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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눈앞에서 중갑을 입은 오크들이 난도질당하는 걸 보던 나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여기도 아니라고?

   

   완전 무장한 오크 두 마리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거야?

   

   아아. 젠장.

   

   여기도 아니라면 다른 곳은.

   

   <여아야. 근처에서 사람의 생기가 느껴지는 구나.>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을 이어 나가고 있을 무렵에 할배가 목소리를 냈다.

   

   이전에 아그라가 만든 함정에 빠졌을 때도 몬스터의 기척을 정확히 파악하던 할배다.

   

   그가 감지를 했다면 그는 분명 믿을만한 소식이었다.

   

   ‘위치는 어디죠?!’

   <거리가 있어 정확하진 않다만 여기서부터 남남서 방향이다.>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고 할배의 말을 기반으로 위치를 찾는다.

   

   여기서 남남서로 멀리.

   

   어딘지 알겠다.

   

   벽 함정이 있는 곳이구나.

   

   바닥의 특정 위치를 밟는 순간 파티원 사이를 갈라버리는 벽이 생겨나는 장소야.

   

   그걸 이용해서 아서 일행과 떨어져서 시련을 주겠다는 거겠지.

   

   루카의 의도를 파악했으니 이제 남은 일은 달려가는 일 뿐이었다.

   

   ‘여러분들!…’

   “허접들! 불쌍왕자님이 기어 다니고 있을 장소를 알아냈어!”

   

   내 한 마디에 이 자리에 있는 교수들의 시선이 모여든다.

   

   처음에는 내 지시에 떨떠름해 하던 교수들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의 지휘가 맞아떨어져 가는 것을 본 이들은 날 학생이라 무시하지 않고 내 지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위치는!…’

   “약해 빠진 불쌍 왕자님이 있는 곳은…”

   

   *

   

   던전을 나아가는 아서 일행 사이에서는 한 마디의 말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처음 아카데미의 던전을 공략할 때만해도 화기애애하던 이들이었지만 아서의 마도구가 발동되며 잘못된 곳으로 흘러들어온 지금은 그저 숨소리만이 오고 갈 따름이었다.

   

   가끔 가다 분위기를 풀기 위해 루카가 목소리를 내지만 그 순간 몇 마디가 흘러나올 뿐 내리 앉은 분위기는 올라올 줄을 몰랐다.

   

   그 속에서 아서는 자신의 실수를 통감하고 있었다.

   

   내 오판 때문에 모두를 위기에 빠트렸다.

   

   루시 알른에게 질 수 없다는 마음에 홀려 믿을 수 없는 이가 건넨 아이템을 사용한 탓에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멍청했다.

   

   불쌍 왕자라며 날 모욕한 이에게 복수해야 한단 생각에 병신 같은 짓을 저질렀어.

   

   아서는 이 던전에서 마주했던 몬스터를 기억했다.

   

   뜨거운 입김을 불며 성인 남성의 키보다 더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던 미노타우르스의 모습을 잊지 못했다.

   

   그는 지금의 아서가. 자칼이. 매튜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거대한 육신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자연스레 그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루카 교수가 자신의 품 안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어서 미노타우르스를 제압했기에 아무도 다친 이가 없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루카 교수가 없었다면 세 사람은 꼼짝없이 마물에게 죽었을 거라는 소리였다.

   

   나의 잘못으로 나를 돕기 위해 모였던 이들이 죽을 뻔 했다.

   

   그 사실이 아서에게 가져다주는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여태까지는 복수에 눈이 멀어 멍청한 짓을 저지른 역사 속의 사람들을 보며 바보 같다 생각했거늘 그 바보가 여기에 있었구나.

   

   그나마 아서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루카 교수가 옆에 있었기에 잘못을 바로 잡을 기회가 생겼단 것이다.

   

   어린 나이에 명성을 떨쳐 아카데미의 교수가 된 자 답게 루카가 지닌 실력은 진짜다.

   

   미노타우르스를 가뿐히 도축해버리는 것을 보면 저 자에게 이 던전은 그리 위험한 장소도 아닐 터.

   

   이 자와 함께한다면 던전에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겠지.

   

   그러니 그 후의 일을 생각하자꾸나.

   

   우선은 자칼과 매튜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

   

   이미 사과를 건네긴 했지만 말로만 하는 사과는 의미가 없으니 물질적인 보상을 해줘야지.

   

   그 후엔 내게 나침반을 건네주었던 그 교수를 추궁해 봐야지.

   

   무슨 목적으로 내게 이 물건을 건네준 것인지를 확인해봐야 할 터이니.

   

   당연히 본인도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

   

   아카데미 측에서 본인을 배려할 지라도 그를 걷어차고 제대로 된 벌을 받아야 해.

   

   본인이 잘못을 저지른 건 명확한 진실이니까.

   

   그리고. 루시 알른을 용서해야겠군.

   

   …

   

   

   어찌 되었든 간에 승부는 승부다.

   

   아서가 6층을 공략할 때에 루시 알른은 이미 20층을 넘게 올라간 상태였으니 그의 패배는 확정적.

   

   루시 알른은 아서가 무슨 발악을 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대였던 것이다.

   

   그러니 아서는 자신을 불쌍 왕자라며 부르며 모욕한 이를…

   

   허. 어렵군.

   

   패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인정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워.

   

   이는 본인의 마음이 너무도 작은 탓일까.

   

   딸칵.

   

   아서가 상념에 잠겨 있던 중간에 무언가 장치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그를 듣고서 고개를 든 아서는 루카의 왼 발 아래가 움푹 파인 것을 발견했다.

   

   “이런.”

   

   루카가 외마디 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루카와 아서 일행을 가르는 돌벽이 생겨났다.

   

   “안 돼. 이러면.”

   “여러분들!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루카와 떨어졌단 사실에 당황한 자칼이 벽에 다가서려는 순간 반대편에서 루카가 큰 목소리를 냈다.

   

   그의 말을 듣고서 자칼이 벽에서 떨어진 순간 벽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벽 너머에서 루카가 벽을 파괴하려 시도한 것이다.

   

   허나 돌벽은 굳건했다.

   

   저 너머에서 몇 번이고 굉음이 연이어 울렸지만 돌벽에는 자그마한 금조차 새겨지지 않았다. 결국에 루카가 포기를 한 것일까.

   

   벽 너머에서 울리던 굉음이 멈췄다.

   

   “여러분들! 거기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반드시 구하러 가겠습니다!”

   

   루카가 목소리가 줄어듬과 동시에 벽 너머에서 내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을 부술 수 없으니 다른 길을 통해 이 곳으로 오려는 생각인 듯 했다.

   

   그렇게 신입생 세 사람이 남겨진 때에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낸 건 아서였다.

   

   “움직여야한다.”

   “예?”

   “왕자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루카는 기다리라 했지만 여기에 가만있으면 안 된단 소리다.”

   “그럼 루카 교수님과 엇갈릴 지도 모릅니다!”

   

   자칼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지만 아서는 완고했다.

   

   여기서 멋대로 움직여버리면 루카와 만나기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아서라고 해서 그를 모르진 않는다.

   

   그럼에도 움직여야 한다 이야기 한 것은 이 곳이 막다른 길이기 때문이다.

   

   “자칼. 이 곳의 마물은 우리가 대적할 수 없을 만큼 강하네. 그런데 만약 퇴로도 없는 이 곳에서 마물을 만나게 되면 어찌 되겠나.”

   

   결과가 어떨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몰살이다.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은 죽는다.

   

   누군가의 희생? 기적?

   

   그런 것 따위는 없다.

   

   세 사람은.

   

   밝은 미래를 보장받은 세 사람은.

   

   이 던전의 마물에 의해 죽는 것이다.

   

   “그렇지만…”

   “루카 교수와 엇갈려도 결과는 똑같지 않습니까?”

   

   말을 잇지 못하는 자칼 대신 매튜가 꺼낸 물음에 아서는 고갤 끄덕였다.

   

   “맞네. 매튜. 내 방안은 생존시간을 약간 늘리는 발악일지도 모르네. 그렇지만 루카 교수가 언제 이 곳에 도달할지 모르는 상황에선 이 근처에서 퇴로라도 확보해 두는 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군.”

   

   아서는 냉정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탐탁치않아 보였다.

   

   그가 꺼낸 마도구로 인해 이 곳에 내던져지게 된 자칼과 매튜다.

   

   그들의 입장에서 아서의 말을 신뢰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내가 저지른 업보가 이렇게도 빨리 돌아오는 군.

   

   어찌 이들을 설득해야 하지?

   

   아서가 그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길목 저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사람의 것치고는 과할 정도로 무거웠다.

   

   여기까지 오며 여러 마물을 마주한 일행이다.

   

   저 발소리의 주인이 누구일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미노타우르스.”

   “안돼. 안돼. 안돼!”

   “신이시여.”

   

   갑작스레 생겨난 벽 때문에 퇴로가 막힌 길에 낡은 신전의 천장에 닿을 듯한 거대한 덩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판단이 늦었군.

   

   아서는 자신의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고서 맨 앞에 가서 섰다.

   

   본래 마검사인 아서가 서 있어야 할 곳은 자칼의 뒤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위험을 초래한 지금 아서는 맨 앞에 서야 했다.

   

   그것이 무의미한 발악일 지라도. 최소한의 책임을 지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시간을 끌어 보지. 틈이 보이면 도망치게.”

   

   내가 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봐야겠지.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고서 미노타우르스를 상대하기 위해 자세를 잡은 그 순간.

   

   “거기 멀대 소♡ 그 따위로 생겨선 암컷인거야?♡ 핫♡ 침을 질질 흘리면서 남자한테 달려드는 게 변태같잖아♡”

   

   목숨이 걸린 심각한 상황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얄미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미노타우르스의 움직임이 굳었다.

   

   아서는 보았다.

   

   필사적으로 내달린 건지 평소와 달리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뒤엉킨 여자아이의 모습을.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항상 증오스럽다 생각했던 눈웃음을 짓는 것을.

   

   하하. 나도 많이 몰려있었나 보군.

   

   왜 저 웃음을 본 순간 안심이 되는 걸까.

   

   “허접들. 달려들어.”

   

   *

   

   ‘할아버지! 진짜 고마워요!’

   <무얼. 메이스에 갇힌 몸으로써 이 정돈 해야지.>

   

   아슬아슬했네!

   

   할배가 아니었더라면 다른 곳을 뒤지다가 늦었을 지도 몰라.

   

   그랬다면 내가 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가뿐히 미노타우르스를 제압하고 아서 일행에게 안부를 묻는 교수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내가 늦어서 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면 또 혼자 얼마나 시달리고 있었을까.

   

   하아. 이렇게 되면 이제 던전 공략만 끝마치면 되는 건가?

   

   그거야 쉽지.

   

   지금 여기에 있는 전력이 얼마나 강한데.

   

   이 정도면 아그라가 개수작을 부려도 그걸 박살낼 수 있을 걸.

   

   좋아. 최단 거리로 공략을 끝마치고 돌아가자고.

   

   이 던전이 있는 데서 아카데미까진 그리 멀지도 않으니까 저녁 해가 지기 전엔 아카데미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그리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아서가 교수들 사이를 빠져나와서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뭐야? 뭔데?

   

   아서에게 저지른 게 있다 보니 아서가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그래도 목숨을 구해줬는데 화를 내진 않겠지?

   

   그렇겠지?

   

   “루시 알른.”

   

   ‘ㄴ…네!’

   “말씀하세요. 불쌍왕자님.”

   

   아서는 불쌍왕자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눈썹을 살짝 치 떴을 뿐 따로 내색을 하진 않았다.

   

   “우선 감사를 표하지. 교수들에게 들었네. 자네가 우리를 구조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지. 자네가 아니었다면 내 잘못으로 자칼과 매튜가 위험했을 걸세.”

   

   고개를 숙이는 아서를 보고 있자니 떨떠름했다.

   

   아서한테 감사인사를 받을 날이 올 줄이야!

   

   나 평생 얘한테 미움받고 살 줄 알았는데!

   

   “그리고 이번 승부에 있어 내 패배를 인정하겠네. 자네가 지닌 재능은 진짜였어. 그대는 오만하지만 오만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세.”

   

   진지한 어투로 이야기하는 아서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야길 해도 메스가키 스킬이 필터링해서 괴상한 단어를 만들어 낼 것 같았으니까.

   

   으. 어떻게 해야 이 분위기를 깨지 않을 수 있을까.

   

   – 띠링.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메시지 창이 떠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퀘스트 클리어 했다고 그러는 거야?

   

   흐흥. 허접 주신.

   

   이럴 때는 잘 챙겨 주는 구나.

   

   그리 생각을 하며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아그라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진지하게 좆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닥에서 나와 아서를 중심으로 해서 마법진이 생겨났다.

   

   “아가씨!”

   

   깜짝 놀란 칼이 반응을 하는 것보다 먼저 마법진의 불빛이 피어올라 주변과 우리를 가른다.

   

   그리고 마법진의 빛이 다시금 사그라 들었을 때.

   

   나와 아서는 콜히티의 옛 신전 어딘가에 내던져진 채였다.

   

   씨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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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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