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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그래도 오후는 어딘가 시원한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고민하고 있던 것 중의 반 정도는 해결된 기분이다. 명상으로 피곤한 상태에서도 금방 회복될 수 있는 수단을 얻었고, 북부의 문제도 조금이나마 해결되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능력에 대해서 확실하게 각인할 수도 있었고.

        

       내가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감정적인 모습을 들켰던 것도, 이번 일로 많이 희석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 한 명으로도 적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니까.

        

       어쩌면, 지금쯤 황제에게 복수를 꿈꾸고 있을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에게도 어느 정도 경고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원작에서는 클레어가 학기 초가 아니라 1학년 도중에 편입하는 식이었고, 무엇보다 나처럼 대놓고 활동하지는 않았기에 크로우필드 측에서 어느 정도 만만하게 보기도 했다.

        

       하긴, 그때는 폭탄으로 백작을 날려버리는 짓은 하지도 않긴 했지만.

        

       암살자를 상대하는 것과 부대 단위의 적을 분쇄해버리는 인간 병기를 상대하는 것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 법이지.

        

       “…….”

        

       미아 크로우필드가 나를 힐끔거리는 심정도 이해는 간다.

        

       덕분에 친해지는 건 더 어려워진 것 같지만.

        

       “언니!”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 사람이 또 있었다.

        

       인간 병기 수준의 활약을 하고 돌아온 나였으니 나를 더 어렵게 대하는 사람만 엄청나게 많아질 줄 알았는데, 정작 클레어는 오히려 나를 허물없이 대했다.

        

       역시 아까 ‘제가 하고 싶어서 했던 일입니다’라고 했던 것이 컸던 모양이다. 하고 싶었던 이유도 말하지 않았고, 그 일도 사실 뭔가 먹거나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용병단을 분쇄하고 돌아오는 것이었지만, 클레어에게는 그 행위 자체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보다는, 나에게도 제대로 된 감정이 아직 남아 있다는 확신을 한 모양이었다.

        

       “클레어.”

        

       “알아, 알아! 하지만 여기는 아카데미가 아니라 밖이잖아!”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선수 쳐서 그렇게 말하며, 클레어는 내 팔을 두드렸다.

        

       ……아카데미 밖이라고는 하지만 하고 있는 일은 출석 일수에도 들어가는 실습인데.

        

       게다가 지금 우리는 교복 입고 있잖아. 장소만 아카데미 건물 안이 아닐 뿐이지, 실제로는 아카데미에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런데, 아까부터 클레어가 계속 실비아를 보고 언니라고 부르고 있잖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

        

       클레어는 내 왼쪽에서 걷고 있었고, 앨리스는 내 오른쪽에서 걷고 있었다. 덕분에 마음이 묘하게 불편했다. 두 사람 다 나에게는 자매 비슷한 존재였으니까.

        

       음, 사실 정확하게 ‘자매’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 옆에 있다 보면 조금씩 느껴지는 그런 감정 있지 않은가. 클레어는 그런 상황에서 나를 따랐기에, 그리고 앨리스는 내 옆에서 한참 있었기에 두 사람 모두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아, 그거.”

        

       앨리스의 말을 들은 클레어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실비는 묘하게 언니다운 분위기가 있잖아? 나는 남동생은 있었어도 언니는 없었거든. 그래서 그냥 실비아에게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어.”

        

       “…….”

        

       뒤쪽을 살짝 돌아보니 레오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클레어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보고 있어서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이유도 이유였겠지만, 그보다는 자기를 남동생이라고 말한 클레어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고개를 살짝 앞으로 내밀고 내 옆쪽의 클레어를 보고 있던 앨리스의 시선이, 나의 얼굴을 향했다.

        

       아무리 봐도 클레어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는 모양이다.

        

       “…….”

        

       나는 말없이 클레어 쪽을 바라보았지만, 클레어는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딴청을 피울 뿐이었다.

        

       생각해보니 지금 막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아니고, 아까부터 은근슬쩍 계속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니, 뭐…… 생각보다 위화감이 느껴지거나 불쾌하거나 하지는 않은데, 지금 상황에서 나를 그런 식으로 부르면 내가 곤란해지잖아.

        

       “……나중에 따로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앨리스에게 작게 말했다.

       

       “……알았어.”

        

       내가 그렇게 말하니 앨리스는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나를 신뢰하고 있는 앨리스였으니까.

        

       앨리스 근처에 있어서 나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을 샤를로트도 내 말에 관심이 있는 듯 흥미로운 표정이었지만, 비밀을 마구 캐내는 것이 왕족다운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지 굳이 끼어들지는 않았다.

        

       제이크는 그냥 별다른 생각이 없는 것 같았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쪽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원작에서는 사실 이렇게까지 북적거리는 분위기는 잘 나지 않았다. 캐릭터가 하는 대사는 정해져 있었고, 인력의 한계 때문에 이벤트에서 필수적으로 대사를 치지 않으면 이상할 정도로 중심이 되는 캐릭터가 아닌 이상, ‘바뀔 수 있는 파티원들’은 은근히 해당 이벤트에서 공기가 되고는 했다. 애초에 대사 스크립트 자체가 없으니 컷 신에 나오더라도 뒤쪽에 멀뚱멀뚱 서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필드에서 돌아다니는 캐릭터는 플레이어가 대표로 설정해둔 캐릭터뿐이고, 가끔 이벤트성으로 한두 명이 따라다닐 뿐이었다. 설정상으로는 다 같이 다니고 있긴 해도 내 눈에 표현되는 캐릭터는 한 명뿐이었다는 소리다.

        

       그러니, 이렇게 북적거리는 것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즐겁기도 했고. 게임을 생각하면 다소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대화를 하는 것을 친구들이 듣고 반응하는 것은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시절이 떠오르게 했으니까.

        

       “좋아, 그럼.”

        

       클레어가 크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럼 오후에도 힘내서 일하자! 내일이면 돌아가게 되니까.”

        

       “……돌아가면 월요일부터 곧장 다시 수업으로 들어가는 걸까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클레어의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가 걱정된다는 듯 물어보고, 샤를로트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샤를로트의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내일은 오전까지만 실습하고 다시 기차로 아카데미에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여기는 아무래도 론다리움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라서, 그 기차 안에서 몇 시간은 있어야 했다. 실내는 넓고 쾌적했지만 그렇다고 침대석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라서 그 몇 시간 동안 결국 의자에 앉아있어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여독을 풀 틈도 없이 다음날부터 바로 수업이라는 게 믿기 어려운 것이리라.

        

       ……나는 밤을 몇 번 정도 돌려가며 쉴 생각이지만.

        

       그래도 미아 크로우필드 아이들과 저렇게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을 보면, 오늘 오전에 다 같이 의뢰를 하러 갔던 것이 득이 된 모양이었다. 그사이에 꽤 친해진 것 같으니까.

        

       미아 크로우필드가 쥐고 있는 지팡이에서는 여전히 푸른 마르마로스가 반짝이고 있었다.

        

       *

        

       “훌륭하군.”

        

       제니퍼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오후 일거리는 생각보다 얼마 없었다. 오전에 주인공 일행이 웬만한 의뢰를 죄다 끝내버린 덕분에 늦게 —물론 시간상으로는 별로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하여간에 상대적으로 늦게— 일어난 아이들이 허겁지겁 의뢰소로 뛰어 들어갔기 때문에 오후까지 남은 의뢰는 몇 개 없었다.

        

       그리고 원작에서도 이게 은폐 퀘스트를 드러내는 트리거이기도 했다.

        

       오전 서브 퀘스트를 전부 깨면 오후 퀘스트를 전부 깬 다음 ‘시간이 남았다’는 이벤트가 뜬다. 정작 오전에 퀘스트를 전부 한다고 오후 서브 퀘스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참고로, 만약 오전 서브 퀘스트를 전부 마치지 않았다면 서브 퀘스트로 표시되는 일 외에 다른 일들도 열심히 하느라 시간이 다 가버려서 제니퍼와의 대화 장면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오후가 다 가기 전에 일을 마치고 온 일행들에게 제니퍼는—

        

       “오늘은 시간이 많이 남겠군. 저녁 식사 시간까지도 한참 남았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운을 뗀다.

        

       “네, 그렇습니다.”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퍼는 “흐음.”하고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다면, 남는 시간 동안에 꽤 그럴싸한 도전 하나 해볼 생각은 없나?”

        

       하고 되물어보았다.

        

       “도전…… 말씀이십니까?”

        

       레오의 말에 제니퍼는 얼굴에 짓궂은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성공하면 너희들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뭐, 시간을 생각하면 조금 짧기는 하지만.”

        

       “…….”

        

       아이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시선에는 흥미가 담겨있었다.

        

       사실, 제니퍼가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기도 했다. 자기 스승을 깜짝 놀라게 해줄 생각 반, 그리고 진짜로 마음에 든 제자들에게 포상을 해주려는 생각 반이니까.

        

       게다가 그레이스 가의 검술을 제대로 물려받은 레오를 유심히 보고 있기도 했고.

        

       적어도 재능은 있다고 본 거겠지.

        

       “들어볼 생각이 있나?”

        

       서로 시선을 마주하던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니퍼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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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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