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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회색 머리칼을 뒤로 묶은, 동그란 안경을 낀 장년인이 전화를 받고 있다.

    한적한 오전, 평소라면 클래식을 들으며 휴일을 만끽했을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제임스 타이너씨, 제가 보낸 편지는 잘 받으셨나요? 텔레포트 특송으로 보냈습니다만.”

    “네, 지금 보고 있습니다….”

    출판사로 보내진 한 익명의 편지가 그에게 아주 많은 생각을 남겼기 때문이다.

    “허.”

    편지의 내용물은 놀라웠다.

    마수의 골격부터 근육, 마수의 행동이나 습성을 아주 자세하게 분석한 자료였다.

    ‘아직 발견되지 못한 화석의 부분또한 훌륭하게 잡아냈군.’

    골격스케치는 놀라울 정도였다.

    아직 마수에 관한 것은 그다지 밝혀진것이 별로 없다.

    애초에,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존재이기 때문에, 근본부터 중간계의 생명과는 달랐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가 보고있는 자료에는 아주 깔끔하고 명료하게 미싱링크를 채워넣는 설명이 덧붙여있었다.

    마계의 생태와, 마수의 행동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딱 들어맞는 설명이.

    게다가 고풍스런 필체와 깔끔하고 자세한 스케치는 자료의 신뢰감을 더했다.

    재야에 숨겨진, 또는 숨은 마수학자가 보낸 학술적 논문이라고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아니, 필시 그러하겠지. 

    이는 마수학에서 구르고 구른 베테랑의 일지의 내용이리라.

    “이건……. 굉장히 설득력있는 가설이군요. 이것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보낸 사람의 이름은 ‘루크 이루시’라고 하더군요. 보낸 주소는 쓰여있지 않고요.”

    “……루크 이루시라고요?”

    루크 이루시라면 거의 유일하게 마계를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었던 동화속에나 존재하던 마법사의 이름.

    따라서 마수학자들 사이에서 ‘루크 이루시’라는 이름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가설을 학계에 발표할때 쓰고는 하는 흔한 가명이다.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출판사의 편집자가 묻는다.

    제임스 타이너는 침음성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발상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지만……. 뒷받침할 증거자료는 부족하군요. 일단은……. 굉장히 흥미로운 가설인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사실이다.

    발상에는 헛점이 없지만, 증거가 없다면 학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제피르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믿기 힘든 구석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제피르화석이라면 그도 발굴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러니 행동재현으로 분석한 결과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임스의 시선은 털이 없이 이끼에 덮인 제피르의 삽화에 고정된다.

    자신은 마수학자다.

    이런 흥미로운 가설을 보고도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마수학자라 칭할 재목이 아니겠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군.’

    제임스 타이너는 외출복을 들었다.

    ——–

    그래, 우연이었다.

    편지를 받고 박물관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그가 곧바로 몸을 일으킨건.

    하지만 같은 시기에, 같은 박물관에 온것은 정말로 우연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마수박물관이라는 점과, 제피르 화석의 원형을 보존한 박물관이 여기뿐이라는 점에서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일수는 있었으리라.

    그리고 제임스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작은 꼬마가, 마수학계의 밝혀지지 않던 부분을 명확하게 만들어버릴 줄이야.

    3000년전 ‘잊혀질 전투’로 소실된 과거의 정보가……. 이 작은 아이의 머릿속에서 재구축된 것이라니.

    믿기어려운 사실이었지만, 대화를 통해 파악한 지적수준은 고작 10살이 지닐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적 수준만으로 자료를 직접 작성했음을 증명할수는 없다.

    따라서 루크는 지금 필체를 비교하기위해 메모지에 자료에 썼던 문장을 몇개정도 다시쓰는 중이었다.

    사각, 사각. 펜촉이 종이에 긁히는 소리가 멈추고 루크는 펜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후에 메모지를 제임스에게 건넸다.

    “자, 이제 나를 믿겠는가?”

    루크가 건넨 메모지를 받은 제임스는 매우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풍스러운 필체는 자료의 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아이의 손에서 이토록 깔끔하고 정갈한 필체라니…….

    “어딘가에서 베낀 자료는 아닌거고?”

    “그대는 대체 나를 얼마나 모욕하려는겐가.”

    루크의 표정이 싸늘해지자, 제임스는 크흠 큼, 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아무래도 정말로 네가 그 ‘루크 이루시’인 모양이네.”

    그래도 나이가 지긋한 학자의 모습을 기대했건만, 예상과는 너무나 달랐다.

    똘똘해보이기야 하지만, 고작 10살.

    제임스가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이 아이의 배후에 ‘루크 이루시’라고 불릴만한 고명한 학자가 아이를 가르친게 아닐까 하는 가설을 세웠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 자료가 자신이 직접 작성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제임스는 그것을 증명해보이라 한 것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필체로 자신을 증명해보였는데 더이상 반박을 하기도 어렵다.

    특히나, 아까전 제피르에 대한 주장은 자신이 받았던 자료와 완벽히 일치한다.

    이전에 본 적 없는 가설이니, 어디서 베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겠지.

    그렇다면 정말로 이 자료를 이 소녀가 작성했단 말인가……?

    “네가 정말로 그 ‘루크 이루시’였어…….”

    이제 어째서 가명을 댔던 것인지 명확해지고 말았다.

    10살짜리 소녀의 모습으론 직접 학계에 발표해봤자 비웃음만 살것이 뻔했다.

    그 자료가 얼마나 깊고 설득력이 있는지따위는 잊혀져버리고 말겠지.

    그러니 차라리 익명으로 자료를 보내는 편이 훨씬 믿음이 갔으리라.

    확실히, 그 자료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모를때는 분명 엄청난 설득력을 지녔지 않았던가.

    제임스는 자신을 속이지 않기로 했다.

    이 아이는 10살이고, 자신을 자료로 설득했다.

    그것은 결코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 자료들은 어떻게 조사한거지?”

    “그야 관찰과 분석이라네.”

    “음……. 관찰과 분석이라.”

    사실이라면 아주 훌륭한 관찰력이 아닐 수 없다.

    화석과 현재 밝혀진 자료만으로 이정도의 추측을 할 수 있다는것은, 마수학자. 아니, 고고학자로서 아주 훌륭한 재능이었다.

    이것이 그저 그런 억측이 될지, 학계에서 받아들여져서 정설이 될지는 아직 단언하기엔 이르지만, 이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마수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어째서 마수가 신체의 형태와 설계에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했던 것인지.

    어째서 설계적으로 털이 필요 없는 마수에게 털이 있는 흔적이 발견된 것인지.

    어째서 육식동물의 특성을 가진 마수의 내장기관은 초식동물의 그것과 닮아있었는지…….

    제피르의 사례가 루크가 추측한 사실이 정말로 맞다면, ‘드랙상’을 받아도 모자랄 정도가 아닐까.

    “그래서, 루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예르나는 루크와 제임스 사이에 끼어서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뭔가 마수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간것은 알겠는데…….

    마수학자가 루크와 할 얘기가 대체 뭐가 있단 말인지.

    ‘옆에서 들었는데도 잘 모르겠어. 루크가 또 뭔가 대단한걸 한건가?’

    자료는 또 대체 무슨 자료를 보냈단걸까?

    마수 스케치?

    ‘마수를 참 잘 그리긴 했는데…….’

    이렇게 마수학자랑 독대할 정도였던걸까?

    “그래서 이게 다 무슨일인건가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예르나와 다이튼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였다.

    제임스는 소외된 듯한 둘에게 신경을 좀 써주기로 했다.

    “이 아이의 보호자라고 했던가요? 딸? 둘은 혹시 부부?”

    엘프, 인간, 수인이라. 참 기묘한 가정사로군, 하고 생각한 제임스가 묻자, 예르나가 눈에띄게 당황해서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따, 딸은 아니고요! 보호자에요, 보호자!”

    다이튼도 동일한 수준으로 당황하며 외쳤다.

    “마, 맞습니다. 아니, 부부가 맞다는건 아니고! 예르나가 보호자라고요. 저는 아직, 아니 그냥 직장동료고요!”

    “아직?”

    “말이 헛나왔어!”

    ——–

    “그거, 정말인가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였다고요?”

    루크가 보낸건 그저그런 팬레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용물을 볼 수 없었던 예르나는 경악했다.

    루크가 열심히 꼼질거리면서 종이에 글자를 꾹꾹 눌러쓰는 모습은 정말로 귀여웠다. 내용이 궁금했었는데, 나중에 보여달라고 했더니 저 혼자서 우체통에 넣고왔다고 하는게 얼마나 아쉬웠던가?

    ‘기껏해봐야 무슨 마수가 좋다거나하는 그런 어린아이다운 내용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예상은 크게 빗나간 모양이다.

    “예. 그렇습니다. 이건 기존과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에요. 마계의 생태계에 대한 자료는 온전히 상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요. 아직까지 남아있는 자료는 별로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그리고 마계의 생태나 마수의 행동원리같은 부분에서, 이 아이가 주장한 의견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요.”

    “아…….”

    “그리고 만약 후에 이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학계는 한번 뒤집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드랙상’을 받을지도 모르죠.”

    “예?!”

    “그만큼 굉장한 발견이니까요. 이 가설에서 파생될 수많은 나비효과를 생각해보면 그럴수밖에 없지요.”

    제임스는 마치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학자의 심장이 열정으로 불타오른다는 느낌의 표정이었다.

    3000년 전의 그 ‘잊혀질 전투’ 이후 사라진 수많은 자료와 역사를 복원하고자 하는것이 수많은 학자들의 염원. 예르나 역시 그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게 저정도라니? 

    “루크, 대체 무슨짓을 한거야?”

    “그저 사실을 주장했을 뿐이지.”

    어깨를 으쓱, 하는 루크의 표정엔 일말의 걱정도 없이 너무도 당당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정말로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듯이.

    “그래서 말인데, 루크 이루시, 정말 그게 네 본명이었던거냐? 가명이 아니라?”

    “맞다네, 내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는가.”

    제임스는 예르나에게 눈짓을 보냈다.

    예르나는 그것이 사실이라며 곤란한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기억하는 이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몰라도, 현재는 실제로 그렇게 신분이 만들어져 있으니까.

    “알겠다. 루크 이루시. 내가 제안하고 싶은건 이거다.”

    제임스가 말했다.

    “너를 내 연구실에 초대하고싶어. 어떠냐?”

    “호오, 나를 그대의 연구실에?”

    고고학자의 연구실이라? 이건 상당히 구미가 당긴다.

    어쩌면 자신의 몸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일단 연락처를 교환하도록 하지.”

    루크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내미는데는 채 1초가 걸리지 않았다.

    “하하! 시원시원한 성격이로군.”

    연락처를 교환하고 휴대폰을 확인한 루크는 문득 고개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아차, 묻고싶은게 두가지 있다. 제임스, 고양이 형태의 마수에 대해 아는게 있는가?”

    “고양이? 글쎄, 그런 마수는 아직 발견된적 없는데……. 그것도 뭔가 근거가 있는 추측이야?”

    루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에 대한 것은 기억 말고는 어떠한 증명자료도 없다.

    기억을 되돌리는것 외엔 방법이 없겠지.

    “흠, 없다면 됐다. 두번째 질문은 이거다.”

    “뭐지?”

    “드랙상은 아카데미에서 수상경력으로 인정해주나?”

    “……?”

    이 애는 그런걸 무슨 질문이라고 하는걸까.

    할 말을 잃은 제임스를 대신해 다이튼은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드랙상은 세계적인 상이야. 상을 받은 사람은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는거라고.”

    전 세계의 후원을 받는 드랙재단에서 학술적으로 높은 업적을 세운 자에게 주는 세계적인 상이다.

    일개 아카데미에서 수상경력으로 인정하고 자시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겠는가.

    “흠, 그렇군?”

    그렇다면 상 하나로 인정이 된다는 말이리라.

    외부 수상경력은 많을수록 좋다고 했으니……. 일단은 하나로 시작해볼까.

    시원한 듯한 표정의 루크를 본 제임스는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드랙상을 아카데미 수상경력으로 쳐주냐니, 평생 들어본 소리중에 가장 미친소리다.

    ‘이 나라의 입시제도는 대체 어떻게 되어버린건지.’

    제임스는 아이의 감상에 통탄할 노릇이었다.

    ———

    세레나는 혼자서 터덜터덜 돌아오는 시무룩한 표정의 시루드에게 무슨일이 생긴건가 싶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머, 왜 혼자서 돌아오니? 뭐 실수라도 했어?”

    “루크는 혼자서 가버렸어.”

    “뭐? 왜?”

    “마수학자랑 할 말이 있다나봐. 보호자랑 같이 가버렸어. 나는 따라가봤자 재미 없을것 같아서 돌아왔고.”

    “그……러니?”

    세레나는 한숨을 쉬었다.

    설마했던 실패인가.

    둘의 사이를 좀 친하게 해주려고 만든 자리인데, 마수학자랑 이야기한다고 휙 가버리다니…….

    이거, 마수를 생각보다 너무 좋아했던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게 입시제도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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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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