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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배신이라.”

         

       베르너 그라임은 그저 담담하게 카린의 보고를 받아들었다.

         

       처음에는 빨리 이 소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으나, 국장에게서 돌아온 반응은 오히려 그녀를 답답하게 만들 뿐이었다.

         

       “국장님…!!”

         

       “너무 조급해하지 말도록, 카린. 그 여자는 자기가 가진 패를 그렇게까지 쉽게 깔 사람은 아니야.”

         

       이미 몇 번의 회귀 속에서 도로시의 거무죽죽한 속내까지 모두 파악한 베르너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독니를 드러낸 것은 비단 이번 회차만이 아니었으니.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한 번 죽을 뻔한 이후에는, 그 다음 회차에서 도로시는 베르너에게 제거당했었다.

         

       그녀를 처리한 이후에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지금 이렇게 놔두고 있는 것일 뿐.

         

       첫 단추부터가 잘못 잠겼으니, 도로시가 무슨 개짓거리를 한다 하더라도 베르너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해치고, 제 목숨까지 거둬갈뻔 했던 여자를 어떻게 안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사정을 알지 못하는 카린은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도로시는 위험했다.

       적어도 몇 주 동안 지켜본 바로선 그러했다.

         

       처음부터 인상이 좋지 않았던 것과 별개로, 카린 메이븐은 도로시를 진심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연적으로서가 아니다.

         

       애초에 베르너 그라임이 그녀에게 일절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카린이 도로시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이 얻고 싶은 걸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ㅡ.

         

       ‘파괴적인’ 여인이기에 그러했다.

         

       몇 주 동안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화류계 여성이 세 명, 붉은 거리에 객으로 방문한 손님이 다섯 명이다.

         

       여덟 명의 목숨을 간단하게 앗아가버리고는 일말의 동정이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극악무도한 악녀.

         

       심지어 화류계 여성들은 딱히 그녀에게 잘못이랄 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제가 맘에 들어하는 단골들이, 그녀에게 눈길을 한번 주었다고 처리당한 것이다.

         

       아주 제대로 미친년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경찰이나 정부 인사들과 깊은 연줄이 닿아있어 제대로 처벌도 안 당했다.

         

       붉은 거리를 찾는 방문객은 결국 두 부류밖에 없었다.

         

       음지에서밖에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의 밑바닥이던가.

         

       겉으로는 양지에서 살아가는 척 하면서도 돌틈이나 썩은 나무 밑으로 기어들어가 휴식하는 벌레들.

         

       전자는 한 두명 정도 죽는다고 해서, 사회는 별반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세금이나 축낼 뿐인 하층민들 아닌가.

         

       살해당했음이 분명함에도 경찰은 실족사라며 공소권 없음을 주장하곤 했던 것이다.

         

       적어도 붉은 거리에서만큼은, 그 미친 여자가 여왕이었고 총통이었다.

         

       진상으로 유명한 VIP들조차 도로시를 상대로는 언제나 젠틀함을 유지했으니.

         

       그녀에게 죽임을 당하는 진상들은 그녀에게 있어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려던 버러지들 뿐이었다.

         

       도로시, 최후의 헤타이라를 안기 위해서는 그만한 교양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위험하다.

       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까다로운 적이었으니.

         

       “하지만…! 만약, 만약 헌병대에 고스란히 가져다가 바치면요? 최근 변경된 최고사령부 헌병실장이라면 아무리 국장님이라고 한들…!!”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면 돼.”

         

       “….”

         

       지극히 단순한 회귀자다운 생각이었다.

         

       새로 부임한 헌병실장이 미친 새끼라는 소식은 진작에 받았다.

         

       본래 일반적인 제국군의 징계절차는 감찰 – 헌병수사 – 군사법원이라는 3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중에서 굳이 권한이 가장 강한 곳을 찾으라면 역시 감찰.

         

       헌병과 군법원 모두 감찰의 대상이니만큼, 최고사령부 감찰실이 명시된 기관 중에서는 그 힘이 가장 강력했다.

         

       괜히 아르헨 오르카가 실장직에 오르고 나서 제국군에 피바람이 분 것이 아닌 것이다.

         

       털어서 먼지 한톨 안 나오는 부대가 어디 있을까.

         

       정작 그 감찰실이 총통이 계획한 ‘군 길들이기’에 있어 가장 날카로운 검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는 못했겠지.

         

       그런데 최근 들어 그 흐름이 뒤바뀌고 있었다.

         

       헌병실에서 감찰실을 건너뛰고 직접 부대들을 조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미하일 총통이 아르헨 역시 헌신짝처럼 내버리려는 줄 알았으나, 감찰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보원의 말로는 그것도 또 아니었다.

         

       다만 헌병실이 최근들어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총통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 새로운 헌병실장이 총통과는 같은 동문이라고 했었던가.

         

       아르헨 오르카는 이미 총통의 검으로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 편이 베르너에겐 오히려 안심되었다.

         

       적어도 어딘가로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이상한 짓은 안 당할 것이 아닌가.

         

       그랬다면 이 선택을 또 한번 뼈저리게 후회했으리라.

         

       그리고 군검찰이나 법원이야 예전부터 총통의 사냥개로 유명했던 이들.

         

       마지막으로 남았던 한 조각인 헌병실까지 그의 최측근이 장악해버렸으니, 최고사령관 아서 필리아스는 모든 견제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진정한 의미의 뒷방 늙은이.

         

       그러나 그 말은 곧, 독수리 둥지에서 논했던 거사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 없다.

         

       “어차피 헌병이 움직이는 순간, 우리쪽에도 정보가 당연히 닿을 수밖에 없어. 그럼 그때 우리의 방식대로 대응하면 되는 거다.”

         

       카린 메이븐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발, 조심하세요. 국장님.”

         

       이제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없단 말이에요.

         

       카린 메이븐은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애써 삼켰다.

         

       이미 과도한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베르너였다.

         

       이 이상 부담을 주는 것은, 카린 스스로도 결코 원하지 않았다.

         

       그녀가 되고 싶은 것은 베르너 그라임의 힘이었지, 고민거리가 아니었다.

         

       당장 레아 길리아드나 샬롯 에버그린, 그리고 아르헨 오르카만 하여도 그랬다.

         

       베르너 그라임의 곁에서 보좌하는 보좌관이자 안전국의 경비중대장으로서, 베르너가 그레이브야드의 옛 동료 중에서도 그녀들을 유독 신경쓰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 깨닫고 있었으니까.

         

       국장의 마음도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들의 뒤를 따를 수는 없다.

         

       “고맙군, 카린. 진심이야.”

       “알겠습니다. 방해해서 죄송해요. 이만 들어가보겠습니다.”

         

       카린 메이븐은 베르너 그라임 국장에게 경례를 건네고는 그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벽면에 기대어, 그저 후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호수.

       호수를 거닐고 싶었다.

         

         

         

       ***

         

         

         

       독수리 둥지는 그 이후에도 몇 번의 비공식 미팅을 잡았다.

         

       좌천당했다한들, 일단은 하나같이 장성급 인사였다.

         

       어디든 관심을 몰고 다닐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다.

         

       총통의 감시를 받고 있는 만큼, 그들의 모임은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 치중되어있었다.

         

       내부 인트라넷을 사용한다면, 총통의 끄나풀들도 그들을 섵부르게 추적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오늘도 어김없이 인트라넷과 의식을 연결하여, 전자공간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베르너, 베르너 그라임!”

         

       그 공간에 의식을 접속하기 무섭게, 제3 전투지원여단장 미아 비어호프 준장이 베르너를 긴급하게 호출하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전자 신호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을 뿐이다.

         

       얼굴을 볼 수도 없고, 목소리와 같은 청각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저 실시간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텍스트를 그대로 머릿속에 때려박을 뿐인 쌍방 통신이었다.

         

       그러나 베르너는 그녀의 의식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무슨 일입니까?”

         

       “어제 발송된 긴급 인사결정안 봤어?”

         

       “아뇨, 못 봤습니다.”

         

       어제는 붉은 거리에서 확보한 정보를 재확인하고 정제하는 데에 하루를 모두 소모해버렸다.

         

       그런 인사결정안 따위를 확인할 여유는 없는 것이다.

         

       “…내가 말했지 않는가. 배제당한 것은 안보전략국도 마찬가지라고.”

         

       아서 필리아스의 의식이 서버에 접속해온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지 못했으나, 이내 들려온 말에 탄식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디트리히 할더 소장이 보직해임되었어.”

         

       “하.”

         

       “사상 오염이라더군. 제국군의 미래를 책임질 훈련병들을 맡겨둘 수 없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랍니까?”

         

       접속은 했으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에르빈 슈타우펜 준장이 역정을 낸다.

         

       “설마 총통이 눈치챘다던가?”

         

       “글세, 그건 아닌 것 같군. 그냥… 오래 전부터 계획되어있었던 것을 실행하려는 것처럼 보이네.”

         

       그 말대로였다.

         

       버젓이 버티고 있는 최고사령관 아서 필리아스의 팔 다리를 모두 잘라버렸다.

         

       그가 그 자리에 아직까지도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총통에게 먼저 이빨을 들이민 적이 없을뿐더러 이미 모든 저항력을 소멸시켰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진작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거사를 치룬다면 주 병력은 제국군 교육훈련소에 있는 약 3만의 인원이 주축이 될 예정이었지.”

         

       아무리 훈련병이라고 한들, 그들 역시 엄연히 훈련받은 군인이다.

         

       오늘날의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라도 3만이라는 숫자는 수도 호엔바렌에 압박을 가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니 가장 먼저 목이 달아난 것이다.

         

       “근데 정말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한 거야?”

         

       미아 준장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덧붙였다.

         

       “뭘 말입니까?”

         

       “이번 인사명령에는 아르헨 감찰실장도 포함되어 있었어.”

         

       “예?”

         

       베르너의 의식이 크게 요동쳤다.

         

       “잠깐… 설마, 아예 몰랐던 겐가?”

         

       아서 필리아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되물었으나, 이미 베르너 그라임은 곧장 인트라넷 접속을 종료한 뒤였다.

         

       아르헨 오르카.

         

       감찰실장직에서 물러선 그녀의 행방은 그 장소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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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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