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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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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그쪽 보스가 전한 말이 있다. 잠깐 문 좀 열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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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 봐도 상대는 방을 착각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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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덜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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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문을 열려는 지 문 손잡이가 마구 흔들렸지만 잠겨있어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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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초 안에 안 열면 이 문 부순다? 하나, 두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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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시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하던 아이리스는 예상치 못한 과격한 말에 미간을 구긴 채 리안의 옷에서 얼굴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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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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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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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소음과 함께 문이 부서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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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레? 문 앞에 아무도 없었잖아? 하, 애초에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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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시선이 리안의 옷을 향했다. 문의 파편이 날아와 옷 끝자락이 찢어져 있었다. 아이리스의 눈이 탁하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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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그쪽 년들은 꽤 반반하게 생겼다던데 사실이잖아? 이봐 차라리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게 어때? 내가 최대한 예뻐해 줄 테니까. 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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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흡사 고릴라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진 여자는 아름답지만 어린 아이리스에게 욕정을 숨기지 않고 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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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멋대로 제 영역을 엉망으로 만든 행동도, 리안의 옷을 망가뜨린 것도, 기분 나쁜 눈빛도 전부 불쾌했다. 아니, 불쾌를 넘어 혐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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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곧바로 여자를 여/자로 만들어버리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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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허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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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짐승이 울음을 터뜨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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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드득,촤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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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끄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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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영역을 침범받아 열받은 제스가 여자의 머리를 붙잡아 그대로 뜯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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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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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와 몸이 분리된 시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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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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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게 울음을 뱉은 제스는 손에 묻은 피를 가볍게 핥더니 벌떡 일어나 아이리스를 휙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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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이,이거 죽여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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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가 뒤늦게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질문했다. 아이리스는 시체에 성큼성큼 다가가 배를 퍽 차버리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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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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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욕실 쪽에서 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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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 밖에 무슨 일 있어? 큰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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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리게 굳어있던 아이리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아이리스는 욕실 앞까지 다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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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응, 아냐. 밖에서 누가…싸우는 소리인 것 같아.”
   “그래? 안 나가봐도 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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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지금 나와봐야 한다고 말하면 리안의 헐벗은 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느라 긴 침묵 끝에 겨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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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았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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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의 말이 끝나자 물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리안은 오래 씻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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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관비용에 샤워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 본전은 뽑자는 주부 정신이 발동된 탓도 있었고, 여행 중에 따뜻한 물로 씻을 기회가 별로 없어 한 번 할 때마다 길게 씻는 게 습관이 된 탓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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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여튼 그런 이유로 리안은 밖에서 무슨 난리가 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개그 세계에선 꽤 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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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쿵,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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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의 핏물이 마르기도 전에 비슷한 덩치와 생김새를 가진 이들이 우루루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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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억! 비,비엔나님!”
   “비엔나씨가 당했다!”
   “마,말도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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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리안 일행의 숙소 쪽으로 다가오다가 복도에 떨어진 비엔나의 머리를 발견하곤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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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대장 역할을 했던 비엔나의 죽음에 덩치들이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이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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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전쟁이다!”
   ​“하,하지만!”
   “대장까지 죽은 데다, 임무를 실패한 우릴 보스가 살려둘 것 같아? 우리에게 남은 길은 저 두 년을 제압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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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챙,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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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뒤가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덩치들이 검을 뽑아 들고 아이리스와 제스에게 덤벼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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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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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듯 말을 뱉어내며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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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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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를 풀 수 있는 곳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아이리스는 진심으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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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벽에 기대놓은 검을 뽑아 들고 단번에 복도로 뛰쳐나왔다. 더 이상 더러운 것들의 피로 방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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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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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가 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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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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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분 전, 리안 일행이 머무는 여관의 가장 고급스러운 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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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찍한 거실에 화려한 카페트가 깔려있었고 그 위에 푹신한 가죽 소파가 고급스러운 나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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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 소파에는 노아가 다리를 꼰 채 앉아있었고 반대쪽에는 험악하게 생긴 나이 든 여자가 앉아있었다. 각 소파 뒤에는 조직의 호위가 한명씩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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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지속된 단련과 태생적인 이유로 키가 쑥쑥 자라 그 나이대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못해도 17살은 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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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스트의 보스가 이 정도로 어릴 줄을 몰랐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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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진 턱을 가진 중년 여성이 비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명백한 조롱이었지만 노아는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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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비안의 보스가 이 정도로 나이 든 아줌마일 줄은 몰랐네요. 아, 할머니인가?”
   “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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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를 악무는 소리를 들으며 노아는 차가운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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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더 기분 나쁜 인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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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왜 이런 기분 나쁜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대화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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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 알기 위해선 현재 카르디샨의 정세를 간단히 알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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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디샨의 ​북서쪽 지역을 지배하는 난쟁이 보스, 동쪽 지역을 지배하는 데비아탄, 남쪽 지역에서 언제나 전쟁 중인 조직 연합 베리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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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중 난쟁이 보스가 차지하고 있던 북서쪽의 지역이 보스의 죽음으로 붕 뜨게 되었고, 내분으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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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조각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작은 지역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혼란 속에서 새로운 세력을 일구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로 온갖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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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온갖 혼란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접한 놈들은 손쉽게 무너져 내리거나 발을 빼면서, 싸움의 구도가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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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쟁이 보스와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을 치르며 북서쪽의 땅을 노리던 ‘데비아탄’과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조직임에도 무서울 정도로 세력을 키운 노아의 조직 ‘네스트’의 싸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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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의 조직원이 애새끼인 네스트가 데비아탄과 비등하게 싸운다는 건 말이 안 되다. 아니, 말이 안 된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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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전이 일어났다. 네스트가 데비아탄과 비등한 걸 넘어 조금씩 지역을 삼켜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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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데비아탄을 밀어내고 거대한 지역을 삼키기 위해선 더 큰 힘과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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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그나마 청렴한 조직을 집어삼켜 조직의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런 노력으로도 데비아탄을 완전히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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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상황에서 떠올린 방법이 ‘동맹’이었다. 잔혹하여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조직과 임시 동맹을 맺어 덩치를 키운 후 데비아탄을 단번에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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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로선 그 방법 말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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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기분 나쁜 인간과 마주하고 있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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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쯧, 그래도 어느 정도 대화는 통할 거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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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겉모습 따위로 멋대로 판단을 내리고 조롱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제대로 된 대화가 될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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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여자의 눈에 선명하게 서린 무시와 욕망을 읽었다. ‘네스트’라는 통통한 먹잇감을 집어삼키고 싶다는 욕망을 마주하자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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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쓰레기들과 협업하는 건 포기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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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뒤에서 칼을 찌를지 모를 사람과 동맹을 맺는 건 자살이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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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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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순간 상대의 소파 뒤쪽에 서 있던 호위가 검을 뽑아 들었다. 노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띄웠던 엉덩이를 소파에 붙였다. 그러자 호위가 검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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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워, 아직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데 그렇게 일어나는 게 어디 있나? 뭣보다 난 네 년 아니, 네 녀석의 요청 때문에 억지로 나온 몸이라고.”
   “죄송하지만, 대화는 여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내가 너무 기분 나쁘게 얘기해버렸군. 미안하네, 보스끼리 만나면 이런 식으로 기선제압을 하는 게 습관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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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정말 실수였다는 듯 순식간에 푸근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하지만 노아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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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그래, 어렵게 만든 자리이니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좀 더 대화를 나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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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맹을 맺지 않더라도 대화를 통해 상대의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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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습니다. 그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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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제 용건을 천천히 꺼내놓고 있을 때, 비안의 보스는 제 호위에게 어떠한 신호를 주었다. 목을 긁적이는 척을 하며 어깨를 가볍게 툭툭툭 세번 두드렸다. 그러자 호위가 검집의 아랫부분을 잡아 신호기를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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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호실의 바로 옆 방,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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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대다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대한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근육이 얼마나 많은지 얼굴 근육까지 우락부락해 그림체 자체가 다르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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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보스의 명령으로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모인 비안 조직의 오크 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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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노아쪽 부하를 인질로 잡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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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크 부대의 대장 비엔나가 신호기를 보며 씩 웃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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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호다. 분명 저년 부하가 쉬고 있는 게 아래층 2023호라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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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의 말에 그녀의 부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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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호가 아니라 2024호라고 들었습니…커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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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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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하가 비엔나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무섭게 비엔나가 주먹으로 부하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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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내가 잘못 알았다는 거냐?! 내가 2023호면 2023호인 거야!”
   “꺼흑..예,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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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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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내가 가서 간단히 손 보고 있을 테니까 너희는 5분 있다가 내려와.”
   “예? 하지만…”
   “뭐? 할 말 있어?”
   “아..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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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공을 독식하겠다는 말에 부하가 반발하려 했지만, 비엔나가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 보이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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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먼저 간다. 조용히 대기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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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가 떠나고 5분이 지났을 무렵, 조직원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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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다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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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를 알 리 없는 비안의 보스는 노아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며 속으로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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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흐흐, 멍청한 년. 제 부하가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딴 헛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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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청한 부하 때문에 조직의 주요 부대가 괴멸되었기에 진짜 멍청한 년은 본인이었지만, 비안의 보스가 이를 알아차릴 방법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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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보호막덕후님!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지금까지 리안(일행)이 한 행동
1. 거대 조직 보스를 암살하기
2. 적대 조직의 주요 부대 괴멸 시키기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어이, 그쪽 보스가 전한 말이 있다. 잠깐 문 좀 열어봐.”

딱 봐도 상대는 방을 착각한 것 같았다.

덜컹,덜컹!

억지로 문을 열려는 지 문 손잡이가 마구 흔들렸지만 잠겨있어 열리지 않았다.

“3초 안에 안 열면 이 문 부순다? 하나, 두울 -…”

​‘무시하면 알아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하던 아이리스는 예상치 못한 과격한 말에 미간을 구긴 채 리안의 옷에서 얼굴을 들었다.

“세엣!”

콰아아앙!

거친 소음과 함께 문이 부서져 버렸다.

“얼레? 문 앞에 아무도 없었잖아? 하, 애초에 열어줄 생각이 없었다는 거냐?”

아이리스의 시선이 리안의 옷을 향했다. 문의 파편이 날아와 옷 끝자락이 찢어져 있었다. 아이리스의 눈이 탁하게 가라앉았다.

“오, 그쪽 년들은 꽤 반반하게 생겼다던데 사실이잖아? 이봐 차라리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게 어때? 내가 최대한 예뻐해 줄 테니까. 키히….”

오크를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덩치를 가진 사람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흡사 고릴라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진 여자는 아름답지만 어린 아이리스에게 욕정을 숨기지 않고 내보였다.

아이리스는 멋대로 제 영역을 엉망으로 만든 행동도, 리안의 옷을 망가뜨린 것도, 기분 나쁜 눈빛도 전부 불쾌했다. 아니, 불쾌를 넘어 혐오스러웠다.

그녀가 곧바로 여자를 여/자로 만들어버리려는 순간.

“크허헝!”

거대한 짐승이 울음을 터뜨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우드득,촤아악!

“끄억 -…”

제 영역을 침범받아 열받은 제스가 여자의 머리를 붙잡아 그대로 뜯어버렸다.

쿵!

머리와 몸이 분리된 시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아오오옥!”

길게 울음을 뱉은 제스는 손에 묻은 피를 가볍게 핥더니 벌떡 일어나 아이리스를 휙 돌아보았다.

“헉! 이,이거 죽여도 되는 거..야?”

제스가 뒤늦게 귀를 축 늘어뜨린 채 질문했다. 아이리스는 시체에 성큼성큼 다가가 배를 퍽 차버리며 대답했다.

“응.”

그 때, 욕실 쪽에서 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리스! 밖에 무슨 일 있어? 큰 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시리게 굳어있던 아이리스의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아이리스는 욕실 앞까지 다가가 말했다.

“으응, 아냐. 밖에서 누가…싸우는 소리인 것 같아.”

“그래? 안 나가봐도 돼?”

“……응.”

아이리스는 지금 나와봐야 한다고 말하면 리안의 헐벗은 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느라 긴 침묵 끝에 겨우 대답했다.

“알았어.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해줘.”

“응.”

아이리스의 말이 끝나자 물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리안은 오래 씻는 편이었다.

여관비용에 샤워 비용이 포함되어 있어 본전은 뽑자는 주부 정신이 발동된 탓도 있었고, 여행 중에 따뜻한 물로 씻을 기회가 별로 없어 한 번 할 때마다 길게 씻는 게 습관이 된 탓도 있었다.

하여튼 그런 이유로 리안은 밖에서 무슨 난리가 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개그 세계에선 꽤 흔한 일이었다.

쿵,쿠웅!

비엔나의 핏물이 마르기도 전에 비슷한 덩치와 생김새를 가진 이들이 우루루 내려왔다.

“허억! 비,비엔나님!”

“비엔나씨가 당했다!”

“마,말도 안 돼!”

그들은 리안 일행의 숙소 쪽으로 다가오다가 복도에 떨어진 비엔나의 머리를 발견하곤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들의 대장 역할을 했던 비엔나의 죽음에 덩치들이 굳은 채 움직이지 못했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이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젠장! 전쟁이다!”

​“하,하지만!”

“대장까지 죽은 데다, 임무를 실패한 우릴 보스가 살려둘 것 같아? 우리에게 남은 길은 저 두 년을 제압하는 것뿐이다!”

챙,채쟁!

그 말에 뒤가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덩치들이 검을 뽑아 들고 아이리스와 제스에게 덤벼들려 했다.

“다행이다.”

아이리스는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듯 말을 뱉어내며 아름답게 미소 지었다.

“죽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분노를 풀 수 있는 곳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아이리스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녀는 벽에 기대놓은 검을 뽑아 들고 단번에 복도로 뛰쳐나왔다. 더 이상 더러운 것들의 피로 방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촤아아악!

시체가 늘어갔다.

***

10분 전, 리안 일행이 머무는 여관의 가장 고급스러운 호실.

널찍한 거실에 화려한 카페트가 깔려있었고 그 위에 푹신한 가죽 소파가 고급스러운 나무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었다.

한쪽 소파에는 노아가 다리를 꼰 채 앉아있었고 반대쪽에는 험악하게 생긴 나이 든 여자가 앉아있었다. 각 소파 뒤에는 조직의 호위가 한명씩 서 있었다.

노아는 지속된 단련과 태생적인 이유로 키가 쑥쑥 자라 그 나이대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못해도 17살은 되어 보였다.

“네스트의 보스가 이 정도로 어릴 줄을 몰랐는데 말이야.”

각진 턱을 가진 중년 여성이 비웃음을 지은 채 말했다. 명백한 조롱이었지만 노아는 태연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나도 비안의 보스가 이 정도로 나이 든 아줌마일 줄은 몰랐네요. 아, 할머니인가?”

“뭣…?!”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를 악무는 소리를 들으며 노아는 차가운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더 기분 나쁜 인간이네.’

노아가 왜 이런 기분 나쁜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대화를 하고 있는가?

그걸 알기 위해선 현재 카르디샨의 정세를 간단히 알고 가야 한다.

카르디샨의 ​북서쪽 지역을 지배하는 난쟁이 보스, 동쪽 지역을 지배하는 데비아탄, 남쪽 지역에서 언제나 전쟁 중인 조직 연합 베리모사.

그중 난쟁이 보스가 차지하고 있던 북서쪽의 지역이 보스의 죽음으로 붕 뜨게 되었고, 내분으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다.

빵 조각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작은 지역이라도 차지하기 위해, 혼란 속에서 새로운 세력을 일구기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로 온갖 인간들이 모여들었다.

처음에는 온갖 혼란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허접한 놈들은 손쉽게 무너져 내리거나 발을 빼면서, 싸움의 구도가 명확해졌다.

난쟁이 보스와 시도 때도 없이 전쟁을 치르며 북서쪽의 땅을 노리던 ‘데비아탄’과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조직임에도 무서울 정도로 세력을 키운 노아의 조직 ‘네스트’의 싸움이 되었다.

대다수의 조직원이 애새끼인 네스트가 데비아탄과 비등하게 싸운다는 건 말이 안 되다. 아니, 말이 안 된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반전이 일어났다. 네스트가 데비아탄과 비등한 걸 넘어 조금씩 지역을 삼켜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데비아탄을 밀어내고 거대한 지역을 삼키기 위해선 더 큰 힘과 많은 사람이 필요했다.

노아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그나마 청렴한 조직을 집어삼켜 조직의 크기를 키워나갔다. 그런 노력으로도 데비아탄을 완전히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떠올린 방법이 ‘동맹’이었다. 잔혹하여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조직과 임시 동맹을 맺어 덩치를 키운 후 데비아탄을 단번에 밀어낸다.

현재로선 그 방법 말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노아가 기분 나쁜 인간과 마주하고 있는 이유였다.

‘쯧, 그래도 어느 정도 대화는 통할 거라 생각했는데.’

나이, 겉모습 따위로 멋대로 판단을 내리고 조롱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과 제대로 된 대화가 될 리 없었다.

노아는 여자의 눈에 선명하게 서린 무시와 욕망을 읽었다. ‘네스트’라는 통통한 먹잇감을 집어삼키고 싶다는 욕망을 마주하자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역시 쓰레기들과 협업하는 건 포기해야겠어.’

언제 뒤에서 칼을 찌를지 모를 사람과 동맹을 맺는 건 자살이나 다를 바 없었다.

노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 했다.

그 순간 상대의 소파 뒤쪽에 서 있던 호위가 검을 뽑아 들었다. 노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살짝 띄웠던 엉덩이를 소파에 붙였다. 그러자 호위가 검을 집어넣었다.

“워워, 아직 제대로 된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데 그렇게 일어나는 게 어디 있나? 뭣보다 난 네 년 아니, 네 녀석의 요청 때문에 억지로 나온 몸이라고.”

“죄송하지만, 대화는 여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내가 너무 기분 나쁘게 얘기해버렸군. 미안하네, 보스끼리 만나면 이런 식으로 기선제압을 하는 게 습관이라.”

그녀는 정말 실수였다는 듯 순식간에 푸근하게 풀어진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하지만 노아는 경계를 풀지 않았다.

‘후…그래, 어렵게 만든 자리이니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좀 더 대화를 나눠보자.’

동맹을 맺지 않더라도 대화를 통해 상대의 정보를 얻어갈 수 있을 터였다.

“…좋습니다. 그럼 – ”

노아가 제 용건을 천천히 꺼내놓고 있을 때, 비안의 보스는 제 호위에게 어떠한 신호를 주었다. 목을 긁적이는 척을 하며 어깨를 가볍게 툭툭툭 세번 두드렸다. 그러자 호위가 검집의 아랫부분을 잡아 신호기를 작동시켰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호실의 바로 옆 방,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들은 대다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대한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근육이 얼마나 많은지 얼굴 근육까지 우락부락해 그림체 자체가 다르게 생겼다.

그들은 보스의 명령으로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모인 비안 조직의 오크 부대였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간단했다. 노아쪽 부하를 인질로 잡을 것.

오크 부대의 대장 비엔나가 신호기를 보며 씩 웃음 지었다.

“신호다. 분명 저년 부하가 쉬고 있는 게 아래층 2023호라고 했었지?”

비엔나의 말에 그녀의 부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2023호가 아니라 2024호라고 들었습니…커헉!”

퍼억!

부하가 비엔나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무섭게 비엔나가 주먹으로 부하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그럼 내가 잘못 알았다는 거냐?! 내가 2023호면 2023호인 거야!”

“꺼흑..예,예!”

비엔나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 내가 가서 간단히 손 보고 있을 테니까 너희는 5분 있다가 내려와.”

“예? 하지만…”

“뭐? 할 말 있어?”

“아..아뇨..”

모든 공을 독식하겠다는 말에 부하가 반발하려 했지만, 비엔나가 위협적으로 주먹을 들어 보이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먼저 간다. 조용히 대기하고 있어!”

비엔나가 떠나고 5분이 지났을 무렵, 조직원들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들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이를 알 리 없는 비안의 보스는 노아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여주며 속으로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크흐흐, 멍청한 년. 제 부하가 어떤 꼴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딴 헛소리나 늘어놓고 있으니.’

멍청한 부하 때문에 조직의 주요 부대가 괴멸되었기에 진짜 멍청한 년은 본인이었지만, 비안의 보스가 이를 알아차릴 방법은 없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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