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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75 – 비밀의 방>

     

    본관으로 가면서 즈앙과 헤스티아의 기대감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기숙사를 벗어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의 삼엄한 경비체계를 뚫었다.

    새벽 2시 22분이라는 특별한 시각.

    오직 이 시간에만 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비밀방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오크노디가 기다리고 있다는 비밀방의 존재가 너무나도 기대가 됐다.

     

    ‘같은 암살자인데 담력시험이야 질 수 있어도 은밀행동에서도 질 수는 없지.’

     

    즈앙은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이 넘쳤다.

    귀신이라거나?

    언데드라거나?

    사다코 교수라거나?

    그런 건 조금. 아주 조금 무리지만.

    은밀행동은 그런 거 없을 때에도 잘하던 일이다.

     

    ‘이번 기회에 오크노디에게 똑똑히 보여주겠어.’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에서는 암살자로서의 체면을 구기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지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닌 암살자인지.

    오크노디 너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암살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누가 오고 있어. 잠깐 이쪽 나무 뒤로 와.”

     

    경계의 허를 찔러 가로수 길을 대놓고 걷던 도중.

    한 무리의 인기척이 대로 저편에서 접근했다.

     

    “몸이 너무 커서 다 가려지지가 않아.”

    “비명 지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즈앙이 헤스티아의 몸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자 뼈가 뒤틀리는 고통이 느껴졌다.

    뛰어난 인내심으로 비명을 억누른 헤스티아가 이게 무슨 짓이냐며 화를 내려던 그때, 그녀의 팔 두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놀란 헤스티아의 시선에 즈앙이 서늘하게 눈을 빛내며 웃었다.

     

    “동방에서 흘러들어온 암살자들의 비전기술 중 하나. <축근골>이라는 신체변형이야.”

     

    뼈와 근육의 크기를 줄이고 변형시킨다.

    마나연단법의 효과를 인위적으로나마 유사하게 발휘할 수 있는 체형조작기술.

    몸이 너무 커서 숨을 수 없을 때에도 펼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이었다.

     

    ‘너무 아프잖아.’

     

    헤스티아는 눈물을 찔끔 흘렸다.

    용병으로 고통에 익숙한 몸인데도 아픔을 참기가 힘들 정도였다.

    눈물은커녕 신음을 참는 것이 고작이다.

    마법에는 변이술도 있고, 이를 사람에게 사용하면 일시적인 신체변형도 가능하다고 알고 있는데.

    고통 없이 펼칠 수 있는 그런 기술 대신에 이런 고통스러운 기술을 익히고 있는 이유가 뭘까?

     

    ‘이거 실은 고문 기술 아니야?’

     

    진심으로 그렇게 의심될 정도의 고통을 꾹 참고 있는 사이, 좀비처럼 휘청거리는 걸음걸이를 지닌 무언가들이 그들이 서있던 대로에 나왔다.

     

    ‘조, 좀비?!’

     

    즈앙은 기겁했다.

    좀비? 어째서? 설마 사다코 교수님이 나타났나?

     

    “심야강의 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정신나갈것같애.”

    “교수를 죽인다. 오직 그 생각뿐이다…….”

    “교수님 저는 교수님 강의 말고도 다른 강의를 듣고 있어요 일주일을 다 써야 하는 과제는 제발 내주지 마세요 저 이러다 죽을 것 같아요…….”

    “청녹적 3원소를 1:2:3의 비율로 30분 간 강불로 끓인 마력시약에 엉걸퀴 줄기에 마력쑥초의 잎을 갈아 넣고 약불로 1시간을 달이면 잠이 깨는 각성제를 교수님이 전부 가져가면 난 어떡해 난 어떡해 난 어떡해??”

    “교수를죽인다교수를죽인다교수를죽인다…….”

     

    다행히도 사다코 교수의 등장은 아니었다.

    가혹한 아카데미 스케쥴에 혹사당하던 좀비같은 몰골의 아카데미 고학년 학생들이었다.

     

    “…….”

     

    안도할 게 아니라 더 위험하지 않아?

    저딴 게 1학년의 미래?

    즈앙은 진심으로 아카데미 탈주를 고려했다.

    오크노디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휴. 그냥 불쌍한 선배들이었구나!’

     

    분명 해맑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겠지.

    이제는 그 아이도 좀 무섭다.

    내가 아는 오크노디는 진짜 오크노디가 아니었어.

    진짜 오크노디는 뭐지?

    애초에 오크노디라는 사람이 실존하기는 하는 걸까?

     

    으스스.

     

    팔뚝에 소름이 다 일어난다.

     

    “야… 너무 아파… 빨리 풀어줘…”

    “아. 미안.”

     

    즈앙의 축근골은 오래 펼칠수록 고통이 길어진다.

    헤스티아의 눈에 원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왜 이렇게 아픈 기술을 가지고 있어?”

    “원래는 고문할 때 쓰는 기술이거든.”

    “…죽을래?”

     

    진짜 고문기술이었잖아.

     

    “암살자가 쓰는 기술에 뭘 기대한 거야.”

    “너, 언제 한 번 호된 꼴 겪을 줄 알아둬.”

     

    즈앙은 혀를 베에 내밀고는 다시 앞장섰다.

    실제로 축근골이 고문기술인 건 아니다.

    단지 원형이 되는 축근골을 고문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본 그녀의 스승이 이를 고문기술로 개발했고, 그녀에게는 고문축근골을 전수해준 탓이다.

     

    ‘그런 사정까지 설명해줄 이유는 없지.’

     

    헤스티아의 소소한 불만과 함께 도달한 본관.

    다행히도 본관에는 레이저 빔 보안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격리해야 할 1학년들은 기숙사에 있지, 본관 주변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의 아카데미는 1학년에게 대체 뭐로부터 위험한 걸까?’

     

    이전까지는 교내를 떠돌아다니는 사다코 교수의 강의실습용 좀비나 아카데미의 기밀정보를 탈취하기 위해 잠입한 암살자 정도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좀비 몰골을 한 고학년들로부터 1학년을 격리시키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1학년에게도 가차 없이 심야에 강의를 듣게 만들려는 교수들로부터 1학년만큼은 지켜주자는 자성을 거쳐 세워진 규칙이거나.

     

    ‘어느 쪽이든 무서워.’

     

    본관 입구에 도달했지만 아직 2시 22분이 되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잠시 근처에 숨었다.

     

    “선배님들이 많이 비실비실하네. 운동부족? 하체부실? 그런 거 같아.”

    “……너, 공감능력이 조금 부족하지 않아?”

    “고문기술을 동급생한테 쓰는 암살자한테는 듣고 싶지 않거든?”

     

    두 사람은 이후로도 무리지어 지나가는 선배들을 세 차례는 보았다.

    히히히, 하고 이유 없이 웃으면서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하며 지나가는 선배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거대한 바위를 어깨에 짊어지고 본관 저편의 숲을 지나가는 선배들.

     

    “저거 몬스터 아니야?”

    “가지 마, 헤스티아. 선배들이 알아서 할 거야.”

    “겁에 질렸나? 왜 자꾸 뒤를 돌아보지?”

     

    본관 건물에서 뛰쳐나온 몬스터의 뒷덜미에 파바박 꽂히는 독침.

    마비독이 돌며 쿵 하고 쓰러진 몬스터를 시발시발 욕을 내뱉으며 붙잡아 끌고 가는 선배까지.

     

    “나, 이 아카데미가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어.”

    “동감.”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던 헤스티아와 즈앙이 이 심란한 아카데미의 새벽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서로뿐임을 깨달았다.

     

    “새벽 2시 20분이야. 슬슬 들어가자.”

     

    전부터 부쩍 가까워진 거리로 바짝 붙어서 본관 로비에 들어간 두 사람.

    정확히 2시 22분이 되는 순간, 헤스티아는 즈앙의 손을 잡고 오크노디가 알려줬던 본관 2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을 올라갔다.

    반쯤은 농담이 아닐까.

    의심을 품기도 했던 헤스티아였지만…

     

    “어라? 여기 뭐야?”

    “정말이야. 정말로 비밀방이 있었어.”

     

    계단의 끝에는 2층 로비 대신 닫힌 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크노디, 오래 기다렸지?”

    “잠깐, 안에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데?”

     

    즈앙의 말을 무시하고 벌컥 문을 열고 들어가는 헤스티아.

    222호실 내부에는 수많은 종이 띠가 못에 걸려 벽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무속인의 방이나 흑마법사의 저주의 방에 들어온 것처럼 섬뜩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었다.

     

    “뭐야 여긴?”

     

    즈앙이 벽에 걸린 종이띠 하나를 살펴보았다.

     

    141-1 : 플라톤 교수님은 학생들이 조르면 종종 <프로틴 스프>를 무료로 끓여주신다.

     

    “뭐야 이게?”

     

    어이가 없어서 종이를 손가락으로 툭 튕기는데 빙글빙글 돌아간 띠지의 뒷면이 보였다.

     

    141-2 : 플라톤 교수의 <프로틴 스프>를 5회 이상 복용한 생도는 3학년이 되면 <철인이 되자> 강의에 끌려가는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다.

     

    “…진짜 뭐야 이게?”

     

    앞면에는 좋은 소식이.

    뒷면에는 나쁜 소식이.

    교수, 강의, 사물, 장소, 이벤트.

    온갖 요소에 대해 적혀있다.

    장난이라도 웃어넘기기 무섭고 사실이라면 더욱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

     

    “아, 다들 먼저 왔구나?”

     

    2시22분57초.

    오크노디가 해맑은 목소리로 말하며 문을 닫았다.

    즈앙이 깜짝 놀란 고양이처럼 폴짝 뛰었다.

     

    “뭐, 뭐, 뭐야! 오크노디, 우릴 이런 수상한 방에 유인한 이유가 뭐냐고!”

    “즈앙을 부른 기억은 없는데? 그냥 헤스티아한테 이런 방이 있다고 알려준 것뿐이야!”

     

    헤스티아는 긍정했다.

     

    “오크노디가 새벽에 심심해서 이곳에서 놀고 싶어서 날 불렀었어. 벌써 이틀이나 오크노디를 이곳에서 혼자 기다리게 해서 미안할 뿐이야.”

    “아니야. 기다린 적 없어!”

    “오크노디는 언제 봐도 마음씨가 참 착해. 밤잠도 못자고 기다렸다고 하면 상처받을까봐 날 위해서 사실을 감추다니.”

     

    즈앙이 보기엔 어색하게 웃는 오크노디의 얼굴이 밤에 깜빡 잠이라도 들어서 정말로 못 나왔던 거 아닌가? 싶게 보였다.

     

    “그래서 여긴 뭐하는 방이야?”

    “양면띠지의 방이야!”

     

    방 이름을 물어본 게 아니라고.

     

    “…그래, 양면띠지의 방. 이 방은 왜 있는 건데?”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해 만든 아카데미의 비밀을 모아둔 방이야!”

    “그럼 이걸 다 당한 희생자가 있다는 거야? <프로틴 스프>를 다섯 번 마셨다는 이유로 3학년에 <철인이 되자> 강의에 끌려간 선배가 있다고?”

    “못 믿겠으면 내일 플라톤 교수님한테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싫어. 무섭잖아.”

     

    즈앙은 생각했다.

    여기에 적힌 교수들의 인성을 봐서는 비밀을 깨달은 학생을 순순히 돌려보내주지 않을 거라고.

    3학년이 되면 <철인이 되자> 강의를 듣겠습니다. 물론 비밀도 엄수하겠습니다. 라고 적힌 영혼계약서를 들이밀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불쌍한 선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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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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