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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클락 님 큰일 났어요! 이거 보세요 이거!!”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찾아간 해주학파의 라운지에서 이자젤이 다급하게 나를 맞이했다.

        손에 든 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이번 학회에서 발표될 시공간 융합을 통한 다원적 통신망 공유체, 즉 커뮤니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식물인간, 아니 검 인간이 되어버린 살살이와 함께 내가 갤러리의 주딱이라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마치 자기 일처럼 걱정하는 듯한 이자젤에게 나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까 너 내가 준 위치노트 쓰고는 있냐?”

        “당연하죠. 여기 혼자 있으면 얼마나 심심한데요?”

       

        이자젤은 과거 탑을 등반할 무렵 위치노트를 써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단순히 수습생 수칙이 적힌 공책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검은별에서는 신입들이 가끔 노트를 들고 왔다는데, 조직 내에서는 까마귀를 통한 전서구를 주로 이용했기에 직접 쓸 기회는 없었다.

        무엇보다 갤러리를 이용한다는 녀석들은 하나 같이 음침한 취미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여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어둠의 숲 산책이랑 가끔 그 대학원생 꼬맹이 여동생 자랑 들어주는 거 빼면 가벼운 운동 정도밖에 할 게 없어요. 안쪽에 요가매트 깔아놓고 하는데 저 보기보다 몸 되게 유연해요?”

        “그건 별로 안 궁금해. 갤질은 하루에 얼마나 하는데?”

        “음…… 한 시간? 아니, 두 시간 쯤 되나? 이 정도면 거의 중독 수준이죠 뭐. 아무튼 클락 님 없으면 저 심심해 죽을 것 같으니까 자주 찾아오셔야 돼요.”

        “…….”

       

        그건 중독은 커녕 찍먹도 안 하는 거잖아.

        지금까지 쭉 봐온 이자젤은 시엔과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갤러리 유저의 평균치에는 훨씬 못 미치는 인싸 그 자체였다.

        어디 외모가 딸리는 것도 아니고 싹싹한데다 출신도 좋은데 다재다능하기까지 하다.

        산을 태우는 사고회로만 떼어놓고 보면 그야말로 정상인 그 자체.

       

        이쯤되면 갤러리를 걱정해주는 것에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봐야 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저희 큰일난 거 아니에요? 기어이 갤러리의 대체제가 나와 버렸잖아요.”

       

        대체제라.

        확실히 내 상태창인 위치노트를 무력화시키는 건 연구부가 몇 년간 매달려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렵다.

        그러나 갤러리와 비슷한 공간을 만드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통신 시설도 갖춰야 하고 범위에도 제한이 있겠지만 마법적으로 해볼만 한 시도였다.

        학회에서 발표하면 금새 주목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사업성과 기술력의 결정체였다.

       

        심지어 파딱 중 하나인 마리엘을 영입하기까지 했으니 이쪽의 시스템과 절차를 참고하기도 쉬웠겠지.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매개체로 위치노트와 같은 팜플렛, 즉 책자를 선택한 것만 봐도 명백했다.

       

        ‘어쩐지 최근 유저 수가 줄어든다 했더라니.’

       

        나는 시험기간임에도 갤러리의 접속률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유저들의 이탈이 가속화된 거였다.

        이자젤이 걱정하는 것이 바로 이런 측면이었다.

        경쟁업체가 생긴다는 건 곧 이용자가 분산된다는 뜻이니까.

       

        “황실의 지원이라도 받기 시작하면 그때는 너무 늦을 텐데 지금부터 견제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

        “학회에서 시연할 때 그 책자들을 모조리 태워버리는 건 어때요? 저 잘할 자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예?”

       

        허나 나는 주섬주섬 장갑을 챙기는 이자젤을 만류했다.

        후발주자가 크기 전에 싹을 짓밟는다니, 나의 순수한 마음으론 그런 끔찍한 발상을 실행에 옮길 수 없다.

        세상에 갤러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게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말라죽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껴도 모자랄 판이었다.

       

        “마리엘이 아니라 나를 스카웃 해갔어야 했는데…… 쓰읍 아쉽네.”

        “진심이세요?”

       

        나는 어젯밤 마리엘에게서 빼앗은 책자들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해주학파의 라운지를 나섰다.

        마치 새로운 놀이터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

       

        ====

        [니들 여기 말고 다른 갤러리도 생기는 거 알고 있었냐?]

       

        ‘커뮤니티’라고 이번 학회에 참여한 팀 중 한 곳에서 만들었다고 하던데?

       

        — ?

        — 뭔 커뮤여

        — 이름부터 병신 같네

        — 지금도 감당 안 되는데 하나 더 늘린다라…… 주딱은 무슨 생각하고 있을까

        — 학회 열릴 때마다 별 등신같은 게 다 튀어나오네, 어딘 얼음물 내놓은 데도 있다며? ㅋㅋㅋ

         ㄴ 메테오는얼음마법 : 불만 있으면 시연장 위치 알려줄 테니까 찾아오세요

        — 어떻게 해야 들어갈 수 있는데? 위치노트로 접속하는 거임?

         ㄴ ㄴㄴ 책자 따로 받아야 함

         ㄴ 지금 엡실론 관에서 나눠준다던데

        ====

        ====

        [아 씨발 뭐야 커뮤니티 운영자 남자새끼잖아]

       

        (기사 사진)

       

        게다가 한놈도 아니고 제국 마법사 연합 크로네 팀?

        하나같이 키도 크고 멀쩡하게 생긴 꼬라지 봐라 이딴 새끼들이 진정으로 유저를 위한 운영을 하겠냐

        책자 디자인도 존나 인싸 새끼들이나 쓸법하게 새련되게 만들어놨네

        이딴 거 들고 강의실 출입할 바엔 걍 자살함

       

        — 흠…… 

        — 이건 좀 짜치네요

        — 걍 쓰니가 찐따? 인 게 아닐까? ㅠㅠ

        — 얼굴 나와 있으니까 다들 위치노트에서 손 때!!

        ====

        ====

        [인터뷰 내용 꼬라지 봐라 ㅋㅋㅋㅋ] 

       

        워라벨 중시? 팀원과의 화합의 결과물?

        니들은 상 받을 자격이 없다 ㅋㅋㅋㅋ

       

        — 파딱들 무급으로 착취하고 하루 20시간 갤질하는 주딱 정도는 되어야 갤러리 운영 하는 거거든요

         ㄴ ㄹㅇ 어디 하수구에서 방금 건져 온 거 같은 노트 디자인도 나같은 찐따가 들고 다녀도 위화감 전혀 없음

        — 초인싸알파메일운영자 vs 은발거유미소녀 주딱

         ㄴ 닥후

         ㄴ 닥닥후

         ㄴ 저 새끼들이 갤질에 대해 뭘 알겠냐 ㅋㅋㅋ 걍 한탕 해먹고 빠질 생각뿐일걸

         ㄴ 반면 주딱은 돈은 커녕 행정부가 기를 쓰고 추적하는데도 갤질 포기 안하는 ‘진짜’임

        ====

        ====

        [근데 실제로 커뮤로 넘어간 사람 좀 있는 거 같은데?]

       

        게시판 200개 정도 돌면서 고닉이랑 반고닉들 활동기록 박제하는 소소한 취미생활 갖고 있는데

        최근에 얼굴 보이던 몇몇 1군 고닉들 글 쓰는 빈도가 좀 줄었어

       

        참고로 난 꿀벌단이고 초전도체은발미소녀님 좋아하는 연금학파 문하생임

       

        — 님

        — 그딴 게…… 취미?

        — -꿀평-

         ㄴ 꿀평인 척 하는 말평

        — 멀쩡한 연금학파 팔지 마라

        — 명단 공유좀

        — 응 프리나나나님은 아니야 방금 전까지도 접속했었어

         ㄴ 그 새낀 진짜 중에 진짜라 커뮤에도 초대 못 받음 ㅋㅋㅋㅋ

        — 안 그래도 최근에 파딱 하나 갑자기 잠수타던데…… 설마?

         ㄴ 헉

         ㄴ 헉헉 허억……!

         ㄴ 사실이면…… 찔러야겠지?

         ㄴ 해

         ㄴ 명

         ㄴ 해

        ====

        ====

        [??? : 너 지금 보는 거 뭐야?]

       

        커뮤니티?

       

        그럼 우린 적이네

       

        — ㅋㅋㅋㅋㅋㅋㅋ

        — 갤러리끼리 전쟁? 이거 못 참거든요

        — 앞으로 혼밥존에서 커뮤하는 새끼들 딱 대라 ㅋㅋㅋ

        — 주딱!! 거기서 날 지켜봐 줘!!!!

        ====

       

        엡실론 관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의 바로 옆에 있는 소회의실.

        학회 내에서도 가장 관심을 덜 받는 연구들이 시연하는 장소에는 기자와 온갖 학파의 마법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갤러리 내에서 ‘크로네 팀’이 발표한다는 커뮤니티에 대한 떡밥이 활활 타올랐기 때문.

        급히 그곳을 방문한 마리엘은 제국 마법사 연합의 간부를 찾아갔다.

       

        “네? 벌써 시제품을 마법사들에게 나누어 줬다는 것이여요!?”

        “맞습니다. 표본 확보와 수요 조사, 그리고 기술적 안정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학회가 열리기 전부터 연구부를 통해 조금씩 유통 중이었죠. 그러다 최근 통신의 안정성을 더할 방법을 찾아내 규모를 키우기 시작한 참이었습니다.”

       

        어쩐지, 자신이 클락에게 커뮤니티의 존재에 대해 털어놓은 건 어젯밤이었는데.

        신문에 작게 난 기사 치고 소문이 너무 빨리 퍼진다 했더니 처음부터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던 것이었다.

        불길한 낌새를 느낀 마리엘은 최종 테스트를 준비 중인 크로네를 찾아갔다.

        마탑 출신은 아니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에 높은 경지에 오른 그는 복도에서 기숙사에 있어야 할 메릴린 동상을 회의실에 들여놓는 것을 감독 중이었다.

       

        “오, 자문위원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당장 시연을 중지시켜야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미 배포된 책자도 모두 회수해야 해요.”

        “네? 어째서인가요?”

        “이렇게 이목이 끌리면 그가 눈치챌 게 분명하기 때문이어요.”

       

        주딱이 커뮤니티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상식을 뛰어넘는 방해가 들어올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본격적으로 책자가 배포되는 건 최소한 황실의 지원이 확정된 다음이어야 했다.

        허나 크로네는 자신들의 연구가 생각보다 빠르게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순간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아했다.

       

        “갤러리의 주인을 말하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저희 통신망의 보안과 안정성은 설령 칠현자라 해도 쉬이 망가뜨릴 수 없으니까요.”

        “그런 문제가 아닌 것이에요! 이대로면 당신들 뿐 아니라 저마저도 위험에 빠지는 것이어요!”

        “신원을 철저히 보호해 드린다고 수 차례 보장 했음에도 이렇게 조심성 없이 돌아다니시면 당연히 위험하죠. 게다가 지금까지 운영팀 내에서는 어떤 위협도 보고되지 않았을 텐데요?”

       

        확실히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입장에서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현재 커뮤니티는 중견 규모쯤 되는 게시판과 비슷한 글 리젠 속도를 보였다.

       

        ++++

        <커뮤니티 이용자들을 위한 필독 공지(고정글)>

        <제 139회 제국 마법사 협회 정기 모임 회비 미제출자 명단>

        <오늘도 좋은 날씨네요~>

        <게시판에 사진 첨부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대미궁 지도 있으신 분들 공유좀요 ㅠㅠ>

        .

        .

        .

       

        ++++

       

        정보 공유성 위주의 게시글에 딱히 관리감독도 필요 없는 깨끗한 분위기.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그동안 갤러리의 악귀들을 상대하느라 피폐해졌던 심신이 절로 치유되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아름다운 공간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시험공부를 방해한 주딱에 대한 복수심에 시작한 일이었지만, 이젠 애정을 쏟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번 학회만 잘 마무리되면 커뮤니티는 전 대륙을 망라하는 거대한 통신수단으로 자리잡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마리엘 님의 가문도 황실로부터 복권될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건…….”

       

        크로네의 말에 흔들린 마리엘은 이내 마음을 굳게 먹었다.

        생각해보면 너무 과민반응한 것일지도 몰랐다.

        주딱이라 해봤자 얼마나 대단한 마법사인지 증명도 안 되었고, 지금껏 만난 적도 대미궁에서 한 번뿐.

        그것도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상태였다.

       

        만약 그가 커뮤니티를 마음에 안 들어 할지라도 이렇게 많은 마법사들이 관리하는 시스템을 공격하는 건 불가능하겠지.

        오히려 정보가 역으로 노출되어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된 이상, 어떤 방해를 해온다 할지라도 철저하게 막는 것이어요.’

       

        시연장에 모인 이들 중 주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리엘은 매의 눈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유입이 생기자 리젠이 빨라지며 미풍양속에 저촉하는 글도 드문드문 생겨났다.

        평소처럼 글삭과 차단을 반복하던 그녀는 이내 한 게시글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

        플루비아얼음물마시고사망한외할머니

        <여기가 새로 생겼다는 커뮤니티인가요?>

       

        반가워요~ 모두 잘 지내봐요~

        ++++

       

        다른 글들과 비교해도 딱히 튀는 것 없는 제목과 내용.

       

        그러나 아이디만큼은 누가 봐도 한 사람이 연상될 정도로 악질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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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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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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