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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내가 이 세계에 건너왔을 때, 나는 단원들을 직접 마주 대하기 어려웠다.

       단원들이 나를 무서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나도 나름 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외모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달리 내게는 그들의 생김새가 그렇게 무섭게 다가오지 않았다.

         

       우몬은 게임과 영화에 자주 나오는 근육질의 카리스마 있는 악마 캐릭터였다.

       스벤도 옛날 사람들에게나 공포의 상징이지, 현대에서는 해골이 워낙 이미지 소비가 심해서 움직이는 걸 지켜보면 재밌기만 했다.

         

       유라크네, 트라이머리, 밴딕이 가진 장애는 내가 옛날에 있던 보육원 친구들을 떠오르게 했기 때문에 친근하게 느껴졌다. 난쟁이 요벨도 동네마다 한 명씩 보이는 그냥 키가 작은 사람일 뿐이었다.

         

       그들을 마주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들의 겉모습이 아니라 게임에서 그들이 보인 행동 때문이었다.

         

       우몬은 사람을 쇠고리에 걸어 놓고 요리를 해 먹는 식인귀였고, 스벤은 사람을 사냥해 가죽을 벗겨 옷처럼 걸치고 다니는 미치광이였으며, 유라크네는 남자만 골라서 고치에 묶어놓고 체액을 짜내는 요괴였다.

         

       내가 허점을 보이면 언제든 내 목을 물어뜯을지 모르는 괴물들.

       그렇게 생각하고 경계했다.

         

       물론 그런 의심은 며칠 가지 않았다.

       그들은 겉모습만 TT1의 보스들과 같을 뿐, 속은 상처 많은 평범한 이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겉모습 때문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린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서커스단의 일꾼으로 일하는 랫맨들이었다.

       그들은 이름 그래도 쥐의 모습을 한 수인족이었다.

         

       쥐는 현대인들에게 바퀴벌레와 더불어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러운 생물의 상징이었다.

       나도 그것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빳빳한 털과 까딱이는 수염, 벌름거리는 코와 분홍색의 주름진 앞발을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속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웃는 남자가 없었더라면 놈들을 마주하는 순간 자지러졌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랫맨을 나만큼 징그러워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들을 어딘가 모자라고 불결한 유색인종같이 바라볼지언정, 괴물로 보지는 않았다.

         

       그것은 퍽 이상한 일이었다.

       두 발로 걷는 거대 쥐 인간은 사람으로 바라보면서, 장애를 가졌을 뿐인 인간은 괴물 취급하다니.

         

       심정적으로 와닿지 않았지만,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괴물이냐 아니냐는 결국 ‘익숙함’의 차이였다.

         

       공룡이나 삼엽충같이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존재가 실제로 나타났다고 해서 우리는 그걸 괴물 취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리 여섯 개인 고양이나 팔 달린 뱀, 사람만 한 바퀴벌레는 ‘괴물’ 취급을 할 것이다.

         

       익숙함에서 벗어난 기괴함.

       무언가를 괴물이라 부르며 꺼리게 되는 심리는 그런 곳에서 나오는 법이었다.

         

       단원들과 랫맨들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시각 차이 역시 그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2달 동안 나도 랫맨들에게 나름 익숙해졌다.

       그들이 옛날만큼 징그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들 역시 나를 예전처럼 두려워하지 않았다.

       랫맨은 눈치나 분위기를 읽는 데 천부적인 감각을 타고난 종족이었다.

         

       놈들은 언제부터인가 내가 더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었다.

         

       이제 내 눈앞을 당당히 걸어 지나가는 건 예사였다.

       새벽에 내가 자는 침실 발코니 아래에 모여서 어디선가 잡아 온 참새를 구워 먹으며 노래를 부른 적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새끼가 몸이 아파서 약을 사야겠다고 돈을 받아가더니, 마당 구석에서 대마초에 취해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왠지 자존심도 상했다.

         

       내가 예전 원더스타인보다 만만하게 느껴진다는 건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돌발적인 행동을 저질러놓고는 눈동자를 굴리며 내 표정을 관찰하거나 수염을 까딱이며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사람 간 보는 것 같은 행동도 눈에 밟혔다.

         

       ‘교활하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종족’이라는 세간의 편견이 편견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놈들의 행태가 괘씸하긴 했다.

       원더스타인이 주기적으로 그들을 불러내어 두려움을 심어준 이유가 있었다.

       실실 웃는 면상만 보이면, 그들은 정말로 사람을 우습게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는 없었다.

       기껏 단원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진 마당에 내가 나서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러지 않아도 내게는 유능한 부단장이 있었다.

         

       랫맨들에게 가장 만만한 대상은 막내인 우몬이었다.

       흉포하게 생긴 겉모습과 적혈귀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속마음은 매우 순박하고 여렸다.

         

       랫맨들은 그걸 잘 포착하고는 그의 음식을 슬쩍 뺏어 먹는다거나, 자재를 들고 지나가는 척 그의 장딴지를 쿡 찌르고 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시비를 걸곤 했다.

         

       우몬 입장에서는 별것도 아니어서 그냥 웃고 넘겼지만, 엘라는 그냥 보고 넘어가지 않았다.

         

       랫맨들이 선을 넘는 짓을 하는 걸 볼 때마다, 그녀는 채찍을 들고 나섰다.

       그러면 그들은 대번 목을 움츠리고 허리를 굽혀대며 비굴한 시늉을 해댔다.

         

       “찍찍! 아프다! 아프다! 인간! 때리면 우리 아파서 운다!”

       “새끼도 운다! 엄마 아빠! 때리지 마세요! 운다!”

       “찍찍! 인간 사회! 무섭다! 랫맨! 비참하다!”

         

       정말 서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랫맨들.

       괴롭힘당하던 우몬이 나서서 엘라를 말릴 정도로 그들은 한스럽게 울어댔다.

         

       물론 그녀 앞에서 그런 거짓 눈물은 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이 그럴 때마다 냉정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채찍을 휘둘렀다.

         

       내가 처음 그 광경을 봤을 때는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엘라가 나를 제외한 누군가에게 저렇게 표독스럽게 구는 것은 처음 봤다.

         

       물론 나중에 그들의 본성을 직접 겪은 이후로는 그녀가 채찍을 들 때마다 속으로 엄지를 척 올려주었다.

       엘라가 냉정함과 엄격함을 가장하는 것도 교육 효과를 위해서 일부러 그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들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 왜 그녀의 직업이 ‘맹수 조련사’인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랫맨들도 엘라의 명령이라면 고분고분하게 따랐고, 그들을 다루는 것은 항상 엘라가 도맡아서 했다.

         

       오늘 있는 접객 훈련도 그랬다.

       그녀는 랫맨들을 정원으로 불러서 어떤 식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음식을 나르고, 요청에 응대해야 하는지 교육했다.

       

       엘라는 목을 가다듬고는 배 앞에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원더스타인 서커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원더서커스! 환영한다!”

         

       엘라가 먼저 시범을 보이면, 랫맨들이 따라 하며 복창했다.

       

       “주문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주문! 말해라!”

         

       그러나 계속 지켜봐도 연습에 딱히 진척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랫맨들은 단어들을 이어서 긴 문장을 만드는 것을 어려워했다.

         

       “나가실 문은 저쪽입니다!”

       “나간다! 저쪽으로!”

         

       무려 30분 넘게 그들을 붙잡고 연습을 시키던 엘라.

       발전 없는 랫맨들의 모습에 그녀도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됐어. 그만하자.”

         

       그녀의 말에 랫맨들이 기다렸다는 듯 굽혔던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섰다.

         

       “좋다!”

       “부단장! 요구! 너무 어렵다!”

       “우리 방식! 편하다!”

         

       엘라는 진절머리 난 듯 고개를 저었다.

         

       “알았어. 너희들 마음대로 해. 어차피 손님들도 랫맨 직원들에게 뭘 바라지는 않을 테니.”

         

       랫맨들은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며 우르르 정원을 빠져나갔다.

       떠드는 소리를 보니 호텔 뒤쪽 동산에서 발견한 벌집을 따러 가는 것 같았다.

       꿀이 그렇게 맛있다나.

         

       엘라는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저 얍삽한 놈들.”

       “랫맨들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을까요?”

         

       내 말에 그녀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농땡이 부리는 거지. 대사도 아니라 동작도 엉망이었는데. 어차피 이번 일은 자기네들이 작정하고 망치려고 덤비면 망하는 걸 아니까 저러는 거야.”

       “그런 걸 다 계산하고 움직이는 건가요?”

       “저놈들이 얼마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데. 말투보고 우습게 보면 큰코다치지. 쟤들에게 의무라는 건 없어. 이득과 균형 사이에서 처세할 뿐이지. 이번에는 여기가 선이구나 하고.”

         

       엘라는 채찍을 허리에 갈무리했다.

       야수 조련용 채찍이라는데 그녀가 다루는 동물들은 다들 작아서 랫맨들에게 쓰는 것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맞다. 베르그송 자작님과 얘기 한 건 어떻게 됐어?”

       “자작님과 얘기는 못 나눴습니다. 자작님은 아침 일찍 다른 지방에 갔다더군요. 재판 뒤처리를 하신다고 요즘 꽤 바쁘시던데요.”

       “그래? 그럼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은 없겠네. 어차피 3주나 남았으니까 느긋하게 생각하자고. 단원들 연습 상태나 같이 볼래?”

       “좋습니다.”

         

       단원들의 연습을 둘러본다는 것은 불과 1주일 전이었으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단원들이 편하게 있지 못한다고 나는 항상 물러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재판 사건이 있고 나서 단원들은 이제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을 전만큼 불편해하지 않았다.

         

       “두개골 저글링을 할 때, 다른 흰색 공이랑 두개골이랑 무게가 달라서 자꾸 속도가 어긋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말이지 두개골을 던질 때만 스냅을 반사적으로…….”

         

       엘라는 단원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듣는 즉시 척척 해결책을 제시했다.

         

       “손에 송진 가루를 계속 바르라고?”

       “언니는 팔을 교대로 쓸 수 있잖아요. 퍼포먼스에 주목하는 동안 다른 손이 무슨 짓을 하는지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녀는 단원들의 신체적 특징을 잘 파악해서 적절한 조언을 내려주었다.

         

       “우몬, 네 울음소리는 두려워할 때가 제일 무서워. 그러니까 분노에 찬 연기를 할 때, 무서워하는 걸 떠올려 봐.”

       “이, 이렇게요? 크와아앙!”

       “……끄응, 시간 좀 주고 지르지. 좋았어!”

         

       각 단원에게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지식도 척척 활용했다.

         

       나는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그녀의 실력에 속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야는 엘라의 요청에 따라 간판을 새로 그리고 있었다.

       엘라는 내가 서 있는 중앙의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 저기로 옮겨줘.”

         

       마야는 그녀의 요청을 듣더니 살짝 눈을 흘겼다.

         

       “갑자기 왜?”

       “내가 명색이 부단장이잖아. 중간에 있어야지.”

         

       마야는 한 번 그린 그림을 갈아서 그런지 불만스러운 눈길로 엘라를 한 번 흘겨본 다음, 그녀의 요청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단원 전체가 마무리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매일매일 자세가, 동작이, 연기가, 그림이 조금씩 수정되었다.

         

       5일은 금방 지나갔다.

         

       <원더스타인의 괴물서커스>

         

       완성된 간판 아래.

       엘라가 모든 단원을 모아두고 돌아보며, 자신감에 찬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25%.”

         

       시험 1주 차가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프사 안바뀌네 님, 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이모티콘을 쓰시려 한 건가요..ㄷㄷ

    -[비공개]님, 1코인 3일 연속 후원감사합니다! 혹시 답장을 받기를 원하는데 제가 비공개라고 누락한 걸 모르시나 싶어서 남깁니다. 공개를 원하지 않으시면 지워드립니다! 훈훈한 에피소드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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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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