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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

        “…좋은 비무 부탁드립니다.”

        ​

        “저도요.”

        ​

        ‘왜 저렇게 쳐다보지?’

        ​

        혜령은 자신을, 특히 자신의 흉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청매향의 모습에 포권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

        생판 처음 보는 여자가 넋 놓은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다 고개를 털더니 검을 뽑아 드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이상했으니까. 

        ​

        이곳이 비무대가 아니라 다른 곳이었다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이었기에, 혜령이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

        “소저?”

        ​

        “…헛. 죄송합니다. 그만…”

        ​

        어쨋든 비무는 시작해야 하니, 혜령이는 천천히 자신의 검을 뽑아 들고 기수식을 취했다. 마찬가지로 세간에서는 백매화라 불리며 중원에서 손꼽히는 미녀라는 청매향도 기수식을 취했다.

        ​

        두 꽃의 비무에 남성 관객들은 기수식이고 뭐고 두 사람을 구경하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관중석이 조용해졌다. 간간히 들려오는 등짝 후려치는 소리를 빼고.

        ​

        ‘아저씨가 백매화 소저가 저보다 반수 내지 한 수 정도는 위라고 했으니까…’

        ​

        “가요.”

        ​

        혜령이 흐르는 물처럼 종 잡을 수 없는 유수보의 경로를 밞으며 청매향의 주의를 어지럽게 움직였다.

        ​

        오른쪽으로 갔다가도 순식간에 몸을 틀어 반대 방향으로 튀어나오고, 앞으로 갔다가도 뒤로 움직이는, 파도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 유수보의 본질.

        ​

        청매향은 매화이십사수검법의 기수식만을 취한 채 눈으로 유수보의 움직임을 쫒았다. 싸우기에 앞서 유수보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

        결국 모든 보법은 정형화된 순서와 형식이 있는 법이므로.

        ​

        보법을 파악한다면 무공의 절반을 파악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혜령이 먼저 보법을 보이며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꽤 큰 손해를 감수하고 하는 행동이었으나-

        ​

        ‘…집중해야 해요.’

        ​

        …예상치 못한 변수라면, 보법을 펼치며 움직이는 가슴이 계속 시선을 잡아끈다는 점. 

        ​

        아무리 여자라도 저만한 것이 달려있으면 자연스럽게 눈이 쏠리기에, 매향은 매화검으로 현혹시켜야 할 자신이 오히려 혜령의 몸에 현혹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그리고 그렇게 매향이 흐트러진 순간.

        ​

        “핫!”

        ​

        혜령의 검이 처음으로 매향을 향해 휘둘러졌다.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베는 평범한 일격. 초식도 뭣도 아닌 검격을 매향은 쉽게 흘려냈다. 

        ​

        혜령은 그녀가 받아낼 거라 예상했다는 듯 검이 흘려진 경로를 따라 회전하며 첫 번째 초식, 일파만파(一波萬波)를 펼쳤다.

        ​

        파도처럼 쏟아지는 십수 개의 검격. 

        ​

        하나하나에 강맹한 기세가 실린 검격은 매향을 잡아먹을 듯이 뒤덮었지만, 매향도 엄연히 본선 16강에 올라온 강자. 

        ​

        성명절기도 아닌 공격에 당해줄 리가 없었다.

        ​

        곧바로 매향의 검이 섬전처럼 반짝거리며 햇빛을 머금은 채로 혜령의 검을 쳐냈다.

        ​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

        둘의 실력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기에, 혜령은 초식을 거두고 몸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며 검을 역수로 쥐고 왼손으로 옮겼다. 

        ​

        ‘검을 쥔 손을 바꿨다?’

        ​

        오른손으로 사용하는 것이 전제된 보통의 검법과는 다르게, 때로는 오른손, 때로는 왼손을 사용하며 상대를 베는 것이 해남삼십육검의 묘리. 

        ​

        의표를 찔러 상대를 효율적으로 제압한다는, 왜구와 싸우며 만들어진 해남삼십육검의 검. 

        ​

        그 검이 다시 한번 매향의 가슴팍을 노렸다.

        ​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지만, 매향은 몸을 살짝 뒤로 젖혀 피해냈다. 

        ​

        혜령과 다르게 가슴이 봉긋한 정도에 그쳤기에, 혜령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

        매향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참담했지만.

        ​

        “쳇.”

        ​

        혜령은 다시 검을 오른손으로 돌리고 매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

        적을 상대하는 데 있어 공격의 기세를 놓지 않을 것.

        ​

        윌리엄이 대련을 하며 매번 강조하던 것이었기에, 혜령은 최대한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

        주도권을 놓친다면 명백한 하수인 자신에게 기회가 쉽사리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

        “후우…”

        ​

        숨을 들이쉬고, 크게 내쉰다. 

        ​

        계속되는 전투 속에 혜령의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뜻이었다.

        ​

        그리고, 그건 매향이 공세로 전환할 수 있는 틈이 생겼다는 뜻.

        ​

        이윽고 매향의 검에서 서슬 퍼런 매화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

        “오오, 매화이십사수검법! 듣던 대로 아름답군!”

        ​

        “약관의 나이에 매화를 피워내다니,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일세!”

        ​

        화산파를 대표하는 무공. 화산의 상징인 매화이십사수검법이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석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구파일방과 오대 세가의 무공을 보기 위해서 먼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었으니.

        ​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윌리엄은 눈을 빛내며 매향의 검을 관찰했다.

        ​

        ‘내공을 매화의 형상으로 만들어 흩뿌리는 건가. 눈을 현혹한다는 점에서는 실전에서 꽤 무섭겠군.’

        ​

        극한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전장에서 집중을 흐트러트릴 만한 요소가 있다는 것은 아주 골치 아픈 일. 그렇기에 윌리엄은 매화이십사수검법을 상당히 강력한 검법이라고 평가했다.

        ​

        “…이대로 가면 밀리겠군.”

        ​

        “그렇군요.”

        ​

        둘의 말대로, 혜령은 점점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무림인에게 경지란 곧 실력의 격차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며, 하수가 고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쥔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재능을 가진 자이거나, 혹은 하늘이 도와준다는 것.

        ​

        하지만 혜령은 뛰어난 원석일지언정, 아직 완벽하게 다듬어진 원석이 아니었으니 비교적 더 다듬어진 매향에게 밀리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주도권을 빼앗겼군.”

        ​

        “매화이십사수검법은 초견 필살의 검법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매화의 그 화려함에 유혹되어 검로가 흐트러지고, 시선이 어지러워지며, 발이 꼬이니 천하에서 손꼽히는 검법이라 부를 만하지요.”

        ​

        “…오랜만입니다.”

        ​

        “하하, 오랜만입니다. 위 소협.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

        “아시다시피, 비무대회에 참가해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

        제갈현상은 그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백우선으로 얼굴을 가린 채로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

        “비무대회를 잘 즐기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

        ‘왜 온 거지.’

        ​

        그냥 잡담하려고 온 건가? 윌리엄이 의문 섞인 눈으로 쳐다보자,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지나가던 한량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말을 걸었을 뿐이니 걱정하시지 마시길. 아, 그리고 비무대회가 끝나고 이틀 뒤에 큰 술자리가 있는데…어떻습니까? 제가 좋은 친구들을 아는데-”

        ​

        한량?

        ​

        친구?

        ​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

        제갈현상은 슬슬 시간이 됐다는 듯 등을 돌렸다.

        ​

        “그럼 좋은 구경 되시길 바랍니다.”

        ​

        제갈현상은 그렇게 의뭉스러운 태도를 유지한 채 떠나갔다.

        ​

        “이번 비무의 승자는! 백매화 청매향이오!”

        ​

        그리고, 승부의 향방이 정해졌다.

        ​

        —————————————

        ​

        “히잉…아저씨, 저버렸어요.”

        ​

        “넌 할 만큼 했다.”

        ​

        근본적인 실력 차이가 꽤 나는데 일류에 갓 오른 상태로는 그 정도로 몰아붙인 것만 해도 잘한 거지.

        ​

        나는 위로의 의미로 혜령이가 내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것을 방치하고 방금전 제갈현상이 남기고 간 제안을 생각했다.

        ​

        도대체 뭐가 목적일까.

        ​

        그냥 친목?

        ​

        쓸데없이 수상해 보이는 분위기여서 감을 도통 못 잡겠네.

        ​

        일단 악의 같은 건 없어 보이는데.

        ​

        “은공,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

        “아, 잘하고 와라.”

        ​

        뭐 목경이야 주인공이니 알아서 잘 이기고 오겠지. 나는 목경이를 적당히 배웅해주고 자리에 앉아 혜령이와 수다를 떨었다.

        ​

        “붙어본 느낌은 어떻든?”

        ​

        “으음…눈이 엄청 어지러웠어요! 처음에는 뭔가 당황하는 분위기여서 몰아쳤는데…쉽게 쉽게 막히는 느낌? 아저씨랑 할 때랑은 다르게 먹히는 것 같긴 했는데 한 번 수세에 몰리니까 풀어나갈 방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

        “눈을 어지럽게 하는 검법은 처음이니 당연한 일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더 강해지면 그만 아니냐.”

        ​

        일류 고수에 갓 오른 애가 일류 고수 중반 정도까지는 오른 녀석 상대로 이 정도 했으면 선전한 거지.

        ​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물론.”

        ​

        그 부분만큼은 나는 확언할 수 있었다. 

        ​

        원작에서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젋은 나이에 초절정 고수가 되었으니까. 이 세상에서도 초절정 고수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봐도 되겠지.

        ​

        이미 당첨 여부를 알고 있는 복권이랄까. 

        ​

        “경지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

        “네에…”

        ​

        뭐가 그리 좋은 건지. 나는 헤실헤실 웃으며 내게 몸을 기댄 혜령이와 함께 슬슬 시작되려는 송무한과 단목경의 비무를 바라보았다.

        ​

        송무한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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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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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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