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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그리고는 한 일각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깔려있던 손 없는 악인이 축 늘어졌다.

       

       견포희가 소매로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일을 마친 견포희의 얼굴에서 반짝반짝 윤기가 났다.

       방금까지만 해도 사저였던 것의 명패를 챙겨 품에 넣은 견포희의 표정이 세상 해맑았다.

       화창한 웃음으로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견포희가 청을 덥썩 안아 들고 룰루랄라 다시 복도를 쭉쭉 나아갔다.

         

       “덕분에 지인짜 오랜만에 포식을 했네. 아! 이런! 내 소개를 했던가? 나는 견포희라고 해. 사매는.”

         

       “오잉. 나는 님의 사매가 아닌데요.”

         

       “……? 사매가 서문청 아니야?”

         

       “서문청 맞는데?”

         

       “근데 사매가 아니야……?”

         

       “내가 왜 님 사매가 돼요……?”

         

       둘이 서로를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청은 딴 생각을 했다.

         

       -149. 백오십짜리가 백사십이 됐네?

       그렇다고 내 선업이 안 오른 것도 아닌데.

       내가 반 죽이고 얘가 마무리해서 그런가?

         

       생각해보니 악인도 악인참으로 선업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근데 그런다고 악인이 선인이 되나?

       나쁜 짓을 했으면 어쨌거나 천벌이 필요한 게 아닌가?

         

       근데 또 얘가 나쁜 애는 아니던데.

       아니, 나쁜 애가 아닌데 악인을 쪽 빨아먹나?

         

       어려운 문제였다.

         

       악행을 선행으로 갈음할 수 있나?

       그럼 선업을 쌓은 놈이라도 사람 아닌 취급을 해야 하는 악인이 있는 것 아닌가?

       근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래서 청은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어차피 눈에 보이는 악인도 흘러넘친다.

       세탁된 악인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분명, 사매가 어제 환희궁에 입적을 했다고, 그렇게 들었는데?”

         

       청이 정색을 하며 말투에서 장난기를 뺐다.

         

       “무슨 소리야? 우리 사부님이 누구신데 마교 끄나풀에 입적을 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사매 사부님? 누구신데?”

         

       “서문 씨에 수 짜, 린 짜, 쓰시는 분인데.”

         

       “……? 본 궁에 그런 어르신이 계셨나?”

         

       청은 어이가 없었다.

       그럼 사부님이 신녀문에 계시지 여기 계실까.

         

       “그야 당연히 없지. 그걸 말이라고 해?”

         

       “……?”

         

       견포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청은 대충 이해했다.

         

       그 지존 호소인이란 놈이 그러지 않았던가.

       서문청 님을 환희궁에 모셔드리고 각종 무공과 영약을 아끼지 말고 대접해 드리라고.

         

       그 무표정하고 멍청한 꼬맹이 자식이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이 사단을 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 일단 장단을 좀 맞춰야겠다.

       일단, 무공이랑 영약은 챙겨야지.

         

       “좋다. 까짓것. 사매 한번 해 보죠, 뭐.”

         

       “역시 그렇지!? 서 사매. 나는, 견 사저라고 부르면 돼.”

         

       아니! 함부로 남의 성을 갈다니!

       천하에 서문씨도 모르는 무식한 년이 있어!?

       문청이 그 무식함에 경악하고 말았다.

         

       계속 생각한 건데, 애가 좀 모자라지 않나?

       그래도 애는 좀 착하……지도 않지.

       모자란데 애도 나쁘네?

         

       청이 견포희에 대한 평가를 대폭 하향했다.

         

       사저, 너는 사저보다 내 받침대가 더 어울려.

         

       청이 대충 받침대 2호쯤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런데 1호 할아범은 어디 갔지?

       물어볼 것들이 많았는데.

         

         

       —-

         

         

       사실, 청은 마공을 배척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든 마공은 기본적으로 사악한 심성을 불러일으킨다고, 사부님은 그렇게 말했다.

         

       천하에 잔인한 무공임에도 정파가 쓰는 절기로 남은 종류가 있고, 별로 잔인하지 않아도 마공으로 꼽히는 것이 다른 이유라고.

         

       그러나 이미 업계 최고로 치는 소수마공 휘하 여러 마공을 섭렵한 청이 느끼기엔, 글쎄.

         

       소수마공이며 흑살마공이 유난히 손맛이 좋은 것은 사실이다.

         

       악인을 보면 기왕이면 깔끔하게 죽이기보다 손가락으로 속살을 헤집고 장타로 때려 살도 터뜨리고 뼈를 쥐어 으스러뜨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아니더라도 악인 베는 건 즐겁고 선량한 취미가 아니던가.

       어차피 죽일 건데 좀 가지고 놀면 어때.

       즐겁기도 하고 악인도 죄악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텐데.

         

       그런데 사악한 심성이 된다고?

       도대체 어디가 사악해진다는 건지, 원.

         

       오히려 부작용이란 측면에서 오히려 도가의 정통 심법이라는 소녀환희공이 훨씬 심각했다.

         

       기분이 너무 좋으면 오히려 큰일이 나는구나.

       마침 적당한 받침대가 청을 받쳐주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실전이었으면 싸우다가 뜬금없이 바닥을 구를 뻔했다.

         

       익숙해지면 되지 않을까 싶기는 한데.

         

       청이 그 순간을 떠올렸다.

       헤헤, 좋았지…….

         

       청이 저도 모르게 야릇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문제는 소녀환희공의 제어였다.

         

       대체 이거, 왜 자동 수련이 되는 건데?

       지금도 감당이 안 되는데, 서든 자든 먹든 남에게 안겨있든 모든 순간에 알아서 돌아다니며 세력을 키웠다.

         

       가만히 있던 자전마공도 덩달아 난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전마공이 먼저 단전에서 빠져나가 혈도를 내달리면, 소녀환희공이 그 뒤를 쫓는 식이었다.

         

       덕분에 심법 두 개가 자동으로 수련치를 팍팍 올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본래 내공심법이란 진기를 흡수하여 정제하는 방법이다.

       심법의 구결대로 내기를 쌓아가니, 수명이 허락하는 한 무한히 그 단전을 채울 수 있었다.

         

       기본공으로 단전과 세맥을 형성한다.

       정식 제자가 되면 이후 발전된 심법을 전수해 진기를 내돌리며 키웠다.

       그렇게 일정 경지에 오른 일대제자나 장로의 기명제자쯤 되면, 그제야 문파가 간직한 비장의 고급 심법을 익히는 식이었다.

         

       그러면 하위의 심법으로 키운 진기가 자연스럽게 고급 심법의 것으로 통일이 된다.

       아니면 흡수가 아니라 상생으로 다른 진기가 충돌하지 않고 따로따로 흐르거나.

         

       하지만 청은 아니었다.

       상태창과 무협이 기묘하게 섞인 상태였다.

         

       진기를 운용해 수련치를 채워 성취가 올랐다.

       한 단계 오를 때마다 무공마다 그에 따른 능력치가 오르고, 심법의 경우는 최대 내공도 증가했다.

       대성에 이르면 크게 오르고 그걸로 끝이었다.

         

       청도 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서 상태창을 볼 때마다 지랄을 떨었다.

       마치 너는 이쪽 세상의 이물질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어쨌든.

         

       소녀환희공은 흡정공이 아니었다.

       흡정 이후 몸에 들어온 타인의 진기를 하나로 뭉쳐 정순하게 정화하는 심법이었다.

       확실히, 도가의 정통한 신공이라 할 만했다.

         

       진기를 의인화하여 표현하면 이런 상황이다.

         

       환희진기가 보기에 다른 도가의 진기들은 같은 단전에 살면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착한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자전마기는 아니었다.

       감히 겸상할 수 없는 저 사악한 마기를 정화해서 아주 착하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안 그래도 서러운 처지에 존재의 위기에까지 처한 자전마기였다.

         

       자전마기가 단전을 박차고 도망쳤다.

       환희진기가 그 뒤를 쫓았다.

         

       그걸 월녀진기가 박수를 치며 부추겼다.

       월녀진기는 지독한 분리주의자라, 자전마기가 위험하다 싶으면 슬쩍 둘을 떼어놓았다.

       하지만 근본이 도가라서 한 가족 환희진기의 괴롭힘을 굳이 막지는 않았다.

         

       그 결과가 자동 수련이었다.

         

         

         

       청이 이러한 이유는 당연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위기감만은 진짜였다.

         

       뭐든 과하면 문제가 되는 법이었다.

       내공만 빼고.

         

       기분이 좋은 것도 그 정도가 있었다.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면 큰 문제였다.

         

       고작 일 성의 소녀환희공이 안겨준 부작용이 이 꼴이었다.

       여기서 성취가 더 올랐다가는 농담 아니라 한 대 칠 때마다 기절하게 생겼다.

         

       그래서 청이 생각했다.

         

       예민해지는 무공이 있으니까.

       혹시 무감각해지는 무공도 있지 않을까.

         

       다행히도 물어볼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점심 먹자고 찾아온 욕쟁이 할아버지, 받침대 1호였다.

       

       

       근데 이 할아버지는 왜 나를 좋아하지?

       악업이 완전 대마두인데 부담스럽게스리.

         

       “할아버지, 사람이 좀 무감각해지는 무공도 있어요?”

         

       “있기야 하다만.”

         

       “오우. 아주 없는 게 없네. 그래서, 뭔데요?”

         

       “쯧. 그딴 걸 익혀봐야 사람이 영 맨숭하니 사람같지 않은 꼴이 되는 것도 모르느냐? 아주 몹쓸 것에만 관심이 있지, 못된 년.”

         

       “누가 그거 물어봤어요? 그래서 뭐냐구요.”

         

       “오라질 년이 걱정을 해 줘도 지랄이구나.”

         

       “누가 걱정 해 달랬어요? 남이사.”

         

       “쯧. 빙공 계열이 보통 그러하지 않더나.”

         

       “빙공?”

         

       “무식한 년.”

         

       “아씨. 그래, 나 무식하다. 그래서 노인네한테 좀 보태달라는데 왜 말이 많아요?”

         

       “쯧.”

         

       최리옹이 혀를 차면서도 가르침을 풀었다.

         

       음과 양의 이치를 그냥 순수하게 해석한 종류의 무공이 있었다.

         

       음은 차다. 양은 뜨겁다.

         

       그리하여 아예 냉동 공격을 하는 빙공.

       불 속성 공격을 하는 화염공이 있었다.

         

       물론, 효율은 아주 개처망한 수준이었다.

       빙공과 화염공이 강력했다면 중원 무인 모두가 불 속성 아니면 얼음 속성으로 장래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화염공이 훨씬 낫다.

         

       둘을 비교하면, 빙공과 화염공의 효율 차이는 감히 빙공 따위와 비교를 당하는 화염공에게 미안해야 할 수준이었다.

         

       뜨거우면 순식간에 데어버리지만, 차가우면 ‘앗 차가’ 하고 손을 떼면 그만인 것이다.

         

       북해빙궁의 얼음장들이 굳이 왜 그 추운 땅에 박혀있겠는가.

       빙공은 북해 땅에서나 쓸만했다.

       이미 날씨가 극한의 추위에 있는 땅이었다.

       추운 때에 더 춥게 만들어줘야 그나마 효과를 좀 보는 것이다.

         

       그러니 빙궁의 고수가 어쩌다 중원으로 내려와도 살아 움직이는 제빙상회 취급이었다.

       그래도 얼음을 만드는 데 쓰이는 비싼 초석을 아낄 수 있어서 대우가 섭섭지 않기는 해도.

         

       청이 이 대목에서 눈을 빛냈다.

         

       “앗. 그럼 그걸 익히면 시원한 용정차도 가능한 부분이에요?”

         

       “갈!!! 시원한 용정차라니? 도대체 무슨 세상 미친 소리더냐? 아주 돌아버린 것이냐?”

         

       “아니, 시원한 용정차좀 당길 수도 있지.”

         

       “얘야……. 제발. 정신 좀 차려. 그만 좀. 응?이 할애비가 다 잘못했다. 응?”

         

       최리옹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생물을 바라보듯 했다.

         

       흠. 그정도인가?

       아니. 왜?

         

       도대체 어째서 이 미개한 원조 장궤 놈들은 시원한 차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지?

         

       중원에도 냉차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과일을 짜서 끓여낸 달달한 종류거나 보리 쌀 옥수수 따위를 쓴 곡차뿐이었다.

         

       그러나 과당차나 곡차는 그 이름에만 차가 붙어있을 뿐, 그냥 음료수 취급이었다.

       진짜 차는 찻잎을 찌거나 굽거나 말려 처리한 결과물을 적당히 뜨신 물에 우려낸 것들만으로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난 멀쩡하거든요. 흰소리 말고 그래서 빙공 그중에 제일 쎈 게 뭔데요?”

         

       “그야 빙백신공이지.”

         

       최리옹이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사실 무인 치곤 모르는 사람이 없기도 했다.

         

       “빙백신공?”

         

       “아니, 일곱 살 아해도 아는 것을, 아주,”

         

       “무식하다는 소리 그만 해요. 이제 안 참아. 아주 결딴을 내 버릴 거야.”

         

       청이 그리 말하며 무공창을 다뤘다.

         

       빙백신장, 빙백신공, 빙백신검.

         

       보라색 무공 세 개가 맨 위로 떠올랐다.

         

       보라색 무공의 단점이었다.

       꼭 여럿으로 분리되어서 따로따로 구하려면 선업교환으로는 어림도 없고.

         

       하지만 빙백신공만이라면, 흠…….

       그런데 좀 아깝지 않나?

       받침대 1호의 설명대로라면 테두리만 보라색이지 그냥 냉장고 기능 추가밖엔 안 되잖아.

         

       하지만 지금이 비상 사태인데.

       소녀환희공 부작용을 어떻게든 해야…….

         

       청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왜, 이년아. 갑자기 빙공이 익히고 싶어서?”

         

       “왜, 아는 빙공이라도 있어요?”

         

       “설가놈이 빙천수라마공을 익혔지.”

         

       뭐야, 또 마공이야?

         

       청이 아직 닫지 않은 무공창을 바라보았다.

       빙천수라마공. 고작 빨간 테두리였다.

         

       이름은 무슨 천하제일마공인데, 겨우 빨강?

       영 급이 떨어지는데…….

       하긴, 그게 문제가 아니지, 지금.

         

       “그거 익히면 감각이 좀 둔해질까요?”

         

       “둔한 수준이 아니라. 하. 됐다. 아서라, 이 년아. 사람인지 나무토막인지 아주 목석이야. 괜히 마공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니.”

         

       그럼 딱이네!

       게다가 마공을 익혔으니 당연히 마인이겠지?

         

       청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그 설가놈이라는 분은 어디 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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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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