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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으, 끈적거려.”

       

       

       몸에 묻은 물기를 닦은 후 선크림을 적당히 짜서 손에 비벼보았다.

       

       끈적거리는 기분 나쁜 촉감이 느껴졌다.

       

       이걸 발라야 한다고? 그냥 바르지 말까?

       

       

       [독자님?]

       

       

       ···아니다. 이미 늦었다.

       

       작가님이 아까운 피부에 무슨 짓을 하고 있냐며 잔소리를 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빼기는 무리야.

       

       게다가 조금이지만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바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차, 차가워···.”

       

       [그렇게 대충 바르면 어떡해요! 꼼꼼히 바르셔야 한다고요!]

       

       “···.”

       

       

       왜 맞는 말을 하는 거지.

       

       평소 작가님과는 다른 정상적인 이야기에 기분이 약간 언짢아졌다.

       

       아니, 뭐···. 끈적거리니까 조금 적당히 바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무슨 부모님도 아니고.

       

       따지고 보면 부모님이라고 할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네.

       

       이 몸을 만든 사람이 작가님인 건 확실하니까.

       

       ···어? 잠깐만.

       

       

       “작가님.”

       

       [네?]

       

       “이 몸, 어떻게 만드신 거예요?”

       

       

       갑작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작가님은 이 몸을 자신이 만든 몸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이 몸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걸까.

       

       그런 궁금증은, 작가님의 대답에 시원스럽게 해결되었다.

       

       

       [그냥 만들었는데요?]

       

       “그게 무슨···.”

       

       [이런 특징의 사람이 있다고 설정하고 만들었어요.]

       

       “···.”

       

       [유일한 창조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미 있던 게 아니라 새로운···.]

       

       

       소름이 끼쳐왔다.

       

       묻는 게 아니었는데. 괜히 물었어.

       

       과연 나는 인간일까, 아니면 인형일까.

       

       자신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인형이 아닐까?

       

       통 속의 뇌라는 유명한 사고실험이 떠올랐다.

       

       내 과거마저 작가님에게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져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끔찍한 상상이 다시금 고개를 치켜들었다.

       

       

       [···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네요! 어라? 왜 그러세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이 몸이 작가님이 만들어 낸 몸이라고 한들, 정신마저 작가님이 만들지는 않았을 터다.

       

       그러니 내 몸을 변경할 수는 있어도 내 정신만큼은 바꿔낼 수 없을 거야.

       

       근거는 없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야.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던 상상을 찍어눌렀다.

       

       다시금 심해의 저편에서 영원히 잠들도록.

       

       

       “···아하하. 끈적거려서 기분 나쁜데, 바르지 않으면 안 될까요?”

       

       [제가 꼭 바르라고 했잖아요! 피부가 드러나는 곳은 꼭! 무슨 일이 있어도! 바르세요!]

       

       “알겠어요.”

       

       

       웃자, 웃는 거야. 아르테 이시스.

       

       평소와 같이, 여유롭게.

       

       작가님의 지시에 따라, 때로는 의견을 제시해가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거야.

       

       

       “···찝찝해.”

       

       

       끈적끈적한 선크림을 치덕치덕 발라댔다.

       

       이곳에 떨어지기 전의 나와 달리 새하얗고 말랑말랑한 팔이 내 손길에 따라 모양이 바뀌며 끈적한 액체에 물들었다.

       

       반들반들한 촉감과 더불어 끈적거리는 촉감이 기분 나빴다.

       

       

       “자, 됐죠?”

       

       [부족해요! 더 발라야죠!]

       

       “네? 아니, 여기서 어디를 더···.”

       

       [가슴이랑 등도 발라줘야 한다고요! 거기만 태울 수는 없잖아요!]

       

       

       어차피 남한테 보여줄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

       

       좀 타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올 텐데.

       

       세 겹 이상 옷으로 감싸여진 부위를 굳이 보호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다가 그만뒀다.

       

       굳이 이런 거로 작가님과 말다툼을 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서.

       

       

       “···무겁네요.”

       

       [왠지 모를 패배감이···. 괜히 크게 만들었나···?]

       

       “그러게 좀 작게 만들지 그러셨어요. 이거 생각보다 커서 불편하다고요.”

       

       [으그극···!]

       

       

       가슴 부위에 선크림을 치덕치덕 바르며 불평을 이어 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예전에는 이 정도 크기가 크다고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수많은 2D 그림체에 찌들어서, 거유라는 건 좀 더···뭐라고 해야 하지.

       

       얼굴 정도의 크기? 그 정도부터가 거유라고 생각했었다.

       

       미친 생각이었지. 너무 그런 류 그림에 찌들어있던 상태라서일까? 별로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도 충분히 크더라.

       

       

       “후우, 다 발랐네요. 이제 느긋하게 바다에서 쉬어볼까요.”

       

       [네? 아직 다 안 발랐잖아요!]

       

       “네? 그게 무슨···.”

       

       [등이요, 등! 등도 중요한 거 몰라요? 비키니는 등도 노출되어있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등은 손이 닿질 않는걸요.”

       

       

       무슨 말을 하나 했네.

       

       등은 바르고 싶어도 못 바르잖아.

       

       손이 닿는 것도 아니고.

       

       뭐 능력을 쓰면 닿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긴 한데, 지금 수영복 입고 있다고.

       

       여기서 써버리는 순간 야외에서 발가벗은 미친년이 되어버린다.

       

       면적이 작아서 조금만 써도 끊어져 버릴 테니까.

       

       

       [그런 거라면 방법이 있죠! 다른 사람한테 발라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네?”

       

       [마침 저기 오네요! 자아, 빨리요!]

       

       

       유시우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아무도 없어서 무슨 일인가 싶었던 걸까?

       

       작가님은 시우에게 부탁하면 되지 않냐고 내게 말해왔지만, 커다란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시우는 남자인데요.”

       

       [그런 건 상관없어요···! 오히려 좋아!]

       

       

       좋기는 무슨. 미쳤냐고.

       

       

       “아멜리아나 도로시한테 물어보면···.”

       

       [지금 없잖아요!]

       

       

       멈칫.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 선크림을 발라줄 사람이 시우밖에 없다.

       

       한 시간 뒤에 온다고 하던가?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고.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시우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도무지 침착할 수가 없었다.

       

       

       “미안해요, 이런 부탁을 해서.”

       

       “으, 응?! 아, 아니야! 나는 괜찮아!”

       

       

       내뱉은 목소리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색했다.

       

       하지만 시우는 그런 걸 신경 쓸 정도로 정신을 다잡을 수 없었다.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르테가 등을 모두 드러낸 채로 누워있고, 나의 손에 선크림이 들려있는 이 상황을.

       

       

       “그나저나, 아멜리아가 뭐라고 적어놨던가요?”

       

       “별거 아니었어···! 그, 그···. 뭐더라···.”

       

       

       아르테가 가볍게 입 밖으로 내뱉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어쩌지? 뭐라고 대답하지?

       

       아멜리아가 남겨둔 쪽지에 어려운 내용은 적혀있지 않았다.

       

       아르테의 등을 확실하게 즐길 기회니, 열심히 해!

       

       그 한 문장만이 적혀있을 뿐이었으니까.

       

       그걸 보고 이 미친년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싶었는데, 아멜리아랑 도로시는 잠깐 별장으로 떠났다고 하고.

       

       아르테는 선크림을 바르고 있는데 등에 발라줄 사람이 없다고 하고 있고.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아멜리아가 꾸민 상황이라는 것이다.

       

       

       “···하아. 또 무슨 장난을 친 모양이네요. 알았어요.”

       

       “으, 응···. 그래. 고마워···.”

       

       

       다행히 변명을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아멜리아의 평소 행실은 아르테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또 무언가 곤란한 일을 벌였구나, 하고 짐작해 준 모양이었다.

       

       

       “자아, 빨리 발라주세요.”

       

       “으, 응···.”

       

       

       꿀꺽.

       

       아멜리아를 향한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고, 상황이 변한 게 없다는 사실에 다시금 당혹감이 밀려들어왔다.

       

       ···그러니까? 지금 아르테는 등에 선크림을 바르고 싶어 하고?

       

       발라줄 사람인 도로시와 아멜리아는 한 시간 뒤에나 올 거라는 이야기를 했으니, 발라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

       

       그런 이야기였지.

       

       합리적이다. 발라줄 사람이 한 명뿐이니 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올바른 판단이겠지.

       

       내가 남자고, 아르테가 여자라는 것만 제외하면.

       

       다시금 누워있는 아르테를 바라보았다.

       

       쭉 뻗은 다리, 바닥에 눌려 살짝 모양이 망가진 탄력 있는 가슴.

       

       그리고 등이 훤히 보이도록 치워둔 머리카락 탓에 보이는 목덜미.

       

       검은색 비키니가 가려주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색기 넘치는 엉덩이까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슬슬 발라주세요. 빨리 바르고 쉬고 싶으니까요.”

       

       “어, 응···.”

       

       

       그래. 발라줘야지. 응.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다.

       

       그래, 이건 그냥 등에 선크림을 발라주는 것뿐.

       

       아무런 의도는 없다···. 정말 없다···!

       

       끈적한 선크림을 손에 바른 뒤, 금방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아르테의 등에 가져다 댔다.

       

       

       “히약?!”

       

       “?!”

       

       

       뭐, 뭐지?

       

       방금 어디서 소리가 난 거지?

       

       황급히 손을 떼고 아르테를 바라보았다.

       

       

       “···으, 그게. 조금 차가워서···.”

       

       “그, 그렇구나.”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살짝 붉히고, 붉은 눈동자를 가느다랗게 뜬 아르테가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변명했다.

       

       ···괴롭다.

       

       

       “다, 다시 바를게···.”

       

       “네···.”

       

       

       다시금 손을 가져다 대자, 아르테가 몸을 움찔거렸다.

       

       얼굴을 보면 부끄럽다는 듯 붉히고 있겠지. 하지만 내게 얼굴을 볼 정신은 없었다.

       

       매끈매끈한 피부의 촉감이 손끝에 느껴졌다.

       

       마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같은 피부.

       

       그 피부를 만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다.

       

       몸을 움찔거리는 아르테의 반응을 느끼며, 나는 아르테의 등을 쓸어내렸다.

       

       

       “···고마워요.”

       

       “아, 아니야.”

       

       “시우는 다시 바다로 놀러 가나요?”

       

       “···아니, 잠깐 여기서 쉬려고.”

       

       “그런가요? 감사했습니다.”

       

       

       모래사장을 밟으며 바다로 뛰어가는 아르테의 모습을, 한동안 나는 무릎을 끌어모은 채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르테에게 들켜서는 안 됐으니까.

       

       하필이면 수영복이라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아르테는 부끄럽다며 얼굴을 파묻어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어때? 기분 좋았어?”

       

       “아멜리아?!”

       

       “어머어머어머···. 좋은 걸 봤어요···.”

       

       

       분명히 한 시간이 지난 뒤에 온다고 하던 두 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얼굴에 음흉한 미소를 띤 채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르테 등 만지작만지작

    ***

    무령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정기후원···이 그런 말이 있기는 했죠···. 언제나 응원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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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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