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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EP.75

     

   정확한 타이밍에 들어간 완벽한 기습.

   목을 꿰뚫린 검은 기사 두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며 공기 중으로 흩어지자, 어둠 속 상황을 늦게나마 파악한 네 사람이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스걱!

     

   목을 찌르고 물 흐르듯 연계한 공격이 놈들 중 하나의 팔을 깊게 베며 지나갔다.

   남아 있는 상대는 넷이었고 그나마 하나에게 중상을 입혔으니 한가민의 공격만 제대로 들어간다면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얕았어요.”

   “어쩔 수 없지.”

     

   작전은 단순했다.

   둘을 시작부터 끊어내고 남은 인원 중 두 명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그리고 중상을 입은 둘을 미끼로 나머지를 빠르게 제압하는 것이다.

     

   개인전에서 얻은 장신구와 망자들을 처치하고 오른 능력치가 머릿수의 격차를 줄여 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강행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놈들의 머릿수는 처음 예상과는 달리 하나 많았고 한가민의 팔이 짧아 다소 깊은 상처를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부상자를 보호하면서 싸울 것 같지도 않군.’

     

   근육을 깊게 베어낸 것인지 축 처진 왼팔을 부여잡은 한 놈이 고통을 호소하며 인상을 잔뜩 구긴다.

     

   “아악! 파, 팔!!!”

     

   점점 고통이 차오르는지 과격하게 발광하는 놈.

   하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셋은 동료의 팔이 떨어지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비겁하더라도 부상자를 이용해 보겠다는 계획은 쓸모가 없어진 상황.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에는 일렀고 나는 시야각을 확보하기 위해 한가민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크큭.”

   “뭐가 웃기지?”

     

   내가 검을 들어 올리자 그걸 본 한 놈이 오히려 검을 늘어뜨리며 조소를 띤다.

     

   “아, 죽을 게 뻔한 놈이 발버둥치는 모습이 좋아서.”

   “미친 놈이군.”

     

   놈의 말에 팔이 너덜거리는 하나를 제외한 나머지가 비릿한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 게다가 깃발을 회수하면 다시 단체전에 참여할 수도 있을 테니, 묘한 기대감도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이참에 우리가 너희 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지. 깃발을 놓고 꺼져. 그럼 고통은 없이 로비로 갈 테니.”

     

   결국 놈들도 피해를 감수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몸이 온전한 놈들이나 몸을 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이미 시원하게 칼빵을 맞은 놈은 동의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씨발, 개소리 마! 나는 저 새끼들 죽일 거야!”

     

   팔이 덜렁거리던 놈이 검을 들고 한 걸음 다가왔다.

   눈에 핏대가 서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놈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한가민이 움찔거렸다.

   나를 죽이겠다는 일념만이 가득한 눈빛. 고작 스무 살의 여대생이 느끼기에는 그 강도가 너무나도 거셌다.

     

   하지만.

     

   “가민아.”

   “네, 네?”

   “포기한 거 아니지?”

   “…당연하죠.”

   “그럼 됐다.”

     

   나는 잡념을 떨치기 위해 짧게 심호흡하고는 빠르게 검을 고쳐 잡았다.

   상대는 총 넷. 그중 하나는 중상을 입었으니 어쩌면 해볼 만할지도 모른다.

     

   “오오? 이 새끼! 남자구나?”

   “크큭! 여자 앞이라고 목에 힘주는 거야?”

     

   놈들의 빈정거림이 동굴 내부를 가볍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보였다. 어두운 동굴에서 작은 모닥불의 빛을 받아 반사된 뺨의 땀방울과 전투 직전의 긴장으로 힘이 들어간 어깨의 반동이.

     

   “가민아 부상당한 놈 막타치고 와. 내가 세 놈 붙잡고 있을 테니.”

   “하, 할 수 있겠어요?”

   “할 수 있다 없다가 아니야. 이건 해야 해.”

     

   내 말을 들은 한가민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는 놈을 응시한다.

   내가 맡을 상대가 셋. 모두 나와 같은 능력치를 지녔기에 지금부터는 검술로 승부를 봐야 했다.

     

   타아앙!

     

   선수필승.

     

   내가 놈들에게 달려들자 어중간하게 검을 들고 있던 셋이 급하게 검을 고쳐 잡았다.

     

   채애앵!

     

   “으윽!”

   “죽어라!”

     

   민첩성이 엇비슷했기에 아슬아슬하게 막혀 버린 검. 그리고 내 몸이 잠시 멈칫하자 그 기회를 틈타 다른 하나가 나에게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검이 막혔다는 것이지 흐름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연마한 천월신공은 고작 한 합으로 흐름을 멈출 정도로 애매한 무공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파팟!

     

   월광보법 月光步法

     

   나는 검과 검의 반발력을 이용해 놈의 머리 위도 뛰어올랐다.

   아슬아슬하게 옷자락을 스치는 두 갈래의 검이 목표를 잃은 채 허공을 찢는다.

     

   “이 새끼가!”

     

   한 놈은 나의 움직임을 놓쳤지만 다른 한 놈은 나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그리고 나의 신형이 떠올랐다는 것을 확인한 놈은, 곧장 검을 비틀어 나에게 달려들었다.

     

   피이잉!

     

   놈의 검에 검푸른 마력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 움직임을 보니 전력을 다해 나를 제압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 판단한 모양.

     

   “죽어!”

     

   놈의 검이 공중에 있는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든다.

   수 싸움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정직한 일격.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공중에서 방향을 전환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콰앙!

     

   “뭣?!”

     

   내 몸이 공중을 선회하며 날아들자 놈이 기겁하며 급하게 검을 회수했다.

   허나, 검의 회수보다 내질러진 나의 검이 한 수 빨랐다.

     

   게다가 시작부터 지금까지 월광보법의 초식을 밟고 있는 상태. 내가 놈들 보다 느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서걱!

     

   “어, 어떻…끄륵!”

     

   피거품을 물게 된 놈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움직임. 이게 게임이 아닌 현실인 이상 2단 점프 따위는 웃기지도 않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무림에서 말하는 허공답보를 펼치기에는 나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하지만 이곳은 동굴이었고 안 그래도 낮은 천장에 있던 종유석은 정확히 내가 디딜 발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쐐애액!

     

   땅에 착지하자마자 두 개의 검이 날아들었다.

   심장을 노리며 날아드는 서슬 퍼런 칼날에 간담이 서늘해졌지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하나의 검을 쳐내며 바닥을 굴렀다.

     

   피핏!

     

   허벅지를 얕게 베며 지나가는 칼 끝.

   공격이 보이긴 했지만 신체 능력이 머리를 못 따라주는 것 같았다.

     

   “이런 미친 새끼가!”

   “하압!”

     

   둘의 검이 또다시 달려든다. 허벅지를 벴다는 것을 파악한 것인지 상대적으로 둔해진 좌측을 집요하게 공격해 온다.

     

   “후우…! 쓰읍!”

     

   카카캉!

     

   목을 노리며 찔러오는 검을 흘려 낸다.

   허벅지를 그으려는 공격을 막아 내고 허리를 가르려는 검을 다시 한 번 피해 낸다.

     

   한 번의 공격에 두 번의 수비.

   처음에는 협공이 어색했던 두 놈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놈들의 공격은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었다.

     

   ‘틈이 없다.’

     

   너무나도 빠르다.

   운이 좋아서 하나를 베어내긴 했지만 같은 능력치를 가진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벅찬 일이었다.

     

   심지어 둘이 사용하는 검술이 달랐던지 템포도 엇갈리고 수도 변칙적이다.

     

   ‘그리고 마력이 부족해…!’

     

   시간을 끌수록 불리한 것은 나였다.

   체력적인 부분이나 전투에 적응을 하는 부분에서 놈들은 서서히 여유를 보이고 있었으니 심적인 압박마저 강해지고 있었다.

     

   “왜 그러시나? 생각처럼 쉽지 않아?”

   “건방진 새끼가! 개인전에서 능력치만 믿고 깝죽거리더니 능력치 떨어지니 별거 없네!”

     

   기세를 빼앗겼다. 그나마 멀리서 부상자를 상대하는 한가민은 승기를 잡아가는 것 같았지만 내가 체력이 떨어져 놈들 중 하나가 한가민에게 간다면 그 흐름도 금방 깨질 수밖에 없었다.

     

   ‘젠장…’

     

   무턱대고 월광검법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

   제대로 공격이 먹혀들어간다면 하나는 제압할 수 있겠지만, 만약 실패로 돌아간다면 보법을 펼칠 마력도 남지 않는다.

     

   서걱!

     

   “읏!”

     

   오른팔에 기다란 자상이 생겼다. 절단 되지는 않았지만 짜릿한 통증이 지나간 이후에 감각이 빠르게 둔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보법을 펼쳐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검을 고쳐 잡지 않고 싸웠다가는 금방이라도 무기를 놓칠 것 같아서였다.

     

   “후우…… 지긋지긋한 놈.”

   “쓰읍, 드디어 한 방 먹였네.”

     

   놈들이 전투 동안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지쳤지만 나와 비교해서 아직 멀쩡한 호흡.

   공방을 주고받으며 생긴 자잘한 상처들이 쓰라린지 인상을 잔뜩 구기며 앓는 소리를 냈지만 놈들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염화를 써야 하나?’

     

   아니. 염화는 최후에 최후를 위한 수단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능력치가 떨어진 상태였기에 염화를 쓰는 순간 이성을 잃을 것은 자명한 일.

     

   그랬다가는 앞의 세 놈은 물론이고 이성을 잃은 내가 한가민을 불태워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 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지금이라도 깃발을 넘긴다면 죽이지는 않겠다.”

     

   놈들의 말에 멀리서 힐끗힐끗 전투를 돌아보던 한가민이 동요했다.

   고작 부상자 하나에도 고전을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며 불안하지 않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가민!!!”

     

   움찔.

     

   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그녀가 정신을 차린 게 눈에 보였기 때문.

     

   고개를 들어 나에게 다가오는 두 놈을 응시하자 그들도 짧은 순간이지만 몸이 경직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둘이다.

   하지만 나는 놈들을 하나로 보기로 했다.

     

   그저 두 배 더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두를 수 있는 상대.

   맷집이 좋아 한 번 베는 걸로는 부족한 적.

   쌍검을 들고 변칙적인 검술을 구사하는 무인.

     

   ‘이길 수 있다.’

     

   능력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었다.

     

   나의 스승인 화영은 대량의 코인을 사용해 압도적인 능력치를 가진 나와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

   당휘소 또한 민첩을 Lv.60까지 끌어올린 나를 상대로 대부분의 공격을 반응했고 나 또한 개인전에서 한기의 기사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시도한다.

   실패한다.

     

   죽지 않았다면 다시 시도한다.

   죽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한다.

     

   스릉.

     

   나는 아직 감각이 살아 있는 왼팔로 조심스레 검을 들었다.

   서서히 검 끝에 맺히는 옅은 마력에 그것이 최후의 발악이라 생각했던지 놈들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타앙!

     

   나는 월광보법과 추뢰신법의 초식을 더해 최대한 변칙적인 움직임을 펼쳤다.

     

   “죽으려고 애를 쓰는구나!”

     

   나의 돌진에 맞춰 놈들 또한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체력을 다한 나를 향해 마지막 공격을 퍼부을 모양새.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놈들의 수를 간파했다는 점이었다.

     

   핏.

     

   나는 검을 내질렀다.

   날아오는 공격에 굳이 검을 맞대지 않았다. 그저 몸을 살짝 비틀어 피해냈을 뿐.

     

   길을 잃은 검로에 한 놈의 균형이 무너진다. 제대로 된 협공이 어색한 탓에 거리를 재지 못한 다른 한 놈이 급소를 허락한다.

     

   푹!

     

   심장에 검이 박힌 놈이 울컥 피를 토하며 비틀거린다.

   다른 한 놈이 바짝 붙은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허공을 수놓은 것은 찢겨진 검은 로브와 내 것이 아닌 팔 한 짝이었다.

     

   서걱!

     

   “어어…?”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놈의 얼굴에 경악이 깃든다.

   억울함이 가득한 놈의 표정. 하지만 이미 떨어진 목에 깃든 감정을 감상하는 게 썩 의미 있는 일은 아니었다.

     

   “……”

     

   나는 무심한 눈으로 바닥을 구르는 머리통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한가민과 검을 나누던 놈이 나와 눈이 마주치자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이것은 하나의 깨달음.

     

   능력을 가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을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 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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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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