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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진성은 머리만 박으면 바로 잠들어버리는 짐승처럼 순식간에 잠들어버린 이아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 저기…? 오빠…?”

         

       하지만 이세린은 진성처럼 웃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진성에게 말을 걸었다.

         

       “저, 에, 엘라를 부르려면. 아니…. 엘라는 확인 안 할 거예요…?”

         

       여러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다.

         

       엘라를 확인하려 하는 이아린을 재운 이유가 무엇이냐.

       이아린이 있어야만 이야기를 하기 편할 텐데 왜 이런 짓을 한 것이냐.

       엘라를 미끼로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냐.

       만약 그런 의도였다면 엘라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왜 한 거냐.

         

       진성의 행동에 대한 의문이 가득 담긴 한 줄의 질문.

         

       진성은 그녀의 물음에 방긋 웃었다.

       그러더니 충전 중이던 이아린의 스마트폰을 들어 세린에게 집어던지곤 말했다.

         

       “비밀번호를 풀어라.”

       “네에…?”

       “알지 않느냐. 비밀번호.”

         

       이세린은 얼떨결에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비밀번호를 풀었다. 그리고 진성이 스윽 내민 손 위에 얹어주었다.

       그는 받은 스마트폰으로 자는 이아린의 사진을 몇 개 찍더니, 엘라에게 그 사진을 그대로 전송했다.

         

       “어?”

         

       그리고는 엘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외로움이란 차가운 공기와 같다.

       가만히 있어도 털을 유리처럼 날카롭고 단단하게 만들고, 피부를 한 겹 한 겹 얼려 내며 뼛속으로 파고드는 기분이다. 너무나 추워서 몸을 움직일라치면 냉기는 바람이 되어서 살을 조금씩 저미는 아픔이 되었고, 모공 하나하나에 바늘처럼 파고들며 몸과 마음을 날카롭게 찌르는 느낌이 된다.

         

       그 고통에 숨을 들이쉬면 구석구석 유리 조각 같은 공기가 폐를 한 바퀴 훑고는 사라지며, 체온의 몇 안 되는 열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냉기의 빈자리는 공허함만을 줄 뿐이다. 고통 끝에 비어버리는 폐 속의 그 느낌은 빈말로라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사무치도록 쓸쓸한 감각이었다.

         

       엘라는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집 안에서 그런 싸늘한 냉기를.

       몸이 아닌 마음에 스며드는 냉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결핍은 무지가 아닌 인지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혼자였다면 모르되, 이미 이아린과 친하게 지내면서 사람의 온기에 익숙해진 상황. 그랬기에 유학을 처음 왔을 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던 집의 넓이와 외로움이, 이제는 비정상적인 것이 되어 그녀에게 고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는 시끄러웠는데….’

         

       그녀가 떠올리는 것은 전날에 있었던 이아린 일행의 방문.

         

       시끄럽지만 항상 자신에게 우호적이던 이아린.

       소심하고 착한 이세린.

       그리고 어제 처음 만난, 이아린의 오빠인 박진성.

         

       그녀는 부드럽게 자신에게 말을 걸어준 박진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몸에 딱 맞는 양복에 자신보다 커다란 키.

       거기에 말투와 어울리는 귀엽고 선해 보이는 얼굴까지.

         

       기인(奇人)이 가득하다는 주술사답지 않은 정상적이고 멋있어 보이는 모습을 한 남자였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한국인 같았어요.’

         

       하지만 그런 호감 가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들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왜 성이 다르지?’

         

       그것은 바로 이아린, 이세린 자매와 성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둘은 ‘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성은 ‘박’이라는 성을 가지고 있었다.

         

       ‘출생의 비밀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요?’

         

       그녀는 독일에 있을 때 봤던 한국 드라마들을 떠올렸다.

         

       그리곤 진성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부부가 이혼한 뒤 성이 바뀌었고, 그 상태로 다시 결합을 한 걸까?

       아니면 연애 전에 사귀던 여자가 애를 가진 채 잠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되어서 데리고 온 걸까?

       그것도 아니면 첩에게서 낳은 아이이기에 성을 물려받지 못하고 다른 성으로 살 수밖에 없었던 걸까?

         

       그녀는 진성을 재료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리고 그 상상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마침내 이아린마저도 재료로 삼으려 할 때.

         

       야옹!

         

       “힉!”

         

       그녀가 설정해둔 이아린의 전용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마침 이아린으로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스토리를 떠올리고 있었던 터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아린이 자신의 마음을 독심술로 읽고 타이밍에 맞춰서 문자를 보낸 듯한 착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스마트폰을 확인해보았다.

         

       그리고….

         

       “어?”

         

       자는 이아린의 사진을 보고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고 있는 사진?’

         

       자는 사진이 왜 보내진 거지?

       애초에 자고 있는데 사진은 어떻게 보낸 거지?

       이 사진은 누가 찍은 거고?

       사진을 보낸 게 이아린이 아닌가?

       누가 남의 핸드폰으로 핸드폰 주인을 찍어서 보내지?

       그럼 이아린이 보낸 사진이 맞나?

         

       짧은 순간에 그녀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의문이,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의문은 곧 해소되었으니.

         

       ♪~♬♩~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그녀가 좋아하는 드라마에서 사용되었던 재즈풍의 음악이 정적을 가득 메운 집 안을 가득 메웠고, 스마트폰 위에는 ‘아린 리’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있었다.

         

       “여보세요? 프라우 리?”

         

       엘라는 번개같이 전화를 받고는 왜 자신에게 이런 사진을 보냈냐, 이건 무슨 장난이냐며 이아린에게 말하려 했다.

         

       [ 아아, 프라우 빈터 맞습니까? ]

         

       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활기찬 여성의 목소리 대신에 부드러운, 하지만 무언가 무거운 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녀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따져 묻는 대신에 당황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누, 누구세요?”

       [ 어제 뵈었던 박진성이라고 합니다. 이아린의 오빠입니다. ]

       “아…. 아. 네에.”

         

       어째서 이아린의 핸드폰으로 오빠가 전화를 걸었단 말인가?

       그것도 이상한 사진을 보낸 직후에 말이다.

         

       “무슨…일로?”

       [ 아. 그것이…. 후우. ]

         

       그녀는 무거운 목소리로 한숨을 쉬는 진성의 목소리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

       불안감.

       뇌리를 자극하고, 그녀의 심장 한편을 쿡쿡 쑤시는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 사진은 보셨나요? ]

       “네? 네…. 프라우 리가 자는 사진이요….”

       [ 그게 사실….]

         

       진성의 목소리는 뜸을 들이듯 길게 늘어졌다.

       그러더니 힘을 모았다가 망치로 후려치듯, 그녀의 머리에 충격을 주는 말을 내뱉었다.

         

       [ 아린이가 지금, 주술에 당해서 자고 있습니다. ]

         

       여러 가지 상념이 돌던 그녀의 머릿속을, 완전히 새하얗게 만들어버리는 말이었다.

         

       “네? 어, 그. 주, 네? 자고…. 네?”

         

       그녀의 입에서 문장이 되지 못 하는, 뜻을 이루지 못하는 말만이 계속해서 나왔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나 이성이 되돌아오고, 입 밖으로 온전히 형태를 이룬 말을 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지금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요!”

         

       가장 먼저 나온 말은 바로 이것이었다.

         

         

         

        * * *

         

         

       “프, 프라우 리! 프라우 리는요?!”

         

       엘라는 문을 부숴버릴 듯 박차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땀에 푹 젖어있는 그녀의 다른 손에는 과열되어 연기를 피워내고 있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옷을 챙겨 입을 경황도 없었던 모양인지 원피스형 네글리제를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형태이기는 했지만 실크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밝은 빛을 쬐기라도 하면 안이 비쳐 보일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본 진성은 침대의 얇은 이불을 들어 엘라의 어깨에 걸쳐주었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 이아린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었다.

         

       “프라우 리!”

         

       엘라는 곡예라도 하는 것처럼 기묘한 자세로 숙면을 하는 이아린을 보며 긴장이 풀린 듯 옆의 침대에 주저앉았고, 몇 번이고 이아린이 멀쩡한 것을 보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진성은 엘라가 조금 진정한 듯 하자 그녀와 마주 보는 위치에 앉아 말을 걸었다.

         

       “프라우 빈터. 많이 놀라셨나 보군요.”

       “네, 네에…. 깜짝 놀라서….”

         

       그녀는 진성의 말에 대답하다가 문득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이불의 감촉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차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차림으로 뛰어왔는지를 인지하였다.

         

       “꺅!”

         

       엘라는 반사적으로 어깨에 걸친 이불을 그대로 몸에 휘감고 자신이 입고 있는 네글리제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칭칭 감았다. 그리고는 약간 붉어진 얼굴로 진성을 보며 말했다.

         

       “이불 가, 감사해요….”

       “별말씀을.”

         

       그는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 방긋 웃음을 지었다.

         

       “안심하셔도 됩니다. 다행히 주술의 효과 때문에 잠을 자고 있을 뿐이지, 그 어떤 상처나 저주도 당하지 않았거든요.”

       “그, 그래요?”

         

       다행이다.

         

       엘라는 진성의 말을 듣고 안심이라는 듯 몸에 힘을 뺐다.

       그러더니 자신을 놀라게 만든 것이 밉다는 듯 슬쩍 이아린을 흘겨보았지만, 세상모르고 자는 모습에 얄밉다는 감정마저 사라져버리고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메울 뿐이었다.

         

       “좀 악질인 주술사한테 걸려서 걱정했는데. 아무런 일을 당하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악질인 주술사?

         

       엘라는 진성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 단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악질, 주술사요? 혹시…점술….”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얼마 전 그녀에게 허튼수작을 부리려 했던 점술사였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사람이 맞을 겁니다. 호텔과 프라우 빈터의 집 사이에서 장사하던, 그 점술사 말입니다.”

       “그…. 이상한 사람이….”

       “후우. 그냥 평범한 점술사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정말 악독한 놈이더군요. 제가 지금 러시아에 오지 않았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큰일…이요.”

         

       그는 종이를 하나 집어 들더니 엘라에게 내밀었다.

         

       “어? 이거….”

         

       종이에 그려진 기묘한 문양.

       길을 지나갈 때마다 보았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슨 사악한 집단의 상징(symbol) 같은 거 맞죠?”

       “흠.”

       “처음 봤을 때부터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역시 제 느낌이 맞았던 거군요!”

       “처음 봤을 때부터요?”

       “네에. 복채는 나중에 내도 된다고 하지를 않나, 점쟁이들이 쓰는 문양이 아니라 저런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천막을 쓰지를 않나. 누가 봐도 수상했답니다. 그런데 프라우 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친하게 지내고….”

         

       엘라는 종이에 그려진 문양만 보아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듯, 그렇게 불평을 털어놓았다.

         

       진성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다만 보일 듯 말 듯 그의 눈동자 안에서 작게 일렁이는 불꽃이 있었으니.

         

       ‘허, 그러했던가.’

         

       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이불 속에 감추고 있는 그녀의 가슴.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가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인간의 흔적이었다.

         

       육체적으로는 태아조차 되지 못한, 태아의 흔적이라고 표현해도 과장일 정도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흔적이었다.

       다만 그 흔적 안에 잠들어 있는 작디작은 영혼은 그가 과거에 알고 지내던 어떤 여자의 것과 너무나 흡사해서.

         

       진성은 그저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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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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