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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75

       

       

       

       

       “실비아 온니랑 겨론 안 할 거면, 아르랑 해!”

       “그, 아르야. 혹시 결혼이란 게 뭔지 알고는 있는 거지?”

       

       내가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한 채 묻자, 아르는 내 귓볼을 놓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우응! 당연히 알고 이써! 엄청 조아하는 사람이랑 평생 함께 할 거라고 약속하는 거자나!”

       “그래. 그게 맞긴 한데, 아르야. 나랑 아르는 이미 평생 함께 할 거라고 영혼의 계약을 했잖아?”

       “우응? 구건…. 구건 구래.”

       

       아르는 생각해 보니 진짜 그렇네, 라는 듯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아르를 품 안에 안아 들고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아르야, 결혼은 그냥 사람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하나의 약속이야. 그냥 우리 결혼했어요, 하면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그걸 좀 더 널리 알리려고 결혼식이라는 걸 하는 거고. 영혼의 계약이랑은 달라서, 만약 결혼을 했는데 서로 안 맞고, 안 사랑하게 되면 이혼이라는 것도 하게 될 수도 있어. 헤어지는 거지.”

       

       엉덩이 토닥임에 기분이 좋아져 꼬리로 내 팔뚝을 톡톡 두드리던 아르의 눈이 이혼이라는 말에 휘둥그레졌다. 

       

       “겨론 했는데 서로 안 조아하게 댈 수도 이써?”

       

       상상도 못 했다는 듯 아르의 붉은 눈동자가 충격으로 흔들렸다. 

       

       “그럼. 물론 서로 약속에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하는 경우도 많지만, 생각보다 둘이 안 맞아서 헤어지게 되는 경우도 많거든.”

       

       페룬 대륙 사람들의 이혼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빙의 전 대한민국에서는 매년 이혼율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었으니까. 

       

       한국보단 경우가 적더라도 이혼이나 파혼을 하는 사람이 꽤 있기야 할 거다. 

       

       아르는 헤어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조금 주눅든 듯, 두 손을 꼬옥 모은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르는 레온 절대 안 조아하게 될 리 업써.”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절대 아르 안 좋아하게 될 일 없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징짜?”

       “그럼, 진짜지.”

       

       나는 아르의 팔 쪽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이걸 봐, 아르야.”

       

       살짝 마력을 흘려 보내자, 계약의 증표가 선명하게 나타났다. 

       아르도 손을 펴자, 손등에 나와 똑같은 증표가 나타났다. 

       

       “결혼 반지는 만들어서 나눠 껴야 되지만, 우리 계약의 증표는 몸에 새겨져 있잖아. 이건 평생 지워지지 않을 거야. 잃어버릴 일도 없을 거고.”

       “푱생…. 아르랑 레온 푱생 함께….”

       

       아르는 평생이라는 단어를 조그맣게 중얼거리더니, 곧 활짝 웃었다. 

       

       “우응! 아르랑 레온 푱생 서로 조아할 고야! 겨론보다 더 끈끄내!”

       “그럼. 훨씬 끈끈하지.”

       “히히…. 레온 조아!”

       

       아르의 꼬리 움직임이 격해졌다. 

       

       “아르는 실비아 온니가 조아서, 아르 대신 레온이랑 겨론해도 댄다고 생각해써.”

       “응.”

       “근데 구럼 아르는 레온이랑 겨론 못 하게 대니까 슬프기도 해써.”

       “슬펐어?”

       “우응.”

       

       아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부끄러운 듯 손끝을 맞댔다. 

       

       “근데 이제 안 슬퍼져써. 아르는 이미 레온이랑 겨론보다 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이짜나!”

       

       아르는 내 손등에 자신의 조그만 손을 포개듯 올렸다.

        

       크기는 다르지만 모양은 같은 증표가 동시에 깜박였다. 

       

       “그럼, 그럼. 아르랑 나랑은 떨어질 일 없으니까 안 슬퍼해도 돼.”

       

       나는 아르의 작은 손에서 전달되는 따듯한 온기를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아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랑 결혼하고 싶었는데 실비아 씨도 좋아서 양보하려고 했다니….

       

       ‘너무 귀엽잖아….’

       

       처음엔 생각도 못 했던 말이라 좀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딸내미들이 하는 ‘나 커서 아빠랑 결혼할 거야!’ 같은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그저 아빠미소가 지어질 뿐이었다. 

       

       ‘우리 아르한테 벌써 아빠랑 결혼할 거야를 듣게 되다니. 아휴, 귀여워.’

       

       아마 나중에 진짜로 커서 사춘기가 오고, 나한테 삐칠 일이 생기면 ‘내가 언제 그래써?! 흥, 레온 미워!’ 하면서 고개를 홱 돌리겠지.

       

       고것도 상상해 보니 좀 귀엽긴 한데.

       

       나는 이런저런 귀여운 아르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작은 손을 잡고 젤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아르에게 물었다. 

       

       “아, 참. 아르야.”

       “우응?”

       “근데 네가 실비아 씨가 좋아서 양보하려고 했었다고 했잖아?”

       “마자!”

       “실비아 씨는 사실 만난 지도 얼마 안 됐고, 제대로 파티를 맺고 사냥에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인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좋아하게 된 거야?”

       

       히파르에서 올 때부터 호위 임무를 같이 한 것도 있고, 나름 같이 다닌 사람 중에서는 가장 오래 봤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어린 마음에 결혼을 양보하는 큰 결심을 하게 만들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

       

       ‘실비아 씨가 아르를 귀여워해 주고 잘 해 준 건 맞지만, 그래도 드래곤인 아르가 나 이외의 인간을 저렇게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게 신기하단 말이야.’

       

       왜 그런지 궁금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본룡에게 물어보는 거라고 했다.

       

       아르는 내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곧 대답했다. 

       

       “우음…. 사실 잘 몰루게써! 그냥 실비아는 왠지 첨부터 조은 사람인 거 가타써.”

       “그냥 왠지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고?”

       “우응! 몬가…. 몬가 가치 있으면 편안하고 조아써. 레온 말고는 이런 기분이 처음이어써.”

       

       호오.

       

       일단 아무한테나 그런 건 아니라는 게 확실한 것 같은데.

       

       아르 본룡도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고 하니, 지금으로서는 그런가 보다 하는 수밖에 없을 듯싶었다. 

       

       ‘그래도 그 유명한 최후의 은룡의 후예인데, 그런 용의 본능이라면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봐도 실비아는 이제 확실히 믿어도 되는 훌륭한 조력자가 분명해 보였다. 

       

       절대 실비아가 아침에 따끈한 치킨을 사들고 왔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아르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게 조금 신기했을 뿐이지.’

       

       어쨌거나 실비아랑은 당분간 같이 다니게 될 텐데, 아르랑 서로 잘 지내 준다면 나로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그렇구나. 근데 그나저나 이쪽은 아직 조용하네. 크랫이 나올 때가 됐는데.”

       

       아르를 안은 채 걸어 들어가던 나는 슬슬 주변의 변화를 빠르게 감지하기 위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크랫 나올 때 돼써? 아르도 레온이랑 가치 싸울래!”

       “그럴까? 그럼 실비아 씨도 여기 없으니, 내려 줄 테니까 마법 쓸래?”

       “우응! 근데 내려가는 건 내가 직접 할 수 이써!”

       “응? 직접?”

       

       아르는 히히, 하고 웃더니 내 품 안에서 스스로 끼잉 몸을 일으켜 일단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내 옷자락을 잡은 채, 마치 경사 슬라이딩을 하듯 자세를 잡고 허리까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쀼!”

       

       이어서 아르는 내 허리를 딛고 살짝 점프해 챡! 하고 바닥에 정확하게 착지했다. 

       

       “쀼웃…!”

       

       비록 살짝 뒤로 넘어질 뻔해서 꼬리로 바닥을 누르며 중심을 잡느라 꼬리가 좀 바들바들 떨리긴 했지만….

       

       결국 넘어지지 않는 데에 성공한 아르는 마지막 동작을 완료한 체조 선수처럼 두 팔을 하늘로 뻗은 채 곧게 설 수 있었다.

       

       “이야, 대단한데 아르?”

       

       저 쪼그만 몸으로 언제 저런 걸 연습했대?

       

       “헤헤, 아르 대다내?”

       “응. 깜짝 놀랐어.”

       “레온 수련할 때 아르도 미끄러지는 거랑 뛰어내리는 거 수련해써.”

       

       아르는 허리에 손을 얹고 배를 내밀며 위풍당당한 포즈를 취해 보였다. 

       

       “오오….”

       

       어쩐지 미끄럼틀도 처음에는 타는 게 어색하더니 나중에는 일어서서 타려고도 하더라.

       

       물론 쀽! 하면서 번번이 넘어지긴 했지만…. 그냥 애들 노는 게 다 저렇지 뭐 하고 넘겼었는데.

       

       지금도 뭔가 굉장히 어설프지만, 이런 쪼끄만 해츨링이 한 동작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하다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스슷. 

       

       하지만 던전 안에서 언제까지나 귀여움에 심취해 있을 수는 없는 법. 

       

       곧 곤두세운 발밑의 감각이 크랫의 등장을 예고했고. 

       

       “아르야, 발밑!”

       

       나는 외침과 동시에 아르를 재빨리 안아 들려고 했다. 

       

       “쀼우!”

       

       하지만 이미 아르도 조그만 맨발로 느끼고 있었던 듯, 내 동작보다도 빨리 영창을 했고.

       

       파스스슷!

       

       아르의 발밑은 빠르게 얼어붙었다. 

       

       그리고.

       

       쿵!

       

       이어서 쿵 소리와 함께 아르의 발밑 땅이 들썩였다. 

       

       “쀼?”

       

       땅이 들썩임과 함께 아르도 살짝 공중에 떴다가 내려왔다.

       

       ‘어우, 저건 좀 아프겠는데.’

       

       아무래도 아르 밑에서 올라오려다 대가리를 제대로 박은 모양.

       

       잠깐 잠잠하던 크랫은 이어서 얼어붙지 않은 부분의 땅으로 튀어나왔고. 

       

       “기다리고 있었다, 인마.”

       

       촤아악!

       

       나의 단검은 사정 없이 크랫의 급소를 찔렀다. 

       

       “쮜이이익!”

       “쮜익…!”

       

       파악!

       파바박!

       

       그래도 크랫들은 동료가 당하는 걸 보긴 했는지, 땅 아래에서 하는 기습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듯 앞쪽에서 하나둘씩 튀어 나와 진형을 잡기 시작했다. 

       

       “쮜익.”

       “쮜이이!”

       

       하지만 앞쪽에서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날카로운 손톱을 가다듬는 크랫을 보며, 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나와 주면 우리야 고맙지.”

       

       그리고 외쳤다. 

       

       “아르야, 마음껏 쏴 보자!”

       “쀼우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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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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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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