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75

    그때 수정이에게 고백하고 난 후 익숙한 마력이 느껴지긴 했었는데 그게 한유라였다니.

     

    그리고 김지수가 그걸 종용했을 줄이야.

    상상조차 못 했다.

     

    “야, 한유라. 대답 안 해?”

     

    “….”

     

    내 질문에 묵묵부답인 한유라.

     

    반면 검상에 죽어가는 와중에도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장면을 드디어 마주한 것 마냥 크게 웃는 김지수.

     

    마치 여태까지 쌓아뒀던 한을 푼 듯한 모습이다.

     

    “하하! 꼴 좋구나, 한유라. 그동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착한 척하며 가식적으로 굴고 나한테는 뻣뻣하게 고개 세우더니! 그렇게 개무시하던 나한테 당하니 어때?”

     

    “닥쳐.”

     

    한유라는 굳은 표정으로 발로 차 김지수를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는 상처 입은 곳에 발에 가져다 댄 후 힘을 준다.

     

    “아아악!”

     

    고통에 차 소리 지르는 김지수.

    하지만 기묘하게도 입가에는 여전히 웃음을 짓고 있다.

     

    마치 더는 여한이 없다는 듯한 기괴한 상태에 살짝 소름이 돋는다.

     

    “야! 잠깐 멈춰봐.”

     

    한유라를 멈춰 세우려 다가섰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이미 감정에 지배당한 듯 입술을 꽉 깨물며 어떻게든 고통을 줄 생각만 가득 찬 표정이다.

     

    “그만하라고! 지금 감정적으로 굴 때가 아니잖아!”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도 왜 쫓아왔냐며 한유라를 붙잡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지금 당장 급한 건 그게 아니다.

     

    어차피 한유라가 몰래 뒤쫓아온 거에 대해서는 나중에 추궁해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다.

     

    그리고 새삼스레 실망이라고 할 것도 없다.

    어차피 정이라고는 하나도 남지 않은 사이니.

     

    그보다 중요한 건 지금 흩어진 헌터들과 어서 합류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지금 곁에 없는 수정이가 걱정되기도 하고.

     

    나보다 훨씬 강하다고 하지만 무슨 일이 생겼을지는 알 수가 없으니까.

     

    “…너도 봤다시피 악질이라 절대 말 안 할 텐데 뭘 기대해? 그냥 이런 년은 갖고 놀다가 죽이면 돼. 그게 맞아.”

     

    그제야 조금이나마 분이 풀렸는지 날 돌아보며 말하는 한유라.

     

    살기를 가득 풍기며 잔혹한 성품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이런 여자를 한때나마 사랑했었다는 게 참 슬퍼진다.

     

    어릴 때부터 함께 했다는 그놈의 정이 이런 여자를 사랑하게 할 만큼 얼마나 무서운지도 또 한 번 느꼈고.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지. 죽이는 건 말리지 않을 테니 정보를 캐낼 수 있게 도와줘.”

     

    나름의 협상안을 제시하며 협조를 요구하자 고민하던 한유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휴우, 우리 원우가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그 말에 순간 욱하는 마음과 함께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일단은 가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한유라를 슬쩍 밀어내고는 흘러나오는 피를 덧없이 한 손으로 막으며 비릿한 웃음을 여전히 흘리고 있는 김지수에게 다가갔다.

     

    “크큭. 아주 친절도… 하셔라. 정보를 빼내기 전까지 살려는 주신다니…. 이거 어떻게…. 쿨럭.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큭. 모르겠네요.”

     

    검상으로 인해 죽어가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날 향해 조롱을 일삼는 김지수.

     

    그런 그녀를 보며 차분하게 설득을 시작했다.

     

    “그렇게 비꼬지 말고 제대로 들어. 이미 네가 선을 넘은 이상 한유라는 절대로 널 안 살려둬. 알잖아? 어떤 성격인지.”

     

    “내가 잘 알지…. 위선으로 가득 찬 주제에 정의로운 척 구는 년인 거….”

     

    그 말에 한유라가 움찔하며 주먹을 휘두르려는 것을 막아냈다.

     

    “비켜. 봤잖아, 암살 길드 놈들은 다 저래. 태생부터 저런 인간들이야.”

     

    “알겠으니까 너 저기 멀리 가 있어. 어차피 전투불능 상태니까.”

     

    그러자 날 보며 답답하다는 듯한 얼굴로 말하는 한유라.

     

    “어차피 멀리 있어도 마력을 이용해 들을 수 있는 거 알잖아. 아무 의미 없어.”

     

    “알아, 다만 공격하러 여기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조금이나마 벌 수 있으니 그런 거야.”

     

    그 말에 조용해진 한유라는 혀를 찬 후 눈에 보일 만큼 멀어진 곳에서 우릴 지켜본다.

     

    그때 김지수가 날 보며 말했다.

     

    “등신 같은 놈…. 어쩜 여자 보는 눈이 이렇게 없는지….”

     

    “그건 나도 잘 아니까 됐고. 그래서 마저 말을 하자면 한유라에게 고통 없이 끝내주도록 할 테니 질문에 답 좀 해주면 안 될까?”

     

    “지랄하네 미친 새끼…. 큭.”

     

    내게 욕을 날린 뒤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김지수.

     

    그런 김지수를 보며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마지막 제안이야, 김지수. 내가 물러나면 넌 평범한 고통으로 안 끝나. 나도 말리지 않을 거고.”

     

    “하…! 협박이 어설프시네 헌터님이라 그런가. 그리고 이 상처면 어차피 곧 죽어. 그런데 너희 좋자고 정보를 팔어? 갈 땐 가더라도 너희들 엿 먹이고 가는 게 더 뿌듯하지 않겠어?”

     

    자신의 몸 상태를 이미 파악해서인지 김지수는 조금만 더 공격을 당하거나 충격을 받으면 죽는다는 걸 알아챈 듯 보인다.

     

    하지만 그건 김지수의 착각이다.

    한유라가 어떤 인간인지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나 보다.

     

    자신을 모욕하거나 괴롭힌 사람은 절대 잊지 않고 복수를 하려 드는 게 한유라다.

     

    “한유라가 널 쉽게 죽도록 내버려 둘 거 같아? 어떻게든 살아있도록 널 만들겠지. 지금 성광 길드에서 받은 비싼 포션들을 몇 개나 들고 있을지 생각해봤어?”

     

    그 질문에 말이 없어진 김지수.

    미처 생각 못 했는지 안 그래도 창백했던 얼굴이 더욱 핏기가 가신다.

     

    머릿속에서는 아마 큰일났다는 경고등이 켜진 상태일 거다.

     

    “진짜 다리만 절단해서 도망 못 가게 하고 괴롭힐지도 몰라. 한유라가 일반적인 헌터들이랑 궤를 달리 한다는 거 알잖아? 게다가 성광 길드라고. 뒷배가 든든한. 논란이 되던지 말던지 뭐가 두렵겠어.”

     

    “….”

     

    김지수가 듣기에도 영 가능성 없는 이야기가 아니었기에 고민하는 듯하다.

     

    괜히 고집을 부려 고통을 당할 것인가.

    아니면 자존심을 굽히고 최후라도 조금이나마 편안할 수 있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금방 나왔다.

     

    “…너 말대로 할게.”

     

    거짓된 관계였지만 이미 오랫동안 한유라를 겪어봤기 때문에 결국은 받아들이는 김지수.

     

    뭔가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포기한 그녀를 보니 그동안의 정이 또 한 번 떠올라 울컥하는 마음이 순간 들었지만 이내 바로 다잡았다.

     

    그녀는 신분을 숨긴 암살 길드고 좀 전까지 날 고문하고 죽이려 했던 사람이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내왔다고 해도 범죄자다.

     

    이 바닥에서 어설픈 동정심은 죽음만을 부른다는 건 그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 약속대로 고통 없이 보내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잘 생각했어. 그럼 물어볼게. 들어왔던 헌터들은 다 어디 갔지?”

     

    “미… 미리 명단을 다 뽑아온 상태라 포탈을 이용해 상대하기 힘든 이름 있는 헌터들은 너희처럼 따로 격리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상대하기 어렵지 않으니 독을 먹인 후 다 처리했어.”

     

    명단을 이용해 용의주도하게 강자들은 따로 미로와 함정을 이용해 분리해놓고 나머지는 전부 독을 이용해 암살한 듯 보인다.

     

    그 사람들도 설마하니 같은 편이라 믿었던 사람에게 당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겠지.

     

    “그럼 따로 배치한 헌터들의 위치는 어딘데?”

     

    “지금 현재 위치는 나도 몰라…. 내가 담당한 건 이원우 너랑 좀 전에 죽였던 성광 길드 놈 그리고 저 미친 년뿐이니…까.”

     

    마지막으로 눈짓을 통해 한유라를 가리키며 어렵게 설명을 마친 그녀.

     

    상처가 깊다 보니 슬슬 한계가 찾아온 듯 눈이 풀려가는 모습이다.

     

    한유라를 불러 포션을 사용하자고 할까 고민하던 중 김지수가 말했다.

     

    “혹여나 포션 쓸 생각이면 접어. 그걸 쓸 바에는 차라리 혀 깨물고 죽어버릴 거니까.”

     

    결연한 얼굴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듯하다.

    그 정도로 한유라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다는 거겠지.

     

    “알겠어. 그럼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알려줘. 직진하면 또 미로겠지?”

     

    “바보도 몇 번 당하니… 알아채나 보네. 저기 아까 저 미친… 윽, 년이 검 던져서 파인 돌 근처에 스위치가 있어. 그걸 열고 나가면 돼, 후우.”

     

    그 말을 듣고 달려가 살펴보니 말한 대로 아주 작게 솟아올라 있는 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의식해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큼 배경과 비슷한 색깔에 작은 크기라 혼자 찾으려고 하면 절대 못 찾지 않았을까 싶다.

     

    “찾았어?”

     

    “어. 말 안 해줬으면 절대 못 찾았겠다.”

     

    “후하…. 암살 길드원이 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맡은 구역의 내부를 돌아다니는 법이야. 너희 같은 외부인이 모르는 게 당연해.”

     

    “그렇군. 그런데 혹시 여기서 나가도 미로야?”

     

    여기서 나가서도 미로면 또 헤맬 수 있다는 생각에 미리 알아두려고 물었다.

     

    그러자 약하게 고개를 젓는 김지수.

    아까보다도 좀 더 약해진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간다.

     

    “아니. 나가서 쭉 직진하면 나머지 헌터들이 처음 있던 곳에 도착할 거야. 그 이후는 내 담당구역이 아니라 나도 몰라. 나처럼 정보 누설을 하는 걸 막으려고 준비해놓은 방식이니까.”

     

    “그럼 담당자 말고는 모르는 거야?”

     

    “아니. 길드장 만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 각 구역의 함정부터 최단 루트까지. 담당자들이 상세하게 정보를 올리니까.”

     

    하긴 길드장까지 모르면 그건 문제가 있긴 하다.

    길드 내부를 통제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으니까.

     

    “이제 알아낼 건 다 알아낸 거 같은데. 처리할까?”

     

    멀리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한유라가 어느새 다가와 염황을 김지수에게 겨누며 내게 물었다.

     

    다행히도 오자마자 곧바로 죽인다거나 고통을 가한다거나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잠시만. 좀 더 물어볼 게….”

     

    “거기까지 해. 나도 더는 못 참겠어, 원우야. 당장이라도 난도질해서 까마귀밥으로 줘버리고 싶은 마음인데. 널 봐서 이만큼 참고 있는 거야.”

     

    그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아직도 연민이 남은 걸까.

     

    쉽사리 죽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하겠다.

     

    가장 오래 알고 지낸 2명과 다 이런 관계가 되었다는 게 참 얄궂다.

     

    “하하! 그래 이 정도면 유라 입장에서 많이 봐준 거지. 그런데 어떻게 하냐, 이원우? 너 아직 멘탈 깨질 일이 아직 많이 남았을 텐데? 그거 알아? 니 여자친구가 사실은….”

     

    무언가를 내게 전하려는 듯 피를 토하며 소리치는 김지수.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푸쉭.

     

    “그건 네년이 감히 언급할 사항이 아니야.”

     

    한유라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심장을 꿰뚫어버렸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 주부터는 연재 주기가 조금 더 빨라질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Girl I Saved Came Back As An S-rank Hunter

The Girl I Saved Came Back As An S-rank Hunter

내가 구한 그녀가 S급 헌터로 돌아왔다
Score 3.4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s soon as she became an S-rank Hunter, my childhood friend and lover said we should break up. As I was hurting, another S-rank girl came to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