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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으음… 허억! 윽…”

       

       돌연 정신을 차린 은설은 힘겹게 눈을 뜨다가 직전까지 자신이 목숨을 건 전투 중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깜짝 놀라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온몸, 특히 두 팔에 남은 큰 통증 때문에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몸을 움찔했다.

       

       “여기는…”

       

       자신은 지금 병실 안에 있었다.

       

       팔에는 링거가 꽂히고 어깨를 고정할 수 있도록 딱딱한 보호대도 장착된 채로.

       

       약을 발랐는지 팔다리, 복부, 등까지 축축한 연고가 온몸에 범벅이었고 다리에는 붕대에 감싸져 살짝 들어올려진 채 고정이 되었다.

       

       “어떻게… 누가 여기로 나를-”

       

       그 순간 그녀는 기절하기 직전에 봤던 사람을 떠올렸다.

       

       늘 입는 하얀 망토를 입고 얼굴을 가린 하얀 가면을 쓴 남자.

       

       얼굴의 반이 가려져있었다지만 자신은 그 가면 아래 얼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키드 G… 날 구해주고서…?’

       

       키드 G 말고도 그 옆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하나는 붉은 포니테일을 길게 기른 늘씬한 여자, 자기도 잘 아는 프로토타입 인조히어로 이브였다.

       

       그리고 옆에는 어디서 본 것 같은 이상한 슈트를 입은 남자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추측을 하던 와중에 병실 문이 열리고 연합 본부의 의료진이 들어왔다.

       

       은설이 눈을 뜬 것을 확인한 간호사가 서둘러 달려와 그녀의 몸상태를 체크하고 여기저기로 연락을 하더니 얼마 안있어 본부 히어로들과 오퍼레이터들이 달려왔다.

       

       “설아! 괜찮아?!”

       

       “발키리! 몸은 좀 무사한가!”

       

       “다들… 윽… 으흑…”

       

       드디어 아군을 보게 된 은설은 안도의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자기가 당도하기 직전에 룩과 비숍, 나이트의 손에 도륙당한 다른 히어로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몸을 떨었다.

       

       “흑… 죄, 죄송해요… 제가 늦어서… 먼저 싸우시던 분들이 전부…”

       

       “설아, 니 잘못이 아니야! 나야말로 미안해… 오퍼레이터라는 게 대피하느라 아무 도움도 안되고 널 거기 혼자 남겨놓게 돼서…”

       

       은설과 가장 자주 호흡을 맞췄던 한주연 역시 울면서 그녀를 끌어안아줬고, 다른 히어로들도 침통함을 숨기지 못했다.

       

       “우리야말로 자네를 볼 낯이 없네. 최대한 빨리 온다고 왔는데 도착했을 땐 이미 상황이 다 끝나서…”

       

       “죄송해요… 어떻게든 버텨봤는데 저 혼자서는 역부족이라… 흑…”

       

       은설의 말에 순간 오퍼레이터들과 히어로들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발키리? 그게 무슨 말인가? 체스나이츠 3인방은 자네가 격퇴한 거 아닌가?”

       

       “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룩과 비숍, 나이트는 이미 도망치고 없었네. 자네 혼자 심한 부상을 입고 기절해있던데 자네가 격퇴하고 그 후에 체력이 다해 기절한 게 아닌가?”

       

       “아…”

       

       은설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자신은 분명히 졌고, 마지막에 나타난 키드 G와 이브는 헛것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른다면 키드 G와 이브가 어떻게든 체스나이츠를 물러나게 만들었고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는 없으니 도망을 쳤다.

       

       뒤늦게 도착한 인원들이 봤을 때는 자신이 체스나이츠를 물러나게하고 기절한 것으로 오해했다.

       

       ‘괜히 말해서 좋을 게 없겠어.’

       

       키드 G에게 도움을 받긴 했으나 키드 G가 본부 코앞에서 체스나이츠와 전투를 벌이는 동안 연합이 손도 쓰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려봤자 본인에게도 안 좋고 연합의 체면을 생각해보면 더 안 좋았다.

       

       은설은 그 사실을 숨기기로하고 그저 기억이 안나는 척을 했다.

       

       “죄송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제가 거의 의식이 없던 상태라…”

       

       그리고 그 말에 히어로들은 울컥하며 눈물을 쏟았다.

       

       “크흡… 의식이 없는데도 몸이 움직이면서 놈들과 싸웠다는 건가…! 발키리, 그대는 정말 모든 히어로들의 귀감이다! 우리가 더 서둘렀다면 이렇게 다치지도 않았을 것을… 정말 미안하다, 발키리…!”

       

       “그나저나 체스나이츠는요? 놈들은 어디로 갔죠?”

       

       히어로들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다… 놈들의 행방은 지금 묘연해. 본부 건물 내에 위치한 CCTV를 다 뒤져봤지만 전투의 여파 때문인지 다 망가지고 녹화된 기록도 완전히 날아갔더군. 지금으로썬 놈들을 추적할 방법이 없다.”

       

       “그렇…군요.”

       

       은설은 시선을 딴데로 돌렸다.

       

       ‘이브구나.’

       

       당연히 키드 G가 와서 자신을 도왔다는 증거를 남겨놓을 리가 없으니 이브를 통해 CCTV를 전부 망가뜨렸겠지.

       

       그럼 대체 그 녀석은 지금 어디 있는 거지…?

       

       고맙다는 말도 못했는데…

       

       은설이 있는 병실에 모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자 간호사들이 환자 안정을 위해 모두를 돌려보냈고, 은설은 덕분에 다시 고요한 병실 안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됐다.

       

       ‘키드 G… 대체 뭘 한 거야…? 이번엔 그놈들이 널 찾으려고 온 것도 아니라 우리를 치려고 온 거였는데… 왜 그런 상황에서까지…’

       

       은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안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몸의 통증이 워낙 심해 그 생각도 오래가지 않았고, 그녀는 저녁식사도 거르고 다시 잠들어버렸다.

       

       또 몇 시간이 지난 후.

       

       간호사들도 당직 인원을 제외하면 다 퇴근한 한밤중.

       

       다시 눈을 뜬 은설은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배고파…”

       

       늦은 오후에 잠들어 한밤중에 일어나버리는 바람에 식사시간도 이미 다 지나간 상황.

       

       당직 인원을 부른다고해도 그 사람들이 밥 차려주는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은설은 그저 허기만 느끼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 있을 뿐이었다.

       

       “식사시간 때는 깨워달라고 할걸… 배고ㅍ… 어?”

       

       배가 고파 혼자 중얼중얼거리고 있던 그때.

       

       갑자기 연합본부 의료센터 내 은설이 입원한 병실의 바닥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두더지마냥 머리를 빼꼼 내밀었다.

       

       깜짝 놀란 은설은 순간 펄쩍 뛰었으나 금방 머리를 내민 사람이 누군지 인지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발키리씨?”

       

       “키드 G!”

       

       키드 G는 손에 뭔가 하얀 봉투를 들고 있었고, 그를 본 발키리의 만면에는 자기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

       

       

       나는 은설을 병실 침대에 눕히고 사운드 배리어 디바이스를 켰다.

       

       내가 디바이스를 작동하는 걸 본 은설은 침대를 반쯤 세워 앉은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운드 배리어 디바이스? 이거 연합본부 보급용인데 니가 이걸 어디서 났어?”

       

       “어제 전투 끝나고 퇴각할 때 은설씨 주머니에서 슬쩍했습니다. 유용해보이더라구요, 이거.”

       

       당당하게 자기 주머니에서 훔쳐갔음을 고백하자 은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 도둑놈. 버릇 못 버리고…”

       

       “하하하, 용서해주세요. 그래도 덕분에 이렇게 둘이서 얘기할 수 있게 됐지 않습니까?”

       

       “… 그래서, 왜 왔어?”

       

       은설은 내가 들고있는 하얀 봉투로 슬쩍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

       

       “항상 제가 다쳤을 때 은설씨가 병문안도 와줬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는 은설씨가 많이 다친 것 같길래 제가 병문안 온 거죠. 입장이 입장이라 당당히는 못왔습니다만.”

       

       죽 가게에서 사온 참치죽을 꺼내자 은설이 눈을 꿈뻑거렸다.

       

       “… 죽이네.”

       

       “저번에 저 다쳤을 때 참치죽 사오셨길래 은설씨가 좋아하는 맛인가 싶어서 저도 같은 걸로 샀죠. 저녁은 드셨죠? 죽은 여기 냉장고에 넣어놓고 갈테니까 내일 데워서 드시-”

       

       “밥 안 먹었어.”

       

       은설이 내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잘 움직이지 않는 자기 팔을 눈으로 가리켰다.

       

       “아파서 자느라 좀 전에 일어나서 밥 시간 놓쳤어. 나 배고파. 지금 팔도 못 움직인단 말이야.”

       

       “으음, 뭔가 원하시는 거라도?”

       

       그러자 은설이 눈쌀을 찌푸렸다.

       

       “무슨 말 하는지 알잖아!”

       

       “글쎄요. 제가 워낙에 눈치가 없어버려서. 직접 말로 해주시지 않으면 제가 영 말귀를 못 알아먹는 놈이란 말이죠.”

       

       “이씨…”

       

       은설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떨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 먹여줘… 나 배고파…”

       

       “원하시는대로.”

       

       “너 알면서 일부러 내가 직접 말하게 만든거지!”

       

       “글쎄요?”

       

       “씨, 나쁜놈…”

       

       나는 은설의 병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걸터앉아 죽이 담긴 용기를 열어 은설에게 한 숟갈씩 먹여줬다.

       

       은설은 죽을 후후 불어가며 한 입씩 삼켰고, 어지간히도 배가 고팠는지 죽 한 그릇을 싹 비워버렸다.

       

       한참 늦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은설은 자기가 기절한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내게 물었다.

       

       나는 사이버스를 탈옥시킨 것까지 포함해 어제 있었던 전투를 은설에게 알려주었고, 그녀는 내가 다치지 않은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사이버스를 탈옥시킨 일로는 화를 냈다.

       

       “본부 인원들이 대피한 틈에 빌런을 탈옥시켜? 이 나쁜자식, 내가 지금 팔만 멀쩡했어도-”

       

       “체스나이츠랑 싸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그놈의 존재가 체스나이츠에겐 굉장한 카운터니까요. 좀… 정신빠진 짓거리들을 해서 그 부분은 저도 예측이 힘듭니다만…”

       

       어제 난데없이 SIUUUU를 외치며 헛짓거리하다 체스나이츠 3인방이 도망갈 틈을 만들어준 사이버스를 떠올리자 괜히 화가났다.

       

       킹과 퀸까지 포함해 놈들이 총력전으로 나올 때는 아주 바지에 똥을 쌀 때까지 굴려주지.

       

       식사를 다 마친 은설은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비스듬히 세운 병상에 등을 기댔다.

       

       나는 죽 용기를 치우면서 은설을 보고 씩 웃었다.

       

       “저번엔 은설씨가 죽 먹여주더니 이번엔 입장이 바뀌었네요. 이걸로 쌤쌤입니다?”

       

       “그, 그러든지 말든지…”

       

       은설은 플라스틱 용기를 버리던 나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솔직히 어제 죽을 거라 생각했어. 은화 얼굴도 한 번 더 못보고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덜컥 겁이 났는데… 기절하기 전에 니가 오더라. 다른 동료 히어로분들은 늦으셨는데 어떻게 하필이면 와도 빌런인 니가 제일 먼저 왔는지…”

       

       “빌런놈이 도우러 와서 싫으셨나요?”

       

       “…… 대답 들려줄테니까 이리 와봐.”

       

       은설이 부르자 나는 그녀 옆에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은설은 잘 안 움직이는 몸을 어떻게든 다시 일으켜세우려했다.

       

       “다친 곳도 많은데 그렇게 무리하다가 상처 덧납-”

       

       나는 일어나려고 바둥대는 은설을 잡아 상체를 들어올려줬다.

       

       그 순간, 은설이 몸을 내쪽으로 살짝 들었다.

       

       쪽-

       

       “?!”

       

       은설의 보드라운 입술이 내 뺨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녀가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기에 나는 깜짝 놀라 굳었고, 은설은 은설대로 자기가 한 짓이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떨구고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모기만한 소리로 대답을 했다.

       

       “…… 싫다고는… 안했어. 그러니까… 그… 고, 고마워…”

       

    다음화는 06월 24일 12시 업데이트 됩니다.


           


I Am a Villain and My Identity Was Immediately Discovered

I Am a Villain and My Identity Was Immediately Discovered

빌런인데 정체를 바로 들켰습니다
Score 10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lived as a villainous rogue in a heroic story, setting myself against the protagonist. … But then the protagonist caught on to my true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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