의 야망을 깨닫고 한 번 무너트렸으나, 살아남은 자들은 여전히 신전에 기생하여 살고 있다고 들었거늘, …설마 작금에 와서 다시 왕국을 전복하려는 계획을 꾸미고 있을지 그 누가 알았으랴.”

         

       사내의 입에선 그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의 소속과 숨겨진 이력마저 나오고 있었다.

         

       어찌 그가 그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일까?

         

       “네놈들을 쫓는 게 공작뿐이라 생각했더냐? 더러운 벌레 놈들, 감히 북부에다 신앙이란 이름의 ‘역병’을 뿌려놓고 우리의 눈을 피할 수 있으리라 여겼나? 북부가 만만했나 보군…!”

         

       구구구궁-!

         

       마치 대형 맹수가 울부짖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가 으르렁거리듯 분노하자 땅이 한차례 흔들렸다.

         

       안드레아 로랑은 그제야 깨닫는다.

       북부에 심어놓은, 신앙심 떨어지는 이들이 기어이 정보를 뱉어냈음을.

         

       “…이러니 신앙심이 얕은 이들을 쓰는 게 아니었는데.”

       “신앙심이 떨어지진 않더군, 거의 오백 일이 넘게 고문한 끝에야 얻어낸 정보였으니 말이다. 지독하더군, 대체 세뇌를 얼마나 심하게 시킨 것인지, 원.”

         

       사내는 치를 떨었다.

       겨우 벌레 몇 마리 때문에 북부가 입은 피해는 상당했으니 말이다.

       비록 겉으론 드러나지 않았지만, 골병이 들고 있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겠는가?

         

       그 정도로 저들의 교리, 아니 저들이 전파한 이념과 사상, 그리고 세뇌 방식은 지독했다.

       지금도 그 잔재를 모두 걷어내지 못한 상태였고 말이다.

         

       하여 그가 직접 나섰다.

       정보를 얻자마자 발걸음을 옮겼다.

       기필코 찾아내어 뿌리째 뽑아내기 위하여.

         

       “순순히 불어라, 네놈들, [혈십자군]인지 하는 녀석들의 본거지는 어디더냐? 순순히 말한다면 자비로운 죽음을 주도록 하지.”

       “…‘우리의 이름’까지 알아냈는가, 대단하군.”

         

       이름까지 나온 순간 그 존재가 들켰음을 인지한다.

       안드레아 로랑은 음울한 비소를 머금었다.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돌연 그는.

         

       “……이 세상엔 힘없고 서글픈 어린 양들이 너무 많으니, 하여 피로써 그 모든 비극을 씻어내고 정화할 것이며, 이 영혼이 지옥불구덩이에 빠져 억겁의 고통을 받을지언정, 우리의 고통으로 세상을 정화하리라-.”

         

       십자가를, 아니 역십자가를 손에 쥐며 오싹한 기도문을 올렸다.

       어떠한 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이질적인 기도문이 아닐 수 없었다.

         

       “빌어먹을 광신도 같으니.”

         

       사내, 마그누스 율리아 드 라이오넬은 지긋지긋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저들의 교리를 몇번이나 들었고, 그 과격함에 치가 떨린다.

       하지만 저 교리의 뜻이 뭔지 알기에 그조차 공감은 간다.

       그리고 필시, 저 사상이 퍼져 왕국 시민들에게 스며든다면 법치가, …아니, 왕국은 무조건 무너진다.

         

       하여 막아야 한다.

         

       더 이상 퍼지기 전에.

         

       “막시무스.”

       “안 잡아도 되겠소?”

       “무의미한 짓일 뿐이다.”

       “그럼 알겠수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기사, 북부의 대전사 막시무스가 그의 앞에 섰다.

       흑왕이 날뛰기엔 이 자리가 너무 좁기에.

       비교적 작은 그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혈십자군에서 당신 지위가 천인장은 된다지? 그 힘을 보여줬으면 좋겠군.”

         

       막시무스는 비록 저자가 용서 못 할 죄인임을 알고 있지만, 저와 당당히 겨룰 기회를 주었다.

       한 인간의 인생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허나.

         

       “-<13번째 천사>시여, 부디 죄 많은 불신자들에게 피의 정화를 강림시키소서.”

         

       주륵….

         

       그의 눈과 코, 입과 귀 등에서 피가 흘러넘쳤고, 그는 막시무스가 준 인간으로서 죽을 ‘기회’를 던져버렸다.

         

       주륵, 주륵-.

         

       안드레아 로랑의 몸은 점차 녹기 시작했다.

       피가 그의 살점과 뼈를 녹이며 세상에서 지웠고, 대신 이형의 힘을 강림시켰으니.

       지금 이 순간 안드레아 로랑은 대영주급 기사단과 단독으로 전투를 벌일 힘을 얻은 셈이었다.

         

       다만.

         

       “…어리석기 짝이 없구나!”

         

       힘을 얻는 대가로 인해 더는 이지가 없는 괴물이 된 선택은 어리석다 못해 삶을 모욕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주륵, 주륵….]

         

       어찌 투쟁을 회피하고 저런 핏덩어리의 모습이 되길 선택한단 말인가!

         

       막시무스는 분노했다.

       차라리 인간으로 죽을 것이지, 어찌 저런 모습이 되어서 최후를 맞이한단 말인가?

         

       “그토록 세상이 원망스러우면 더 반항이라도 해야만 했다.”

         

       지금처럼 될 것이 아니라.

         

       […주륵.]

         

       “…….”

         

       콰앙!!

         

       막시무스는 평소의 유쾌한 모습을 던지고, 더할 나위 없이 흉흉한 기세와 함께 부월(斧鉞)을, 막대한 크기의 배틀액스를 손에 움켜쥐었다.

         

       후우우욱!

         

       웬만한 배틀액스보다 거대한 도끼를 방망이마냥 자유롭게 다루는 거력을 선보이며, 막시무스는 저를 덮치려는 참담한 핏빛 괴물을 향해.

         

       “흐읍!”

         

       전력으로 일격을 내질렀다.

         

         

         

         

         

       ……피로에 젖은 어느 기사가 잠든 이후, 뒤처리로 바쁜 새벽녘.

         

       그날의 밤은 유난히 길고도 굉음이 많이 들렸다고 한다.

         

         

       한참이나.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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